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린은 내려진 황명을 그래도 이행하고 있었다. 세뇌마법의 일종인 페밀리어를 이용해, 케실리온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수업에서의 행동, 쉬는 시간에서의 행동, 식사를 할 때 어떤 것을 먹는 지 등
일 거수 일 거족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족과 내통하는 행동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모를 마족의 침입을 대비하고, 아카데미를 보호하는 것도 그녀의 임무다.
“특별한 행동은 하지 않는 구나... 제발, 케실리온이 아니기를...”
늦은 밤까지 계속된 케실리온의 관찰은 서서히 끝나 갈듯 보였다. 페밀리어의 눈에는 여전히 정좌를 취하고 앉아 있는 케실리온의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수련에 매달리는 모습은 보기 좋았으나, 특별한 마나행공법으로 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도 저 위험한 마나 수련법을 하고 있었다니...”
페이린이 있는 곳은 교수들의 개인 공간인 교수 전용 집무실이었다. 이곳에서 잠을 자고, 일을 보는 곳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소음이 날수는 있었지만, 학교를 순찰하는 데 있어서는 적당한 곳이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해야겠다.”
우우웅!
페이린은 페밀리어와의 정신 교감을 끊기 위해 원반의 스크린처럼 떠 있는 마나를 살짝 건드렸다. 물결의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마나의 거울은 약간 주춤 거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 순간, 페밀리어와 이어져 있던 정신 교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나를 거두어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판단한 페이린은 문제없다는 모습이었지만, 실상, 정신교감으로 이루어져 있던 페밀이어는 소멸되어 가고 있었다.
“뭐, 문제는 없겠지?”
* * *
“역시... 감시 인가?”
케실리온은 미약하게 빛을 내고 있는 오른손을 내려다보고는 피식거렸다. 손바닥에 올려져 있는 것은 작은 생명체였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비행형의 벌레였다. 이것으로 상대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놀라웠지만, 케실리온은 가차 없이 그 생명체를 없애 버렸다.
페이린의 페밀리어는 케실리온의 눈에 똑똑히 보였기 때문이다. 워낙 작은 양의 마나를 들여 세뇌시켰기 때문에 빠르게 잡아 낼 수는 없었지만, 발달된 오감으로 주위의 환경에 동화하고 있는 페밀리어는 금방 발각 된 것이다.
“주위의 환경과 비슷한 마나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수 한 게 있었다. 늘어난 나의 내공을 생각하지 못한 것!”
짧게 조소를 흘린 케실리온은 여전히 독서를 하기에 바쁜 에레노아를 힐끔 쳐다봤다. 책의 표지는 케실리온이 가져왔던, ‘마족 서열 고찰’을 읽고 있었다. 케실리온은 그다지 마족 서열에 대해서 관심은 없었지만, 에레노아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케실리온의 갑작스런 행동이 용납 된 것도, 책에 집중하고 있는 에레노아의 행동 때문이었다.
“케실리온, 4대 마왕이 누군지 알아?”
“글세...”
그 책에 흠뻑 빠진 에레노아는 마족의 서열이 나열되어 있는 책장을 열고 있었다. 그 첫머리를 채운 이름은 케실리온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마족 서열 1위인 북쪽 마왕 벨즈비트는 리치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리치 킹으로써...(중략)]
“글세, 그게 리치 킹이래, 더욱 놀라운 점은 4대 마왕 중 둘이 인간에서 비롯된 마왕이라는 거야.”
‘후후, 벨즈비트가 2계의 녀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마왕이었을 줄이야.’
지옥에서 겪었던 벨즈비트의 행실로 보아, 이름좀 날렸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마족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잘해봐야, 중간계에서 좀 놀던, 그런 악질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에서 비롯된 마왕은 북쪽과 남쪽이래, 북쪽의 벨즈비트와 남쪽의 에바스라는 마왕인데, 그 마왕은 특이한 외모를 하고 있데, 인간의 모습인데, 특이한 외모를 하고 있다고...”
“아, 아... 그건 다음에 들을 게.”
