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악!
단 일수에 기사의 목이 떨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거대한 몸집의 사내였다. 은빛의 가죽으로 감싼 몸은 은연 중 살기를 내뿜고 있었고, 눈과 머리카락은 입고 있는 가죽옷에 동조하듯,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뚝...뚝!
그의 양 손에 착용된 무기에서 아직도 식지 않은 뜨거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음 먹잇감을 찾고 있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사내는 잠깐, 그 피에 취해 늑대의 발톱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무기를 핥고 있었다.
할짝...
그 무기는 암살자(Assassin)들이 자주 사용하는 무기인, 클로(Claw)였다. 찌르고 베는 공격이 그 무기의 전부였기 때문에 앞으로 살짝 구부러진 형상을 하고 있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사의 목을 쳐다보던, 그 사내는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케실리온에게 시선을 옮겼다.
“크르르...또 하나의 잡종이 여기 있군.”
케실리온은 녀석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결투를 관람하고 있던, 여러 귀족의 자제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거나, 오줌을 지리는 녀석들까지 속출하고 있었다. 제일 당황하며 몸을 떠는 것은 로킨이었다.
“모..몬스터! 어떻게 수도에...!”
“크크큭, 몬스터? 하등한 종족 따위가!”
로킨의 중얼거림에 기사의 피를 취하고 있던, 사내는 스산한 웃음을 흘리고는 입을 ‘쩍’ 벌렸다. 인간이 아닌 것처럼, 크게 벌려지는 입 사이로, 날카로운 늑대의 송곳니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길어진 주둥이와 엉덩이 쪽에 난, 꼬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인간의 형상이었다. 이것은 늑대인간이라는 증거였다. 웨어울프! 그 모습이 뇌 속으로 파고드는 데 까지는 수초가 지나지 않아서였다.
“웨어울프야! 도, 도망을!”
몬스터에 대해 조금 아는 것인지, 관람하고 있던 녀석들의 입에서 비명과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자, 많은 관람객의 귀족 꼬마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그야 말로 양떼 속의 늑대와 같은 모습이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에 사내는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귀족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듣는 것처럼, 어딘가 어색한 모습이다.
“크르르...역시 인간들이란.”
“잘하셨습니다. 이제 불청객은 다 사라졌군요.”
하늘에서 유유히 떨어져 내리는 레딕의 모습이 보였다. 등 뒤의 날개자락이 빠르게 란델 아카데미의 교복으로 변형되고 있었다. 레딕은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망토를 살짝 쓰다듬고는 바닥으로 완전히 착지했다.
“다 끝냈다.”
“예, 저도 눈이 있으니 알고 있습니다. 그럼 대기 하시죠.”
“분명 명령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짜증난다는 듯이 눈앞의 사내는 투덜거리며 레딕의 말에 마지못해 듣고 있었다. 이를 한 번간, 웨어울프는 낮게 으르렁 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자, 당연하겠지만, 결투 승리 축하드립니다.”
“원하던 물건은...?!”
케실리온은 레딕의 모습에 미간을 좁히며 원하던 물건을 제시했다. 케실리온의 모습에 레딕은 웃음을 터뜨리고는 작게 손짓했다. 그러자 하늘이 일그러지는 것처럼 어두운 하늘이 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끼이이익!
“마령석입니다.”
하늘이 일그러지며 나타난 것은 박쥐 때였다. 그리고 레딕의 손짓에 동조하듯, 한차례 케실리온의 주위를 빙글 돌며 선회하고는 레딕의 손위로 검은 빛이 띠는 구슬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탐스럽다는 듯이 그 구슬을 쓰다듬던, 레딕은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이런! 메인 디쉬가 도망가면 안 되죠.”
슬금슬금 도망가던 로킨은 레딕의 음성에 절망했다. 평소와 같은 말투였지만 무서운 웨어울프를 다루는 모습에 두려움이 일어났던 것이다.
“레, 레딕! 우리 친구잖아...제, 제발!”
