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0/269)

“각하! 도플갱어 입니다.”

“허어! 이게... 제국에 또 다시 마족의 침입이라니!”

카논 공작은 급히 아카데미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대동했다. 그것은 제국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전시 그 자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수도에 마족이 나타났다. 이건 계엄령의 선포와 같았다. 국가의 존속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이런 방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아카데미의 상황은 어떤가?”

“시, 심각합니다. 집단 시위라도 하듯이 속속 마족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행인 점은...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는 점과 중간계에서는 힘을 다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수도 근위병과 마법사들을 말하는 걸세!”

카논 공작은 격앙된 수도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느낌에 괜히 기사 단장인 라일에게 역정을 냈다. 하지만, 기사 단장인 라일도 그렇게 마음은 쓰지 않는 듯했다.

“대 마법사인 페이린님께서 결계를 치고 계십니다. 다만... 수도의 방어 마법을 사용하자는....”

“그만큼 상황이 안 좋은 것인가?”

“아무튼 서둘러 현장으로...”

라일의 말에 카논 공작은 철컹 거리는 갑옷을 내려다 봤다. 투명하도록 빛나는 은빛이다. 대 저택과는 아까운 거리이건만, 지금 이 순간은 더없이 멀게 느껴졌다. 이미, 마족의 등장에 수도에 있던 많은 귀족들은 각자의 영지로 숨기 바빴다.

영지를 자유롭게 벗어 날수 없는 평민들은 그저, 무사히 이 사건이 해결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숨이 차도록 달린 끝에 카논 공작이 마족과 대치중인 곳에 도찰 할 수 있었다.

“공작 각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빨리, 회의 실로...”

연무장 구석에 설치된 조잡한 회의실로 공작은 바삐 들어갔다. 그곳에는 두 공작과 페이린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카논 공작의 얼굴이 푸르스름하게 변해갔다. 그만큼 충격적인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 지금 7서클 이상의 마법사의 모습으로 모두 변해 있다는 말인가?”

“그렇네, 그게 그 잘난 하프 드래곤이던 케실리온이라고 하더군. 모습은 얼마나 흉측한지... 쯧쯧.”

크롬 공작의 말에 카논 공작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듯이 회의실의 천막을 거칠게 열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철컹.. 철컹!

무거운 갑옷 때문인지, 카논 공작의 발걸음은 지면을 울리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는 공작가의 기사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앞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기사들은 위대한 마스터인 카논 공작의 등장에 옆으로 비켜났다.

“푸하하하! 재미있는 녀석이야. 그림자 일족은 말이야!”

목소리는 웃고 있었지만, 전혀 웃지 않는 무미건조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카논 공작은 아찔한 기분이 들었지만, 정신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저 흉측한 외모를 한 것인 케실리온이라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안 되겠다. 라일 경은 들으라.”

“예, 주군!”

“페이린에게 수도 방위 마법진을 펼치라고 하게. 이건... 위험해. 아무도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절대적인 방어를...”

“알겠습니다. 주군.”

카논 공작은 떨리는 눈으로 무섭게 성장해버린 케실리온을 쳐다봤다. 적의는 인간들에게 향하지 않았지만, 시리도록 무서운 살기였다. 누구도, 자신을 건들인 다면 없애 버리겠다는 듯이 너무나 스산한 살기다.

마룡은 자비롭지 않다.

“다 끝났어...”

레딕은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수도 주위에는 엡솔루트 실드가 쳐져 있었다. 이것은 다, 인간들의 소행일 것이다. 무려 9서클이나 되는 마법을 마법진으로 소화해 낸 것이다.

인간이 아니라면 이런 발상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상상은 그걸 이루어내는 마법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무한의 상상,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가장 무서운 점일 지도 모른다.

“이게 끝이라고? 웃기지 마라. 네놈은 내가 살려서 끝까지 부려 먹어 주마.”

추악한 케실리론의 표정이 더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차갑게 내뱉는 음성에는 무시하지 못할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위로 포진해 있는 도플갱어들을 본다면 그의 말은 현실성이 없었다.

누가 누구를 살리겠다는 말인가? 같은 능력,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는 도플갱어의 앞이다. 아무리 강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도플갱어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이것이 그림자 족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개개인을 놓고 본다면 가장 약한 존재가 그림자 족일 것이다. 허나, 뭉친다면 그 누구라도 이길 수 있는 것 역시 그림자다.

