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4화 (174/269)

다음날, 목적이 서로 다른 일행(?)들은 분주한 아침을 맞이했다. 케실리온의 일행들은 딱히 음식을 섭취할 필요성은 없었기에 제각기 아침에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알파와 레딕은 아침 햇살을 피해 그늘에 앉아 있었다.

뱀파이어라 그런지, 태양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케실리온은 다른 의미에서 그늘에 앉아 있었다. 수련을 하자니, 주위의 환경이 따라 주지 않았고, 육체적인 수련을 하자니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육체적인 한계를 뛰어 넘은 케실리온이었기에 딱히 수련의 필요성을 없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근육이완은 긴장을 부추기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케실리온이다.

후웁... 후우...

혹여 갑작스럽게 전투가 벌어진다면, 둔한 몸을 이끌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몸속의 내공을 이용해 근육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이건 일종의 내가기공에 속하는 내공 수련으로 봐도 되겠지만, 케실리온만의 특유 수련법이다.

저벅...

케실리온은 천천히 자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는 용병의 기척에 살며시 눈을 떴다. 2미터가 넘는 키를 가진 녀석이었다. 그 덩치에 어울리게 검도 무거운 바스타드 소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등 뒤에 걸린 무거운 바스타드를 아무렇지 않게 착용하고 걷는 모습을 보던 케실리온은 호의가 담긴 음성에 사념을 접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아침은 안 드십니까? 하하! 평민들의 식사라 꺼려 지실지도 모르지만...”

“아침...?”

“예, 스프와 간단하게 요깃거리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준비했는데.”

케실리온은 약간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느낀 생각이지만, 용병들의 행동이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해져 있었다. 용병들은 자기들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주의자들이다. 물론, 전투가 벌어진다면 협동심하나 만큼은 끝내주지만, 평소 때는 정 딴판이라는 말이다.

허나, 저 흑색의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용병들은 남까지 소소하게 챙기는 것을 보니,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생각이 케실리온이 종합해 경론을 내린 생각이었다. 저 친절함 속에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욕구가 숨어 있을 것이다.

이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행동이다. 그것을 잘 아는 케실리온이었기에 긴 생각을 하지 않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하도록 하지. 육체를 움직이는 검사에게는 아침은 독이 된다.”

정중하고 조리 있는 말에 케실리온은 나름대로 만족했다. 사실, 이 행동이 알파의 단순한 말 때문이었다면, 레딕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심히 궁금했다. 그러나 용병의 말에 케실리온은 얼굴을 굳혔다.

“하하하! 힘을 쓰는 자라면 당연히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지요! 귀족나리께서는 뭘 잘못아시는 가 봅니다. 그려.”

용병의 당돌한 말에 케실리온은 낯빛이 흑 빛으로 변했다. 누가 뭐래도 케실리온의 말은 백번 지당한 말이었다. 2계에서는 무식하게 육체를 수련하는 것으로 강해지겠지만, 케실리온이 경험한 곳에서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육체 보다는 내면 즉, 내공으로 몸을 강하게 만드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때문에 아침은 독과 같은 것이다. 음식은 모두 독특하고 탁한 기운을 내뿜는 데,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탄수화물이라느니, 단백질이라느니 하는 것들이다. 

그 탁한 기운은 육체적인 성장을 야기 시키지만, 내공의 성장은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간혹 보지 않았던가? 절간의 스님들이 금식을 하는 것을, 그것은 단순히 금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안녕과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 금식을 하는 것이지, 좋아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아침 정도를 굶는 것은 몸의 기운을 원활하게 만드는 상충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2계의 족속들은 엉뚱한 궤변을 말하고 있었기에 케실리온은 어이없음과 자신의 무지함을 탓했다. 저런 바보 같은 2계의 족속에게 몇 백번 설명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도련님, 그러지 마시고 아침 식사를 하시지요.”

알파였다. 인간들의 앞에서는 마스터가 아닌,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것이 인간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나, 뭐라나. 아무튼 케실리온은 어떤 호칭으로 불리든 별 상관 하지 않았다.

알파는 어떻게 본다면, 케실리온보다 인간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정도로, 2계의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레딕도 포함되고 있었다. 워낙 오랫동안 2계에 살아서 그런지 모든 일을 쉽게 풀어가고 있었다.

“역시 난 됐다. 너희들이나 식사를 하도록.”

