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269)

섀도우를 쫓기 시작한 지, 1주일이나 지나가고 있었다. 추적하는 일이야, 학생들을 관찰하고, 교수의 이상한 움직임을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림자를 꼼꼼히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딱히 이상한 점이라면, 검술 수업의 ‘닉’ 교수였다. 좀처럼 하지 않던, 합동수업을 시작해, 어설퍼진 검술실력, 뭐 평소에도 케실리온이 보기에도 어설퍼 보였지만, 어딘가 검로가 변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눈치체지 못할 미세한 움직임, 하지만, 케실리온은 그것을 잡아냈다. 

“그래, 섀도우는 찾았습니까.”

“숨어있군. 하지만, 곧 처리할 수 있을 거다.”

검술 수업을 시작하기 전, 케실리온과 레딕은 짧게 회의 같은 것을 했다. 레딕도 도우고 있었지만, 별다른 도움은 되지 않았다. 작당을 하고 숨어버린 섀도우를 찾기란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장 의심되는 인물은 ‘닉’이라는 자다.”

“닉 교수 말입니까?” 

“저기 검을 휘두르는 것이 보이나?”

“예.”

케실리온의 물음에 레딕은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레딕은 검을 휘두르는 닉 교수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케실리온은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설명을 했다.

“한심하군, 휘두르는 검의 끝을 잘 봐라. 어느 방향으로 흔들리는지를.”

“외, 왼쪽이군요.”

“그게 문제다. 처음의 교수는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건 수련을 통해 교정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수천 번, 수만 번 검을 휘두르고 자세를 바로 잡아야 나오는 일이다.”

케실리온의 말에 레딕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짧은 관찰임에도 저 정도를 알아내는 케실리온에 대해, 약간 두려움이 일어나는 레딕이었다. 그렇다고,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목숨을 쥐고 있는 것은 레딕,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녀석이 그림자 일족?”

“지금 상황으로는 저 녀석이 제일 적격이다.”

레딕은 케실리온의 말에 약간 수긍하며, 더 이상 케실리온을 추궁하지 않았다. 반말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일 처리는 확실했기 때문이다.

“거기! 잡담은 금지다.”

케실리온은 지금 한창 검술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제 섀도우라는 녀석을 찾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레딕의 명령 따위를 들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주위를 경계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혹시나, ‘닉’ 교수가 섀도우가 아니라면 낭패였기 때문이다.

짝짝!

“주목! 오늘은 고급 검술을 배워보겠다.”

닉 교수는 큰 연무장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거대한 몸집답게 박수소리도 우렁찼다. 학생들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닉 교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특별반인 S반과 검술 특화 반인 A반이 합동 수업을 하고 있었다. 케실리온은 섀도우를 찾기 위해 다른 반 학생들을 유심히 살펴봤지만,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그래 봐야 기초 검술이겠지.”

“기사의 검을 배우려면 고학년이 되어야 하잖아. 쳇!”

귀족들이다. 그냥 입 다물고 검술이나 배울 것이지 겉멋만 떨어진 녀석들이었다. 케실리온에게는 기초검술이나, 고급검술이나 똑같아 보였다. 차이라고는 어떻게 휘두르느냐의 차이였다.

“잡소리 그만하고! 따라하도록!”

후우웅!

닉 교수는 커다란 목검을 크게 휘둘렀다. 가로로 내려찍어 버렸다. 하지만, 검 끝에서 짧은 흔들림이 있었고, 다시 횡으로 베어졌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쾌검이었다. 그렇다고 고급검술이라고 보기에는 그런 검술이다.

2계에서 휘두르는 검법은 다, 기초 수련도 되지 않는 검법이었다. 물론, 그들이 약하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잡해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잘 봤나? 그럼 시작하도록!”

“옛!”

아이들은 착실히 교수가 한 행동을 따라했다. 그 행동을 따라 하는 것도 힘든 것인지, 교수에게 부탁해 천천히 펼쳐 보이는 수고까지 하고 나서야 녀석들은 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체시력이 발달된 에레노아는 열심히 따라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늘어선, 루시아와 제인스, 레나, 프린은 열심히 휘두르긴 했으나, 어딘가 어설퍼 보였다. 물론, 케실리온도 포함되고 있었다.