케실리온은 에레노아의 말을 끊고는 밖에서 퍼덕이고 있는 박쥐를 쳐다봤다. 어두운 밤하늘에 동화되었기 때문에 있는 듯 없는 듯 한 모습이었지만, 케실리온의 눈에는 확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뭐야... 또 몰래 수련하러 나가는 거야?”
“후후후...”
케실리온은 의미모를 웃음을 남기고는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렸다. 마침, 대기하고 있던 박쥐 녀석도 케실리온을 따라, 아카데미의 건물의 어두운 곳으로 몸을 숨겼다. 최대한 기척을 죽였기 때문에 순찰을 돌고 있는 교수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었다.
요즘 들어 교수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외적인 수련보다는 내적인 수련을 많이 하고 있던, 케실리온은 오랜만의 바깥공기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솨라락..
케실리온의 직접적인 물음에 박쥐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10살짜리 꼬마의 키로 변하자, 서서히 얼굴과 몸이 인간의 피부로 변해갔다. 하지만, 레딕은 아니었다. 금발과 비슷한 레딕과는 다르게, 창백한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칼을 가진 녀석이었다.
“처음 뵙습니다. 처단의 퍼니쉬님.”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 뱀파이어였다. 케실리온은 약간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뱀파이어를 쳐다봤다.
“용건이 뭐냐... 나에게 명령을 내릴 생각이면, 레딕에게 직접오라고 해라.”
“명령이 아닙니다. 퍼니쉬님... 전 알파, 퍼니쉬님의 부하가 될 존재입니다. 인사드립니다.”
“쿠쿡, 레딕이 시켰나? 감시라면 소용없는 짓이다.”
케실리온의 직접적인 말에 알파라는 여자 뱀파이어는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워낙, 말이 없는 녀석인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케실리온의 처분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재수 없는 레딕의 부하라는 점에서 감점을 줘야 하겠지만, 침묵을 유지하는 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요즘들어 말이 많은 존재들이 주위에 들끓기 때문인지, 이런 조용한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원하는 게 뭐냐.”
“로드의 명에 따라. 퍼니쉬님을 보좌 및 관찰입니다.”
“솔직해서 좋군. 쿠쿡, 마음에 들어. 좋다. 하지만, 귀찮게 하면 넌 죽은 목숨이라고 해두지.”
“감사합니다.”
케실리온의 말에 녀석은 다시 박쥐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조용한 곳으로 숨어버렸다. 레딕의 부하만 아니었다면, 수하로 삼고 싶은 녀석이었다. 조용하고, 명령에만 충실한 녀석일수록, 배신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멀리서 들려오는 교수의 발걸음에 케실리온은 하늘로 치솟았다. 오늘 수련은 불가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워낙 경계가 삼엄하기 때문에 수련을 한다고 해봐야, 진전은 없을 테고, 정신만 피곤해질 것 같았기 때문에 기숙사로 방향을 틀었다.
“알파라...? 레딕이 무슨 생각으로 보냈는지 모르겠군.”
케실리온은 알파라는 여자 뱀파이어를 떠올리자, 흉계를 꾸미고 있을 레딕이 떠올랐다. 짜증은 났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녀석은 조금 위험한 녀석이었다. ‘페덜의 돌’로 녀석을 안심시키는 것도 잠시 뿐일 것이다.
만약, 그것을 들키게 되면, 이 불완전한 관계 역시 깨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알파라는 녀석을 잘 이용해야 할 것이다.
의혹(疑惑 : Suspicion)
다음날, 케실리온이 속해 있는 S반...
여전히 활기가 넘쳤고, 짜증이 나는 곳이다. 케실리온에게 시비를 거는 귀족 녀석들과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 부류, 그리고 재능이 뛰어난 평민이 몇몇 모여 앞으로 있을 장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케실리온은 평소와는 다르게, 레딕의 자리인 햇빛이 잘 비치지 않는 구석진 자리로 이동했다. 거의 앞줄에 앉아 있는 케실리온이었기 때문에 뒤쪽으로 걸어 가야하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상관없는 모습이었다.
“목적이 뭐지?”