“두려움에 실성이라도 했나 보군. 우리를 이긴다고?”

수십의 도플갱어가 같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같은 목소리가 주위에 울리며,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엄청난 마기가 주위를 들끓기 시작했다.

[다크 캐논(Dark Cannon)]

녀석들의 입에서 뿜어진 절대 언령, 하지만 절대적인 의지가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마법을 무시한다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푸슝!

한 점으로 쏘아진 다크 캐논에 레딕은 기겁을 하며 검을 치켜세웠다. 마검 다크 드래곤의 힘이 눈앞에 펼쳐졌다. 검에서 뿜어진 기운이 방패를 만들어 냈지만, 레딕의 힘으로 그 검을 컨트롤 할 수 없었다.

“크어억!”

레딕의 거친 비명에 케실리온은 옆으로 밀쳐 내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방어 마법이다. 수십 개의 실드 마법이 중첩되어갔다. 그 힘 앞에서는 어떤 마법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 모습은 진짜와 가짜를 확인시켜 주기에는 충분한 광경이다.

“쿠쿡, 사용할 줄도 모르는 검은 방해만 될 뿐이다.”

케실리온은 힘없이 튕겨 나간, 레딕의 모습에 조소를 흘렸다. 솔직히 레딕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힘이다. 그 힘을 가질 수 있는 존재는 그에 걸 맞는 주인, 마검의 인증을 받은 존재만이 사용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케실리온은 진정한 주인과 적합하다고 해도 될 것이다. 검은 묵광이 드리운 검신에는 살짝 은빛도 감돌고 있었기 때문에 지옥에서 보던 검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파이어 볼!”

“체인 라이트닝!”

그 순간, 인간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마족들을 처단하기 위해 검을 잡은 기사들과 마법을 펼치는 마법사들은 잘 짜인 포메이션으로 마족을 하나하나, 처리하기 시작했다. 개개인을 놓고 본다면 마족들이 우세하겠지만, 인간들의 힘은 대단했다.

크아악!

인간의 비명과 마족의 비명이 한곳에 어우러져 아비규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에 따라, 대지는 피로 물들어갔다. 살점이 떨어지는 소리와 마법에 의해 몸이 타들어가는 소리 등, 평소 잘 듣지 못하던 소리가 아카데미를 채워갔다.

“네놈의 상대는 나다!”

짧은 감상을 하고 있던 케실리온의 귓가로 차기 섀도우 로드가 보였다. 그림자를 통해 앞에 나타난 것인지 혼잡한 상황에서도 유유히 앞에 나타난 녀석이다. 하지만, 케실리온에게는 녀석이 가소롭게 보였다.

이번으로 섀도우 로드와의 싸움은 세 번째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적에 대한 능력은 파악한 상태! 누구도 케실리온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좋을 대로...! 죽음으로... 오만함을 갚아라!”

케실리온은 오만한 자세를 취하는 녀석을 향해 보법을 펼쳤다. 이미, 육체의 한계점 까지 몰고 간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육체의 한계는 능력의 향상을 불러일으킨다. 케실리온의 신형이 섀도우의 앞에서 사라졌다.

마영보법(魔影步法)이다. 그동안 육체의 한계를 느끼지 못했기에 펼쳐 낼 수 없었던 능력! 죽음을 느낄 정도의 한계가 전화위복이 되었던가? 이제 웬만한 기술을 다 펼쳐 낼 수 있는 케실리온이었다.

귀신과도 같은 움직임에 그림자는 당황한 듯 보였다. 게다가, 언뜻 보이는 하이드! 이건 그림자의 능력까지 가미되어 있었다.

“어딜 보시나?”

케실리온의 움직임은 절정에 달해있었다. 그림자의 이동과 더불어 2계에는 없는 보법을 선보인 것이다. 이건 무음을 넘어 광속이다. 누구도 쫒지 못할 속도에 섀도우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닥쳐!”

슈욱!

섀도우는 화가 나는 것인지 단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하지만, 허공에 단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그칠 뿐이다. 검술을 펼칠 수는 없으나, 케실리온에게는 다른 힘이 있다.

“너흰 나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너희 들이 알지 못하는 걸 나는 알고 있지.”