휘익-

케실리온은 재미없다는 듯이 건성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케실리온이 휘두르는 방법은 탁월했다. 교수보다는 강해보이지 않았지만, 짧은 검로로 빠르게 휘두르는 고급의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만! 거기 케실리온, 불만이라도 있나?”

“없습니다. 라고 해야 할까요?”

케실리온은 짜증이 배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런 헛수고를 해야 하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차라리 혼자 수련을 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닉 교수가 케실리온의 곁으로 다가왔다.

“뭐야? 지금 반항하는 것인가!”

“훗, 재미..있군.”

케실리온은 교수의 말에 비웃음 같은 소리를 내뱉고는 짧은소리를 했다. 교수는 케실리온의 반말이 거슬리는 것인지 목검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주위의 학생들은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태도로 나에게 검술을 배우겠다고?”

“저도 이곳에서 검을 배울 생각은 없다고 해야겠군요.”

케실리온은 교수를 스치며 지나갔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띠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림자! 정각 12시 정도였건만, 그림자가 너무 길다. 키가 크기는 하지만, 햇빛에 따라 그림자는 변한다.

그러나, 저 교수는 그림자가 너무 길다. 그것은 곧, 녀석이 섀도우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짧은 관찰로 알아차린 케실리온은 교수의 귀를 향해 내공을 흘려보냈다.

=흥분하면 그림자가 길어지는 군. 어설퍼

움찔!

닉 교수는 짧게 몸을 떨었다. 그만큼 내공에 실린 케실리온의 음성이 싸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비로운 죽음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자신이 너무 나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처 그늘로 이동한 케실리온은 털썩 주저앉았다. 더 이상 저런 녀석에게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평소 교수의 행동이 변했다고는 느꼈지만, 녀석이 섀도우였다니, 뜻밖의 수확이다.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으며, 검을 가르치고 있는 닉 교수의 뒤통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케실리온은 레딕에게 눈짓을 하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녀석이, 섀도우라고...

흡수 마스터, 검집을 얻다.

근 천 년, 케실리온은 잊고 지냈다. 자신이 가장 믿는 본신의 능력을... 자신을 이 자리에 서 있게 만든 최강의 능력을 잊고 지냈다. 사실, 풍운지에 대한 충격에 헤어 나오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계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이제 그 능력을 사용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나약하게도, 꿋꿋이 혼자 수련하지도 않겠다.

‘더 이상 필요 없을 줄 알았다. 남의 능력을 훔치는 능력.’

케실리온은 그늘에 앉아 있음에도 많은 생각과 고뇌를 했다. 이것은 일종의 습관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근 1천 년을 버틴 지옥의 생활은 많은 고뇌와 생각 그리고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무공에 대한 집착과 긍지, 자부심이 지금의 케실리온으로 이끌었다.

“후후, 처음 얻은 능력이 흡수인가.”

케실리온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인지 약간 슬픈 기색과 애잔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눈가가 씰룩이고 있었다. 과거는 딱히 떠올리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모의 죽음은 슬픈 것이다.

하지만, 이제 죽음은 메마른 감정을 끌어올릴 수 없다.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는 분노와 상승의 쾌감뿐이다. 그렇다고 즐거움을 모르거나, 행복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거부할 뿐이다.

“하악... 여기서 뭐하는 거야. 수련 안 해? 기사를 꿈꾸고 있는 것 같은데.”

에레노아다. 같잖은 수련을 열심히 한 것인지 거친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다. 닉 교수가 섀도우라는 것을 안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용케 도망가지 않는 것도 다행일 정도였다.

무력의 차이를 알고, 역량을 차이를 아는 이상, 도망이 가장 좋은 수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당당하게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기사? 후후... 과연. 내키지 않는 직업이군.”

케실리온은 짧은 말을 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묵묵히, 저 멀리 있는 레딕과 섀도우를 노려 볼 뿐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바는 있었다. 이 2계를 수호시키기 위해, 흡수의 능력을 준, 제이 G. D 세인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대로인 녀석.”

“응? 뭐라고?”

케실리온은 그 제이라는 녀석을 떠올리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에레노아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고는 다시 물었지만, 케실리온은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능력만 주고 가면 다인 줄 아는군. 이래서 2계의 녀석들은...정말 정떨어지는 군.’

