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269)

쿠르릉- 쾅!!

슈욱!

요란한 천둥소리를 동반한 공격이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자연환경에 케실리온은 짧게 신음을 토해내며, 가슴의 상흔을 타혈했다.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전투에서는 피로가 누적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실리온의 상처는 사혈에 근접해 있었기 때문에 출혈량이 많았다. 그렇기에 빠르게 타혈을 하는 것은 출혈을 막거니와, 앞으로 움직임에 불편함을 없게 만들어야 했다.

“타합!”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케실리온을 향해 두 자루의 단검을 동시에 던졌다. 시차를 두고 날아오는 단검을 보며, 케실리온은 공기 중으로 소수신장을 날렸다. 짧은 진동으로 오른쪽으로 몸이 틀자, 스쳐지나가는 단검을 낚아챘다.

슈욱... 텁!

짧은 소음을 내며, 부여잡은 케실리온은 그 단검을 원래의 주인에게 날렸다. 소수마공이 담긴, 비도술(飛刀鉥)이다. 이 방법은 지옥에서의 하류 잡배들이나, 고수들도 자주 이용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케실리온도 사용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수세에 몰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로 치솟는 단검은 중력의 영향으로 속도는 떨어졌지만, 섀도우가 날린 단검보다 속도는 뒤처지지 않았다. 게다가, 섀도우와 마찬가지로 시차를 두고 단검이 날아들었다.

두 개의 단검이 하나의 단검이 되듯이 일자형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에 섀도우는 약간 당황한 듯 보였지만, 케실리온의 수법처럼, 단검을 낚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다.

푹!

“크으윽, 섀도우 웨폰!”

섀도우의 비명이었다. 지상으로 낙하하는 몸과 시차를 두고 날아오는 단검에 당한 것이다. 소수마공의 기운이 담겼기 때문인지, 왼손에 틀어박힌 섀도우의 손은 약간 얼어있었다. 뒤이어 날아오던, 두 번째의 비도는 하늘의 그림자에서 뿜어진, 섀도우 웨폰의 무기에 의해 막혀버렸다.

덜덜...

“개, 개자식!”

섀도우는 왼손에서 느껴지는 감각 때문인지 욕을 내뱉고 있었다.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왼손은 동상에 걸린 것처럼 푸르스름했다. 오직 검은빛만 내뿜고 있던, 섀도우의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림자의 게이트가 열리자, 큰 장검 하나가 섀도우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이미 지상에 안착해 있는 케실리온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과는 다르게, 찹찹한 눈빛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며,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린 섀도우의 신형을 찾기 위해 오감의 폭을 넓혔다.

‘마령심법으로 오감을 집중시킨다.’

케실리온은 눈과 코, 피부로 전해지는 떨림을 집중하기 위해 온몸 구석구석, 몸속의 내공을 순환시켰다. 간혹, 역행도 하고 있었지만, 마령심법의 특성이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온몸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은빛의 기류가 뿜어졌다.

오직 케실리온에게만 보이는 세상, 은빛으로 물든 세상을 보던 케실리온은 나무 근처에서 뿜어진 파동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는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거기냐!”

파르릉-

케실리온의 움직임에 맞추어 녀석의 장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워낙 짧은소리였지만, 민감한 오감에 걸려든, 장검은 힘없이 케실리온의 손에 안착해 있었다. 녀석이 사용한 수법은 아무래도, 그림자를 통한 어검술 정도라고 파악할 수 있었다.

1미터에 육박하는 이 장검은 롱 소드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검이었지만, 케실리온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잡기에는 어려웠다. 양손으로 겨우 잡은 검을 보며, 케실리온은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간만에 진검이군.’

지금 케실리온이 펼칠 수 있는 검법은 삼재검과 만검의 낙, 그리고 금단의 검법인 광살마검(狂殺魔劍)이 있었다. 하지만, 검법들을 알고 있다고 한들, 점점 고갈되어가는 내공을 보며, 케실리온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풍운지와 약속한 금단의 검법을 펼쳐야 할 판이었다. 금단의 검법을 펼친다면, 내공은 물론, 육체적인 향상도 있었지만, 심적인 부담이 너무 컸다. 자칫, 검법의 광기에 사로잡힐 위험이 있지만, 검법의 사념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광살마검(狂殺魔劍)...!!’

