“다섯입니다. 불공평한 대결입니다. 루시아 아가씨.”
질끈..
“알아, 하지만 귀족 모독인 걸...”
렌은 무표정하게 케실리온을 쳐다보고 있는 아가씨의 모습에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하지만 루시아 역시 마음이 불편 한 것인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애써 무표정한 모습을 유지했다.
“아, 아가씨,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러다가 케실리온이...”
라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루시아의 손을 꼭 잡았다. 괜히 떨리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루시아는 힘껏 라나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알아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도 알고 있어.”
“예....”
라나는 루시아 아가씨와 멀리 떨어져 케실리온의 당당한 모습을 쳐다봤다. 그 상황에서 까지, 여유가 넘치는 것인지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언뜻 언뜻 비치는 조소어린 입가는 묘하게 두려움이 일어났다.
마치, 인간이 지을 수 없는 절대자의 표정이다. 같은 나이임에도 알 수 없는 카리스마가 전해지고 있었다. 가슴 한켠이 답답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두근, 두근
라나와 루시아는 지끈 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알 수없는 감정이다.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듯이 가슴이 아릿해지는 느낌, 그 두근거리는 느낌은 소설에서나 보던 느낌이었기 때문에 루시아는 얼굴을 붉혔다.
‘내가 미쳤지...저런 무례한 녀석에게 두근거리다니.’
루시아는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케실리온의 모습에 얼굴에 홍조가 어려지는 것을 느끼고는 급히 얼굴을 부채질 했다. 라나는 어디 아픈 것인지 있는 대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애써 자신의 감정을 무시한 루시아는 라나의 손을 꽉 잡을 뿐이었다.
“하하하, 검을 보니 두려운가 보지?”
‘두려움? 나에게 두려움이 있을 까?’
손목이 부러진 애송이의 말에 케실리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두려움 따위는 없다. 묘파게 요동치는 심장, 그리고 즐겁다는 인식이 몸속에서 뻗어나왔다. 묘하게 일그러지는 입가는 조소가 어렸고, 떨리는 손은 작은 기수식이 되어버렸다.
지금 검이 있으나 없으나, 상대는 애송이다. 그것을 잘 아는 케실리온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은빛의 한기가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하지만 햇빛 때문 인지, 살짝 금빛의 기운이 어리기도 했다.
두 눈이 검은 빛과 은빛이 어울려져, 잘 조화 되어 있었다. 마치, 모든 사물을 꿰뚫어보는 눈빛에 주위의 귀족들은 움찔 거리며 몸을 떨었다.
마안(魔眼)
내공 수위가 점차 적으로 높아지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비록 화경에 접어들지는 않았지만, 전생에 얻었던 깨달음으로 검강까지 뿜어 낼수 있는 케실리온이다. 문제는 육체적인 수련과 내공의 수련이 뒤쳐진다는 것뿐이지. 지금의 기상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다.
육체와 내공이 합일 되는 순간, 케실리온은 과거의 기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공으로는 잘해봐야 5분 정도 싸울 수 있을 까 말까한 내공이다. 최대한 아꼈기 때문에 일주일 전, 웨어울프 역시 상대 할 수 있었다.
그 싸움의 정도가 5분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해치울 수 있었다.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면 케실리온이 패했을 것이 분명했다.
“5분이다.”
케실리온의 마안이 빛을 내는 순간, 다섯의 귀족들이 움직였다. 애송이들답게, 협공도 어색했고, 움직임도 어색했다. 제일 처음 케실리온의 눈에 들어온 녀석은 2미터 정도의 거구였다.
지방의 귀족인 것인지, 검술 공작가의 기사들에 비해, 형편없었지만, 그런대로 수련은 한 것인지, 반듯하게 베어 오는 검에 케실리온은 살짝 몸을 비틀었다. 아니, 비틀 필요도 없었다. 삼재보법을 이용해, 옆으로 물어난 케실리온은 그대로, 그 거구의 가슴에 장을 내질렀다.
퍽!