“친구였죠. 제가 움직이기 시작하기 전에는 말입니다. 하하하!”
레딕의 스산한 말투에 말문이 턱턱 막힌 로킨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갈라지며, 고양이 눈처럼 반달 보양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웨어울프는 그 모습이 못 마땅 한 것인지, 죽은 기사의 기체를 향해 클로를 찔러 넣고 있었다.
“케실리온, 전 의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니, 마족이죠.”
“조건을 단 녀석은 너였을 텐데?”
“마족은 의심을 많이 합니다. 믿지도, 믿어서도 안 되는 것이 마족이죠. 하지만 의심을 많이 합니다.”
레딕의 단호한 음성에 케실리온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령석이라는 것을 쳐다봤다. 첫 보기에도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떻게 저런 것을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좀처럼 보기 힘든 영약이다.
영약(靈藥), 무공을 익히는 자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며, 독이 되기도 되는 기운의 집약체이다. 작은 것은 5년의 내공, 많게는 1천년, 아니 그 이상도 있을지 모르는 천외 기보인 셈이다.
무인에게 있어서는 어떤 것보다도 갖고 싶어 하는 물건 인 것이다.
“증명해 보십시오.”
“뭘 말이냐...”
케실리온은 마령석을 가지고 흥정하는 레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빌어먹을 12추기경이라는 자리에 까지 들겠다고 한 자신이다. 용신이 부탁한 것이야, 중간계의 균형, 중재인 셈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기 있는 녀석을 죽이십시오. 그것으로 모든 것을 증명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저 애송이를 말인가...?”
케실리온은 벌벌 떨고 있는 로킨을 보며 중얼거렸다. 레딕은 당연하다는 듯이 스산하게 웃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마령석을 흔들어 보임으로써, 케실리온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덥석..
“케, 케실리온, 제발 부탁이야. 살려줘.”
로킨이 매달린다. 살기위해 그 자존심 강하고 패배를 모르던 귀족의 애송이가 케실리온의 발목을 붙잡고는 울고 불며 애절하게 빌고 있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마음을 변하게 하기에는 부족했던지, 차갑게 손을 들어 올렸다.
“미안하지만, 고통스러울 거다. 내공이 부족하거든...”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끝까지 레딕의 눈동자를 주시하던 케실리온의 손에서 은빛의 기운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시리도록 푸르기도 했고, 찬란한 은빛을 띠기도 했다. 너무나 시릴 정도의 은빛 때문 이었을 까...?
뼈마저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그 연약해 보이는 손에서 무시 하지 못할 기운이 뭉쳐졌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쓰게 웃음을 흘리고는 로킨의 가슴에 장을 가져다 댔다.
“부탁...제발...!!!”
퍽!
가슴의 사혈에 적중당한 장에 로킨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금방 축 늘어져 버렸다. 소수마공의 한기에 폐와 내부 장기가 얼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소수마공의 무서운 수법이다.
소수마공에서 파생된 소수신장은 발경의 묘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내부 장기를 얼려 버리는 것으로 적을 처리한다. 때문에 이것은 마공으로 구분 된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높은 기운을 소유하거나, 내부로 침투하는 발경의 침투경을 막아내는 일 뿐이었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짝짝짝!
“깔끔한 수법이군요. 처음 보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마룡의 전투 방법인 가요?”
“알 것 없다. 물건이나 내놔라.”
로킨의 시체는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내부로 퍼지며, 온몸으로 한기가 퍼진 것이다. 겨울철 얼어 죽어 버린 사람처럼, 부드럽던 피부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단 한수에 죽어버린 로킨의 시체를 쳐다보던, 레딕은 짧게 감탄하며, 케실리온에게 마령석을 건넸다.
“마령석은 단순하게 먹는 것으로 마기를 축적 할 수 있습니다. 드시죠.”
“네놈 앞에서는 먹지 않겠다. 혹시 모르지.”
“이거 제대로 밉보였군요.”