케실리온의 검에서 피 같은 검강이 뿜어졌다. 몸을 순환하던 마령심법의 기운은 이미 두 배가 된지 오래였다. 그리고 하체며, 상체의 근육은 생각하지 못하게 상승해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조여 오는 검법의 사념이 케실리온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조금 전까지 온몸에서 뿜어지던 기운이 은빛의 물결이라면, 지금은 피의 물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늘로 치솟는 핏빛의 물결이 침범하듯, 장검의 검신에서도 혈기를 비치고 있었다.

“넌, 나의 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검을 잡기도 힘겨운 녀석이... 하하하!”

섀도우는 케실리온의 어정쩡한 자세에 비웃음을 날렸다. 섀도우가 알고 있는 검법이나 검술은 저런 기수 식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게다가, 저런 어설픈 자세라니! 어린아이도 다 피해낼 것이다.

“죽이지는 않으마... 광혈난무(狂血亂舞)!”

온몸에서 타고 흐르던, 혈의 기운이 검으로 집중되었다. 양손을 잡는 양검을 펼치듯, 케실리온의 손은 둔탁하고, 느릿하게 움직였지만, 범접하지 못할 위압감과 피하지 못할 압박감이었다.

섀도우는 여유롭게 몸을 틀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위압감에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저 눈먼 검에 당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자신에게는 몸을 숨길 그림자는 넘쳐 났다.

“하이드!”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자신의 몸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땅을 뚫고 상승하는 혈기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혈기를 보며, 섀도우는 표정을 굳혔다.

그림자를 뚫고 날아드는 거대한 기운에 섀도우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황당한 검법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아니, 지금 봤으니, 처음이 될 것이다. 땅과 하늘을 지배하는 검이라니! 이건 황당함을 넘어 경악에 이를 정도의 검법이다.

땅에서는 웨이브 마법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미친 듯이 치솟는 마나의 파동과 하늘에서는 피의 피라도 떨어지는 듯이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절대적인 검법을 막을 자가 있을 쏘냐!

“크으윽...”

신음을 토해낸 자는 섀도우가 아니었다. 신음을 터뜨린 자는 케실리온이었다. 광살마검(狂殺魔劍)의 영향이 컸던지, 정신력을 야금야금 먹어치운 검법으로 인해, 입가에는 옅은 피가 배어 나왔다. 게다가, 근육은 흐물흐물해져, 움직일 수도 없는 형국이다.

이대로 누군가 공격하면 당해버릴 것만 같았다.

“쿨럭... 크크큭, 겨우, 하프 드래곤 주제에...그 검술의 이름은...?!”

“크으으, 광살마검, 지상을 죽이고 하늘을 울린다는 검이다.”

케실리온은 하체가 잘려나간, 섀도우를 보며, 손을 뻗었다. 우선, 녀석의 출혈을 막고, 뭐를 해야 할 것이다. 이대로라면, 녀석이 출혈로 죽어 버릴 것이다.

탁, 타탁!

다행히, 마족이나 인간이나 같은 혈 자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혈을 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무, 무슨 짓을!”

“귀찮다. 출혈을 막은 것뿐이다. 난...아직 네놈에게 볼일이 남았다.”

케실리온은 상단전인, 백회혈에 정신을 집중했다. 광살마검의 영향 때문에 머리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몸의 부담감도 컸을 분더러, 정신력도 많이 고갈되었다. 두 번 다시 펼치기 싫은 검법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네놈의 기술을 가져가는 일! 흡수다.”

케실리온은 피로 물든 손을 앞으로 뻗으며, 섀도우의 기술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흡수의 첫 번째 단계가 성립된 것인지, 두 번째 단계인 프로필 뷰가 사용되었다.

흡수 마스터, 검집을 얻다.

“으으...”

섀도우는 완벽하게 제압당해 버렸다. 마기는 물론, 입을 몸을 마비시키는 마혈과 입을 열 수 없게 아혈까지 집어버렸다. 이미 하체가 없었기 때문에 녀석을 제압하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쉬웠다.