쫙 펴진 손바닥에 가슴을 적중당한 거구는 마치, 깃털처럼 멀리 나가떨어진다. 어이없는 한 수에 귀족들은 당황해 했다. 그렇게 강한 충격은 아니었던지, 입가에 붉은 피가 베어 나왔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애송아. 내상을 입었어.”
“뭐라고, 이 꼬맹이가! 컥...”
2미터의 거구는 자신이 꼬마에게 당했다는 수치감에 성을 내며, 검을 다시 들어 올렸지만, 갑작스럽게 입에서 뿜어져 나도는 다량의 피를 보고는 기겁하고 말았다. 살짝 맞았을 뿐인데, 입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에 쇼크를 먹은 것이다.
개 거품을 문 것인지, 경련을 일으키며, 귀족의 거리를 더럽히고 있었다. 처음부터 더럽다고 느껴졌지만, 지금 이 순간은 더욱 더러워 보였다. 돌로 이루어진 도로의 사이사이를 메운 피는 멀리 떨어진 귀족들의 발치로 흘러갔다.
“개자식, 잘도....!”
친구가 당했기 때문인지, 녀석들은 주춤거리기는커녕, 벌떼처럼 달려든다. 달려드는 녀석들의 행동도 제각각이다. 진을 구축해 공격해도 모자랄 판에 무작정 달려드는 녀석을 보며, 케실리온은 하품이 나왔다.
녀석들은 삼류보다도 못해, 오류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에게 무공을 사용한다는 것에 자신이 더욱 치욕스럽게 느껴졌다.
“하품 나오는 군.”
여유롭게 검을 피해내는 케실리온의 모습에 구경하던 귀족들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지방에서 올라온 기사라도, 엄연히 한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기사들의 검을 여유롭게 피해내는 케실리온이 비정상적으로 비쳐졌다.
하품을 연신하던 케실리온은 의외로 사혈을 노리는 한수에 손가락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순간, 순간 사용 할 수 있는 검기의 종류다. 내공이 모자라기 때문인지, 검기조차 오래 유지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순간 사용 하는 것이다.
명치로 찔러 들어오는 녀석의 검을 보며, 케실리온은 손가락으로 집중된 내공을 그대로 앞으로 내질렀다.
팅!
검지손가락에 집중된 내공을 이용해, 검의 면을 쳐 내는 것이다. 순간 폭발된 힘에 그 기사는 몸의 중심을 지탱하던 하체의 힘이 쏠려 볼썽사납게 바닥에 쓰러진다.
철퍼덕!
“이 녀석들! 뭐하고 있어. 저 녀석을 죽이지 않고!”
넘어진 녀석이 성을 내자, 주위의 녀석들은 당황해 했던지, 주춤 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녀석이 최고로 강한 녀석 같았지만 케실리온이 보기에는 그저 그래 보였다.
“2분 남았군. 슬슬 질리니 끝내도록 하겠다.”
케실리온의 주위로 생성된 4개의 아이스 애로우, 지금 펼쳐 낼 수 있는 유일한 마법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2서클이지만, 아이스 애로우가 가장 실용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쩌저적!
하늘로 치솟은 4개의 아이스 애로우가 날카롭게 햇빛을 반사시키자 녀석들은 당황했던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대로 녀석들을 꿰뚫어 버린다면, 모든 상황은 종료되리라.
쉐에에엑!
4개의 아이스 애로우가 재각각의 방향으로 냉기를 뿜으며 날아들었다. 미처,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녀석들은 그대로 허리를 스치듯 지나가며, 바닥에서 터져버렸다.
퍼퍽!
“히이익! 마법사!”
마법사는 의외로 귀한 존재다. 요즘 들어 약간씩 늘어나고 있지만, 마법사는 귀한 축에 속했기 때문에 귀족들 역시, 그들은 존중한다. 하물며, 높은 서클의 마법사는 귀족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
녀석들은 케실리온의 마법에 무장해체(?)를 당하고 나서야, 상대가 자신들의 실력으로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싸울 의지를 잃어 버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피를 보자, 녀석들은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허리를 베고 지나간 자리에는 한기 때문에 약간 응고 되어 있었다. 출혈로 죽을 일은 없다는 소리였다. 다만, 일정의 내상을 당할 것이다.