레딕 답지 않게 쓴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웨어울프는 이제 할 일이 없냐는 식으로 눈길을 주었지만, 레딕은 여전히 케실리온 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만간 답이 올 겁니다. 코리안 공작가의 일은 금방 처리 될 것이고, 이제 제 12 추기경이 된 것을 축하 할 일만 남았겠군요.”
“왜, 저딴 녀석이 12 추기경이 될 수 있지?”
“이런, 일개 병사 따위가 알 일이 아닙니다.”
“크르르르....”
웨어울프의 울부짖음에 레딕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귀신같은 움직임이다. 케실리온도 눈치 체지 못할 정도의 빠른 움직임이었다.
‘보법은 아니군. 마족의 기술인가?’
묘하게 움직이는 행동에 이채롭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사라져 버리는 표정이었다.
“이제 슬슬 오겠군요. 늑대족의 전사께서는 할 일이 있습니다. 날뛰어 주시는 거죠. 하하하. 여기에서 죽은 자들은 당신의 손에서 죽은 겁니다. 그럼...”
레딕은 멀리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카데미의 교수를 주시했다. 게다가, 란델 제국에서 파견된 기사들까지, 웨어울프를 처리하기 위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척만 놓고 보건데, 수십은 되어 보일 법한 기척들이었다.
“크와아앙! 박쥐족!!”
웨어울프는 사납게 울부짖고는 란델 아카데미를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몸을 날렸다. 한 번의 도약으로 몇 십 미터는 날아간 듯했다.
“케실리온!”
멀리서 익히 들어본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왜 다시 나타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코리안 공작가의 녀석들과 같은 반의 클래스메이트였다. 그 뒤로 페이린이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괘, 괜찮아? 아...꺄아악!”
싸늘한 두 구의 시체가 눈에 들어오자, 여자 아이들은 주저앉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페이린은 찌푸린 표정을 지으며 멀리 도주하는 웨어울프를 따라 가기 위해 마법을 연신 펼쳐댔다.
7서클의 효과 때문이었던지, 두 번 정도 마법을 펼치자 금방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속박주문은 물론, 무력화 주문까지 캐스팅하자, 그렇게나 강하던 웨어울프는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일사 천리였다. 두 구의 시신은 로킨이 속해 있던 가문으로 안치되었고, 웨어울프는 즉시 처리되었다. 기사들의 오러와 페이린의 마법에 난자 된 것이다. 그리고 케실리온도 약간 의심을 받게 되었다.
두 구의 시신 중, 로킨의 시체는 웨어울프에게 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슴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손바닥 자국이 케실리온의 소행임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페이린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게다가, 케실리온이 소지하고 있는 흑 빛의 구슬에서 미심쩍은 기운이 느껴졌지만, 소란스러운 상황 때문에 흐지부지 넘어가 버렸다. 그 사건으로 케실리온에게 벌이라도 내려 질것 같았지만, 아무런 채벌 없이 넘어가자, 란델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 볼 뿐이었다.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서 케실리온은 기피 대상 1호로 책정되었다. 그렇게, 로킨의 죽음은 서로 쉬쉬하며 넘어가버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내려진 성흔과 마령석
검은색의 구슬, 묘하고, 차가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구슬이었다.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로 영약과 비교한다면 좀 작은 크기였다. 하지만, 겉으로 느껴지는 기운만을 놓고 본다면 단연 위라고 꼽을 정도의 기운이다.
‘이상해... 영약이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도 많고. 이 문양부터 시작해서... 역시 함정인가?’
검은 구슬의 핵처럼, 구슬의 내부에는 작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워낙 작은 크기의 모양이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흠집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케실리온이 보기에는 벌레처럼 생긴 문양이었다.
보통 벌레가 아니라는 듯이, 좌우로 길게 늘어진 날카로운 이빨과 온몸을 뒤덮은 털이 눈에 들어왔다. 워낙 작았기 때문에 안력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기운을 눈에 집중하자 볼 수 있었다.
