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도 혼자 찾아왔군. 하하하!”
씨제이는 홀로 찾아온 케실리온을 내심 비웃었다. 룸메이트를 대리고 와도 시원찮을 판에 홀로 나오다니, 그에 반해 씨제이는 자신의 친구들인 10명을 대리고 나왔다. 이정도의 숫자라면 녀석을 제압하고도 남을 것이다.
“왜 말이 없어. 벌써 쫄았냐?”
“쿠쿡... 버러지들이 떼로 있어봤자 지.”
녀석들은 케실리온의 말에 흥분한 것처럼 콧방귀를 뀌며 얼굴을 붉혔다. 솔직히 씨제이들은 케실리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로킨을 가볍게 제압하는 모습을 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홀로 싸웠고 이번에는 10명이나 되는 친구들이 있었다.
“죽고 싶어?”
“죽고 살리는 건 나다.”
“이...이! 씨발, 저 새끼 오늘 죽었다고 생각해!”
씨제이는 잔뜩 흥분한 채, 케실리온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맞게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씨제이의 친구들은 케실리온의 양다리, 양팔을 세게 잡으며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퍽!
“네놈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재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부터는 조금 낳아 질거다. 그 반반한 얼굴도 흠집 좀 내야겠고.”
씨제이는 케실리온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어린 아이의 주먹이었지만, 조금 매운 것인지 케실리온은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아이들의 속박에서 풀고나와야 할 시간이건만, 케실리온은 처음 그대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폭력은 심해져갔다. 가볍게 시작했던 폭력은 케실리온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알고 거세게 주먹질을 해대고 있었다.
이미, 양팔과 양손을 잡고 있던 손은 풀린지 오래였다.
“이 새끼 별거 아니잖아. 무서워서 움직이지도 못해, 하하!”
툭툭
녀석들은 케실리온의 행동이 우스웠던지, 볼을 툭툭 치며 서로 의기양양한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었다. 이미, 케실리온에 대한 두려움을 잊은 지 오래였다. 여기 서 있는 존재는 그저 나약한 녀석일 뿐이라는 생각이 아이들을 지배했다.
퍼퍽!
“드디어... 왔군.”
케실리온의 시선이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미약하게 느껴지는 화속성의 마나에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케실리온은 왼손을 뻗었다. 그리고 좌우로 벌어지는 그림자의 틈에서 검을 꺼내들었다.
“뭐, 뭐야!”
“후후후... 지금부터 있을 일은... 학살이다.”
케실리온의 검에서 냉기가 감도는 마나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이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지만, 케실리온의 손속은 거칠 것이 없었다. 왼손에 들린 검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마나와 물처럼 흐르는 검로가 아이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거기 너!”
“오, 오지 마!”
케실리온의 손에 지목된 존재는 다름 아닌, 씨제이었다. 녀석은 살기를 가득 머금은 검을 보자 오금을 저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보통 살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복 바지는 노란 진물이 흘러나왔다.
주르륵...
“푸하하, 오줌까지 지리고 아까와는 딴판이군.”
“제발... 살려줘.”
“마저 하던 이야기는 해야지. 너와 나의 이야기.”
케실리온은 검을 하늘로 치켜세웠다. 크고 느릿한 동작이었지만, 적을 빠져나갈 수 없는 검로였다. 몸 주위로 휘몰아친 혈기를 보건데, 광살마검의 일종일 것이다.
광살마검(狂殺魔劍) 제 1장 광혈난무(狂血亂舞)
“네놈이 죽으면, 일은 진행된다. 도망간 녀석이나, 하늘위에서 멍하니 보고 있는 교수가 알아서 하거든.”
슈악! 퍼펑!
검에서 뿌려진 마나가 씨제이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몸과 목이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광살마검의 영향인지, 녀석의 목과 몸뚱이에서는 피가 폭사되어 버렸다. 사방으로 분출된 살점은 케실리온의 온몸을 적셨다. 그 순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붉은 화기가 케실리온의 몸을 덮쳐왔다.
“케실리온!!!! 네가... 네가!”