케실리온은 재촉하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알파와 레딕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그 둘도 별로 식사는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지, 여전히 나무 그늘아래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케실리온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용병에게 말했다.

“후후.. 역시 우리 일행은 됐네.”

“역시, 평민들의 식사라 그런지 꺼려 지시는 모양이군요.”

“딱히 그런 생각은 아니지만, 부정은 안하지.”

케실리온은 끈덕지게 친절을 베푸는 용병 한스를 향해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한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시끄럽게 식사를 하고 있는 일행들로 돌아갔다. 어딘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것 같다는 것을 빼면, 모든 것이 즐거운 여행으로 보여 졌다.

다만, 저 다섯의 용병들이 가지고 있는 불손한 마음가짐만 뺀다면, 케실리온은 정말로 즐거운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여행은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피를 부르는 여행일지라도 케실리온은 즐기고 즐겁게 행동했다.

싱긋...

케실리온은 옅은 표정을 지었다. 일이 어떻게 되었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설레였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언제나 여행이라는 것은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도련님, 즐거워 보이십니다.”

“그렇게 보이나? 알파. 여행이란 참 즐거운 일이지. 그것이 힘들든, 위험하든 말이야.”

옆에서 알파와 케실리온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레딕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둘의 모습을 보면, 주군과 수하의 관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한 선이 그어져 있는 것 같이 쉽사리 그 선을 허용하지 않는 케실리온이다.

“또 이해하지 못할 말만 하고 있군.”

“레딕, 언젠가 이해 할 것이다. 오랜 세월을 생각한다면 말이야.”

케실리온의 오묘한 듯한 말에 레딕은 얼굴을 구겼다. 속으로는 이렇게 중얼 거렸다. ‘내가 네 녀석 보다는 배로 살았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케실리온의 진실된 나이와 경험을 알게 된다면 경악 할 것이다.

1계에서 약 20년, 지옥에서 900년... 그리고 현재의 2계에서 10년! 그러나 그 경험은 계속 쌓일 것이다. 살아있고, 움직이고 눈이 있다면 그 경험은 이루어 말할 수 없는 무력이 된다.

“슬슬 가자고, 저 용병들은 느긋하게 오겠지.”

“알겠습니다.”

케실리온은 더 이상 이런 곳에서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어떤 신기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서 움직이지 못한다면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알파와 레딕을 재촉했다.

“짜증나, 언제부터 네 녀석의 명령을 들어야.. 읏!”

꽈악...

“닥쳐라. 레딕. 이건 경고다. 날 화나게 만들지 마라.”

투덜거리는 레딕의 목을 움켜쥔 케실리온은 싸늘하게 흑안을 빛냈다. 검은 빛으로 가려진 은빛의 섬광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레딕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케실리온은 예의 무표정함을 고수하며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뒤로, 레딕과 알파는 어딘가 힘없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짙은 살기다. 이미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졌지만, 도무지 익숙해 질수 없는 살기 같았다. 그렇게 아침의 작은 해프닝에 케실리온의 일행은 분위기는 약간 갈아 앉았다. 이 길고 험한 여행에 이런 분위기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케실리온은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         *         *

등을 돌리고 돌아가는 한스의 심기는 가히 짜증의 극에 달해 있었다. 저런 건방진 꼬마 녀석은 처음이리라. 자신들을 보면, 겁부터 먹고 보는데 저 꼬마는 너무나 당당하다. 거기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한 눈동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눈동자는 오만하고 건방짐, 거기다 자신들을 아래로 취급하는 얼굴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딘가 망가트려 놓아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여! 한스, 갔던 일은 잘 풀렸나?”

먼서 식사를 하고 있던 빈센트였다. 전투에서 가장 선봉에 서는 자신과 같은 파트너였다. 가장 마음에 드는 녀석이기도 했기에 구겨져 있던 표정을 약간 풀었다. 저런 꼬마 놈을 상대하는 것보다, 역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편했다.

“건방지더군. 저 꼬마.”

“쿠쿡, 귀족이 다 그렇지. 세상이 자기 건줄 알고 있다니까.”

빈센트는 그 마음 잘 알겠다는 듯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주위의 동료들은 간단하게 식사를 끝마쳤던지 배를 퉁퉁 치고는 배부르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꺼억... 그래, 표정을 보아하니, 완벽하게 거절당한 거 같군.”

퉷!

