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269)

“귀족의 예절은 어렵고도 심오합니다.”

‘뭐가 심오하다는 건지...쯧쯧, 거짓 명예에 강자에게 약한 족속들이....’

예절을 가르치는 교수의 말에 케실리온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 교실의 사람들 전부는 대륙의 귀족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물론, 레나와 케실리온은 제외상황이지만, 모두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니, 예절에 대한 수업만큼은 모두 열심히 듣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귀족에게는 의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약자인 평민을 보호하며, 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이 귀족입니다. 귀족은 제국의 얼굴이며, 제국의 모든 것입니다.”

귀족의 허영심에 빠진 귀족의 표본이었다. 그 허무맹랑한 강의에 케실리온은 하품이 절로 나왔다. 그만큼 그 교수는 귀족을 찬양하는 자였기 때문에 케실리온과 같은 평민이하의 사람에게는 와 닫지 않는 말이었다.

“케실리온! 집중하세요.”

“예, 교수님.”

이것도 교수가 가르친 것이다. 귀족이 말한다면 꼬박꼬박 예의를 갖추어 대답하는 것은 평민의 의무라는 것이었다. 그 철딱서니 없는 귀족 자제들은 케실리온의 모습에 비웃음을 날리기도 했지만, 레딕은 눈을 빛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에레노아와 레딕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으리라.

“역시 노예였다는 것이 사실이군요. 예의가 없습니다. 케실리온.”

“후후후.”

케실리온은 레딕의 도발적인 말에 웃음만 흘릴 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해야 할까? 레딕의 선방에 에레노아 역시 입을 열었다.

“케실리온, 예절 수업입니다. 집중해 주시죠?”

에레노아의 후속타에 케실리온은 여전히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주위의 아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케실리온을 몰아붙이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유도 몰랐지만, 그것이 기회라는 생각에 주위의 로킨 패거리 역시 가세했다.

어린 것들의 시비에 같잖은 느낌이 들었지만, 다행히 예절 교수가 중재에 나서며 어수선하던 교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조용히 하세요. 여긴 아카데미입니다. 신분의 격차를 논할 자리가 아니란 말이지요.”

“조심하겠습니다. 교수님.”

교수의 호통과도 같은 소리에 레딕은 예의를 차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예의 바른 행동에 교수는 만족한다는 듯이 끄덕이고는 수업에 다시 들어갔다.

“귀족으로써, 언행과 행동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언행은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한편, 자신을 치켜세울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레딕처럼, 언행과 행동이 일치 할때가 가장 보기 좋은 귀족의 예절이지요.”

교수는 레딕이 단단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케실리온에게 저질렀던, 무례를 잊었다는 듯이 레딕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과 말투를 본받으라는 것이다.

“케실리온은 잘 모르겠지만, 귀족은 사소한 것으로 화를 내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례한 행동을 취한다면, 그에 따라 행동을 취할 뿐이지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교수님. 저런 노예와 같이 수업을 듣는 것도 불쾌한데, 저런 언행까지 한다는 것은 귀족들에게 있어서, 명예가 실추되는 행위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에레노아?”

레딕은 노골적으로 케실리온을 적대했다. 교수의 말에 맞장구 까지 치는 행동에 화가 슬슬 났지만, 이것도 인내의 수련이라는 생각으로 케실리온은 참고 또 참았다.

‘그래, 이건 인내의 수련이다. 어린 아이들의 도발에 넘어가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

케실리온은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에레노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에 에레노아는 약간 당황한 듯 보였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쩔수 없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이죠. 란델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그에 맞는 행동을 하십시오. 케실리온.”

저런 황당한 말에 루시아와 레나는 뻥찐 표정을 지었지만, 당사자가 아무렇지 않다는 데, 함부로 나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의외의 인물이 입을 열었다.

“너무 노골적이군요. 에레노아, 레딕. 이것도 예절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제인스였다. 말없이 케실리온을 도우며, 케실리온의 눈치를 살피는 듯 한 행동이었지만, 케실리온에게는 여전히 무슨 꿍꿍이가 있는 표정으로 비쳤다. 실상 케실리온을 진심으로 도우고 싶어서 나온 행동이지만, 케실리온에게는 그렇게 비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인스 양, 모든 것이 우리의 잘못이라고 들리는 군요.”

“뭐라고요?”

“설마, 저런 노예 따위에게 정을 주시는 겁니까? 상당히 불쾌합니다.”