‘그냥 먹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더 쳐다본 케실리온은 마령석을 가슴에 품었다. 벌써, 일주일이나 된 습관이었다. 로킨을 죽이고 얻은 물건이었다. 그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은 일지 않았지만, 레딕이 준 것을 무턱대고 먹어서는 안 된다. 어디에서 뒤통수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하고,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확인한다면 안심하고 복용할 것이다. 정보는 곧 힘이 되기 때문이다.
털컥-
짧은 마찰음을 내며 열린 문을 타고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이 일도 일주일이 지난 지금으로는 어느 정도 수그러진 상태였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시선이었다. 당연할 것이다. 로킨과 결투를 벌였고, 웨어울프에게서 살아남은 자는 케실리온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투를 벌인 장소로 돌아갔을 때는 로킨의 시신과 케실리온의 싸늘한 눈빛이 그곳에 남아 있었다. 또한, 케실리온의 교복에는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모든 것을 종합해, 케실리온이 범인이었다.
하지만, 앞에서 대 놓고 그를 범인이라고 지목하는 자는 없었다. 은연중 누군가 케실리온을 옹호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에레노아와 레딕이었다. 또한, 삼대 공작 중, 황제파와 귀족파의 두 공녀까지 두둔하고 나섰으니 대 놓고 말하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살인자.”
“마족.”
1층에 있을,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란델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수군거리며, 케실리온을 피했다. 결투 사건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 당시 있었던 상황은 많이 변질되었다. 착한 로킨을 일방적으로 공격한 것은 케실리온이었으며, 란델 제국에 침입한 테라스 제국의 첩자라는 것, 그리고 마족이라는 것이다.
이런저런 헛소문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이야깃거리였다. 아무튼, 지금의 시선이 곱지만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아! 왔어? 오늘은 좀 늦었네?”
루시아였다. 이미 레딕에 의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신분이었다. 란델 제국의 백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무시하지 못할 직위까지 가지고 있다. 레딕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녀석들뿐이었지만.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뭐야? 기껏 걱정해줬더니!”
케실리온의 담담한 말투에 루시아는 화가 났다. 말 잘 듣던 시종 녀석이 반말을 쓰니 화가 나는 것이리라. 하지만, 케실리온은 눈앞에 있는 쓴 과일을 입에 베어 물고는 한 테이블씩 멀리 떨어져 버린 1학년들을 둘러보고는 쓰게 웃었다.
이건 쓴 과일을 먹었기 때문이리라.
“저것 봐, 역시 살인자. 루시아가 걱정해 줬는데도 저런 말투라니...”
“살인자가 아니면 뭐야. 마족주제에... 게다가 마룡의 후손이라며, 마룡, 딱 보기에도 마족의 ‘마’ 자와 같잖아.”
“야야, 여기로 쳐다본다. 조용히 해. 혹시 기분 나쁘다고 우리도 죽이는 거 아니야?”
“하하하!”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는 대부분 이런 말들이었다. 무서워서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녀석들, 확실히 살인자는 케실리온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살인이든, 뭐든 할 것이다.
‘마음껏 비웃어라. 언젠가, 그 비웃음이 두려움이 될 것이다.’
케실리온은 차갑게 눈을 부릅뜨고는 수군거리는 학생들을 쭉 둘러보고는 다른 학생들이 잘 먹지 않는 음식들만 골라 먹었다. 귀족들이 먹는 것들은 맛은 좋지만 영양가는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그저, 맛을 중시하는 것이었다.
맛없고 쓴 것일수록, 영양가는 큰 것이었다. 귀족들은 그저 자신의 입맛에 있는 것들만 섭취할 뿐, 그 좋은 음식은 거들떠보지 못하는 더러운 안목에 케실리온은 비웃고는 옆에서 말을 거는 아이들을 쳐다봤다.
“케실리온 신경 쓰지 마. 우리가 있잖아.”
“그래, 우리는 널 친구로 생각하고 있어.”
레나와 제인스였다. 언제나 무뚝뚝하게 있던 프린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책을 보는 대 여념이 없었다. 매일 같은 책을 보면서 또 뭘 보겠다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케실리온의 관심은 그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았다.