“명예는 함부로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
케실리온의 말에 주위의 사람들은 작은 탄성을 내지르며, 멍한 표정을 케실리온을 주시했다.
두 공녀는 뭘 잘못 먹은 것인지, 케실리온을 힐끔 거리며 쳐다보며, 나 열났으니 건들지 마세요라는 표시를 하며, 얼굴을 붉히며 화를 삭이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 두 공녀는 가슴에서 떨려오는 전율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
제인스는 흑색의 망토를 휘날리며 유유히 사라지는 케실리온의 등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옆으로 다가서는 루시아의 모습을 보자, 묘하게 짜증이 일어났다. 게다가, 친근하게 말을 거는 하녀 계집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 돌아가요. 기분 나쁘니.”
“예, 공녀.”
제인스는 허탈한 마음을 부여잡고 수도의 카르멘가로 이동했다. 작은 해프닝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인지, 심히 불편한 기색을 들어냈지만, 붉게 변한 얼굴은 여전했다.
란델 아카데미
란델 아카데미
서대륙의 교류를 위해 세워진 곳이다. 동대륙의 단일 국가와는 달리, 서대륙은 하나의 제국과 두 왕국의 교류를 위해 세워졌다. 실상, 마법과 검술의 교류라고 해도 될 테지만, 두 왕국의 귀족 자제들을 제국의 수도, 아카데미에 들이는 것으로 일종의 인질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물론, 주목적은 교류라는 데 있고, 서대륙의 귀족간의 우호를 목적으로 두고 있는 곳이 란델 아카데미이다. 돈 많은 평민과 귀족들로 이루어진 란델 아카데미, 순수하게 공부를 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간혹, 돈이 없는 평민들도 들어오는 곳이 란델 아카데미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아카데미에 들어 올수도 있는 곳이지만, 돈이 없어도 들어 올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일 년에 두 번이나 치러지는 입학시험으로 좁은 입시의 문턱을 넘어오는 평민들도 있는 것이다.
란델 아카데미는 10세부터 16세까지 6년에 걸친 초, 중, 고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란델 아카데미 앞으로 도착한, 코리안가의 귀족, 루시아는 교문 앞에 내려섰다. 이곳은 신분에 상관없이 도보로써,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곳이다. 표면상으로는 귀족과 평민의 격차를 없앤다는 취지에서 생긴 것이다.
루시아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마차에서 내려서며, 케실리온과 라나, 그리고 호위기사인 렌을 대동했다. 귀족들의 예우로써, 한명의 기사, 시녀를 대동 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평민들이야, 그런 것이 없다고 치지만, 돈 많은 평민들도 하녀 정도는 대동 하고 있었다.
“하~ 지겨운 곳에 도착 해 버렸어.”
“아가씨, 이제 5년 6개월이나 있어야 할 곳입니다.”
루시아의 표정을 읽은 렌은 높게 솟아 오른, 성을 보며 중얼거렸다. 렌의 말이 맞다. 1학년 때야, 적응 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특별 방학이라는 것이 있지만, 2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학교의 기숙사를 이용해야 한다.
물론, 아카데미에서만 생활 할 수 없으니, 방학 시즌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지지만, 루시아는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카데미에는 하나의 커다란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란델 제국의 황궁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거대한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국의 기상을 일깨워 주기에는 충분한 곳이었다. 커다란 성의 안에는 기숙사와 식당, 그리고 수업을 위한 교실까지 있으니, 한 성에 모든 것이 구비 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괜찮은 곳이군.”
케실리온은 루시아의 걸음에 맞추어 옆에서 걸었다. 예전과는 달리, 짧게 잘려버린 머리칼을 허전하다는 듯이 만지작거리며 아카데미의 성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주위에는 많은 귀족들이 떠들며 웃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가식적이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방학 중 있었던 일, 그리고 겪었던 일을 말하며 웃는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자신을 포장하며 위대하게 보이기 위해 거짓을 섞어가며 이야기 하는 모습에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라고 생각한 케실리온이다.