“프로필 뷰(Profile View)”

케실리온의 짧은 말에 놀랍게도 반응했다. 눈앞으로 솟아난 마나 덩어리, 그것이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선명히 녀석의 프로필을 만들어냈다. 너무 오래된 기술이었기 때문에 반신반의 했지만,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전율과 흥분, 놀라움과 떨림 수십, 수백 가지의 감정들이 교차했다. 몸에서 배출된 많은 기운 때문인지,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케실리온은 개의치 않았다. 과거, 프로필 뷰를 펼쳤을 때 보다, 선명한 글자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한국어...’

프로필 뷰를 처음 본 소감은 한국어에 대한 감회였다. 900년이란 공백의 시간으로도 잊어버리지 않은 모국의 언어였다. 모국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없었지만, 처음으로 사용했던 언어인 만큼 특별하게 보였다.

지잉- 지이잉!

[프로필]

이름 : 섀도우

별칭 : 흑예의 섀도우

성향 : 마(魔)

능력- 섀도우 웨폰, 하이드, 그림자 먹기

녀석의 능력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약간 이상한 것이 있었다. 녀석의 능력 중, 섀도우 롤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기술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필에는 확실하게 나타나 있지 않았다.

‘스스로 펼칠 수 있다면... 나오지 않는 것인가?’

케실리온은 몇 가지 없는 능력임에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세 가지의 능력으로도 응용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짧은 능력의 설명을 보며, 케실리온은 활짝 펴진 손을 앞으로 가져갔다.

“흡수(Absorption)”

솨아악!

앞으로 뻗어진 손을 통해, 검은 기류가 뿜어졌다. 마치, 헤일이 치듯이 거대한 파도가 섀도우의 몸을 뒤덮었다. 녀석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검은 기류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곧 케실리온의 능력이 된다.

그 검은 기류에 빨려 들어간, 섀도우는 먼지가 되듯이 몸속의 기운을 밖으로 퍼뜨렸다. 그리고 그 검은 기류의 인도로, 케실리온의 몸속으로 흡수되어 갔다. 단 두 마디에 그토록 강한 기운을 내뿜던 녀석은 한줌의 기운도 남지 않은 무력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상처를 막고 있던, 혈도는 저절로 타동 되며, 상체의 상처를 막아주던 곳에서 검은 빛의 피가 뿜어진 것이다. 하늘을 검게 물들인 밤하늘과 같은 검은 빛의 피! 하지만, 케실리온은 그것을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흡혈(吸血)”

꾸르륵!

놀랍게도, 뿜어지는 피는 케실리온의 발치로 몰려들었다. 검은빛의 피가, 하얀색으로 변하며 평범한 물줄기로 변해버렸다. 그 기운은 케실리온의 하단전을 향해 몰려들었다. 텅텅 비어 있던, 단전은 강에서 대양이 되듯 넘쳐흐르고 있었다.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내공의 홍수였다. 하단전과 중단전의 길이 연결되듯이 케실리온의 온몸을 꿰뚫었다. 그것은 하단전의 포화를 의미했다. 단한번의 흡수를 통해, 케실리온은 환골탈태를 한 것처럼, 온몸이 가벼워져있었다.

게다가, 어딘가 침착해 보이는 눈빛과 그림자로부터 뿜어지는 알 수없는 위압감이 케실리온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드디어... 만검의 기초 검을 펼칠 수 있다.”

부족했던 내공의 급상승이다. 하단전의 포화는 만검의 파괴력을 상승시킨다. 만검의 기초 검술이 되어 버린, 기본 검초 4개는 케실리온을 있게 만들었고, 상승의 무공을 만들었던 그 검법이다.

넘쳐흐르는 내공을 만끽하고 있던 케실리온은 옆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눈을 번뜩였다. 레딕도 이미 정리가 되었다는 듯이 란델 아카데미의 교복을 털고 있었다. 어두워진 바닥에는 섀도우의 수하로 보이는 녀석이 쓰러져 있었다.

