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269)

“후작! 도대체... 저건!”

상상하지 못할 마나의 유동에 페이린은 급히, 밖으로 뛰어 나왔다. 이건 머리를 짜며 작전을 구상할 때가 아니었다. 이번으로 은빛의 섬광은 두 번이나 일어났다. 그것이 케실리온으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저 역시... 도대체, 무슨 일이.”

“같은 하프 드래곤이었지 않나!”

카논 공작은 답답한 마음에 페이린을 다그쳤지만 페이린 역시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거기다 무시 하지 못할 마나의 향기에 몸을 떨 뿐이다. 뿜어지는 마나의 양을 본다면 이곳을 점거하고 있는 도플갱어들을 뛰어 넘는 양이다.

거기다. 오른손에서는 소드 마스터들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지고, 왼손에서는 강력한 마법이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할 현상이다. 엄연히 마법과 검술은 차이가 많은 공부다.

그것을 동시에 쓰는 것은 고도의 수련을 거친 고수들이라도, 불가능한일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설사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 제약이 따르건만, 저건 모든 법칙의 상식을 뛰어 넘고 있었다.

“아, 아니! 모두 실드 마법을...!”

페이린은 점점 강한 기류를 뿜어내는 케실리온의 마나를 보며, 소리쳤다. 저 마법이 지상으로 떨어진다면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 올 것이다. 그 여파는 구석진 곳에 있는 이 진형까지 몰아 칠 것이 분명했다.

“뭐하고 있나! 모두 실드를...!”

쩌저적...

페이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실드가 생성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란 것인지, 페이린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방어 마법을 펼쳤다.

“불꽃의 마나여, 나 이곳에 서 있노라. 적이 내뿜은 불꽃의 향연을 막아다오. 파이어 배리어(Fire Barrier)”

7서클의 방어 마법이었다. 페이린이 펼쳐 낼 수 있는 최고의 방어 마법이다. 위험한 상황을 인지 한 것인지, 흩어져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은 마법사들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이건 실전을 넘어, 전시에 다 달은 상황이다.

수십 겹은 되어 보이는 실드 마법에 페이린은 약간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이 정도라면 저 마법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안심하고 있는 사이, 케실리온의 시리도록 싸늘한 음성이 아카데미에 울려 퍼졌다.

“죽어라. 더러운 녀석아!”

[아이스 블링크(Ice Blink)!]

케실리온이 사용한 마법은 무려 8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이었다. 아이스 블링크! 헬파이어 마저 얼려버린다는 지옥의 빙 속성의 마법이다. 그런 마법이 도플갱어의 중심가로 떨어지니,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이건, 그림자로 도망치는 것 자체부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림자마저 얼려버리는 무서운 수법에 도플갱어의 대부분은 싸늘한 얼음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녀석들 역시 만만치 않은 것인지, 얼음에는 얼음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아이스 블링크!”

여전히 따라만 하는 도플갱어의 수법에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수십의 도플갱어가 사용하는 아이스 블링크는 장관이었다. 사위에서 뿜어진 아이스 블링크에 케실리온은 검을 느슨하게 잡았다.

지옥에서부터 행해 오던, 특유의 기수식이다. 꿈틀거리는 오른손의 느낌에 미소를 지으며, 기운을 불어 넣었다. 검기를 넘어, 검강으로 변한 기운은 은빛의 검광을 토해냈다.

챠르릉!

청명한 음색이다. 기운에 동조하듯 공명음이 사위를 매웠다. 점점 다가오는 아이스 블링크의 모습에 무릎을 살짝 굽힌 케실리온은 그대로 무수히 많은 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만검 1장 4초 살(殺)!

샥! 슉!

케실리온이 사용하는 1장의 초 오의! 살(殺)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아이스 블링크를 베어 넘겼다. 너무나 순식간이었기 때문에 몇 번을 휘두른 것인지, 아니, 자리에서 움직인 것인지 모를 만큼 빨랐다.

검의 파공음 역시 너무나 미약했다. 휘두르지 않았다는 듯이 처음 그대로의 자세! 하지만, 모든 마법은 무(無)로 돌아갔다. 그만큼 케실리온의 수법은 탁월했다.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수법에 도플갱어들은 주춤 거렸다.