화르륵
페이린은 떨리는 표정을 지우고, 적을 대하는 눈빛으로 마법을 펼쳤다. 그 강한 기운에 케실리온은 하늘을 툭 쏘아보고는 검을 휘둘렀다.
만검... 1장 1초, 낙(落)
쏴악!
좌우로 갈려버린, 페이린의 마법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케실리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폭발음!
퍼퍼펑!
갈려진 마법은 단순히 잘려나간 것이다. 마법의 위력을 연상케 하는 페이린의 마법은 아카데미의 숲을 태우고 있었다.
“풉... 하하하! 멍청한 녀석들... 하이드!”
케실리온은 섀도우의 기술이었던 하이드를 펼치며 유유히 그곳에서 벗어났다. 케실리온이 몸을 피한 곳은 아카데미가 아닌, 수도와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떨어진 곳에서 케실리온의 모습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팟!
순식간에 페이린의 눈앞에서 사라진 케실리온은 서늘한 수도 근방의 초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주인, 섀도우 로드를 뵙습니다.”
“일 처리는 잘했겠지.”
“예, 더욱 혼란을 부추기겠습니다. 신월과 관련된 녀석들이라면 말이죠.”
케실리온이었던 녀석은 검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수도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초원이었기 때문에 인적은 드물었다. 섀도우 로드라고 불렸던 자의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지며, 입 꼬리가 좌우로 벌어졌다.
“전대 로드처럼 이용만 당하지 않겠다. 북쪽의 마왕에서 몸을 의탁한 이상...”
섀도우 로드의 번뜩이는 눈빛에 무릎을 굽힌 그림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속삭였다.
“당연합니다. 처단과 신월은 확실히...”
“처리해야 한다.”
두 명의 그림자 일족은 차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어둠과 동화되어 사라졌다. 섀도우 로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지만, 그의 부하는 수도로 향하는 곳으로 그림자를 이동시켰다.
“마계와 중간계를 잇는 일을 등한시 하다니... 신월의 크래센트.”
섀도우 로드는 흩날리는 망토자락을 부여잡으며 붉게 눈을 불태웠다. 그 순간, 섀도우 로드의 검기만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왼손에서는 차가운 뼈대가 눈에 들어왔다. 스켈레톤 처럼 연약해 보였지만, 뼈마디 마디에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의혹(疑惑 : Suspicion)
수련으로 밤을 지새웠던 케실리온은 갑작스럽게 들이 닥친 교수들에 의해 영문도 모른 체 동행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페이린의 표정은 가히 좋지 못 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왜 그랬어.”
“뭘...?”
아카데미의 지하로 들어갈수록, 칙칙한 느낌이 들었다. 밝은 지상의 모습과는 다르게, 어두컴컴했다. 감옥 같기도 했고, 물건을 저장하는 창고 같기도 했다. 하지만, 케실리온이 보기에는 감옥이라는 것이 맞을 정도로 좁은 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몰라서 물어! 어제 분명 너를 봤는데.”
페이린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껌뻑이는 눈동자를 보건데, 간신히 눈물을 참는 것 같았다. 붉게 타오르는 머리칼과 눈동자가 애써 눈시울을 부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끼이익
페이린과 이 아카데미의 교장인 카이룬이 대동한 후송에 케실리온은 감옥에 들어 갈수밖에 없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지금 난동을 부린다면 그 일에 대한 범인이 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휘말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조심할 때였다.
“어제, 네가 씨제이를 살해하는 것을 봤어. 내 눈으로 똑똑히!”
“하... 어이없군. 난 기숙사에 있었다. 증인도 있지. 에레노아다.”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하면서까지 아카데미에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당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에게 발생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케실리온은 진정으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간 수양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컨트롤하는데 있어서 익숙하지만, 지금처럼 평정심과 살심이 치솟는 것은 처음 일 것이다. 최근 들어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자네가 범인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목격자가 있으니 할 수 없군.”
“후회할 것이다.”
카이룬의 말에 케실리온은 머리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범인이라고 지목된 마당에 확 뒤엎어 버릴까도 했지만, 꾹 참았다. 만약, 이곳을 벗어난다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자네가 범인이 아니라면, 풀어주겠지만... 범인이라면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없을 것이네. 아무리 자네가 뛰어난 무위를 지니고 있다고 한들, 7서클의 대마법사가 그린 마나억제진에서 벗어 날수는 없네. 근신하고 있게.”