“친구라고?”
“그래! 친구, 우리 모두 널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
“웃기는군, 언제부터 너희와 나의 격차가 친구로 작아진 것이지?”
케실리온의 싸늘한 말에 여자 아이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에레노아는 저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었고, 루시아와 제이스의 콧대 높은 귀족의 영애들이야 굳어 버린 표정으로 케실리온을 노려 볼 뿐이었다.
“케실리온! 너무 말이 심해! 우리는 단지 너를 걱정해 준 것일 뿐인데.”
“루시아... 착각하지마라. 이제 너와 난 시종과 아가씨의 신분이 아니다. 같은 란델 아카데미의 학생, 나를 걱정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그걸 명심해라. 나와 엮이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학생들에게 밉보일 수가 있으니까.”
케실리온의 말에 루시아는 당황했다는 듯이 입을 뻥긋 거리며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제인스는 여전히 불쾌하다는 식의 표정을 짓고 있었고, 프린은 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주르륵!
‘그래, 이제 케실리온은 코리안 가문의 집사가 아니야.’
루시아의 흑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 눈물을 본 다른 학생들은 다시 욕을 험담을 시작했고, 그것을 참지 못한 루시아는 식당 밖으로 나가기 위해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루시아의 룸메이트인 제인스와 레나까지 뒤따라 나갔다. 아마 루시아를 달래려고 따라 가는 것이다.
툭-
“루시아 양, 조심하셔야죠.”
“이... 이이!”
급히 뛰쳐나가던 루시아는 어깨로 누군가와 부딪혔다는 생각에 급히 사과를 하려 했지만, 능글거리며 말하는 레딕을 보자 돌연히 화가 나 버렸다. 하지만, 한쪽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에 화를 내기는커녕 분노에 찬 눈물만 뿌리고 밖으로 나갔다.
“성흔이 내려졌습니다.”
“성흔...?”
“12인의 코드네임 같은 것이죠. 추기경 회에서 일괄적으로 내려주는 칭호입니다.”
케실리온의 옆자리는 모두 비어 있었기 때문에 레딕이 자리를 차지했다. 프린과 에레노아는 아무 말 없이 레딕을 쳐다봤지만 금방 관심 밖의 인물로 변해 버렸다. 게다가 로킨의 죽음이 있었던, 다음 날부터 묘하게 붙어 다니는 둘을 본, 프린과 에레노아였기 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하고 아침식사를 하기에 바빴다.
와삭...
“역시, 스타푸르츠(Starfruit)는 쓰군요.”
“지금 이야기는 과일에 대해서가 아닐 텐데.”
“물론이죠.”
쓴 과일이었지만, 향긋한 향이 입 가득 풍기는 특이한 과일이다. 외관부터 특이했지만, 맛도 특이해 케실리온의 주식이 될 정도로 매일 먹는 과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이야기 할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레딕이 말한, 성흔 그러니까 코드네임이라는 것이었다.
“처단(處斷)의 퍼니쉬(Punish) 앞으로 쓸, 코드네임입니다. 참고로 저는 신월(新月)의 크래센트(Crescent)입니다.”
“특이하군. 처단의 퍼니쉬... 퍼니쉬.”
케실리온은 퍼니쉬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12 추기경들 사이에서 이제 처단의 퍼니쉬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만날 일이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에 예전에 쓰던 이름을 계속 쓰면 될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지금은 쓸 필요가 없습니다. 아참! 마령석은 잘 복용하셨습니까.”
“당연하지.”
케실리온은 거짓말을 했다. 녀석의 표정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묘하게 더욱 진한 웃음을 흘리는 것 같았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구슬을 느끼던 케실리온은 점점 떠나가는 학생들을 따라, 교실로 향했다.
“처단의 퍼니쉬, 할 일은 아주 많습니다.”