끈적이는 혈향에서 마기가 뿜어지며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땅에서는 마기로 인해, 오염된 땅이 되어 버렸다. 푸른 잔디를 뽐내고 있던 곳에서는 더 이상 생물이 살수 없다는 듯이 악취가 풍겨났다.

“첫 번째 검으로 생각해 주마.”

츠러렁!

케실리온은 검게 물든 검을 들어올렸다. 섀도우를 베어 넘겼던 장검이었다. 그 검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검은 피를 내공으로 털어내고는 새롭게 생긴 능력을 일으켰다.

“섀도우 웨폰(Shadow Weapon)”

케실리온의 그림자로부터 뿜어진 은빛의 기류, 섀도우가 펼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섀도우의 느낌이 급박한 것이었다면, 케실리온은 어딘가 여유로우며, 차가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림자의 아공간이다.

그 아공간 속으로 들어간 긴 장검은 케실리온의 첫 번째 검이 되었다. 섀도우 웨폰이라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놀라운 능력이었다. 그림자로부터 솟아난, 아공간에서 검이 들어있다.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 그림자에서 검을 뽑아 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그림자만이 아니라, 적의 그림자에서도, 여러 그림자를 통해서 무기를 들 수 있는 만능 검집이다.

“호오... 섀도우를 처리하셨군요. 역시 보는 눈은 있습니다. 하하하!”

레딕은 아주 멀쩡한 상태였다. 몸에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은 완벽한 모습. 평범, 그 자체였다. 레딕은 자신의 일인 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딘가 홀가분한 모습에 케실리온은 이상함을 느꼈지만,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조금씩... 능력이 회복되어 가고 있다.’

사실, 케실리온의 생각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였다. 조금씩이지만, 지옥에 있을 때와 비슷한 경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하단전과 중단전의 길을 이었기 때문에 능력향상은 더욱 쉬울 것이다. 

내공은 늘어날수록, 그 가치를 잃어간다. 그 이유는 종점에 이르러서는 내공의 유무와 관계 없는 경지에 오르기 때문이다. 상단전의 길이 열린다면, 굳이 체내의 기운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의 힘을 빌려 사용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자연경과 우주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경지는 꿈에나 있을 일이다. 조금씩, 힘을 회복한다면, 언젠가 지고의 경지를 회복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미약하게만 느껴지는 기운이구나...’

케실리온은 새삼 레딕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회복된 내공으로도 녀석의 기운을 감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녀석에게 도전 할 생각은 없다. 확실하게 처리 할 때 까지, 녀석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후...”

“어딘가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 군요.”

“아... 뭐, 좋군.”

케실리온은 레딕의 물음에 짧게 긍정을 표하고는 어둠으로 몸을 숨겼다. 아카데미의 교수가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한동안은 조용히 살아야 할 것이다. 페이린이 케실리온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예전에 눈치 챘기 때문이다.

흡수 마스터, 검집을 얻다.

‘퍼니쉬, 당분간 조용히 지내십시오.’

레딕이 케실리온에게 전한 말이었다. 뒤늦게 달려온 많은 교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마법사 중, 제일 강하다고 알려져 있는 페이린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녀는 짧은 소관으로도 그것이 마족의 소행이라는 말을 했다.

죽은 시체가 마족의 것으로 판명되니,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서로 숙덕이며 말을 아꼈다. 웨어울프 사건을 더불어, 다시 한 번의 마족 침입 사건은 아카데미의 존속까지 위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란델 제국의 보안 문제까지 야기하게 만들었다.

“교수님! 어제 마족이 나타났다면서요.”

“누가 그러던가요.”

마법 수업이다. 페이린은 아침부터 심기가 매우 좋지 못한 것인지, 고운 얼굴을 찌푸리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 학생의 질문에 구겨진 얼굴은 더욱 구겨졌다. 목소리도 한껏 짜증이 치솟은 목소리였다.

“교수님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어요.”

학생의 말은 페이린은 당황하게 만들었다. 기껏 보안이랍시고, 입조심을 하고 있던, 교수들 사이로 알게 모르게 정보가 퍼진 것 같았다. 이대로 라면 황궁에까지 이 사실이 알려질 것이다.

