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269)

란델 제국의 남부, 제니어스의 남작가.

똑똑.

“아버님, 다과 내어 왔습니다.”

짧은 노크 소리에 상념을 깬 것인지, 서재 안에서 책을 보고 있던, 남작, 일레인은 책을 덮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방안에는 무수히 많은 책이 쌓여 있었고, 곳곳에서 양피지와 잉크 냄새가 풍겨나고 있었다.

“들어 오거라.”

무심하도록 시린 음성이다.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이 들어온 여자 아이를 쳐다보는 일레인 남작은 가히, 딸을 보는 눈빛이 아니라. 원수를 보는 듯 한 눈빛이다.

“또 유적에 대해 연구 하시고 계셨나 봐요.”

“흐음...거기 두 거라.”

서재 안으로 들어온 딸은 발디딜틈을 찾아,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보통 귀족가라고 한다면, 서재 안에 그 흔한 테이블 정도는 있을 테지만, 불필요한 것을 잘 두지 않는 일레인 남작은 양피지를 쓸만한 공간을 제외하고는 책을 쌓아 두고 있었다.

무슨 연구를 하길 래, 열심인 것은 잘 몰랐지만, 그의 눈빛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눈빛이다.

“아직도 검을 휘두르는 것이냐. 여자라면 책이나 읽고 영애로써 품위를 배워야 할 것을 어찌 너는 검을 잡는 것이냐.”

“아, 아버님.”

“이제 그만 두 거라! 여자가 되어서 검을 잡는 것은 천박한 짓 이니라.”

“하지만...”

늘 상 있는 일인지, 눈앞의 여자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에레노아,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니. 그만 검을 잡고 차라리, 이 아비처럼, 펜을 들거라.”

딸의 손이 거칠어 져 있다는 것을 본, 일레인 남작은 작게 꾸짖었다. 벌써 3년이다. 무엇을 보고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을 잡고 휘두르고 있었다. 시키지도 않았건만, 검을 잡는 모습에 화를 내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기도 해봤지만, 소용없는 짓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남작은 포기 하지 않았다.

“아버님, 사실 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그래, 또 검술 대회를 가고 싶다는 것이면 포기하거라. 이젠 그런 허락은 하지 않는 다.”

에레노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부탁을 했지만, 곧장 거부 사인이 떨어지자, 고개를 푹 숙였다. 벌써, 외출 금지령도 1년째에 달하고 있었다. 시작이 어찌 되었건, 검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없는 에레노아는 무엇이든 한번 이라도 좋으니, 검을 배우고 싶었다.

“아버님, 제발...”

“차라리, 그때 네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구나. 네 오라비 대신 말이다. 이제 우리 가문은 끝났어. 이제 남은 것은 너 하나뿐이다. 제발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 거라.”

남작은 입에 담아서도 안 될 말을 꺼냈다. 에레노아의 오라버니는 3년 전, 영지로 들어온 용병의 검에 죽어버렸다. 기사가 되겠다며, 검을 잡던 에레노아의 오라비는 용병의 검술에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렸던 것이다.

“네 오라비를 보고도 모르겠느냐! 여자가 익힐 것이 못돼! 자고로 검이란 힘이 뒷받침 되어야 하거늘, 넌 어찌 모르는 것이냐.”

“할 수 있어요. 전, 전 할 수 있다고요. 이제 말 잘 들을 테니, 란델 아카데미로 보내 주세요. 네?”

“허, 란델 아카데미로 가겠다고? 또 헛소리를 하는 구나. 멀리 떨어진 수도까지 가겠다고? 아녀자의 몸으로 말이냐. 검은 포기하고 그냥 집에서 바느질이나 하며, 귀족가의 귀족과 결혼이나 하거라. 그게 우리 가문이 살 길이야.”

“시, 싫어요. 전 검을 배우겠어요.”

“절대 안 돼, 입학금도 줄 수 없다. 그런 말 하려거든, 이곳에 오지도 말거라!” 

일레인 남작의 축객령에 에레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남자, 남자 타령이었다. 그리고 오라버니 대신, 죽었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분이었다. 자신이 남자였다면, 분명,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란델 아카데미로 보냈을 것이다.

그것이 가문을 부흥시키는 길이요, 희망인 것이다. 하지만 오라버니는 죽어버렸으니, 남은 것은 에레노아 하나뿐이었다. 언제나, 집에서 교양을 배우며, 바느질과 귀족의 영애가 해야 할 일을 가르치고 있었다.