뒤에서 들리는 레딕의 의미모를 말에 케실리온은 몸을 틀며, 거리를 두며 이동했다. 어떤 목적으로 녀석이 속한 단체에 들어갔지만, 언젠가 떠날 곳이다. 어떻게 해서든 말이다. 그리고 가슴에 품고 있는 이 마령석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케실리온에게 주어진 일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런 쓸데없는 수업이 아니다. 분명히 란델 아카데미에 도서관이 있을 것이다. 매일 같은 책만 보지만, 프린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려진 성흔과 마령석
“처단(處斷)의 퍼니쉬(Punish)... 이번에 들어온 12 추기경이라고요?”
“예, 성녀 크리엘...”
지저스의 교단에서 짧게 울려 퍼지는 미성에 대기하고 있던, 한 신관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의 눈빛에서는 무한한 존경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성녀의 뒤로 줄줄이 늘어선, 여 신관이 고개를 숙이며, 짧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하늘의 신인 지저스의 축복을 내려받은 성녀가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없었다.
깊은 신앙심으로 그들의 몸에서는 찬란한 은빛의 신성력이 꿈틀거렸다.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주신 지저스. 게으른 주신의 딸 크리엘이 기도를 올립니다. 주신의 검이 되는 추기경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성(聖) 카르디스여...”
솨아아아!
크리엘의 진심 어린 기도에 탄복한 것인지, 그녀의 몸에서는 밝은 신성력이 뿜어져 나와, 지저스의 신전을 밝혔다. 그녀의 손짓 하나에 많은 여 신관들은 짧게 탄성을 지르며, 더욱 기도에 열을 올렸다.
“아...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저 정도의 신앙심이라니... 크리엘님!”
“지저스의 축복이도다...!”
신성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신앙심에서 비롯된다. 신앙심이 깊을수록 신성력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성녀의 나이가 10세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교황과 같은 신성력을 내 뿜는 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화아악!
여전히 뿜어지는 은빛의 섬광에 교도들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감히 올려다보지 못할 지고의 신앙심이었다. 은은한 신성력이 잠잠해지자, 성녀는 맑은 눈을 하며 몸을 바로 세웠다.
똑똑!
성녀를 위한 기도실(Oratory, 오러토리)에 짧은 두들김이 일어났다. 워낙 조용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 작은 파장은 기도실에 모든 곳으로 퍼져 나갔다.
“들어오세요.”
“그럼 주신의 이름으로....”
성녀를 위한 곳이다. 뭇 남성들의 선망이 되는 성녀였기 때문에 여 신관을 제외하고는 성녀를 볼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여성을 제외한 남성이 발걸음을 했다.
“제11 추기경, 흑예(黑예, 검은 그림자)의 섀도우(Shadow), 성녀를 뵙습니다.”
“몸을 일으키세요.”
“예!”
무표정한 사내였다. 성녀를 본다면 잠깐이라도 얼굴에 눈이 가겠지만 땅만 바라보며 성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다만, 하늘에서 뿜어지는 마나석에서 뿜어지는 빛으로 말미암아 생긴 그림자만을 쳐다볼 뿐이었다.
씁..
흑예의 섀도우라고 불린 남자는 입을 살짝 쓸어 넘기고는 구부러져 있었던 무릎을 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섀도우라고 불린 사내는 암살자처럼, 검은 옷을 즐겨 입고 있었다. 얼굴을 가리는 검은 두건과 짧은 반소매에서부터 시작된 자잘한 선들이 늘어져 바닥을 끓고 있었다. 그리고 두건을 단단히 메어 놓은 끈도 바닥을 길게 늘어져 있었다.
자칫 잘못 본다면 망토라고 착각할만한 모습이었다.
“란델 제국의 남부에 위치한, 제니어스라는 남작이 소지하고 있던, 마족의 물건으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마족의 물건이라고요?”
“예,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마령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섀도우는 세세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뚝뚝한 음성으로 세세하게 말하고 있으니 어딘가 어색하게 보였다. 하지만, 성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의 보고를 끝까지 경청하고 있었다.
“속박의 돌로 밝혀졌습니다.”
“설마...! 페덜(Fetter)?”