이건 아카데미의 일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보안 부실의 문제였다. 서쪽의 대 제국에서 마족을 허용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헛소리 그만하고 수업이나 하겠어요.”

페이린은 대답을 회피하며 수업을 재개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수군거림에 마음은 뒤숭숭해졌다. 요즘 들어 몬스터다 보안 문제다 안 그래도, 국가의 비상이 걸린 마당에 마족은 비상을 넘어 국가 계엄령을 내려도 될 판이었다.

“아니, 오늘은 이정도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족에 대해 알고 싶어 하니, 마족에 대해 양피지 두 장 분량의 레포트를 제출해 주십시오.”

페이린은 그런 말을 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페이린의 걸음은 거칠고 빨랐다. 하지만, 교수들이 모여 있는 교사가 아니라, 황궁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카데미 내의 마구간으로 방향을 틀어 말을 타고 황궁에 갈 생각인 것 같았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보고부터...!”

페이린은 마음이 급했다. 한번으로 그칠 일이 아니었다. 일정한 주기로 나타나는 마족과 몬스터, 이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위적인 현상 같았다. 이런, 케실리온이 아카데미를 편입했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이런 망상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심을 감출 수 없었다. 

‘웨어울프 사건, 케실리온이 연류 되어 있다. 이번의 마족의 죽음 역시 케실리온의 마나가...’

페이린의 지적은 정확했다. 마나에 민감한 마법사가 케실리온의 작은 기운을 노칠 리가 없었다. 케실리온은 자기 딴에 마나의 흔적은 감췄다고 생각했지만, 사용한 마법에 의해 그 향기가 지상 표면에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주범이 케실리온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2차 성징을 마치지 않은 하프 드래곤은 완벽하지 않아.’

페이린은 또 하나의 고민에 빠졌다. 케실리온은 자신과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1차 성징은 자신을 강하게 만들지만, 케실리온처럼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16세가 되는 2차 성징이야 말로, 하프 드래곤으로써의 각성을 야기 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마족이나 품고 있는 마기를 품는 것도 이상했다. 아무리 마룡의 후손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짙은 마기였다.

“이럇!”

생각을 마친, 페이린은 한적한 수도의 거리를 빠르게 질주했다.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인지, 말의 속도가 주는 일은 없었다. 빨리 달렸기 때문인지, 금방 황궁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황실마법사 페이린이다. 문을 열어라!”

화아악!

페이린은 달려가는 와중에 황궁을 지키고 있는 근위병들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자신의 마크인 붉은 용의 문양이 하늘에 수를 놓자, 근위병들은 급히 황성의 문은 열리고 있었다. 열린 좁은 문을 뚫고 지나간, 페이린은 황궁의 중앙 궁으로 입궁할 수 있었다.

“황실마법사 페이린님을 뵙습니다.”

여러 시종들이 인사를 해왔지만, 페이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쯤, 황궁의 심장부인, 황좌가 있는 곳에서 한창 회의를 하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이다. 급히 뛰어갔기 때문인지, 숨이 차올랐지만 페이린은 상관없다는 투였다.

“문을 열어라.”

지금 회의 중인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페이린은 문을 지키고 있는 기사와 시종에서 낮게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기사는 얼굴을 구겼지만 매일 있는 일이라는 듯이 시종에게 지시를 내렸다.

“페이린 후작 드십니다.”

“폐하!”

페이린의 입성에 많은 귀족들은 당황한 듯 보였다. 지금쯤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하고 있어야 할 존재가 이곳에 모습을 들어 낸 것이다. 무슨 사고라도 친 것인지 내심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거 폐이린 후작 아니오.”

황제는 짐짓 반갑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페이린의 표정을 보더니, 곧 입을 다물었다. 엄청난 사건이라도 터진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이린은 거친 숨을 한번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마족입니다. 마족!”

“마족?!”

페이린의 떨리는 목소리에 많은 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갑자기 마족이라니, 이건 장난의 한도가 넘어서고 있었다.

“페이린 후작! 지금 장난 칠 분위기라고 보오?! 웨어울프 건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건만!”

크롬공작이 페이린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페이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간밤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족이 나타났다는 증거를 보이자, 귀족들의 얼굴은 하나 둘씩 새파래지기 시작했다.