케실리온의 목소리가 아카데미 내에 울려 퍼졌다. 사방이 막힌 것도 아니건만, 주위는 케실리온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도 마법이리라.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것! 케실리온은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경험... 수백, 수천 번을 경험한 나로 써는 너희들의 움직임은.... 어린 아이 장난 일 뿐이다.”

[로즈 바디(Lose Body)]

케실리온은 절대 언령을 사용하며 말을 이었다. 로즈 바디! 케실리온이 주로 사용했던 마법이었다. 고 서클의 흑마법이지만, 확실히 상대를 무력하게 만드는 기술! 몸의 일부를 파괴시키는 무서운 마법이다.

퍽!

수박이 깨지듯 섀도우의 팔이 떨어졌다. 케실리온의 손에는 폭탄이라도 있다는 듯이 붉게 빛이 나고 있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눈빛에서는 다음 부위를 물색하겠다는 듯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다.

팔이 떨어진 섀도우는 비명도 나오지 않는 것인지 얼굴만 구길 뿐, 입을 벌리지 못했다. 아니, 벌릴 수가 없었다. 케실리온에게 잡혀 있는 입에는 진액으로 들어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했어야지... 그 입을!”

[드로우 텅(Draw Tongue)!]

이번에 사용된 마법은 고문용 마법이다. 혀를 뽑아 버리는 무서운 흑마법이었기에 흑마법사조차 사용하기 꺼려하는 마법일 정도로 잔악한 마법이었다. 순식간에 당해버린 섀도우 로드의 모습에 마족들은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우어어...”

혀가 뽑혀 버린 섀도우 로드는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이미 있어야 할 혀는 사라진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섀도우 로드가 실수 한 것은 상대를 너무 얕보았기 때문이다. 케실리온의 전투적인 센스는 누구도 따라 오지 못한다.

1계와 지옥에서의 경험은 누구도 같지 못할 능력을 이끌어 냈다. 1계에서 마구 휘두른 마법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지옥에서 사용한 무공은 그냥 이루어 낸 것이 아니었다. 경험과 수련의 힘!

“아...”

레딕은 순식간에 당해버린 섀도우 로드를 보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로드가 된 것이 아니건만, 저 정도로 쉽게 당해 버린다면 자신 역시 순식간에 당해 버릴 것이다. 그런 존재를 이용하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꽉... 파삭!

케실리온은 바닥으로 쓰러진 섀도우 로드를 무심히 내려다보며, 발을 크게 굴렸다. 그에 힘없이 머리가 부서진 섀도우 로드의 혈액은 케실리온의 발을 적셨다. 끈적이는 더러운 피에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화상으로 인해 표정은 일그러졌지만, 미소는 미소였다. 마치, 자신의 고향에 온 것처럼 피에 취한 모습이다. 주위는 피의 산이 형성되었다. 인간이 쓰러지며, 마족이 죽어간다.

크아악

푹!!

비명과 찌르고 찌르는 소리와 마법이 터지는 소리는 음악을 연상케 할 정도로 웅장함을 더해갔다. 그때, 케실리온의 이상한 행동이 시작되었다. 지상을 향한 양손은 붉은 혈기가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뱀파이어의 기술을 사용하듯 모든 것이 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기 자신을 죽여... 자신을 취하니... 취한 것은 힘이로다. 그것이 흡혈지로이니... 그것은 마공이니라!”

자멸자생(自滅自生)!

자기 자신을 죽여!

자식자사(自食自死)

자신을 죽여 자신의 몸을 취한다.

혈흡자흡(血吸自吸)

피를 취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다!

케실리온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시를 외우듯 잔잔한 음성은 싸움이 한창 중인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 목소리에 누구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강을 이루고 있던 피는 한 곳으로 몰려들듯 케실리온에게로 향했다.

마치, 피의 주인이 케실리온이라는 듯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의 피는 물론, 마족의 피까지 모조리 하늘로 치솟는다. 공기가 피로 이루어졌다는 듯이 케실리온의 타버린 모공으로 날아들었다.

우우웅!

피는 케실리온을 보호하듯 작은 막을 만들어 내며, 하늘로 치솟았다. 중력 마법을 사용 한 것인지 피는 케실리온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그 피들은 케실리온의 몸속으로 사라지며, 물줄기를 만들어 냈다.

투툭... 쏴아아아!