잘 먹었다는 듯이 트럼을 한번 토해낸, 빈센트는 주저앉아 있던 몸을 일으키며, 바닥에 거칠게 침을 탁 뱉었다. 누런 가래침이었다. 그 침을 내려다보던, 한스는 더욱 짜증이 확 솟구치는 것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스프를 거칠게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퍽!

바닥으로 떨어진 스프는 사방으로 그 파편이 날렸지만, 그 어떤 동료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 한스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이미, 식사는 물 건너 간 것 같았다.

“반드시, 저놈은 내 앞에 무릎을 꿇리고 싹싹 빌게 만들어 주지.”

“그래,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마음 쓸 필요 없어. 자기가 잘난 거라곤 검술뿐이잖아?”

한스는 빈센트의 위로 섞인 말에 약간 마음을 풀었다. 비로소 자신이 아침 식사를 내팽겨 쳤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맛을 다셨지만, 이미 지나간 마차나 다름없었다. 그때, 멀리서 목표물이 떠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이! 한스. 저기 표적이 떠난다. 우리도 서둘러...”

“됐다. 라퓬. 느긋하게 가더라도 저들의 걸음을 따라 잡을 수 있어.”

휙..

한스는 라퓬의 다급한 말에 잘 묶여 있는 말들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하루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했으니, 저들의 걸음쯤 단번에 쫒아 갈수 있다. 그 사실에 일행들은 알겠다는 듯이 편안하게 자리에 앉았다. 아침부터 힘 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퓬, 룩, 릭! 잘 들어 둬라. 우린 노예상인이다. 누구 위에 군림하는 것은 우리 노예상이라는 것을! 저딴 귀족 놈이 아니다. 알겠어?”

“아, 알았어.”

“저놈들을 잡는 다면, 흑발 녀석부터 교육시켜야겠어. 반드시!”

한스를 제외한 용병들은 떨떠름하게 응답했지만, 한스는 의지가 잔뜩 담긴 어조에 힘이 서려있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한스는 이 파티의 대장이다. 대장의 말은 모든 것이 옳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10분후.. 저들을 따라간다. 불만은 없지?”

한스는 여행용 냄비에 남아 있는 묽은 스프를 떠먹으며 말했다. 그 말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기에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며 스프를 먹었다. 그의 눈빛은 독기와 의지가 잔뜩 담겨 있었다. 심연의 천라지망처럼 누구도 빠져 나가지 못할 눈빛이었다.

목적지, 디바인 내추럴(Divine Nature)

란델 제국은 미스텔이라고 불리는 수도를 중심으로 귀족들이 분포해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선 국경지대에 붙어 있는 동쪽의 코리안 공작령, 그리고 그 반대쪽인 서쪽의 카르멘 공작는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요지라고 볼 수 있다.

혹여, 험준한 엡솔루트 가든을 넘어 침범할지 모르는 테라스 제국을 막는 곳이 코리안 공작가였고, 두 왕국인 라디안과 하멜을 견제하는 공작령이 카르멘 공작가다. 그만큼 두 가문은 무력에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제국의 대표적인 무인 가문이다.

물론, 남쪽의 류디릭 공작가문 역시 무가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척박하다고 알려진 남쪽의 땅을 가장 현실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류디릭 가문이다. 물론, 아카데미의 교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카이룬 공작이지만, 남쪽의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케실리온이 향하고 있는 곳은 지저스의 중앙 신전! 그곳은 왕국들의 국경지대라고 알려진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쪽의 카르멘 공작령을 지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저 멀리 크롬 공작이 다스리는 카르멘 공작령이 보이는 군”

레딕이 말하지 않더라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성벽과 분주하게 성문을 오고가는 무리가 보였다. 대륙의 모든 성이 그리하듯 카르멘의 성은 주위에는 해자(垓字)라는 것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 해자라는 것은 성 주위를 둘러 물웅덩이를 파 놓은 것이다. 성이라는 것이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전쟁 지대였기 때문에 이정도의 방어수단을 갖춰 놓아야 한다.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전쟁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냉전(冷戰) 상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저, 제국의 커다란 힘에 의해 싸움이 멈췄을 뿐 언제든지 침략전쟁은 벌어 질것이 자명한 일이다.

“알파야 대륙을 여행해봤을 테니, 신분을 증명하는 것은 있을 테지만, 케실리온은 노예의 신분에서 갓 벗어난 상태이니, 신분을 증명할 것이...”