“따라하지 못하는 것인가?”

케실리온의 도발적인 말에 도플갱어는 침묵했다. 저런 빠르기는 따라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수만번을 휘둘러 수련을 거쳐야만 나오는 수법! 이미, 케실리온은 인간의 육체를 뛰어 넘었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이다.

“흐아압!”

캉!

“웃기는 군! 내 검이 그렇게 어설펐나?”

한 도플갱어가 앞으로 나섰다. 분명, 케실리온의 복부를 향해 찔러 넣었던 그 도플갱어였다. 그 조잡하게만 느껴지는 검식에 케실리온은 코웃음을 칠뿐이다. 너무 동작이 컸으며, 느렸다. 만검의 기초는 빠르기로부터 시작해, 빠르기로 끝나는 쾌검 술이 주류를 이룬다.

저런 속도의 검은 누구나 다 막을 정도의 빠르기다.

“웃기지마! 나한테 한번 당했던 녀석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외모였지만, 케실리온의 검은 주저함이 없었다. 일말의 감정이 실리지 않은 검은 무서운 중검이 되었다. 낙에서 유로, 유에서 파로 이어지는 단순한 검식에 도플갱어는 당황한 듯 보였다.

“소수마공(素手魔功)!”

우우웅!

왼손에서 사용된 소수마공은 자연히 케실리온의 마령검으로 향했다. 곧게 펴진 두 손가락은 당연하다는 듯이 마령검의 검신을 한번 스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너무나 차가운 한기가 몰아치는 빙검이 되었다.

“응용이 없군.”

케실리온은 녀석들의 한계를 파악했다. 응용이 없다는 것! 이건 검사로써, 마법사로써도 큰 문제를 일으킨다. 마법의 꽃은 마법의 혼용이다. 그렇다면 검의 꽃은 정해진 초식을 사용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익숙해진 초식을 역으로 바꾸는 것! 응용이 필요한 공부다.

초식에만 얽매이지 않는 케실리온은 소수마공이라는 한정된 무공으로 검의 강화를 꽤한 것이다.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수법에 도플갱어는 당황한 듯 보였다.

“쿠쿠쿡!”

까딱!

케실리온은 웃음을 흘리고는 손가락을 한번 휘저었다. 멍하니 멈춰서 있는 녀석에게 먼저 들어오라는 표시였다. 그에 녀석은 응수하듯 만검의 파로 응수했지만, 케실리온에게는 소용없는 짓이었다.

어떤 동작을 하든, 자신의 수법은 이미 달달 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눈과 귀, 조그마한 동작에까지 다 파악한 케실리온이었다. 검을 잡는 기수식만 보더라도, 어떤 방향으로 찔러 들어오는 방향까지 알 정도다.

캉!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즉시 케실리온은 검에서 손을 뗐다. 이건 자살행위와도 같았지만, 케실리온의 얼굴은 여전히 여유로 넘쳐났다. 손에서 떨어진 검은 살아 있는 뱀처럼 도플갱어의 검을 휘감았다.

촤라랑!

놀랍게도 케실리온의 마령검은 녀석의 검을 따라 회전하며, 도플갱어의 복부를 휘젓고 케실리온의 손으로 돌아왔다. 특별한 회전력을 주지 않았건만, 지금의 상황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주르륵...

도플갱어의 입에서는 작은 선혈이 고여 있었다. 지금이 지옥이었다면, 너무나 쉽게 막혔을 수법이었다. 현경의 경지라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간단한 응용이다. 물론, 현경에 한해서만 이지만, 그 쉬운 수법에 당할 정도의 실력이라면 굳이 검을 잡지 않아도 될지 모를 일이다.

“어검술(馭劍術)의 응용.”

케실리온의 간단한 설명에도 녀석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곳의 언어가 아닌, 3계의 언어였다. 중원 무림이라는 곳에서나 쓰는 언어와 단어다. 케실리온은 돌아온 검을 잡을 틈도 없이 다시 한 번 휘둘렀다.