“후후... 일종의 계약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하지요.”
“계약...?”
레딕은 의미모를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그 말을 토대로 여러 유추를 할뿐, 녀석의 생각을 짐작하지는 못했다. 이건, 연륜과 경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독심술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예, 저와 당신은 한배를 탔습니다. 추기경의 편이지만, 서로를 견제 하는 편이라고 하지요.”
“꼭 적이 많다는 소리로 들리는 군.”
스륵
레딕은 자신의 금발을 살짝 뒤로 넘기고는 말을 이어갔다.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목소리의 어딘가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제 2 추기경이 저를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몇몇의 추기경들이 있지요.”
“하하, 그래서 나를? 난 세력도 없고 신입일 뿐이다.”
케실리온의 말은 정확하게 맞았다. 아직 이렇다 저렇다 할 정도의 세력도 없거니와, 이제 갓 추기경이 된 신입이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레딕은 더욱 짖은 웃음을 흘렸다.
“후후... 신입이기 때문입니다.”
“신입이기 때문이라...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추기경회를 움직이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
케실리온은 레딕의 의도를 알았지만, 녀석이 지금껏 추기경회를 움직이는 곳이 어딘가를 듣지 못했다. 추측할 곳이라고 해봐야, 마계의 사주를 받고 중간계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활동한다고 생각해왔다.
지금 와서 그곳을 움직이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 다면 딱히 말할 곳이 없었다.
“교단입니다. 주신 지저스의 교단.”
“!!!!!”
케실리온은 뜻밖의 대답에 눈을 부릅떴다. 마족을 배척하는 곳이 신전이다. 하지만, 마족이 중추를 이루고 있는 추기경 회를 움직이는 곳이 지저스의 교단이라니, 이건 어딘가 언밸런스 했다.
“물론... 교단은 우리의 정체를 모르고 있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그 말을 나에게 하는 저의가 뭐지?”
케실리온은 갑작스레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이런 기밀 같은 것을 자신에게 말하는 저의가 궁금했다. 몰랐다면 상관없겠지만, 이 사실을 알았으니,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이젠 알아야겠지요. 11추기경이었던, 섀도우가 사라졌습니다. 다시 11의 추기경으로 돌아왔습니다. 본단은 아직 모르고 있지요. 후후. 알고 있다면, 제 2 추기경 정도랄까.”
“나에게 말하는 이유가... 서열의 변동을 뜻하는 것인가?”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서열의 변동과 교단을 이끄는 교황과 성녀에게 보고정도는 해야겠지요.”
레딕의 말은 케실리온을 흥미롭게 만들었다. 교단을 이끄는 교황과 성녀를 만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세력의 중심으로 케실리온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레딕의 지령만 받기만 하던, 케실리온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명령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레딕의 신뢰를 쌓았다는 증거였다.
“케실리온, 당신은 저를 배신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슬슬, 중앙으로 모습을 들어 낼 때도 됐습니다. 그리고... 엠블럼을 받을 시기도 되었지요.”
레딕이 말한 엠블럼은 마기를 숨기는 장치였다. 레딕의 가슴 정중앙에 붙어 있는 란델 아카데미의 엠블럼 뒤에 새겨져 있는 신월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초승달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구슬과 같이 둥근 형상 중앙 속에 들어있었다. 자세하게 관찰하지 않는 다면 마냥, 란델 아카데미의 엠블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저런 아티팩트를 받는 것인지 몰랐지만, 케실리온, 자신도 이제 받을 것이다. 점차 불어나는 마기로 인해 활동이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흑예의 섀도우가 가지고 있던 엠블럼이 있었지만, 케실리온의 마기를 숨길 수는 없었다.
마기의 상성이 약간 틀렸기 때문이었다.
“아... 엠블럼의 제작과정에는 케실리온의 마기를 포함합니다. 그러니, 모양만 교단에서 제작하고, 만드는 것은 케실리온 당신입니다.”
레딕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했다. 추기경을 상징하는 문양은 교단에서 만들되, 그 기운을 숨기는 장치는 엠블럼에 마기를 주입함으로써, 평범한 마나와 동화하는 장치인 것 같았다. 마치, 마기가 아닌, 신성력이나 인간들이 사용하는 마나처럼 보일 것이다.