레딕의 말에 케실리온은 약간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2계에서 하는 여행에서 이런 것 까지 필요하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이다. 확실히 레딕의 말처럼 신분을 증명할 것이 없었다.

있다고 해봐야, 란델 아카데미의 엠블럼 정도겠지만, 그것으로 신분을 증명할 것이 되지 못했다. 신분증명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사이, 케실리온은 성문 앞까지 도달했다. 공작의 성답게 문지기들은 혹여 타국에서 침입하는 자를 물색하기 위해 엄중히 감시하고 있었다.

거기다, 상인들로 보이는 긴 행렬을 보건데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길게 늘어진 행렬의 끝에 자리를 잡은 케실리온은 무표정하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이, 거기! 당신 차례요.”

상념에 젖어 있던 케실리온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 크게 외치는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든 케실리온은 천천히 성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칠 것 없다는 듯이 차분히 걸어간 케실리온은 문지기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엄청난 시선에 떨떠름해진 경비병은 떨리는 목소리로 케실리온에게 물었다.

“구.. 국적과 신분즈.. 증명서를 보여주...윽.”

케실리온의 시선 때문이었을 까. 문을 지키던 경비병은 끝내 말을 다 잊지 못했다. 그 시린 눈빛을 견뎌낼 존재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케실리온이 손속을 두었기에 망정이지, 평범한 문지기가 견딜만한 기운이 아니었다.

잔뜩 긴장한 문지기는 케실리온의 입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겁이 많은 듯 보였다.

“란델 제국이다. 신분 증명은... 일행이 알아서 할 것이다.”

쿵!

지축이 울릴 듯 한 굉장한 존재감에 경비병의 마음은 땅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간담이 서늘해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힘겹거늘,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차마 두발로 서 있지 못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박력에 자신의 본분을 잊은 것인지 케실리온을 가로막았던 다른 경비대원들은 옆으로 비껴났다.

“드, 들어가시지요.”

“....즐거운 여행.”

기타 잡스러운 소리에 케실리온은 얼굴을 구기고는 카르멘 공작령에 입성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딕은 그러면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신분증명서를 경비병에게 보이고는 케실리온을 뒤쫓았다.

무사히 해자를 넘어온 케실리온과 일행들은 말없이 성의 중심가로 걸어갔다. 한참이 지나도 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케실리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필요하다....신분증명서.”

“예? 도련님 다시 한 번...”

“두 번 말하는 것은 싫어한다. 알파. 신분증명서를 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알파는 케실리온의 말에 머리를 주억거렸다. 앞에 있는 존재는 위대하고, 자신의 주인인 마스터다. 그 누구의 말을 거스를까! 그 존재의 말은 절대적이었기에 알파는 기억하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질끈...

하지만, 도무지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슬슬 노기를 띠려 하던 케실리온은 레딕의 말에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려놓았다.

“용병! 용병이 가장 쉬운 신분증명서다. 국가와는 상관없이 어디든 출입가능. 단, 국가의 중요기관에 해당하는 곳은 출입불가.”

“그 방법 말고는....?”

케실리온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레딕은 머리를 좌우로 저었다. 용병을 제외하고는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위해서는 용병만큼 가장 좋은 신분증명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기분은 좋지 못했지만 이 귀찮은 신분증명이라는 것에 더 기분이 나빠진 케실리온이다. 가장 편한 방법이 하필이면 용병이 무엇이란 말인가. 케실리온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용병이라는 것이 남에게 굽신거리며 일하는 천박한 직업이었다.

물론, 그 직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케실리온의 성격상 누군가에게 굽실거리는 일은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분증명서 없이 여행하는 일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케실리온에게는 선택할만한 답안이 없었다.

“용병이 되도록 하지.”

케실리온의 짤막한 대답에 레딕과 알파는 작은 한숨을 터뜨렸다. 한 사람을, 아니 마룡을 움직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는 것이다. 제국의 황제도 이보다 쉽게 움직일 것이다. 

오직,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케실리온이다 보니, 마음 내키지 않다면 무조건 하지 않는 요지부동의 성격을 소유한 고집불통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은 다면 어떤 것이든 해내니, 꼭 나쁜 성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저런 우직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마스터는..’

거기다, 무력과 경험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누구도 어린 아이의 치기라고는 볼 수 없었다. 과연 그 경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알파와 레딕이다.