“네놈이 나의 무공을 사용한 것은 치욕이다.”

슈악!

너무나 쉽게 도플갱어의 목이 떨어졌다. 익숙하다는 듯이 검으로 튄 피를 내공으로 날려버린 케실리온은 주춤 거리며, 인간과 대립하고 있는 그림자들을 향해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이미, 레딕은 얼이 빠질 대로 빠져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게다가, 이상한 점은 케실리온의 근처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점이다. 케실리온이 움직이는 곳은 여지없이 시체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서 마법을 날리는 녀석에게는 조소어린 표정을 지으며, 소수신장을 날려줄 뿐이었다. 거리와 상관없는 모습이었다. 누구도 케실리온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다.

저벅... 저벅!

일보일살(一步一殺)이라고 했던가? 케실리온의 걸음에 맞추어 그림자들은 하나 둘씩 쓰러져 갔다. 이대로 인간의 진형까지 간다면 녀석들은 전멸을 금치 못할 것이다.

“죽어!!”

“어설퍼...! 아이스 블로우(Ice Below)”

쩌저적.. 퍽!!

케실리온은 커다란 기합을 터뜨리며 그림자에서 솟아난 녀석의 얼굴을 부여잡고는 마법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얼어 버리며, 터지는 녀석이었다. 너무 쉬운 수법에 무너지는 그림자를 보며, 케실리온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멀리서 언뜻 보이는 페이린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논 공작 까지 보였다. 선봉에 서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우직해 보였다.

“신문(訊問)은 내가 한다.”

*         *         *

“8, 8서클 마법!”

페이린은 진정 놀랐다는 표정으로 앞을 쳐다봤다. 케실리온이 8서클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검까지 소드 마스터를 뛰어 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이스 블링크가 터지는 순간, 페이린은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출렁...

너무나 강력한 충격파에 실드 마법이 하나 둘씩 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가, 도플갱어들 까지 케실리온을 따라하고 있으니, 위험한 것은 당연했다. 실드 마법을 몇 번을 더 중첩 시키고 나서야 안심은 했지만, 아직 두고 볼 일이다.

“대 마법사님! 8서클...”

“알고 있다. 어떻게 케실리온이!”

한 마법사의 모습에 페이린은 알고 있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카논 공작 역시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검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소드 마스터를 초월하고 있으리라.

“공작! 그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닙니다.”

페이린의 음성에 정신을 차린 카논 공작은 뒤이어 몰아치는 마족들의 역습에 검을 뽑아 들었지만, 마족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멀리서 도플갱어에게 검을 휘두르는 케실리온에게 눈이 갔던 것이다.

단 두 번의 공방이었을 까? 갑자기 도플갱어의 몸이 베어졌다. 놀라운 수법이었다.

“헉! 프, 플라잉 소드!”

분명 그랜드 소드 마스터만이 사용 할 수 있다는 플라잉 소드 였다. 카논 공작으로써는 너무나 부러운 공격 방법이었다. 의지로 검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기사들의 꿈과 같은 경지다.

플라잉 소드의 다음 경지이자, 마지막 경지는 마인드 소드,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검술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설로만 전해질뿐, 누구도 오르지 못한 소드 엠페러의 경지다. 그러나 지금 가장 그 무위에 가까운 존재가 나타났다는 생각에 카논 공작은 어린 소년처럼 두근거림을 느꼈다.

지금 케실리온의 잔악한 손속에 놀랄 틈 따위는 없었다. 제국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탄생한 것이다. 

“라일경! 보았나?”

캉!

“공작 각하! 위험합니다. 전투에 집중을...”

카논 공작의 심복인 라일은 공작에게 떨어지는 검을 간신이 받아냈다. 라일 역시 못 본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전투가 중요한 때였다. 전투 중에 한눈을 파는 것은 죽음과 직결된다.

“내가 경솔했군. 빨리 끝내고 이야기 함세!”

카논 공작은 그 말을 끝으로 무섭게 전투에 임했다. 물론, 마나를 아끼기 위해 오러 블레이드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약간 장기전으로 갈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케실리온은 점점 페이린과 카논 공작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룡은 자비롭지 않다.