혼기가 찬다면, 근방에 있는 귀족에게 시집가야 할 형편일 정도로, 남작 가문은 몰락해 가고 있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고는 던전과 비슷한, 유적지였지만 특별한 소득이 없어 주위의 귀족가에서도 쉬쉬하는 던전이었다.

“흑...아버님, 전 꼭 검으로 성공하겠어요. 오라버니를 대신해서 꼭 검으로...”

아직도 에레노아의 눈은 과거를 떠올렸다. 죽은 오라버니가 휘두르던 검과 검로가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었다. 언제나, 자신의 앞에서 검을 휘두르며, 땀을 흘리던 오라버니가 좋았다. 

그때는 아버지 역시, 다정한 분이었지만, 오라버니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그저 조금씩 몰락해가는 남작 가문의 가주일 뿐이다.

히히히힝!

한 말이 급히, 남작 가문으로 말을 몰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큰 깃발에 붉은 수가 놓여 있고, 짧게 방패와 검이 그려져 있는 문양이었다. 반 무장 상태로 남작가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도 근방의 귀족이라면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하고 쫒아 버릴 테지만, 남부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언제, 어디서고 몬스터가 나타나기 때문에 무장을 필수였기 때문이다.

“제니어스 남작은 나오시오!”

기사가 소리 높여 남작가에 소리치고 있었다. 그제야 아버님은 서재에서 발을 떼며, 남작가로 찾아온 기사를 맞이했다. 보통 귀족이라면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최대한의 예우다. 일개 기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남작이라니.

게다가, 기사는 묘하게 입 꼬리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나는 하르그 남작가의 기사다. 그대, 제니어스 남작가의 가주는 들으라.”

“크윽...예”

기사의 오만한 목소리에 아버지는 침음 성을 토해내며, 억지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만족한다는 듯이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피지를 넓게 펴며, 크게 소리쳤다.

“본 남작은 그대와 혈연관계를 맺기 위해 이 친서를 그대에게 보내오. 우리의 관계를 유지  하기를 원한다면, 하루 속히, 그대의 딸과 본 남작의 아들과 혼인을 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리고 조만간, 본가의 소공자를 그곳에 보낼 것이니, 잘 생각해보시오.”

협박도 이정도의 협박도 없다. 혈연관계는 영지와 영지를 통합시키자는 소리였다. 명목상으로 혼인을 함으로써, 하나의 영지로 통합하자는 취지겠지만, 그것으로 제니어스 남작가는 명맥이 끊어 질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하르그 남작가는 그것을 이용해, 영지를 날름 먹어 치울 생각 인 것 같았다. 

“잘 생각해보시오. 남작. 이럇!

그 기사는 말머리를 돌리며, 근방에 있는 하르그 남작가로 돌아갔다. 기사가 사라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던, 엘레인은 돌연, 시선을 돌려 슬픈 듯이 지켜보고 있는 딸을 올려다봤다.

“보아서 알겠지? 이 아비는 힘이 없다. 이제 나의 대에서 본가는 명맥이 끊기게 생겼단 말이다.”

“아, 아버님!”

에레노아는 비참하게 바닥에 무릎을 구핀, 아버지를 보고는 슬픈 느낌을 주체 할 수 없었다. 힘이 약해, 가문을 빼앗기는 심정을 누가 알리오!

“그래, 할 수 있겠느냐. 검으로 가문을 살릴 수 있겠느냔 말이다.”

“하, 할 수 있어요! 반드시!”

“좋다. 여자의 몸으로는 위험하니, 남장을 하고 다니 거라. 그리고 나의 귀에 네 이야기가 들리지 않게, 조용히, 죽은 듯이 숨어서 란델 아카데미로 향하 거라. 혹시 들킨다면, 넌 하르그 가문의 소공자와 혼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와 절망에 에레노아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못되면 가문은 몰락할 것이고, 명맥도 없어 질 것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기사가 되어, 가문을 부흥 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          *          *

“에레노아! 지금 제 수업이 지루한 건가요?”

“죄, 죄송합니다.”

“알면 됐어요. 그 문장, 읽어 보세요.”

“네.”

에레노아는 오전 수업인, 마법을 듣고 있었다. 물론, 특별반인, 이곳에서 마법은 물론, 귀족으로써 배워야 할 모든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남장을 한 그녀였기 때문에 남자에 대한 것을 배워야 할 것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여기야. 2번째 줄.”