워낙 많은 피 때문이었던지, 금세 하늘에서는 비라도 뿌려지는 것처럼 거친 비 줄기를 만들어냈다. 그때, 성인의 것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땅으로 떨어졌다.

“난 마룡이다.”

화상으로 뒤덮여 있던 케실리온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검은 흑발과 흑안으로 비치는 마족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건 마룡의 완벽한 부활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굳게 닫혀 있는 입이 벌어졌다. 그곳은 레딕이 있는 곳이었다.

“나의 검을 다오. 누가 누구인지 가르쳐 주마.”

화상으로 인해 조급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여유가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더러운 옷은 여전한지 고약한 냄새를 내뿜고 있었지만, 피부와 손가락은 완벽하게 검을 잡을 수 있는 몸이 된 것이다.

레딕은 차마 검을 건넬 수 없었지만, 검은 살아 있는 것처럼 케실리온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그 신비한 능력에 레딕은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 확실히 알았던 것이다. 누가 더 강자이며, 누가 그 검의 주인인지.

“몰라봐서 미안하다. 나의 검! 마령검이여.”

마룡은 자비롭지 않다.

검은 사용하는 자에 따라 그 이름이 바뀐다. 마검(魔劍)이 될 수도 있으며, 성검(聖劍)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왕이 성검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마검이요. 성자가 마검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성검이다.

때문에 케실리온이 들고 있는 검은 마검인 것이다. 케실리온은 마왕도 성자도 아니었지만, 마룡이었기 때문이다. 검의 주인은 마룡, 케실리온이다.

우우웅!

“마령검(魔靈劍)...”

케실리온의 손에 꽉 쥐어진, 마령검은 기이한 소음을 토해냈다. 마치, 자신의 주인을 찾았다는 기쁨의 소음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령검은 더욱 우렁찬 소리는 내뱉으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검신의 기이할 정도의 문양이 밝은 빛을 토해내며, 케실리온의 몸을 감싸 안은 것이다. 기이할 정도의 빛은 케실리온의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흡혈마공으로 되돌린, 뽀얀 피부는 물론, 검을 가볍게 쥘 수 있을 것만 같은 팔의 근육... 그리고 곧은 손가락을 다 집어 삼키자, 세상은 개벽하듯 커다란 섬광을 토해냈다.

삐이이익

검은 하늘은 다시 한 번 절정을 맞이했다. 검을 주인을 맞이하겠다는 듯이 은빛의 섬광이 아카데미는 물론, 수도의 전역을 뒤흔든 것이다. 하늘을 가로막는 엡솔루트 실드를 통과하며, 더 없이 하늘로 치솟은 섬광은 하나의 점을 만들 때까지 펼쳐졌다.

그 섬광 속, 케실리온은 잦아드는 고통에 신음을 토했다.

“크으으, 이게 무슨...?!”

온몸에서 느껴지는 힘! 꿈틀거리는 기운에 케실리온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에 사위는 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검은 밤하늘이 무색할 정도의 밝기였다. 너무나 찬란했기 때문일까? 케실리온은 눈을 뜰 수 없었다.

그 순간 귓가로 들려오는 묵직한 음성에 케실리온은 눈을 살며시 떴다.

“이계인이여...”

거대한 은빛의 용이었다. 동양의 용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고, 서양의 드래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은빛으로 빛나는 비늘에 비해서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마기에 가까웠다. 마치, 케실리온의 기운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계의 강자여...”

“넌?”

케실리온은 한껏 의문을 담아 외쳤다. 자신이 초라해 보일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드래곤이 눈을 깜박이며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밝은 빛을 내뿜는 두 용안에서는 은은한 살기는 너무나 찬란했다.

“마룡... 실버 드래곤이었으나, 마룡이 되어야 했던 존재.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존재다.”

“그 이하도 아닌 존재가 나의 앞에 있다는 것이 심히 불편하다. 이유가 뭐냐.”

케실리온은 너무나 자신과 닮은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운도 너무나 비슷했으며, 말투 속에서 느껴지는 알지 못할 것도 비슷하게만 느껴졌다. 거기다. 범접하지 못할 웅장함을 가진 녀석이 짜증났다.

누구도, 자신을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없다. 이건 일종의 병과도 같았지만, 케실리온은 누구에게도 질수 없다. 지옥에서 풍운지와의 약속도 있지만, 그것은 자존심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오만하게 눈을 치켜세우는 드래곤을 향해 케실리온은 살기를 내뿜었다.