[다크 캐논(Dark Cannon)]

쿠오오오!

폭발! 케실리온의 기운이 폭사한 소리였다. 한껏 모으고 모아져 있던 검은 섬광이 작렬했다. 케실리온의 오른손에 거머쥔 마령검을 휘둘렀고, 왼손에서는 차가운 어둠이 격발되었다. 어둠이 비명과 절규를 토하듯 대기는 찢어질 듯 한 비명을 내질렀다.

일직선상에 있던 도플갱어를 집어 삼키고도 모자라, 대지를 질타하며 소멸시켜버렸다. 멈칫 거리던 도플갱어는 여지없이 처단의 검이 내려졌다. 순식간에 도륙당한 다섯의 도플갱어는 영문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

“어, 어떻게!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싸움이...”

후오오오!

마력의 후폭 때문이었을 까? 녀석은 몸이 찌부러지듯 대지와 겹쳐졌다. 너무나 강력한 기운의 폭압적인 기세에 녀석은 짓눌려 버린 것이다. 그 살인적인 폭압에 인간들은 물론, 도플갱어 까지 바닥을 나뒹굴게 했다.

피아구분 없는 무차별적인 살육! 누가 케실리온을 막을 수 있을 까! 느릿한 걸음과는 다르게, 무한의 위압감을 내뿜으며 다가오는 케실리온을 목격한 인간 병사가 탄성과 경악에 젖어 머뭇머뭇 거리며 말을 꺼냈다.

그 소리는 누구나 들을 정도의 크기였다. 병장기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있었지만, 지목된 케실리온의 무위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했다.

“어... 어어... 저, 저게 바로 마룡....”

심히 떨리는 병사의 목소리에 주위는 주눅이 들은 것인지 멈칫 거리며 케실리온과 거리를 벌렸다. 누구도 그의 근처에 있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 병사의 말 때문이었을 까. 지금 아카데미라는 틀에 있는 작은 전쟁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간 병사와 도플갱어들은 케실리온의 근처로 가지 않으려 힘쓰고 있었다. 혹여, 몸싸움에 밀려 그 근처에 간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신조차 온전할 수 없는 그 잔악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음, 맞다. 마룡의 육신.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쓸 만하군.”

주위에 널려 있는 시신을 밟아 넘기며 앞만 보고 전진하는 케실리온은 전장 속의 악마였다. 섬세하게 떨리는 오른손에서는 붉은 피가 튀어 이미 붉은 혈기가 뛰고 있었다. 이 해하지 못할 바닥의 그림자... 그 그림자를 통해 대지에 뿌려진 붉은 피가 케실리온에게로 향했다.

마치, 있어야 할 곳은 케실리온의 그림자라는 듯이 검은 물결이 출렁이며, 피를 끌어 들였다. 거기다, 눈에서 뿜어지는 안광에서는 정신을 빼앗을 듯 한 흡력(吸力)이 뿜어지고 있었다.

거부하지 못할 눈빛에 유혹되듯, 도플갱어들은 불꽃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여지없이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유혹과도 같았다.

“캬아아악!”

“놈은 한 놈이다. 죽여라!”

“크라라!”

더 이상 머뭇거린다면 모두 당할 것을 두려워한 듯 도플갱어의 대장은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은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누구도 그 명령을 무시 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북쪽의 마왕과 계약을 맺었는가. 다, 그림자의 존속 때문이다. 이런 황당한 녀석에게 전멸한다면 계약을 맺은 이유가 사라진다. 이젠, 전술 따위는 없었다. 오직 육탄 공격! 머리수로 밀어붙이는 것!

녀석도 생명체라는 것은 변함없기 때문에 지치는 것은 당연하다.

쉬이익!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것은 검은 물결이 이는 것과 같았다. 사위에서 나타는 하이드의 기술로 케실리온은 은빛의 눈을 한차례 떨어야 했다. 케실리온의 시작은 보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마영보법(魔影步法)!