반의 클래스메이트인, 레나다. 같은 자리의 단짝이기 때문인지, 친절했다. 간혹, 케실리온에 대해 질문을 해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난감한 질문이 아니었다. 밤에 무엇을 하는가. 그런 질문이 주루를 이루었지만, 그렇게 싫지 만은 않았다.

“4대 원소인 바람과 불, 물과 땅이 있다. 이것을 이용해.....”

에레노아는 레나가 가르쳐준, 구절을 읽기 시작했고, 수업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에레노아를 지켜보는 레딕이라는 녀석이 눈을 빛내고 있었지만, 에레노아는 애써 무시하며, 수업에 집중했다.

“자,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끝마치고, 마법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나를 따라 오도록.”

페이린 교수가 그런 말을 하고는 나가 버렸고, 그 뒤로 마법사 지망생인 아이들이 속속, 교실을 빠져 나갔다. 이것이 특별반의 이색적인 모습인 것이다. 수업시간을 끝마치지 않았건만, 특별반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클래스에 맞지 않게 수업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낭비 일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도움이 되고 있다.

그 도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거, 수업이 정말 재미있더군요. 역시 페이린 교수님의 미모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레딕이 그런 말을 하자, 반의 아이들은 빠르게 무시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이나, 친한 녀석들 끼리 대화를 하는 것이 다였다.

“레딕 나 좀 보자.”

“이 놈의 인기란, 끝이 없군요. 성별에 구분이 없이 말입니다. 하하하. 물론 시간은 내어 드리죠.”

에레노아의 목소리에 레딕은 건방을 떨며, 요란하게 소리쳤다. 반 아이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에레노아와 레딕을 쳐다 보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케실리온의 눈은 그것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군. 룸메이트?’

케실리온은 속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루시아의 장난이나, 레나와 잡다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질리지도 않은 것인지, 계속해서 노려보는 제인스를 애써 무시한 케실리온은 둘이 사라져 가는 방향으로 따라갔다.

“케실리온 어디가!”

“화장실도 허락 맡아야 하는 겁니까.”

케실리온의 말에 루시아는 얼굴을 붉혔고, 제인스와 레나는 소리 죽여 웃음을 터뜨렸다. 프린은 말없이 케실리온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곧, 관심을 끊고는 책을 보며, 중얼거렸다.

“에레노아를 따라 가는 군.”

반 아이들의 떠드는 목소리에 묻혀, 퍼지지는 않았다. 그 말을 들었다면, 몇 명의 여자아이들이 따라 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룸메이트 에레노아

“자, 이정도 왔으면 인적이 드문 곳 같군요.”

란델 아카데미에서 한적한 곳이란 없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에 간간히, 눈에 비치는 학생을 제외하고는 눈에 띠지 않았다. 아니, 멀리서 검을 휘두르는 자들이 눈에 뜨였지만 이곳에 관심을 쏟는 자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에레노아는 숨을 크게 들이키고는 눈앞에 능글거리는 레딕에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안 것이지? 넌 뭐야...!”

떨리고 있었다. 사시나무처럼 온 몸을 떨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레노아의 모습이 보인다. 물론, 케실리온은 기척을 죽이고 근처의 나무위로 올라가 있었다. 완벽하게 기척을 죽였기 때문인지, 주위에는 새들이 귀찮게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저 말씀입니까. 에레노아, 아니, 에레노아 양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

에레노아는 레딕의 말에 눈이 커질 대로 커져 버렸다. 크게 부릅떠진 눈동자는 붉게 물들 정도로, 안구의 혈관이 붉게 타올랐다. 그 모습에 레딕은 알게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에레노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툭툭...

“안심하십시오. 특별히 비-밀-을 말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레딕의 행동에 불쾌한 표정이라도 지을 법 하건만, 에레노아는 약간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런 비밀을 폭로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 뻔했다.

“원하는 게 뭐야.”

“하하하! 이야기가 빠르군요. 슬로우, 천천히 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레딕의 호쾌한 말에 에레노아는 미간을 좁히고는 바로 앞에 있는 나무에 몸을 기댔다. 더 이상의 심적인 공격에 몸을 지탱할 힘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간신히 비틀거리는 몸을 나무에 기댄 에레노아는 화가 났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화가났다는 듯이 숨결도 거칠어져 있었다.

“난 장난칠 기분이 아니야. 레딕!!”

“어이쿠, 무섭군요. 아무튼 저도 장난은 사양입니다.”

저벅...저벅...