케실리온은 오랜만에 사용될 능력을 떠올리고는 머리를 가로로 저었다. 너무 오랜만이다. 흡수의 첫 단계는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가 상대에게서 능력을 설명 듣는 것, 셋째가 자신의 능력을 설명하는 것이다.

‘가장 위험하고도, 끌리는 능력...’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 셋째가 그에 해당한다. 자신의 능력을 설명하는 것. 이것은 어쩌면, 다소 위험 할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노출 시킨다는 것은 약점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첫 번째 와 두 번째 조건은 필요 없는 조건... 나 자신이 녀석의 능력을 모두 파악한다면,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케실리온의 생각이 맞았다. 근 천 년간의 수련과 실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무기에 따라 상대가 어떤 전투 방식을 사용할 것인지, 어디를 공격할 생각인지, 모두 꿰뚫수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가 펼쳐낼, 공격의 수를 몇 수 앞을 내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전투에 뛰어난 감각을 갖게 된 것이다.

지옥에서 얻은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생각의 차이, 어떤 방법으로 상대를 무력하게 시키는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두려움에 떨게 만들 것인가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1년에 한 번 벌어지는 극도의 고통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의 뒤에서 이어지는 고통은 말로 설명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다. 그 고통으로 두려움이라도 생기겠지만, 케실리온에게는 두려움보다도, 분노와 살기를 키우고 있었다.

‘죽음은 고통의 회피 처라고 생각하겠지. 후후, 하지만, 너희들의 생각을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마.’

케실리온은 서서히, 이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많은 학생들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연무장에 남아 수련하는 자는 드물었다. 레딕과 닉이라는 교수, 간간히 기사의 꿈을 키우고 있는 녀석들만이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잘 오셨습니다. 이제, 이야기가 되겠군요.”

레딕은 기다렸다는 듯이, 케실리온을 이끌었다. 그 앞은 닉 교수의 앞, 그림자는 밤과 낮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낮에도 생기며, 밤에도 생기는 것이 그림자. 어둠의 종족 답지 않게, 빛에 의존하는 존재가 그림자다.

“닉 교수님?”

“뱀파이어 로드!”

둘의 마족은 조우했다. 짧은 인사를 마쳤다는 듯이 서로를 경계하며,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섀도우는 짧게 신음을 토해냈다.

“흐음...”

“너희 로드는 어디 있느냐.”

“말해 줄 수 없다.”

레딕의 기운이다. 짧은 한기가 몰아치자, 닉 교수의 몸은 알게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르게지만, 케실리온의 눈에는 확연히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늘에 앉아 있는 아이들과 연무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레딕과 케실리온, 그리고 닉 교수의 공간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공기의 흐름과 바람의 풍향까지도 변한 것 같았다.

“그림자의 주인이 아니었군요.”

“예상은 했다. 로드라는 녀석이 이렇게 허술 할리는 없겠지. 내 예상이 맞는다면, 녀석은 부상을 입었다. 그것도 나의 기술에 맞았으니, 한기에 노출되어 있겠지. 정확히 가슴, 소수마공의 흔적이 남아 잇을 것이다.”

레딕은 말을 맞받아 쳤다. 케실리온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는 듯이 닉 교수는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그것을 쳐다본, 케실리온은 소리죽여 웃음을 터뜨렸다.

“쿠쿡, 입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경험의 차이.”

“호오, 경험이라... 고작 10살의 나이 이실 텐데?”

레딕의 물음에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 케실리온은 섀도우 로드가 누구인지 벌써 짐작했다. 생각이 맞는다면, 도서관의 사서 일 것이다.

첫 만남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의 걸음 거리와 행동이 첫 전투에서 확연히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그림자를 밟지 마라는 말투가 떠오르자 확신하게 되었다.

“섀도우 웨폰과 섀도우 롤링, 하이드, 그리고 인간의 몸을 차지하는 기술... 기술이 많아봐야, 여섯 가지, 전투에서의 기량을 볼 때, 공격 기술은 두 가지, 섀도우 롤링과 하이드 정도.”