어둠의 그림자라 불리는 보법이다. 동류의 수법을 사용하는 그림자에게는 불합리한 수법이지만, 케실리온에게는 상관없다는 모습이다. 그림자를 통해 나타나는 녀석들을 피하는 방법은 그림자를 이용해 피하는 방법!

눈에는 눈! 그림자에는 그림자다. 케실리온은 은밀하게 움직였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동으로 움직이듯 현란했다. 이정도의 보법이라면 발이라도 꼬여야 겠지만, 무리 없이 펼쳐내는 케실리온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만검 1장 3초 유(流)!

케실리온은 검법 중, 가장 부드럽고 연계에 능한 만검의 유를 펼쳤다. 이렇게 떼로 덤비는 녀석들에게는 만검의 유만 한 검초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검초도 뛰어났지만, 유독 유라는 초식은 다수를 상대할 때 능했다. 특이, 근접과 육탄 같은 통상공격을 막아 내는 것에는 탁월한 검초다.

버들이 흔들리듯, 케실리온의 검은 나선을 그리며 도플갱어를 향해 휘둘렀다. 역시 케실리온의 속성은 빙(氷)과 마(魔)의 속성.

푹! 쩌적.

“크아아..!”

단 일수에 도플갱어의 육탄 공격은 무(無)로 돌아갔다. 벌써, 녀석들의 반절이상이 차가운 대지에 몸을 뉘었다. 그 더러운 피를 통해 뿜어지는 진한 혈향에 케실리온은 흥분 한 것인지, 거칠게 검을 움켜쥐며 휘두르기에 바빴다.

하지만,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이 검초 하나하나에 기운이 실려 있었다. 워낙 짧은 순간 펼쳐지는 기운이었기 때문에 내공의 소비는 극히 적었다. 그렇다고 도플갱어의 기세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녀석들만의 기술인 하이드와 섀도우 웨폰을 통해 뿜어진 기술로 케실리온은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마법적인 요소와 물리적인 공격을 통상적으로 공격하는 녀석의 기술을 모두 막아 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다 피해낼 필요는 없었다. 사혈만 피해낸다면, 죽음까지 이르지 않더라고, 충분히 끝낼 수 있다. 다치는 만큼 빠른 처리가 가능한 것이다.

“그만! 멈춰라. 네놈...”

케실리온은 저항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지,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려는 도플갱어의 대장이라는 녀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전투 중이라고 한들, 주위의 적에 대한 기척을 파악하는 것을 늦추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제 삼의 눈! 마나, 내공을 통해 녀석을 감시한 것이다. 특히 기운이 강한 녀석일수록, 이 방법은 잘 먹혀든다.

“어딜 가는 거지?”

“크으윽... 비켜라!”

케실리온이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부하들을 쳐 죽이는 모습을 흘깃 쳐다보고는 주눅이 들었을 것이다. 이대로 부하들과 합류해 케실리온을 치는 것보다.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녀석은 판단 미스를 저질렀다. 후일은 없었다. 케실리온에게 걸린 이상, 죽음과 멸족을 맛봐야 끝이 날 싸움이다. 이미, 피해는 상상 초월한 것인지, 도플갱어의 숫자는 현저히 줄어있었다.

거기다, 섀도우들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져 있었다. 이대로 몇 분만 더 싸움을 지속한다면 멸족은 당연한 수순이다. 케실리온은 몸속의 투기를 끌어 올렸다. 지금까지의 기운은 장난이었다는 듯이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쿠오오오!

대지의 먼지가 하늘로 피워 오를 정도의 거대한 기운이 케실리온의 몸에서 뿜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보일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었다. 심지어, 평범한 범인이 보더라도 그 기류가 보일 정도였으니, 얼마나 강력한 기운인지 실감할 것이다.

마령지기(魔靈持氣)

이것은 심법의 수련이 높아질수록, 뿜어내는 투기와 살기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기운의 응용기다. 살기를 통해 상대를 죽일 수도 있는 것처럼, 살기를 조절하며, 기운을 뿜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마령지기! 