레딕의 말은 케실리온의 고립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 말에 제인스는 당황한 듯 한 모습을 보였지만, 의외로 당당한 모습을 취했다.

“흐, 흥! 누가 저런 노예 따...따위...”

제인스는 말이 길어질수록 목소리가 작아지고 있었다. 케실리온의 눈치를 살피는 행동이었다. 레딕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굳게 입을 다물어 버렸고, 어느새 교실은 예절수업은 온대 간데없고, 토론의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었다.

“귀족의 의무가 평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왜 노예의 편을 드는 것지?”

“흥! 그럼, 넌 자신의 시종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보는 데?”

에레노아와 루시아의 공방이었다. 둘은 한 치도 물러 날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고, 예절수업을 가르치는 교수는 이미, 반의 분위기를 바로 잡지 못하고 교실을 나가 버렸다.

“그, 그만해.”

레나는 누구의 편도 들지 못하고 글썽 거렸다. 그녀 역시 노예의 신분에서 귀족가의 양녀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유일하게 귀족이 아닌 존재는 케실리온이었다.

“귀족들이란...”

케실리온의 중얼거림에 반의 아이들은 더욱 흉흉해 졌다. 이미 수업도 물 건너갔기 때문에 예절 수업의 교본을 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로킨이 앞으로 나서며, 케실리온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잘도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군!”

“내가 무슨 말 했던가? 저번처럼 마법이라도 펼치던가.”

슬슬 짜증이 났다. 이건, 심신 수련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주위에서 케실리온 자신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것도 짜증이 났고, 자신을 물고 늘어지며, 비호하려는 루시아도 짜증이 났다.

“귀족 능멸이다! 노예!”

“또 능멸타령인가? 질리지도 않는 군. 그리고 여긴 엄연히 신분의 격차가 없는 곳이다.”

“이...이이!”

케실리온의 말투에 열 받은 것인지, 아니면, 맞는 말에 분통이 터져서 화를 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무진장 참고 있었다. 주위의 반 아이들은 소곤거리며, 로킨의 신경을 자극했다.

“본전도 못 찾을 거면서 나서기는....”

“뭐 자업자득이지...솔직히 여기서 신분 타령한다고 달라 질 것은 아니니까.”

그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녀석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젠장! 결투 신청이다!”

“결투? 또 기사 놀음인가?”

로킨은 어울리지 않게, 귀족의 예의를 차리며, 소리치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제야 루시아는 뭔가 잘못됐다는 듯이 케실리온의 곁으로 다가와 소리쳤다.

“미쳤어? 결투라니...잘못하면 퇴학이라고.”

“제가 결투를 신청했습니까? 아가씨.”

케실리온은 걱정 어린 말투로 소리치는 루시아의 목소리를 무시하고는 뒤에서 히죽거리는 레딕을 보며 살짝 눈을 빛냈다.

‘의도한 것이 이거였나?’

케실리온은 걱정 없다는 듯이 한번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반 아이들은 결투라는 말에 흥분된다는 듯이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      *      *

“레딕, 설마...”

“예, 의도한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잘 따라 줄지는 몰랐지만...로킨, 의외로 단순하더군요.”

“그래도 결투라니!”

“딱 좋지 않습니까? 학생끼리의 결투는 금지 되어 있는 것,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은 퇴학 확정입니다. 이것으로 증명 된 것이 아닙니까? 에레노아.”

“하, 하지만!”

그 둘은 스치듯 이야기하며, 교실에서 멀어져 갔다.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는 듯이, 케실리온와 로킨의 결투는 알게 모르게 1학년들의 사이에서 소문을 타고 흘렀다.

룸메이트 에레노아

“미안.”

매일 같이 찾아오는 밤이었다. 어이없는 로킨 녀석의 결투 신청에 하루가 짜증스러웠다. 그리고 이제 와서 사과하는 에레노아의 말에 케실리온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미안? 뭘 말이냐.”

“이래저래 모든 것 말이야.”

케실리온은 짐짓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에레노아는 그것이 화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기숙사의 방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입학한지, 둘째 날 되는 밤이건만, 벌써부터, 저런 허접스런 아이들이 꼬이다니, 골치가 아파왔다.

이곳에서 무려 6년이나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에 케실리온은 그냥 퇴학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좋지, 퇴학 말이야. 매일 같이 반복되는 불필요한 수업도 들을 필요도 없고.”