레딕은 에레노아의 곁으로 다가서며, 살며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푸르렀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은빛의 섬광에 밝게 미소를 짓던, 레딕은 성을 내며 소리치는 에레노아의 말에 대꾸하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에레노아양, 솔직히 그런 비밀 같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정도로 저는 입이 가볍지 않습니다.”

“......”

레딕의 진지한 표정에 에레노아는 살짝 몸을 떨며 긴장했지만 들려오는 대답에 힘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후후후, 믿지 않으시군요. 뭐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딱히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당신의 능력을 사고 싶을 뿐입니다.”

“뭐라고?!”

레딕의 말에 에레노아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능력을 사겠다니!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바보 같은 녀석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어이를 상실해,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에레노아 양에게서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군요. 후후후.”

“사고 싶은 게, 능력이라고?”

“예, 딱히 지금은 필요 없습니다. 때가 된다면, 그저 저의 행동에, 그리고 제가 속한 가문에 같은 뜻을 가지자는 것이지요.”

“그 가문이라는 게....어디?”

“후후후, 아직 이도저도 아닌, 이방인인 당신에게 가르쳐 줄 정도로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에레노아. 혹시 원한다면, 아니,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보인다면...제가 속한 곳에 기사로 등용할 의사도 있습니다.”

“!!!!”

레딕의 말은 에레노아로 써는 노칠 수 없는 기회였다. 에레노아의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는 자신이 기사의 작위를 가져야 한다. 그곳도 커다란 가문이라면 더욱이 좋다. 란델 제국의 남부라고는 하지만, 다른 세상이다.

강한 자가 그곳을 지배하는 곳이란 말이다. 강자의 세계! 무력으로써 그 기세를 보여, 영지민의 민심과 몬스터로부터, 지킬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 이것이 남부의 방식이다.

“조, 좋아!”

“노노, 아직입니다. 당신이 가문에 충성을 할 자인지 의지를 보이십시오.”

“무엇이든지 해주겠어. 기사의 작위를 위해서라면.”

“하하하! 재미있군요. 역시 비밀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첫 번째로 증명해야 할 것은....후우..”

레딕은 숨을 고르고는 다시 말하겠다는 듯이 하늘을 다시 한 번 올려다봤다. 그 레딕의 눈빛은 하늘이 아닌, 나무의 한 구석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없었지만, 의미모를 미소를 짓던 레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케실리온, 그러니까. 루시아 공녀의 개라고 해야 할 까요? 저와 같이 그를 곤경에 빠트리는 겁니다. 확실하게 퇴학이 좋겠군요. 기간은 무제한입니다. 증명해 보시죠. 하하하!”

질끈...

“꼭 그걸로 해야 하는 거야?”

“물론입니다. 당신의 룸메이트의 몰락이 가장 좋겠군요.”

레딕은 차갑도록 시린 눈빛으로 에레노아를 쏘아보며 능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싱글거리며 그런 말을 하는 레딕의 모습에 에레노아는 어딘가 모르게 두려움이 일어났다.

“잘 생각 해 보십시오.”

레딕은 몸을 틀며, 교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을 가벼워져 있었고, 어딘가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그의 입 꼬리가 묘하게 틀어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아, 어린아이가 처음 보는 장난감을 대하는 미소였다.

“케실리온....케실....”

에레노아는 작게 신음을 터뜨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건 기회였던 것이다. 원하지 안 든, 원하든 이건 자신의 가문에 부흥을 가져다 줄 것이다. 반드시, 케실리온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        *        *

“어린 것들이 잘도 지껄이는 군. 그나저나. 레딕이라고 했던가...비록 불완전하지만, 나의 기척을 잡아내다니. 조심해야 겠군.”

케실리온은 이미, 일선으로 물러나 있었다. 레딕의 시선이 나무쪽으로 묘하게 움직이는 것을 파악하고 몸을 다른 곳으로 숨긴 것이다. 어린것 치고는 제법 강단있는 눈빛이었다.

능글거리는 눈빛 속에 맹수의 눈빛을 본, 케실리온은 살짝 웃음을 흘리며, 교실 쪽으로 사라져간, 레딕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나저나...룸메이트, 줄을 잘못 섰어...다, 저 레딕이라는 꼬마 때문이겠지. 나는 자비롭다고, 룸메이트 에레노아.”

케실리온의 스산한 목소리가 바람에 스치듯 흩날렸다. 짧게 잘려있는 그의 검은 흑발을 살짝 쓸어 넘긴 케실리온은 교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마, 이번 수업시간은 예절 수업일 것이다.

룸메이트 에레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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