본래의 이 수법은 심법의 극성에 이르렀을 때나 사용이 가능한 기술이었지만, 케실리온의 능력은 상상이상이다. 깨달음의 끝을 눈앞에 둔 자의 여유라고 할까? 케실리온에게는 이 방법은 너무나 쉬운 기술에 속했던 것이다.

도리어 너무 쉬운 것이 지금은 어려울 뿐이다. 마령지기... 의지로 이루어지는 기술! 누구나 사용 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기술이다. 쉬이 생각할 만한 마나의 기파가 몰아치며, 주위의 어떤 존재보다 강한 기운을 내뿜었다. 

“날 깔본 대가를 치러야겠지?”

“......”

도플갱어의 대장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건드렸는지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너무나 상위의 존재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를 건드린, 그림자 일족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이건, 너무나 큰 장벽과도 같은 느낌이다.

마냥, 눈을 뜬 것 뿐인데도 기세가 틀려지는 존재라니. 진심으로 상대하겠다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이곳의 인간은 물론 그림자족의 멸족은 당연하다. 다만, 약간의 힘 조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살육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전에... 내가 묻는 말에만 병신처럼 대답이나 해라.”

검을 고쳐 쥔 케실리온은 검신을 한번 쓰다듬고는 입을 벌렸다. 너무나 시린 목소리였기 때문에 도플갱어의 대장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왜... 날 습격 한 거지? 대답해라.”

“그것은... 벨즈비트님께서 원하신 일! 네놈을 없애는 것이다!”

번쩍!

도플갱어 대장은 마나가 담긴 기운을 케실리온에게 던졌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직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검은 연기가 케실리온을 중심으로 피워 올랐다. 너무나 뜨거운 열기였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녹아 내렸으리라 생각했다.

이건, 감옥에 갇혀 있었던 열기보다 더했다. 그 열기에 주위의 인간들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도플갱어는 그림자 속에 숨는 것으로 열기를 식혔다. 하지만, 정면을 허용한 케실리온은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짙은 검은 연기에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것처럼 케실리온을 뒤덮었다. 육체가 타며 나는 연기 일 것이다. 때마침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점점 낮으로 다가오는 새벽이었기 때문인지 싸늘한 바람이었다.

“휘유... 호신강기 덕분에 살았군. 위험했어.”

케실리온은 약간 놀랐다는 듯이 몸을 한번 떨었다. 하지만, 그것은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상대를 무시한다는 듯이 한 번 더 해보라는 식으로 팔을 좌우로 벌렸다. 그리고는 자신감이 넘치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이, 이이...”

“한 번 더!!! 병신.”

케실리온은 입을 뻥긋 거리는 녀석에게로 질주했다. 녀석이 그렇게 나온다면 신사적으로 머리를 자를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녀석의 모든 것을...

“없앤다!”

케실리온의 신형은 탄환처럼 튕겨져 나갔다. 궁신탄영! 상승의 신법이다. 하지만, 이 수법은 2계에서는 신기에 속하는 것인지 다들 눈만 껌뻑이며 케실리온의 신형을 잡기에 바빴다. 찰나의 거리를 좁힌 다음 도플갱어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 하이드!”

그 경이적인 스피드에 놀란 도플갱어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반사적으로 하이드를 사용했다. 하지만,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케실리온은 그림자를 향해 마령검을 꽂아 넣었다.

만검 1장 2초 파(破)!

너무나 익숙하게 펼쳐내는 파로 인해, 하이드로 몸을 숨긴 도플갱어는 피곤죽이 되어 버렸다. 한쪽 팔이 너덜거리며, 다른 곳에서 몸이 나타난 것이다. 하이드로 숨은 것은 오판중의 오판이다.

물론, 그 오판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고통만 길어 질뿐! 변하는 것은 없었다. 섬광의 폭풍처럼 휘몰아쳐 들어간 케실리온은 검을 역으로 쥐었다.

만검의 살이다! 너무나 파격적인 검술에 소드 마스터인 카논 공작과 라일은 눈을 크게 떴다. 거기다. 크롬 공작 역시 몸을 떨 정도의 엄청난 살기였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강한 살기!

촤촤촤촥!