케실리온은 짧게 녀석들의 능력을 밝혔다. 그 설명이 정확했던지, 닉 교수는 심하게 몸을 떠는 현상을 보였다.

부르르...

“어, 어떻게...!”

“무기, 발걸음, 전투 기술만 봐도 알 수 있다.”

케실리온의 말에 레딕은 물론, 닉 까지 몸을 떠는 모습을 보니, 내심 흐뭇한 느낌도 들었다. 이런 녀석들에게 이런 말을 해야 할 수고까지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녀석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레딕에게는 한없는 신뢰를 쌓아야 하고, 적에게는 한없는 두려움을 주어야 한다.

“도망갈 생각은 접어두는 것이 좋을 거다. 곤두선 나의 오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툭툭..

키가 그렇게 크지 않는 케실리온은 녀석의 등을 몇 차례 치고는 스쳐 지나갔다. 오늘 밤, 녀석을 흡수할 계획이다. 분명히, 일정량의 내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식하게 기운만 키운 녀석들을 이길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케실리온은 바보 같은 조력자도 있다. 이참에 레딕의 능력도 알아볼 생각이었다.

흡수 마스터, 검집을 얻다.

“카이룬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처단과 신월이 힘을 합쳤습니다.”

“처단이...? 그거 참...”

카이룬은 짧게 신음을 터뜨렸다. 처단과 신월이 힘을 합치고 있다면,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신월을 처리하기 위해, 이 고생을 하는 것인데, 처단까지 합세한다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신월의 능력도 불분명하다. 뱀파이어 주제에, 능력을 감추고 있었다. 또한, 능력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처단도 마음에 걸렸다. 능력을 보인 것이라고는 동족을 상대했을 때의 특별한 능력! 그것만으로도 역량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

“처단의 능력은 상상이상이었습니다. 저희 로드의 가슴에... 큰 부상을 입혔습니다. 부디 도움을...”

“도움은... 없다.”

“그, 그런! 저희 일족이 가만히 있으리라 보십니까? 도움이 없다면 저희 일족은 추기경회에서 탈퇴하겠습니다.”

카이룬은 그림자 일족의 말에 이색적인 표정을 띠었다. 저 녀석의 말은 차기 후계자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호오... 차기 후계자라도 정해져 있나 보군.”

“당연합니다. 이번 일로 저희 일족은 추기경 회에서 탈퇴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대 마왕의 편에 서겠습니다.”

“!!!!”

카이룬은 저런 수로 나올 줄 미처 몰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부릅떴다. 추기경회와 사대 마왕과의 사이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특히, 북쪽의 마왕 벨즈비트와는 원수 사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자네,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 마왕은 중간계에서 활동하기에 편하지 않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후후후... 곧, 마왕의 부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세력이 불분명한 추기경 회보다. 마왕의 개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카이룬에게 저런 말을 남기고 그림자는 어둠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림자들의 특기인, 하이드였다. 암살에 뛰어난 만큼, 숨는 것과 추격은 쉬웠기 때문이다. 카이룬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져간 그림자 일족을 쳐다봤다.

밤하늘에 뜬, 밝은 빛이 아카데미의 사위를 밝히고 있었다. 전투를 하기에는 알맞은 밤하늘이다.

*        *        *

“오늘은 조용히 자도록.”

툭, 투툭!

케실리온은 짧게 지공을 펼쳤다. 순식간에 옥당혈을 제압당한 에레노아는 힘없이 침대 위로 쓰러져 버렸다. 짧은 순간 움찔 하는 것을 봐서는 손가락의 속도를 따라 갔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수법에 에레노아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잠에 빠진 것이다.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등에 걸친 망토 자락을 쳐다본 케실리온은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오늘은 유난히 밤하늘이 밝았다. 전투를 치루기에는 적당한 날씨였다. 특히, 풍향이 잠잠하기 때문에 혹시나 모를 독이나, 기류에 의한 공수 전환이 활발할 것이다.

팟!

하늘로 날아 오른 케실리온은 하늘에 떠 있는 레딕을 보고는 바닥으로 착지했다. 레딕의 등에는 거대한 날개가 달려 있었기 때문에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하늘을 비행하고 있던, 레딕 역시, 케실리온을 발견 한 것인지, 지상으로 착지하고 있었다.