카이룬의 말에 엿 같은 감옥에 마나를 억제하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래서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도 모자란 것인지, 마나를 제어하는 족쇠까지 차야했다.
예전에도 착용한 적이 있던, 바인드 체인이다. 몸속의 마나를 동결시키는 족쇠에 케실리온은 거칠게 감옥의 바닥에 털석 주저앉았다. 이 감옥은 통풍도 잘 되지 않는 것인지 퀴퀴한 냄새는 물론,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분명 이곳은 창고로 쓰였을 것이 분명했다. 빠르게 감옥을 만드느라. 식량이며, 아카데미에서 쓰이는 실험기구들이 즐비했다.
그래도 있는 것은 다 있는 것인지 침대 대용의 지푸라기는 있었다. 하지만, 햇빛이 들어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있어야 했다.
“케실리온, 어제 있었던 범인이 아니길 바랄 뿐이야. 하지만, 어제의 마나며, 파장, 생김새까지 너였으니 범인은 너일 거야.”
페이린의 말에 눈을 번뜩인 케실리온은 머리를 굴렸다. 마나의 파장과 생김새까지 닮았다면 확실히 자신이었다. 마나는 그 사람 특유의 향기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지문과 같은 것이다. DNA는 그 사람의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처럼 마나 역시 사람마다 고유의 선천지기가 있다. 그것은 복제도 할 방법은 없다. 물론, 그것을 하기 위해 타고난 존재라면 모를까.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 이런 수모를 주고도 무사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스스스!
마나가 담긴 살기는 아니었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살기에 카이룬과 페이린은 얼굴을 굳혔다. 이런 살기는 생전 처음 일 것이다. 뼈 속까지 시린 살기, 이런 살기는 수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1계에서 선악을 택할 때부터 생겨난 능력, 심연의 살기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상대를 꿰뚫고 속박할 듯 한 강대한 살기에 페이린과 카이룬은 뒷걸음질 치듯 급조된 감옥에서 빠져나갔다.
“아무튼, 네가 범인이 아니길 바랄 뿐이야.”
“거듭 말하지만... 무사할 생각은 버리도록.”
케실리온은 눈을 질끈 감았다. 통풍도 되지 않는 이런 척박한 감옥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평할 정도로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내공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차분한 기분으로 가부좌를 틀었다.
끼이익... 쾅!
강철과 나무로 만들어진 문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거칠게 닫혀 버렸다. 완벽한 어둠에 케실리온의 눈은 동물의 눈처럼 은광(銀光)을 토해내며, 어두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레딕이 말한, 적이... 이런 걸 말한 거였나? 습격, 음모, 모략... 후훗, 바보 같이 이딴 수법에 걸려들다니.”
자조적인 음성이 사방이 막혀 있는 감옥에 울려 퍼졌다. 지옥에서는 이런 황당한 일을 격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다. 기습이나, 배신은 수없이 당해왔지만 이딴 바보 같은 지략에 걸려든 것은 처음이다.
어떻게 본다면... 지옥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일 지도 모른다. 음모, 모략이 없어도 무력으로 해결하면 다 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봤자. 시간만 갈 뿐이다.”
케실리온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다리를 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츰 어둠에 시각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 볼 수 있었다. 잠을 잘수 있는 지푸라기 더미와 차갑게 소리를 내뿜는 마법진
그리고 쇠창살로 이루어진 감옥이 눈에 들어왔다. 완벽하게 격리된 공간에 케실리온은 손을 마법진으로 가져다 댔다.
우우웅!
보통 사람 보다 체온이 낮은 케실리온이었지만, 이 마법진은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아마, 내공의 동결이 가져온 결과 일 것이다. 그 마법진은 흡혈마공 처럼 내공을 끌어 들이고 있었다.