케실리온의 마기는 차가운 냉마기다. 그러니, 케실리온의 내공에서 마기만을 숨기는 것을 말하니, 오직 냉기를 뿜는 마나 정도로 생각 할 것이다. 이 아티팩트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 인 것이다.
“제작 시기는...?”
“교단의 영상 집회 때입니다. 그때, 처단의 퍼니쉬의 등장과 입교 및, 엠블럼의 형상을 만들 것입니다.”
레딕의 말을 모두 이해했다. 이제 시작은 그 엠블럼이 만들어진 시기에 이루어질 것이다. 문제는 그 시기가 언제냐에 따라, 케실리온의 움직임이 결정 될 것이다. 우선, 페이린의 감시망에서 피하기 위해서는 마법의 경지를 일정이상 올라야 할 것이다.
최소 7서클, 페이린을 뛰어 넘는 다면 감시망에서 피해 갈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2계의 마법이 얼마나 발전했느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때문에 마법의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무공의 경지를 빠르게 상승 시키는 것에 있다. 게다가, 케실리온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보는 특이한 마나의 서클
하나의 원에 세 개의 원이 속해 있기 때문에 경지를 상승시키는데 방해가 될 것이냐, 도움이 될 것이냐에 따라 케실리온의 행보가 결정된다.
“어머... 레딕과 사이가 좋지 않을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구나.”
“오... 제인스 양이 직접 말을 걸어주시니 영광입니다.”
작은 상념에 잠겨 있던 케실리온은 뒤에서 들리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상념을 지울 수 있었다. 루시아와 룸메이트이자, 3대 공작가에 속해 있는 딸인 제인스였다. 란델 아카데미에 편입하기 전에 있었던, 잘못된 만남도 있었지만, 케실리온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스윽...
제인스는 케실리온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오른손을 앞으로 꺼냈다. 손등이 보이는 채로 앞으로 건넸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제인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무슨 의미지?”
케실리온은 진정모르겠다는 듯이 멀뚱거리며 그 손을 내려다봤다. 고사리 같은 손목을 타고 뽀얀 피부가 보이는 손등을 내미는 행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역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군.”
턱... 쪽.
“영광입니다. 제인스 폰 카르멘.”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씨제이, 아직 로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 케실리온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제인스의 손등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절제되고 올 곳은 행동이었지만, 케실리온의 눈에는 사치로 보였다.
탁!
“흥, 누가 네 녀석 따위에게...”
씨제이의 손을 거칠게 뿌리친 제인스는 화가 난 것처럼 콧방귀를 끼고는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 모습에 씨제이는 케실리온의 탓으로 생각하며, 낮게 속삭였다.
“더러운 마룡 따위가...”
그 모습에 케실리온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물론, 수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교수가 들어왔기 때문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저런 꼬마 따위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 인덕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한 케실리온이다.
“즐거운 아침입니다. 그럼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교수의 활기찬 강의에 시끌벅적하던 교실은 조용해졌다. 각자의 꿈을 위해서, 그리고 귀족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뽐내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강해지기 위해,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7서클에 오르는 것이 우선이다. 이 세계는 마법에 의해 움직인다.’
케실리온의 고뇌는 끝이 없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마법이다. 아직, 검을 잡을 때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검을 포기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알 수없는 일에 많이 휘말렸다. 몸을 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마법 하나뿐이라는 것에 케실리온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업 중이었기 때문에 어린 꼬마 녀석들은 초롱초롱 거리는 눈빛으로 교수의 입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나를 더 듣기 위해,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아이들은 바쁘게 양피지에 깃펜을 놀리고 있었다.
툭툭..
그때, 케실리온의 등을 두드리는 존재가 있었다. 수업 중이었기 때문인지 조심스러운 움직임이다. 케실리온의 뒤쪽에 앉아 있는 자는 제인스였다. 그 아이는 케실리온에게 작은 양피지를 건넸다.