“제때 오셨군요. 곧 시작 될 것입니다.”

“섀도우는...?”

“더 이상 숨을 곳은 없습니다.”

레딕과 케실리온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적이 눈앞에 나타나길 기다릴 뿐이다. 하늘에서는 쏟아질 듯이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셀 수 없을 만큼의 깨끗한 별의 모습을 보던, 케실리온은 약간씩 뿜어지는 마기에 정면을 쳐다봤다.

스슷!

“짙은 마기군요. 이러다가 인간들에게 들키겠습니다. 흑예의 섀도우.”

“웃기지마라. 박쥐족.”

“의외군요. 모두 끌고 올 줄 알았더니, 단 둘이라...”

레딕은 섀도우를 쳐다보며 비아냥거렸다. 그림자를 통해 나타난 자는, 단 둘이었다. 흑예의 섀도우와 그의 수하로 보이는 자였다. 이미 인간의 몸을 벗어던진 것인지, 검은 두건과 하늘거리는 망토자락이 넘실거렸다.

그림자 일족은 비장한 각오를 한 것인지, 양손에 짧은 단검을 쥐고 있었다. 그 모습에 레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잠깐 동안의 대치상황에 어색한 침묵이 휘감았지만, 워낙 짧은 순간의 침묵이었다.

“제가 부하를 상대하지요.”

“상관없다.”

레딕의 말에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몸을 날렸다. 좌우로 갈라진, 섀도우와 그의 수하는 시선을 교차시키며,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팟!

찰나의 순간, 몸을 숨긴 섀도우의 행동에 케실리온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섀도우의 손에 땅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손은 그림자를 따라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림자 일족의 전술입니다. 하늘로 날아오르십시오.”

레딕의 조언에 케실리온은 하늘로 도약을 시도했다. 그 짧은 순간에 플라이 마법이 완성되자, 케실리온은 하늘을 부유하며, 그림자를 찢어발기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섀도우의 모습을 포착했다.

“다크 볼(Dark Ball)!”

케실리온에게서 수인과 캐스팅이 완료되자, 작은 구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하늘로 치솟는 섀도우를 향해 다크 볼을 날렸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움직임이 둔화된다는 상식을 깨고, 검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에 반사된, 다크 볼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런 황당한 기술에 입이라도 벌려야겠지만, 섀도우의 움직임은 너무나 빨랐다. 도대체, 어떤 수법을 사용한 것인지, 예전보다 한 단계는 상승해 있었다. 움직임이며, 판단력까지, 어느 것 하나 케실리온에게 뒤처지는 것은 없었다.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다크 볼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섀도우는 곧장 케실리온의 가슴을 향해 단검을 날렸다. 빠르고 정확한 수법에 케실리온은 이화접목의 수로, 그 단검을 받아 내고는 역으로, 그 단검을 날렸다.

푸슉!

“제법이지만, 소용없다.”

케실리온의 비도술을 받아낸, 섀도우는 호기롭게 외쳤다. 몇 번의 공방에도 쉽사리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케실리온은 옆으로 힐끔, 레딕과 그 부하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쪽상황과 그렇게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섀도우의 수하가 약간 밀리는 것 같아 보였지만, 은근히 레딕에게 데미지를 축적시키고 있었다.

“실력이 조금 는 것 같구나.”

케실리온의 물음에 섀도우는 보이지 않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쩌면, 짧게 탄식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크으, 버림은 새로운 길을 택하게 만들지.”

그 말을 남긴 섀도우는 더욱 거세게 케실리온을 압박했다. 그럴수록, 케실리온은 미꾸라지  처럼 요리조리 피하며, 섀도우의 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냈다. 전투의 소음에 아카데미 내부가 소란스러워 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상관없는 모습이었다.

쿠르릉!

맑기만 하던, 밤하늘이 요란하게 천둥이 쳤다. 그 소음에 섀도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하늘이 나를 도우시는구나!”

노란빛 번개에 하늘은 번쩍였다. 그때마다. 섀도우의 기척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케실리온의 오감에서 완벽하게 지워져 버린, 섀도우는 그림자 속으로 숨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한 수로, 케실리온을 끝장낼 작정인 것 같았다.

흡수 마스터, 검집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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