“미안, 정말 미안해. 의도 한 게 아니었어.”

“신경 안 쓴다. 네 나름대로의 선택이었겠지.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케실리온의 세상 다 산 듯 한 목소리에 에레노아는 크게 눈을 떴지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세상 다 산 듯이 말하는 구나. 걱정도 되지 않아? 힘들게 들어온 아카데미 일 텐데...”

“걱정? 나에게 걱정이 있을 까?”

무관심 할 정도로, 무뚝뚝한 어조에 에레노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기껏 걱정 어린 말투였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모든 것을 해탈한 어조였다. 모든 일에 관심 없다는 듯 한 행동에 살짝 화도 났지만, 각자의 인생이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 뿐이었다.

애초에 시작은 자신이 벌인 일로 일어난 일이니, 어느 정도는 자신의 책임도 있었다. 하지만 무감각한 케실리온의 어조에 자기 합리화를 시킨, 에레노아는 앞으로 있을 수업을 복습하기 위해, 책을 펼치며, 공부에 열중했다.

“무엇이 너를 속박하는지 모르겠지만, 널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저 네 할 일이나 잘하라는 것이다.”

“미안...난 네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많아. 원하는 목표를 위해 달려가기 위해서는 이럴 수 없다는 것 밖에 말할 수 없어.”

“원하는 목표라...”

에레노아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케실리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수련이다. 질릴 법도 하건만, 하루도 빠질 수 없는 중독성이 있는 것.

점점 강해지는 느낌에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마나는 사용하는 자의 감정 기복에 따라 변한다. 마나의 속성은, 자질, 가정환경, 그리고 사용하는 자의 감정, 수련법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 마나의 속성이다.

케실리온은 마족의 마기와 비슷하지만, 차갑고도 시린, 빙(氷 : 얼음)의 속성이다. 세상을 얼릴 수 있는 차가운 얼음! 하지만 아무리 무엇이든 얼릴 수 있는 얼음이라고 한들, 언젠가는 녹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시답잖아 열기에 녹을 정도로 그 얼음은 약하지 않았다.

세상천지를 얼려버릴 수 있을 만큼의 의지와 기백, 그리고 긍지가 담겨 있는 것이 케실리온의 마나, 지배자의 마나를 품은 자가 케실리온이다.

‘나 역시, 목표를 두고 전진하던 때가 있었지...후후’

마령심법(魔靈心法)을 운기 하는 내내, 케실리온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꿈을 위해 전진해 나가던,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1계에서부터 갈망해오던 무적의 힘!

누구도 넘볼 수 없고, 자신을 괴롭힐 수 없는 무적의 힘을 얻었다. 흡수, 그리고 만오의 무공 이것만으로도 누구도 자신에게 덤 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케실리온이지만, 2계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알 수 없는 떨림이 계속되어 왔다.

‘누구도 날 꺾을 수 없다. 아니, 질수가 없지. 친우이자, 가장 존경하는 사부의 말이었으니까. 누구보다 강해지는 것!’

케실리온의 심정을 반영하듯이 희미하게 방으로 들어오는 쌍월(雙月)의 기운이 케실리온의 하단전을 채우고 있었다. 그 기운이 마령심법의 구결에 따라, 하단전에서부터, 점점 몸의 상체로 이동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며, 온몸의 활력을 돋웠다.

그리고 시간을 역행하듯, 그 기운이 반대로 돌기 시작하자, 조금씩이지만. 마나가 불어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겨우 반 갑자 정도의 내공이 모여 들었다. 그 토록, 많은 마나가 분포 하고 있었지만, 원하는 마나의 속성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강구하지 않는 다면, 평생가도 지옥에서의 내공을 되찾을 수 없을 지도 몰랐다.

‘무한의 내공을 얻기 위해서는 정공법(正攻法)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흡혈마공과 흡수를 통해 내공의 강함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심법을 운용 할수록, 잡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케실리온은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잡념이 많아질수록,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위험이 많았지만, 케실리온의 내공 심법이 마공(魔功)의 성향을 강하게 뛰기 때문에 늘 상 있는 일이었다.

‘이럴 때, 마족 한 마리가 있다면, 내공을 어느 정도 회복 할 수 있겠지만...’