오랜 시간 이 마법진에 노출된다면 몸속의 내공이 차츰차츰 외부로 방출될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하게 무기력하게 된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케실리온은 몸을 비틀며 내공을 배제한 무공 수련을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봤자 이득은 없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마법 수련을 해도 도움은 되지 않으니, 육체적인 수련을 한다면 조금이라도 이득은 있을 것이다. 그간 체력을 향상시켜주던 내공이 없으니, 답답한 느낌이 들었지만, 확실히 수련에 도움을 될 것이다.
“풉... 이런 상황에서도 수련이라니.”
살랑... 살랑!
춤을 추듯, 만검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마영보법과 함께 수련하는 것은 오랜만일 것이다. 수만 번은 펼쳐봤을 무공이건만,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헉... 쉭!
타타탁!
좁은 감옥이지만, 만검의 1장을 펼쳐내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목검 한 자루도 없기 때문에 가상의 검을 그리며, 천천히 펼쳐내자 지옥에서의 수련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마영보법과 마영신법... 처음으로 진정한 친구를 사귀었던 일등이 떠오르고, 원수라고 생각하는 마교와 혈교 녀석들이 떠올랐다.
“헉...헉! 젠장!”
쾅!
이딴 일을 당하게 된 것이 마교와 혈교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거칠게 쇠창살을 주먹으로 가격한 케실리온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겨우 몇 번 움직였을 뿐인데 체력 저하가 빨라졌다.
이게다, 마법진 탓일 것이다. 빌어먹을 감옥에서 벗어난 다면, 제일 먼저 마법을 익힐 것이다. 그래야 이 시답잖은 마법진을 해체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끼익, 끼익!
파닥파닥-
가쁜 숨을 내쉬고 있던 케실리온은 날짐승이 내는 날갯짓 소리에 정신이 드는 것을 느꼈다. 숙여져 있던 머리가 천천히 철창 밖으로 돌아갔다. 힘들기 때문인지 번들거리는 눈동자에서는 살기가 저절로 뿜어졌다.
감옥을 얼려버릴 듯 한 살기다. 그 살기에 좁은 감옥을 빙글 돌던 생명체는 천천히 차가운 감옥의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그 생명체가 박쥐였던지,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알파가 보랏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번쩍 뜨며, 케실리온에게 예의를 취했다. 확실히 알파라는 녀석은 케실리온의 종이다. 때문에 주인이라고 떠받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지. 이 빌어먹을 감옥에 나를 처넣게 한 장본인이.”
스하...
케실리온의 번들거리는 눈동자에 알파는 한차례 몸을 떨어야 했다. 몸속의 마나가 동결되어 있음에도 이정도의 차가운 살기를 내뿜는 것에 놀란 것이다. 보통은 끈적이는 느낌이 살기이건만, 케실리온은 세상을 얼려버릴 듯 한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설마 나를 구하기 위해 왔을 리는 없고... 무슨 볼일이냐.”
“로드의 전언입니다.”
“읊어라.”
무심한 케실리온의 음성에 알파는 눈을 질끈 감고는 레딕이 전하라는 말을 읊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 말은 없었던지, 빠른 시간에 이해할 정도의 말 뿐이었다.
“밖의 일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범인은 그림자, 도플갱어 일 것이다. 조만간 해결할 것이다. 이상입니다.”
케실리온은 짧은 말을 이해하고는 살기를 줄였다. 설마 복수를 한답시고, 그림자 일족이 움직일 줄은 몰랐다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레딕도 마찬가지였던지, 전하는 말 속에 침착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확답이 아닌, 어중간한 말투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도플갱어 일 것이라니, 확답이 아닌 것에 약간 불만이 일어났지만 어쨌든 해결한다니, 느긋한 마음이 들었다.
“알파.”
“예, 마스터.”
“레딕에게 전해라.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라고.”
케실리온의 의도를 이해한 것인지 녀석은 박쥐의 모습으로 변하며 감옥에서 빠져나갔다. 감옥 안으로 직접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녀석은 마나의 속박에서 자유로운 것 같았다. 케실리온은 사라져간, 알파를 떠올리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훗, 마스터라니. 감시자 주제에.”
짧은 말을 내뱉은 케실리온은 두터운 지푸라기에 몸을 뉘었다. 생각을 많이 해봐야 답은 없기 때문에 잠이라도 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의혹(疑惑 : Suspic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