“그 길은 저희가 안내하지요.”

케실리온은 뒤를 살짝 돌아봤다. 예상대로 그 용병무리였다. 다섯이나 되는 특이한 파티를 하고 있으니, 몰라보려야 몰라 볼 수가 없는 녀석들이다. 거기다, 이미 알파와 레딕 녀석도 기척을 느끼고 있었던지, 그렇게 놀라운 표정을 짓지 않고 있었다.

“하하! 이것도 인연인가 봅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니 말입니다.”

‘웃기고 있군. 미행한 주제에.’

케실리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녀석들이 미행하고 있다는 것은 진 작에 알고 있었다. 케실리온이라는 호화 파티 원이 그 정도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거기가, 저런 어설픈 미행에 당하는 녀석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행이라면 자고로, 목표와의 거리가 1킬로미터 전에서부터 기척을 숨겨야 한다. 설사 그것이 경지가 낮은 자일 지라도, 어느 정도 감은 있기 때문에 미행을 눈치 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기초 미행 술도 알지 못하는 녀석에게 미행당할 정도로 케실리온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그나저나, 상당히 놀랐습니다. 신분증명서도 없이 신전까지 가시겠다니... 하하!”

녀석은 어이없는 것인지 헛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물론 케실리온은 자신의 실책에 약간 반성하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녀석의 말에 화가 나려했다. 그러나 녀석은 용병길드를 편하고 빠르게 안내할 안내자였기에 잠시 성질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만하시지요. 그 이상의 무례는 용서하지 않습니다.”

적절하게 말하는 알파 덕분에 케실리온의 화는 누그러졌지만, 좋지 못한 시선을 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 시선이 너무나 강렬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일 것이다. 그때, 저 멀리 약간 초라하지만 용병길드라고 알 수 있을 정도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문패에는 검과 손이 그려져 있는 문패였다. 아마 용병을 구하는 교역소 같았다. 총 2층 정도의 건물과 주위의 작은 상점을 비교한다면 넓은 크기의 건물이었다. 아마, 내부 구조를 따진다고 생각하면, 카운트와 용병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공간일 것이다.

“저 건물이 용병길드의 지점입니다.”

한스의 말에 케실리온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대륙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 용병길드 지점이기에 본점이 어디인지 살짝 궁금해졌지만, 그런 것까지 소소히 알 필요는 없었기에 케실리온은 길드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목적지, 디바인 내추럴(Divine Nature)

찌릿!

케실리온이 들어선 용병길드의 첫 느낌은 강렬한 시선이었다. 무력과는 상관없는 주시자의 눈길에 케실리온은 찬찬히 주위를 둘러봤다. 처음 본 것은 용병길드 내부 중앙에 위치한 카운터였다.

단일형의 긴 테이블이었다. 그 위에는 방명록처럼 놓여 있는 양피지와 깃펜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잉크통인지 멀리서도 냄새가 날 정도의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주위로는 남자들의 냄새인 땀 냄새며, 발 냄새 등 여러 가지 냄새가 혼합되어 풍겨나고 있었다.

여느 상점가와는 다르게, 남성이 카운트를 보고 있었다. 역시 용병길드 구나라고 나올 정도의 우락부락한 남성이 육중한 근육을 뽐내며 카운트에서 졸고 있었다.

아마 지금은 한가한 시간이리라. 그러나 케실리온이 이끌고 들어온 일행 때문이었던지 졸던 모습을 지우고 위엄서린 표정으로 케실리온의 눈빛을 받아 넘기고 있었다. 

“의뢰?”

그 짧은 한마디에 주위의 용병들은 약간 기대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요즘 들어 딱히 일할 거리가 없는 것인지, 일에 굶주려 있는 모습이었다. 어떤 일이라도 해낼 듯 한 모습이었지만, 케실리온은 이곳에 가입하기 위해 온 것이다.

“가입.”

케실리온은 짧게 대꾸했다. 특별히 길게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짧은 대꾸에 카운터를 보던 용병은 얼굴을 약간 구겼다. 가입이라는 말에 눈빛이 달라졌던 것이다. 약간 거만해졌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어딘가 건방져 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주위의 시선 역시 곱지 않게 변해 있었다. 의뢰라고 생각했던 것이 가입이라는 말에 보는 눈빛은 시큰둥해진 것이다. 조용하던 곳은 각자 떠들거나, 일거리가 없다며 투덜거리는 용병들로 늘어났다.