“지저스의 파견을 요청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흐음... 아무래도 그것은 힘들 것이오. 지금 한창, 중앙 신전에서는 신탁이 내려져 바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소.”

“신탁 말씀이옵니까?”

카논공작의 의견에 침중한 표정을 짓던, 황제는 신전의 일 때문에 그런 요청은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신전에서는 한창 신탁 사업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신탁은 여러 국가에 요청을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의 색을 띠는 구슬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렇소, 흠흠... 신의 배신자인 드... 드래곤을 다시 봉인하기 위해 유색의 비드를 찾고 있소.”

황제는 페이린의 표정을 보며 우물쭈물 거렸지만, 페이린은 특별한 감정을 표정으로 나타내지 않았다. 다만, 마족에 대해서 생각 할 뿐이다.

“아무튼! 신전의 도움은 불가피 할 것이오. 그나저나, 제국의 수도에 마족이 나타나다니! 국가 치한이 어떻게 되었기에 그러는 것이오. 카이룬 공작이야, 아카데미 운용에 바쁘다 치더라도... 두 공작께서는...”

황제는 두 공작인 카논과 크롬을 살짝 흘겼다. 점점 분위기가 마족으로 넘어가자, 페이린의 관심은 극도로 집중되었다. 황제는 페이린이 조사한 것을 토대로, 대처 방안과 앞으로 있을 마족 침임에 대한 목적을 주제로 회의를 이끌었다.

“그래,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유독 아카데미로 몰려드는 몬스터와 마족 연관이 있다고 보시오?”

“폐하, 신 크롬 아뢰옵니다. 페이린 후작의 말대로, 연관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웨어울프와 마족은 떼려야 땔 수 없는 종족입니다.”

크롬의 말에 페이린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대외적으로 웨어울프는 마족의 수족으로 통하는 늑대족이었다. 그리고 중간계의 배신자인 늑대와 박쥐를 비롯해, 여러 수인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하물며, 수인족의 대부분은 마족의 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크롬 공작,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 아닙니다.”

“페이린!”

크롬 공작은 갑작스럽게 말을 끊는 페이린의 행동에 화가 났지만, 서로 국가를 위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말없이 페이린의 말을 경청했다.

“저는 내부의 소행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마족과 몬스터를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번 해에 나타난 몬스터의 출현빈도를 보건대, 그 내부는 수도, 즉 아카데미 내에 있다는 것이 저의 소관입니다.”

“내부 소행이라... 그래, 그 범인이 누군지 알고는 있나?”

“그것이... 하지만, 눈길이 가는 존재는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

황제는 짧은 신음을 토해냈다. 내부의 소행이라니, 이건 제국을 배신하는 행위였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몸을 떨었지만, 페이린의 말에 찹찹한 표정을 지었다.

“가장 유력한 존재는 케실리온입니다. 웨어울프 건에도 그가 있었고, 마족 사건에는 그의 마나가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크음... 이번 사건은 아카데미와 가장 밀접한 페이린 후작에게 맞기겠소.”

황제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카논 공작과 페이린을 번갈아 보고는 회의장에서 퇴장해 버렸다. 내부 소행이라는 것이 하필이면, 하프 드래곤인 케실리온이었던 것이다.

의혹(疑惑 : Suspicion)

“반갑습니다. 레포트는 다 해왔겠죠?”

“예...”

페이린의 밝은 말투와는 다르게 반의 학생들은 축 처진 목소리였다. 간간히 희끗희끗거리며, 눈가가 주름이 잡힌 녀석들도 있었다. 아마, 밤새도록 그 레포트를 작성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던 페이린은 분위기를 살폈다.

모두들 마족이 나타났다는 것에 대해, 무관심한 반응이었다. 솔직히 누가 죽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 할 피해도 없었지만 이건 중대한 사항이었다. 마족의 침입은 언제든지 일어 날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쉰 페이린은 스치듯 케실리온을 쳐다보고는 카랑카랑하게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고 있었다. 여전히 거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케실리온을 정면에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은 눈동자와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무표정과 무심으로 가득 찬 눈동자를 볼 때마다 페이린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모든 것을 간파한다는 눈동자였다. 하지만, 자신은 황궁 마법사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대마법사, 저런 꼬마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오늘은 발표 수업을 하겠습니다. 자신의 레포트를 주제로 토론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죠.”