그것을 펴본 케실리온은 그저 피식 웃음을 흘릴 뿐, 뒤로 돌아보지 않았다. 누가 이 양피지를 보낸 것인지 알것 같았기 때문이다.
[네놈이 로킨을 죽였어. 더러운 마룡 새끼. 노을이 저물어 가는 밤, 조용한 곳으로 나와라. 아카데미에 있는 울창한 숲으로 말이야.]
‘씨제이군... 후후. 주시자가 있으니... 거부다.’
케실리온은 짧게 생각을 마치고는 그 양피지를 구기며,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이런 곳에 버린다고 한들, 내일이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거리낌은 없었다. 그 행동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레나가 힐끔 쳐다보기는 했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저, 눈을 살짝 찡긋 거리며 윙크를 날릴 뿐, 특별한 행동은 없었다.
의혹(疑惑 : Suspicion)
“결계는 됐고, 케실리온 역시 기숙사에 있고... 오늘도 무사히 넘어갔네... 휴”
페이린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감시를 해야 하며, 경계를 해야 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따분했다. 감시를 시작한지도 겨우 2일이 지났을 뿐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게다가, 페이린의 사역마인, 페밀리어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녀석을 세뇌해야 했다. 물론, 그점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일반 벌레였기 때문에 자연사 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죽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담장 주위로 수십 개의 마법진을 그려야했다. 그것은 아카데미로 침입하는 자를 막기 위해 그려진 마법진이었기 때문에 마족의 침입을 예견할 수 있는 장치 인 것이다.
만약 그 마법진으로 누군가 침입을 시도한다면, 페이린의 마나가 공명을 일으켜 곧 바로 페이린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점도 있었다. 비싼 마나석을 들이지 않고, 손수 그렸기 때문에 장시간 결계를 유지 할 수는 없지만, 매일 아침마다 마나를 주입한다면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것 때문에 매일 일찍 일어나는 수고까지 해야 하지만, 황궁에서 내려진 황명이었기 때문에 꾹 참고 이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평소 성격이 나온다면, 그런 명령은 무시하겠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이다.
우우웅!
“뭐야... 이제 막 끝냈는데...!”
작은 사념에 사로잡혀 있던 페이린은 아카데미의 구석진 곳에서 마법진이 발동한 것을 느꼈다. 그 거리는 아카데미의 동쪽인 작은 숲속에서 발동된 마법진이다. 밤이 되면 그곳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아닐 것이다.
동물과 같은 녀석들이 간혹 걸리기는 했지만, 페이린은 혹시나 하는 생각해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귀찮게 스리... 플라이(fly)!”
페이린은 최대한 기척을 숨기기 위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두운 밤하늘이라 그런지, 페이린의 붉은 로브는 눈에 띠지 않았다. 워낙 밤하늘이 깜깜했기 때문이다. 총총히 박혀 있어야 할 별들은 구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휘이잉-
밤하늘은 의외로 싸늘했다. 벌써,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늘에서 불어오는 혹풍에 약간 몸을 떨어야 했지만, 7서클 대마법사가 몸을 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몸속의 화기를 끌어 올렸다.
“뭐...야?! 저 아이들은...”
플라이로 날아온 페이린은 하늘에서 멍하니 지상을 내려다 봤다. 수십은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뭐라고 소리치는 것인지 사납기 그지없었다.
집단 린치라고 하고 있는 모양이다. 간혹, 평민들을 괴롭히는 귀족들이 있기는 하지만, 저런 식으로 집단 구타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가만히 맞고 있는 아이는 우뚝 서서, 아이들을 쳐다 볼 뿐이었다.
그 순간, 중앙에 서서 맞고 있던 아이의 주위에 갑작스런 마나의 파장이 느껴졌다. 짧은 마나의 파장이었지만, 페이린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누구의 마나인지, 누구의 파장인지를...
“케실리온?!”
페이린은 떨리는 눈으로 지상을 내려다 봤다. 묵 빛이 감도는 검을 들고 있는 케실리온은 차갑게 한기를 내뿜는 마나를 검에 덧씌우며, 학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