큰 아카데미의 토지답게, 한참을 걸어서야 아카데미의 개학식이 벌어지는 연회장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연회장이라고 해봐야. 식당인지, 여러 가지 만찬이 준비 되어 있었다. 돈 꽤나 쓴 듯 한 광경이다.
하늘에는 마나석인지, 라이트 마법이 걸려, 휘황찬란한 모습을 띠며 밝게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때, 루시아의 곁으로 다가오는 녀석이 보였다. 또래로 보이는 남자 아이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능글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전히 아름다우시군요. 공녀. 아니, 이곳에서는 루시아로 불리시죠.”
“저리가지 못해! 레딕.”
“루시아, 나의 사랑을 몰라보는 군요. 여전히, 이 레딕 너무 슬픕니다.”
“......”
버터를 몇 스푼이나 떠먹은 것인지 능글거리기 그지없다. 루시아를 제외하고도 저런 짓을 하고 다녔던 것인지, 주위의 여자아이들이 황홀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이 노려보는 루시아는 고개를 획 돌려 버렸다.
“아...저의 미소를 감당하지 못하시는 군요.”
할 말 없다. 자기가 잘났다는 듯이 떠들며, 자기 망상에 빠진 레딕이라는 녀석은 루시아의 행동이 부끄러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 한 것인지, 한차례 머리를 뒤로 넘기고는 상큼한(?) 미소를 남기고 다른 여자를 향해 자리를 옮겼다.
“그럼, 수업시간에....”
자기 할 말을 하고 사라지는 어처구니없는 녀석을 보던 케실리온은 주위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벌렸다.
“구경났나?”
“아....”
얼굴을 구기며 소리치자, 주위의 소녀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순간, 케실리온은 란델 아카데미는 정신병동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는 데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인지 도통 이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긴 장발을 유지하던 케실리온이, 짧게 머리를 자름으로써, 중성적인 이미지를 약간 벗어 던졌기 때문이다. 긴 머리로 가려지던, 유약한 이미지가 사라진 것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위압감과 절재적인 느낌이 살아난 것이다.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 그리고 오만과 당당함, 강함이 풍겨지는 눈썹, 모든 것이 묘하게 케실리온과 어울렸다. 게다가, 집사 복을 벗어던지고, 란델 아카데미의 교복인 펄럭이는 망토까지 걸쳤으니, 기사를 보는 것 같은 눈빛이다.
“그럼 아가씨, 저희는 기숙사에서 대기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잠시 후면 시작 될 테니까.”
주위의 광경을 지켜본 루시아는 점점 사람 수가 줄어간다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다. 이곳은 학생들만의 공간, 외부인은 필요 없는 것이다. 귀족을 지키는 기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자, 약간 싸늘한 느낌이 감돌았다.
“아, 케실리온. 그럼 부탁대로....”
“알았어.”
렌이 케실리온에게 무엇을 부탁했을 까. 그건, 란델 아카데미에 며칠 전부터 신신당부를 하던 말이다. 교복과 책을 사기 위해 갔던, 귀족의 거리에서 벌였던 일을 상기하고는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렌이 케실리온에게 존대 말과 예의를 지키라는 것이었다.
실상, 케실리온은 입을 벌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무심 것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는 참담한 현실이 있었으니, 렌의 특별 강습이었다. 귀족에게는 존대 말을, 평민에게는 다정함을 내비치라는 것이다.
“정정해, 케실리온.”
“어련 하실까.”
“!!!”
“렌 경, 이 철부지 레이디는 제가 관리하겠습니다. 안심하고 기숙사로 가시죠.”
눈을 부릅뜨며 케실리온을 노려본 렌은 뒤이어 들려오는 자조적인 목소리에 기분이 살짝 풀어졌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말투가 고쳐졌다는 것에 만족 한 것 같았다. 루시아는 눈을 불을 켜며, 케실리온을 노려봤지만, 부질없는 노려봄이다.