페이린은 침착하게 숙제에 대해서, 수업을 진행시켰다. 실상, 이런 숙제를 출제했다는 것도 어안이 벙벙했다. 마족에 대해서 숙제를 하라고 시켰다니, 심증으로 케실리온은 용의자였다. 그런 아이 앞에서 이런 숙제를 냈다는 것이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이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수업으로 심중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해온 숙제를 통해 케실리온의 표정을 살피는 것도 관찰자의 임무에 해당한다. 주시하고, 관찰하고... 이건 비슷한 말이면서 엄연히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발표자는 누구죠?”

“저예요. 교수님.”

죽은 로킨의 패거리 중 하나였다. 요즘 들어 조용히 지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오만방자한 녀석들이었다. 녀석은 케실리온의 표정을 살피며 자신이 조사해온 레포트를 읽기 시작했다.

“그럼 제가 조사해온 마족을 설명하겠습니다. 제가 조사한 마족은 마룡입니다.”

“그, 그거 좋은 주제네요. 계속하세요.”

페이린은 녀석의 주제에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필이면 마룡이라니, 하지만, 케실리온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무어라 떠들고 있는 루시아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움직임도 없는 정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신에게 버림받은 족종 드래곤, 그리고 드래곤에게서도 버림받은 이단이 마룡입니다. 그 드래곤은 몸속의 거대한 마기를 품고 있으며, 드래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신이 만든 최악의 생물입니다.”

흠흠..

“마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중간계의 혼란을 초래했으며, ‘마족 서열 고찰’이라는 유명한 도서에서는 마룡의 서열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상위의 순위였습니다.!”

로킨 패거리에서는 키득거리며, 녀석의 발표를 방해하고 있었지만, 녀석은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끝 까지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족 서열 고찰이라는 책을 설명할 때는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마족 서열 고찰이라고 했나요?”

“예, 교수님... 무슨 문제라도?”

“아니요. 계속하세요.”

페이린이 흐름을 끊어 버리자,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린 녀석은 의무적으로 페이린의 질문에 간략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다시 들려오는 대답이 시원찮았기 때문인지 쉽사리 기분은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마룡의 서열은 마왕의 다음 서열입니다. 물론, 4대 마왕과 11귀족들이 있기 때문에 실상 16위라고 생각 할지도 모르겠지만, 당당히 서열 5위라는 높은 서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그걸 조사한 목적이 뭐야.”

“뭐긴 뭐야, 마룡의 후손이 있는데 마룡이 없으라는 법이 있나! 더러운 마족.”

질문한 사람은 루시아였다. 질문의도가 어떻게 되었든, 녀석은 케실리온을 위한답시고 했지만, 주위의 아이들이 내뿜는 느낌은 그것이 아니었다. 적의와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케실리온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입이 벌어질 때마다. ‘더러운 마족’ ‘살인자’ ‘이단’이라는 말이 들려왔지만, 케실리온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지루한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도 화가 나는 것인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아직 어려서인지, 사리분별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튼! 마룡은 더럽고 추악하고, 음모를 꾸미기 좋아하는 종족입니다. 천 년 전 인마전쟁을 그린 책인 마왕의 강림이라는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으음... 아직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 아니라고 보는데...”

페이린은 짧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왕의 강림’이라는 책은 인마전쟁을 그린 소설이었다. 그 소설에 등장하는 마룡은 마왕을 강림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드래곤으로 부각되고 있었다.

강한 어둠의 브레스를 내뿜으며, 마왕을 태우며 하늘을 비행하는 지상 최악의 드래곤이었다. 무서움을 넘어서 무의식의 공포였다.

“그 책에서 부각된 것이 마룡은 마왕의 날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왕은 마룡을 타고 하늘을 날며, 지상을 불태우고 더럽혔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은 마룡에 있지요. 마왕의 강림에서부터, 파괴하는 일까지. 모든 것은 마룡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녀석은 만족한다는 듯이 자리에 앉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발표에 마룡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인지 교실은 한바탕 떠들썩해져 있었다. 