“너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이야기? 웃기지마라. 환상주제에...!”

“확실히... 난 검에 깃들어 있는 환상에 불과하다.”

마룡이라고 불렸던 녀석은 약간 힘없는 표정으로 케실리온에게 말했다. 위대한 모습과는 다르게 어딘가 약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은빛의 비늘이 꿈틀거리며 내는 위압감이 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난, 네가 부족한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게 할 수 있는 존재.”

실버 드래곤은 그 말을 내뱉고는 점점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00미터는 넘어 보일 듯 한 덩치는 조금씩 줄어들어, 채 2미터도 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 그 찬란하던 은빛은 사라지고, 검은 흑발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만, 두 눈의 은빛은 여전한 것인지, 시린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커다란 두 장의 날개는 검은 망토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띠는 두 드래곤이 대치하고 있는 자수가 그려져 있는 망토였다.

너무나 익숙한 망토다. 케실리온이 조제현이었던 시절, 즉! 1계에서 사용했던 현신(現身 : 육신을 들어낸다.)과 너무나 흡사했다. 마치, 자신의 과거를 보는 눈빛을 보낸 케실리온은 무슨 의미냐는 식으로 실버 드래곤을 주시했다.

“이유를 아는 가? 용신께서 너를 택한 것을...!”

“!!!!”

케실리오냐은 눈을 부릅떴다. 지금까지 너무나 궁금했던 사항이었다. 왜 별볼일 없던 왕따였던 자신을 택했을까? 너무나 잘난 녀석들은 넘쳐나던 곳이었다. 1계에서 자신은 무의미한 존재! 나약하던 심성과 육신을 가지고 있던 자신에게 내려진 축복과도 같은 힘을 용신은 왜 택했을 까!

너무나 궁금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이야기였고, 잊혀 가는 이야기였다. 이유 따윈 이제 상관없었다. 자신은 자신일 뿐, 선택된 존재가 아니다.

“마치, 이유는 필요 없다는 눈빛이군.”

“맞다. 이유 따윈 상관없지, 나는 나 자신을 극복했고, 강하다.”

“확실히... 하지만, 이건 어떨까?”

실버 드래곤은 작게 손을 뻗었다. 그 행동이 무엇인지 몰랐던 케실리온은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갑작스럽게 은빛의 섬광이 자신의 몸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화아악! 퍽...!

“무슨... 짓이지?”

케실리온은 갑작스런 타격감에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작은 충격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은 용신께서 너를 택하신 이유가 된다.”

“뭐?”

“너무나 평범한 너, 지금 상황에서 까지 평온한 감정을 유지하는 너였기에... 신을 믿지 않는... 너 자신 스스로를... 자신 만을 믿기 때문에 선택 된 것이다. 그 여유로움은 어디서 묻어나는 거지?”

케실리온의 몸에서는 한줌의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 조차, 케실리온은 평온한 감정을 나타냈다. 지금껏 쌓아온 기운을 모두 잃었건만, 너무나 평범한 반응이다.

“당연하지! 네놈은 환상이고 지금의 상황도 모두 거짓이다.”

“그래, 거짓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눈, 그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눈을 가지고 있는 너였기에 선택된 것이다.”

그 바보 같은 이유에 선택되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없었다면, 자신은 겁쟁이로 남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보 같이 당하기만 하는 겁쟁이는 이제 질렸기 때문이다.

바보로 남을 바에는 적을 없애는 악인이 낫다. 멍청하게 다른 이의 말만 듣는 다면, 손해 보는 것은 그 자신이다.

“그럼, 신을 믿는 가?”

“푸하하! 신? 존재를 말하는 것인가. 그 신이라는 녀석을 믿는 것인가.”

“둘 다.”

바보 같은 질문에 케실리온은 잠깐 주춤 거렸다. 이것은 약간 난감한 질문이다.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것은 그 용신이라는 녀석 덕분이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을 뿐, 그를 모시고 따르는 믿음은 없었다.

“존재는 믿지만, 그 존재의 가치는 믿지 않는다.”

“역시... 선택 될 만하다. 신의 존재는 부정해서는 안 되지만, 믿음은 부정할 수 있지. 신의 존재는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것! 명심해라. 믿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무슨 개소리냐.”