“철부지?”
“그렇습니다. 레이디.”
루시아의 말에 케실리온은 살짝 웃음을 지으며, 존대 말 같은 것을 펼쳤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여간 불편하지 않는 것인지, 투정 같은 말투를 펼쳐내고 있었다. 그 모습도 황홀 한 것인지, 주위의 바보 같은 여자 아이들은 루시아를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덜컹!
문이 저절로 열린다. 기사들과 외부인 들이 나가자, 닫혀버린 문을 통해 누군가 로브와 정장을 섞어 놓은 듯 한 옷을 걸치고 연회장의 제일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여러분도 잘 알겠지만, 난 제국으로부터 지명 받은 이 성의 주인이자. 이 아카데미의 교장인 카이룬 폰 류드릭이다. 그리고 옆에 계신 분은 대마법사이자, 황궁 마법사인 페이린 후작이다.”
“이번 학기부터, 마법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호호호!”
별 다른 말이 없다. 속속 등장하는 학교의 교수들과 신인 교수인 페이린의 등장으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압도당해 버렸다. 스멀스멀 풍기는 강자의 모습에 평민들은 경외를, 귀족들은 존경을 담아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심드렁하게, 케실리온은 중얼 거렸다.
“귀찮게 됐군.”
란델 아카데미
“여기 세 학생은 이번 학기부터, 1학년에 편입하는 학생들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교수를 소개하던 카이룬이라는 작자가, 잘 있던 케실리온은 물론, 이번에 편입학 하게 된, 두 명의 학생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한 명은 여자 아이였고, 한 명은 묘하게 여자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한마디로, 남장 여자 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것인지, 여자들이 얼굴을 붉히며, 옆의 아이를 쳐다보기 여념 없었다. 간혹 케실리온을 쳐다보는 여자아이들의 시선에 짜증도 났지만, 그런대로 버틸 만 했다.
“레나입니다.”
옆에 다소곳이 있던, 레나라는 아이, 어딘가 익숙하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감도는 머릿결과 눈빛,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케실리온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느낌에 미간을 좁히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또, 케실리온 너냐. 그만 가만히 있어라. 이건 나의 몸이다.’
지끈, 지끈.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거리는 느낌에 케실리온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간혹, 감정 조절이 안 될 때가있다. 저절로, 흥분되거나, 아릿한 느낌이 되는, 그리고 무언가 슬픈 느낌이 들 때 마다. 이 몸을 관리했던, 케실리온의 존재가 공명하는 것이다.
살인에 거리낌 없는 지금의 케실리온,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는 과거의 케실리온이 서로 마음의 파장이 충돌해서 생긴 현상이다.
“저는 에레노아입니다.”
두 녀석의 정말 간단한 소개에 1학년부터 시작해 6학년의 학생들은 얼어붙어 버렸다. 너무나 간단한 소개였다. 마지막 남은 존재에 희망을 건 학생들은 케실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페이린이 나섰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케실리온의 머리를 살짝 건드리자, 그는 약간 움찔거리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케실리온.”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는 굳게 닫아버리는 말에 다시 한 번 절망하는 학생들 사이로, 황홀하다는 눈빛을 보내는 한 여자 아이, 검은 망토를 보건데 같은 학년이다. 그 광채가 날 듯 한 눈빛에 케실리온의 시선이 절로 그것으로 향했다.
흘러넘치는 금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린 아이답게, 촉촉이 젖은 눈빛, 하지만 적의가 담 긴 것인지, 무언가에 홀린 듯한 눈빛이다. 아마, 복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제인스 라고 했던가....’
케실리온은 그녀의 눈빛이 적의라고 판단하고는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게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레나라는 아이의 눈빛도 심상치 않았다.
“케실리온이니? 정말?”
“케실리온이다. 무슨 일이지.”
“나 모르겠어? 나, 레나야. 레나!”
잔뜩 흥분해서는 케실리온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슬픈 듯이 소리치는 레나의 모습에 케실리온은 당황스러웠다. 가슴은 알 고 있다는 듯이 세차게 떠는 것을 보아서, 과거의 케실리온과 인연이 있는 인물 같았다.