검로의 은빛 검광이 섬광을 만들어냈다. 점은 선으로, 선은 면으로 면은 섬광을 만들어냈다. 정확히 일격필상의 급소들만 노리는 검광은 진법과 같았다.

다만, 생문(生門)은 없고 오로지 사문(死門) 즉! 죽음만이 기다리는 진법이 펼쳐진 것이다. 그 검광 속에 갇혀 있는 녀석은 빨리 죽고 싶은 심정 일 것이다. 너무나 빠른 속도의 쾌검으로 인해, 좁은 골방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 정로도 답답한 곳!

하지만, 갇혀 있는 내내 고통이 동반하는 팔 지옥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크아아악!”

도플갱어의 몸으로 들어난 살들은 케실리온의 검에 의해 난자되어 갔다. 간간히 가린 급소들을 피해 틈 사이로 드러난 부분이 처참 할 정도로 난자되기 시작하자, 녀석은 여지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너무나 끔찍한 검술에 모두들 치를 떠는 것 같았다. 같은 일족인 그림자 족들은 도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도플갱어의 대장은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지, 정면인 검을 향해 최후의 마법을 시전 했다. 그러나 부질없는 마법이다.

“부질없는 짓! 죽어라.”

[소수마공, 아이스 캐논(Ice Cannon)]

케실리온의 의지와 함께 펼쳐진 도플갱어의 플라즈마 볼(Plazma Ball)은 아이스 캐논에 의해 묻혀버렸다. 그 어느때 보다 굳게 바닥을 디딘, 케실리온의 발은 하반신을 타고, 하단전으로,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 중단전에서 페덜의 돌이 있는 목까지 치고 올라갔다.

쩌저적!

그리고 뿜어지는 의지는 눈앞까지 도달한 플라즈마 볼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뿜어지는 은빛의 섬광은 플라즈마 볼을 얼리고는 그대로 도플갱어를 향해 날아갔다. 6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이 5서클에 패했다.

이건 실력 차를 넘어 마나의 차이를 의미했다. 코앞까지 들이 닥친 마법을 막기 위해서는 엄청난 마력이 필요하다. 거기다. 그런 마법을 얼려버리고 상대까지 얼린다는 것은 대단한 정신력과 마나의 압도! 케실리온은 그것을 해낸 것이다.

“커어억!”

녀석은 점점 얼어 붙어 가는 하체를 보며, 절망의 비명을 내질렀다. 주먹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으리라 만치, 쩌렁쩌렁한 비명과 굉음이 울려퍼진다. 그리고 동시에 도플갱어의 하체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삭...!

“이걸로 끝이 아니지!”

아니다. 이것이 끝이라면 케실리온이 아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고통보다는 죽음을 택하게 만들리라!

[데스 로얼(Death Roar)]

케실리온이 사용한 마법은 죽음 소리! 사신의 음성을 들려주는 조잡한 마법이지만,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상대를 미치게 하거나, 자살을 유도하는 위험한 마법이었다.

“데, 데스 로얼!”

페이린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흑마법이었다. 비록 4서클이었지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마법이었다. 그 마법의 시전에 페이린은 급히 주위에 사일런스 마법을 펼쳤다.

삐이이익!

“늦었다! 모두 귀를 막아!”

페이린의 음성은 다급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듯이 주위에서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들이 속출했다. 소음에서 굉음으로 굉음에서 죽음의 소리로 바뀌고 있었다. 

“크아아악!”

“제, 제발!”

하늘로 치솟는 수십 가닥의 혈선! 너무나 고통스러워 스스로의 머리를 바닥에 찍어 자살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정신력과 마법에 대한 지식만 있다면 간단하게 파훼할 마법이었지만, 녀석들은 마법의 지식이 전무 했다.

“나를... 건드리고 살아남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피 떡으로 변해 버린 도플갱어 대장을 내려다 본 케실리온은 사일런스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페이린에게 다가갔다. 바로 코앞이었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그녀의 표정하나하나를 읽을 수 있었다.

“오랜만이군. 이런 모습을 하고서 본 것은 처음인가?”

마룡은 자비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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