케실리온은 미칠 노릇이다. 선문답 같은 말 때문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왜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의 신은... 썩었다. 고인 우물과 같다. 너의 믿음에 확신을 가져라. 그를 부정하라. 그리고... 그를 부셔라.”

“웃기는 소리만 하는 군. 시끄럽다. 그만 꺼져!”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이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너를 구해줄 것이다.”

실버 드래곤의 말은 그것으로 끝을 맺었다. 말이 끝나는 순간, 녀석의 몸은 수십 가닥의 섬광으로 변하며, 케실리온의 몸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은빛의 줄기가, 케실리온의 온 몸을 덮쳤기 때문이다.

평범한 환상이 아니었던지, 그 기운은 진실이었다. 그 강대한 기운들은 케실리온의 세포 하나하나를 채워갔다. 부족하게 느껴지던 육체의 힘은 점점 강해져갔다. 마치, 보양식이라도 먹은 것처럼, 왠지 모르게 커다란 힘을 주고 있었다.

“크으윽....”

좀처럼 신음을 흘리지 않을 것 같았던 케실리온은 작은 신음을 토했다. 눈과 몸의 근육들을 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케실리온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믿음... 그것은 그를 강하게 하지만, 도리어 약하게 만들 수 있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녀석의 말이 귀가에 맴돌았다. 너무나 뚜렷한 음성에 떨리는 눈을 좌우로 굴렸지만, 은빛의 섬광만이 자리를 잡고 있을 뿐, 그 어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신은... 그 이유에 너를 선택했다. 바보 같이 당하는 것보다, 먼저 적을 없앨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너를... 이건 용신께서 보내는 작은 선물이다.’

화아악!

케실리온의 몸은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몸의 감각이 끊기듯, 고사리 같은 손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커졌기 때문에 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수백가닥의 섬광이 몸에서 뿜어지며, 금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훗! 태양은 이별을 고하지... 신은... 썩었다.’

저 푸른 지평선 너머로 솟아오르는 태양에 케실리온의 두 눈은 금빛으로 빛냈다. 때마침, 고통은 사라졌기 때문에 하늘로 치솟는 태양을 볼 수 있었다. 간신히 벌어진 입으로 케실리온은 중얼거렸다.

“태양은 이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힘을 상징한다.”

*        *         *

수십 분이 지나도 그칠 것 같지 않았던, 섬광은 새벽의 여명을 끝으로 잦아들었다. 그 밝은 섬광이 하늘을 깨운 것처럼 보였다. 그 찬란한 빛에 인간들과 그림자 들은 멍하니,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케실리온을 쳐다봤다.

“이게... 마룡의 육신인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검은 망토에 수 놓여 있는 은빛의 드래곤이 수 놓여 있었다. 더욱이 10살의 나이건만, 키는 180을 바라 볼 정도로 커져 있었고, 상체로 들어난 근육은 검을 잡기에는 알맞은 크기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양팔에 그려진 드래곤의 형상은 위엄을 상징하고 있었다. 검은 용과 은빛의 용이 한 대 어우러져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두 눈에서 뿜어지는 은은한 기광은 몸을 떨게 만들게 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망토 자락이 한번 펄럭였다. 때마침 새벽의 태양이 케실리온을 비추자, 신비로운 느낌이 더해졌다. 은빛의 눈으로 비치는 금광이 케실리온을 빛나게 하고 있었다.

스윽...

우우웅!

케실리온은 마령검의 검신을 쓰다듬었다. 이미, 사라진 이상한 문양들은 케실리온의 양 팔로 옮겨 간지 오래였다. 그 문양이 드래곤의 문신이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약간 어색한 느낌도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강한 힘을 주고 있었다.

때마침, 검명까지 울리니 케실리온의 기분은 최고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육신까지 한계를 뛰어 넘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지옥에서의 힘의 반절 이상은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있는 것은 검에 익숙해지는 것과 과거의 무위를 찾는 것!

그것을 위해, 녀석들은 죽어야 할 것이다. 오른손에는 검이, 왼손에는 찬란한 은빛의 마법이 솟아올랐다. 너무나 강한 기운에 망토 자락은 주제도 모르고 하늘을 향해 펄럭이고 있었다.

“죽어라. 더러운 녀석아.”

마룡은 자비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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