“솔직히,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어떻게...잊을 수가....”
기어코 눈물을 흘린다. 순간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에 케실리온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앞이었기 때문에 숨죽여 눈물을 훔치던 레나라는 아이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노예.”
“응! 기억하는 구나. 나는 또, 잊은 줄 알고.”
단편적으로 떠오른 기억이 맞는 것인지, 금세 기뻐하는 모습이다. 노예의 신분으로 이곳에 올 정도면, 좋은 곳에 팔렸으리라. 자신 역시 좋은 곳에 팔렸으니, 이런 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잘됐네. 좋은 곳에 팔려서.”
움찔.
레나는 살짝 움찔 거렸다. 그리고 살짝 긍정을 표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적당해 소개는 끝나버렸으니, 이젠,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수업에 들어 갈 것이다.
개학 첫날부터 수업이라니, 이상할 법도 하지만, 2학기부터 시작될 새로운 교수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 여섯 개의 테이블에는 각각의 망토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흰색, 노란색, 총 여섯 개의 망토가 테이블에 있었다.
1학년인 케실리온은 루시아의 곁에 앉아 조용히 음식을 먹으며, 아까전의 레나라는 여자아이에 대해 생각했다.
“두려움인가.”
순간 움찔 거리던 순간, 두려움을 내비쳤다. 아마 무슨 일이 있겠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묵묵히 음식을 입에 넣을 뿐이었다. 교수들은 미리 준비 할 것이 있는 것인지, 연회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두려움이라니?”
“하하, 아닙니다. 아가씨.”
“에...어색해.”
루시아의 물음에 케실리온은 착실하게 예의를 갖추며, 대답했지만 루시아는 어색하다는 듯이 혀를 내밀고 있었다. 좋아서 하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한껏 찌푸린 표정을 지으며, 나이프를 고기에 푹 찔러 넣었다.
푹! 푹!
“무슨 짓이야.”
“육질이 좋군요. 하하.”
돼지고기가 육질이 좋은 것인지 푹푹 잘 꽂힌다. 케실리온은 살짝 기분이 풀렸다는 듯이 찔러 넣었던 나이프를 이리저리 흔들며, 돼지고기를 분해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분해된 돼지고기는 먹기 좋게 썰려 있었다.
짝짝!
“대단한 솜씨군요. 저는 레딕입니다. 라이벌씨”
레딕이다. 여전히 능글거리며, 찝쩍대는 그녀석의 행태에 케실리온은 무시하며, 돼지고기를 입에 넣으며 오물거렸다.
“아...나의 잘생긴 모습에 반하셨군요. 케실리온. 저는 정상입니다. 여자만을 사랑하는 존재.”
“착각을 잘하시는 군요. 레딕.”
케실리온은 녀석을 난도질 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참으며, 최대한 예의를 차렸다. 이것도 못할 짓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셔버리던 성질이 어디 가겠는가. 지옥에서부터 지금까지 익숙해진 성격이다.
지금은 꾹 참고 있을 수밖에, 무언가 잘 못 건드리면, 폭발 할 것 같은 화산처럼, 케실리온은 휴식하고 있는 화산처럼, 조용히 화를 삭였다.
“이런, 이런! 5년 정도를 같이 할, 친구인데 너무 야박하시군요.”
“케실리온, 이런 녀석은 무시하고 교실에나 가자.”
슬슬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루시아는 케실리온은 붙잡으며, 교실로 이동했다. 레나라는 아이는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 주위를 두러보며, 움찔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교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 루시아, 너무 하십니다. 저의 사랑을 무시하다니.”
케실리온은 처음으로 2계에서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것도 10살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꼬마아이를, 그것을 알고는 자신의 수련이 덜 됐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자신을 다독였다.
‘저런 미친놈은 무시하는 게 좋겠군.’
스스로 심법 수련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인식한 케실리온은 육체적인 수련과 정신적인 수련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란델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