짝짝짝!

“수고했어요, 씨제이.”

페이린의 말에 녀석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씨제이, 녀석의 이름이다. 마룡에 대해서 떠들었기 때문에 케실리온의 뇌리에 단단히 틀어박혀 있었다.

“아참! 이번 사건에도 혹시 저 마룡이 끼어 있는지 모르죠. 하하하. 요즘 레딕과 잘 붙어 다니더군요.”

씨제이의 말에 레딕은 물론, 케실리온도 이채로운 눈빛으로 녀석을 쳐다봤다. 녀석의 가설은 정확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들켜도 그만인 케실리온과 레딕은 느긋하게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씨제이 학생의 발표는 끝났습니다. 후... 그럼 레딕! 발표해 보세요.”

“예, 교수님.”

레딕은 특유의 웃음기 띤 얼굴을 하며 양피지를 활짝 폈다. 두 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겹쳐서 들며, 느끼한 목소리로 양피지를 읽기 시작했다.

“제가 조사해 온 마족은 뱀파이어입니다.”

“좋아요. 들어볼까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레딕은 예법에 맞게 인사를 하고는 양피지를 읽어 나갔다. 케실리온은 레딕의 행동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자기 자신의 종족에 대해서 설명하겠다니, 무슨 생각인지 몰랐다.

“뱀파이어는 흔히 피의 종족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엄연히 달의 종족입니다. 뱀파이어가 피를 취하는 것은 딱 두 가지에 해당합니다. 하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피는 뱀파이어의 생명력이며, 힘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번 정도는 피를 섭취해야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으며 강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번쩍...

“질문이 뭡니까? 케실리온?”

레딕은 발표하는 와중에도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자신의 종족을 주제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는데, 그 누군가는 케실리온이었다. 가장 관심이 가는 녀석이 레딕인 만큼 이 순간만큼은 참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한 달에 한번입니까?”

“하하하, 제가 뭐 뱀파이어도 아니건만... 난감한 질문이군요. 아마 제 생각으로는 신월이 뜨는 밤하늘이 뱀파이어의 본성을 이끌어 내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가장 피 맛이 좋을 때거든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페이린의 치켜뜬 눈빛에 레딕은 장난기 가득하던 표정을 지우고는 수업에 집중했다. 그렇게 덧없는 수업은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다음 시간에 발표 수업을 연달아 하겠습니다.”

“우....”

긴 수업은 끝나 있었다. 페이린은 그 마족에 대한 수업에 대해 끝까지 밀고 나갈 생각인지, 내일 있을 마법 수업을 연달아 하겠다는 것이다. 발표를 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아이들은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우는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이제부턴 좀 편안하겠군...’

“어이! 마룡, 나도 죽여 보시지?”

케실리온의 생각을 뒤엎은 녀석, 안락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케실리온에게 찾아온 복병이었다. 짜증이 났지만, 귀찮았기 때문에 책상에 엎드린 케실리온은 녀석이 빨리 꺼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옆에 있던 루시아는 무어라 떠들고 있었지만, 녀석의 말이 다 맞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케실리온은 마룡이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마룡의 후손이었지만, 정확히는 마룡이었다.

“쿠쿠쿡, 씨제이 저리로 비켜주시지요. 전 케실리온과 할 이야기가 많답니다.”

“뭐라고? 능글거리는 버터 새끼가.”

“꺼지라고 했습니다.”

레딕은 케실리온의 자리로 이동해왔다. 앞을 가로막는 씨제이를 제치고는 케실리온의 곁에 서서, 작게 속삭였다.

“앞으로 조심하십시오. 그딴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지내세요. 페이린 교수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한 달 후인... 신월이 뜨는 밤 두 번째 지령이 떨어질 겁니다. 그때까지 평안하시길....”

“.......”

케실리온은 들은 채 만 체하며, 엎어져 눈을 감고 있었다. 주위에서 쫑알거리는 소리가 지겨웠기 때문이리라.

의혹(疑惑 : Suspic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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