케실리온은 1계에 있을 때의 게임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마족을 흡수 했을 때, 나타나는 신비한 인체의 영향을 떠올 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능력으로는 마족을 상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웨어울프를 잡은 것도, 일시적인 현상일 뿐! 정면대결을 펼쳤다면, 필패(必敗)였을 것이다. 고작 검강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채, 1분도 되지 않는 다. 그나마, 몸의 세맥과 혈맥이 다 뚫려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막혀 있었다면, 검강은 커녕, 검기도 힘들 것이다.

‘발묘조장(拔苗助長)...급할수록 돌아가라는 풍운지의 말이 생각나는 군...’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아니, 죽음을 경험 할수록, 성숙해 지는 것이 인간이다. 늙은이들이 과거는 죽음에 임박해, 떠올리는 추억과 살아 있다는 안도의 감정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즐거움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혀 주는 등불인 것이다.

케실리온은 자기 자신이 젊다고도, 늙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멈 춘 것처럼, 많은 경험을 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도 저도 아니다. 인간도 아니요. 용도 아니기 때문에 그 무엇도 아닌 생명체가 된 것이다.

‘너희들의 장단에 놀아 주는 것도 6년이다. 그때까지 잘 부려 먹도록.’

케실리온은 내공이 역행하는 것을 돌려, 하단전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기운 중 일부는 중단전의 심장으로 모여 들었지만,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이상하게도, 하단전의 상승은 중단전의 상승을 불러 일으켰다.

예를 들어, 하단전의 내공이 반 갑자라면, 중단전의 내공 역시, 반 갑자를 따라 가고 있었다. 고로, 양쪽의 내공을 합친 다면, 1갑자에 해당하는 내공을 보유 한 샘이다. 육체를 단련하는 것의 하단전,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 것의 중단전, 마음과 생각의 깨달음은 상단전.

몸의 기운이 포화에 이른다면, 상단전의 길이 열릴 것이다. 그것은 곧, 지존의 부활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것도 완전한 부활! 무한의 내공이 되어, 수많은 검을 날려 보내며, 왼손에는 마법을, 오른 손에는 검을 쥘 수 있을 것이다.

“후우...후...”

번쩍!

뚜렷하게 보일 정도의 내공 상승이다. 케실리온의 주위에서 피어오르던, 은빛의 내공과 폭사된 안광이 서서히 걷히며, 밝게 빛나는 마나 석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 편에서 책을 보고 있던, 에레노아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안광에 미간을 좁히며, 멍하니 케실리온을 쳐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지. 룸메이트?”

케실리온은 의당 물어야 할 질문이라는 듯이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에레노아에게 말을 건넸다. 갑작스런 질문이었던지, 에레노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 어떻게 그런 빛을 낼 수 있어? 마나수련법은 마법사만의 것일 텐데.”

“내가 기사 지망생이라고 했던가?”

“그, 그럼. 마법사 지망생?”

“후후후, 마법사 지망생이라고 했던가?”

“뭐야 그럼!”

장난스런 케실리온의 음성에 화가 났다는 듯이 버럭 소리를 질러버리는 에레노아였다.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노출 했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인지 에레노아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비-이-밀! 하하하. 사람은 한 가지 이상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 너도, 나도.”

움찔...!

에레노아는 케실리온의 비밀이라는 말에 다시 움찔 거렸다. 그 모습을 놓칠 리 없는 케실리온은 미소를 머금으며, 침대에 누워 버렸다.

“그쯤 해둬라.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법이니까. 그리고 난, 일주일 뒤에 결투를 하는 몸이라고. 컨디션은 최상으로 유지해야 하지.”

“흐, 흥! 누가 잘 줄 알고! 밤새도록 볼거야.”

“그러시든지...룸메이트 에레노아. 하하하! 까칠한 녀석.”

케실리온은 진정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잠을 청했다. 벌써, 즐거워 졌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닫았다. 너무 좋아하면....슬프니까 말이다.

‘즐겁다고 생각한 건가? 너무 즐거우면 안 되지. 언제나 이별의 연속이니까.’

세월의 업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던 존재를 많이 봤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매일 같이 이야기를 하는 상대도, 그리고 별채에서 생활했던, 라나와 렌...루시아에게도 마음을 완전히 열지 않았다.

왜냐고? 너무 즐거우면 이별이 아쉬우니까! 케실리온은 자신은 고독하고도 고독한 존재라고 자신을 치부했다. 앞으로도, 계속 고독할 것이다. 그저, 한 순간의 유희처럼 행동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걱정하는 것이 딱하나 있었군...이별.’

신의 신탁과 결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