“예, 그것을 복용한다면 마기의 주체가 되는 자의 속박을 받게 됩니다. 어떤 명령이든 내릴 수 있지요. 거부는 곧 죽음입니다.”
섀도우의 말에 경악한 성녀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페덜, 단 한 번 출현한 적 있는 속박의 돌이었다. 그것에 대해 유명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지금은 사라진 왕국이지만, 그곳에 있었던 영웅의 이야기였다. 그 영웅은 호색한이었는데,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여자가 있었고, 그것이 일의 발단이 된 것이다. 영웅의 여자들 중, 흑마법사가 있었는데, 그녀의 어두운 면을 알고 있던, 영웅은 그녀를 피하게 되었다.
그것을 참지 못한 그 흑마법사는 마족과 계약을 맺었고 영웅의 마음을 얻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족에게 얻어낸 것이 페덜이라는 돌이었다.
그것은 복용자의 육신을 지배하는 것으로 속박의 돌에 깃들어 있는 마나에 반응해, 그 주인이 가늠되는 것이다. 그 기운을 가진 자는 그 영웅의 주인이 되었고, 그것은 곧, 흑마법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실수한 것이 있었다. 질투의 화신인 그녀가 명령을 내린 것은 참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나만 바라보세요. 그 어떤 여자도 볼 수 없게, 눈을 뽑아버리세요.’
영웅은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눈을 뽑았다. 사랑하는 여인이자, 주인이 되어 버린 흑마법사의 명령에 따랐다. 하지만,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 것인지, 그녀는 다른 명령을 더 내렸다.
‘다른 여자에게 다가갈 수 없게 양쪽의 다리를 잘라버리세요. 그리고 나 이외의 여자를 만질 수 없게 팔도 잘라버리세요!’
그 명령에 영웅은 더는 살아갈 수 없었고, 곧 목숨이 끊어졌다. 뒤늦게 후회한 흑마법사는 마족에게 영웅을 살려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돌연 자신의 영혼마저 빼앗기며 비극적인 결말로 이야기는 끝맺고 있었다.
그것의 모든 원인이 되는 것이 페덜의 돌! 즉, 속박의 돌이다.
“그 돌의 행방은 여전히 남부에 있습니까? 경?”
“그것이... 마족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마족! 그럼 주신께서 내리신 신탁의 원흉이... 마족?!”
성녀 크리엘은 떨리는 목소리로 섀도우의 말에 반응했다. 마족의 손에 넘어갔다면 큰일일 것이다. 그것을 이용해, 제국의 황제를 속박한다면 대륙에 큰 혼란이 올 것이다.
“다행히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하루속히 대륙에 흩어져 있는 유색의 비드(Bead)를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맞는 말이 예요. 하루속히 추기경들이 움직여 주셔야겠습니다.”
“하루속히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페덜의 추격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수고해주세요.”
섀도우는 기사의 예를 취하며, 성녀의 예배당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신형은 곧, 어둠으로 사라져 버렸다. 오직 그림자만이 어둠을 뚫고 란델 제국의 수도로 향하고 있었다.
“신월의 크래센트... 잘도 페덜을 훔쳐 가셨더군요. 제가 점찍어 놓았던 물건을 말입니다. 아무리... 같은 달의 일족이라도 용서는 없습니다. 섀도우 로드의 명예가 걸린 일이니까요.”
란델 제국의 5명의 추기경 중, 흑예의 섀도우는 란델 제국의 수도로 향했다. 조용히 남부의 귀족행세를 하고 있던 그였기 때문에 싸움을 좋아하는 자였다.
게다가, 미리 점찍어 두었던, 이웃 남작가의 소유였던, 페덜의 돌을 갈취해 간 것이 레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감히... 저의 영지에까지 그 더러운 박쥐를 끌어들이셨더군요.”
섀도우는 레딕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어둡기만 하던 그림자가 출렁이며 한차례 기운을 토해내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의 이동은 일정하지 않았다.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 작은 빛과 빛 사이를 누비며 빠르게 이동했다.
내려진 성흔과 마령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