“요즘 일거리도 없는데, 신입은 늘어나지... 에휴.”

“세상이 말세야 말세, 차라리 확 전쟁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군.”

용병들의 투덜거림에 카운터를 보던 용병은 마치 닥치라는 시선으로 주위를 한번 쭉 둘러  보고는 케실리온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가입 이유는?”

“도시간의 이동.”

“뭐? 푸하하! 저런 녀석이 아직도 있었던가.”

케실리온의 말에 카운터를 보던 용병은 폭소를 터뜨렸다. 이런 녀석은 오랜만에 본다는 듯이 배를 움켜쥐고 웃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용병이 되려 하는 녀석들은 정해져 있다. 어떤 죄를 저질렀거나, 몸은 성한데 돈 벌 수단이 없는 녀석들, 간혹 제국의 시민권이 없는 녀석들이나, 용병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도시간의 이동을 위해 용병패가 필요한 녀석은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이거 물건이군. 도시간의 이동. 푸하하.”

“뭐가 웃기지?”

스슷...

케실리온의 변화를 눈치 챈 것인지 녀석은 폭소를 터뜨리던 입을 다물고는 능청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꼬마야, 용병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너 같은 애송이가 될 만한 직업이 아니야.”

“용병에게도 자격이 필요한가?”

“그럼! 아무리 못해도 검을 잡을 많나 근육은 있어야지. 허약하게 생겨가지고 어떻게 검이라도 잡을 수 있을 까!”

카운터를 보던 용병의 말에 주위에 묵묵히 앉아 있던 용병들은 소리죽여 맞장구를 치며 웃고 있었다. 그 상황에 알파는 심기가 불편한지,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케실리온이 제지를 하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스륵...

“다시 한 번 지껄여 보시지?”

케실리온의 살기 섞인 말 때문이었을 까. 녀석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 꿈틀 거리던 근육은 약간 씰룩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도발한다면 검을 뽑겠다는 제스처 같았다. 허공에 부딪힌 눈길에서 작은 스파크가 튀는 듯 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후, 후후... 그 정도 살기로 이 험한 직업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용병은 케실리온을 더 도발 시킬 작정인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말의 어딘가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솔직히, 케실리온은 진심으로 살기를 품지 않았다. 그저, 경고 차원에서 가볍게 살기를 뿜었을 뿐!

어찌, 지옥에서 달련된 살기를 받아 낼 자가 있을까. 아마 2계에서는 몇 없을 것이다. 물론, 기운을 이용해 살기를 막아 몸을 보호하는 방법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뭔가 착각하는 거 같군. 누가 누굴 측정하는 지는.... 내가 판단한다. 용병이 되고 싶다면 너를 보여라.”

그 용병의 말에 케실리온은 마나를 피워 올렸다. 녀석의 말처럼, 무언가를 보여야 용병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케실리온은 녀석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누구도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받아 넘기는 녀석은 없었건만, 녀석은 눈을 주시하며 케실리온에게 그딴 말을 지껄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녀석. 보여주마.”

우우웅!

케실리온의 몸에서는 딱 3서클에 해당하는 마나가 오른손으로 모여 들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차가운 냉기가 점으로 모여드는 순간, 케실리온의 캐스팅은 시작되었다.

“빙마(氷魔)여...”

첫 구절에서부터, 케실리온의 손에서는 몇 가닥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차갑게 빛을 내뿜는 기운은 점점 하나의 마법진이 되어 가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벌어진 입으로 캐스팅이 이어졌다.

캐스팅이 계속 될수록, 하나의 마법진이 두 개가 되었고, 두 개가 세 개가 되었다.

“나 여기 있노라. 너의 힘을 빌려 차가운 징벌의 창을 내려다오! 아이스 스피어(Ice Spear)”

케실리온의 영창이 끝나자, 스산한 한기를 내뿜는 하나의 창이 만들어졌다. 케실리온의 오른손에 쥐어진 1미터 정도의 창은 차갑게 한기를 내뿜으며 용병의 목 쪽으로 가져다 댔다. 그 시린 한기에 용병은 얼굴을 구겼다.

푹... 주르륵.

아이스 스피어를 통해 살짝 파고들어간 목 언저리에서는 피가 베어 나왔다. 그러나 케실리온의 마나의 영향 때문이었을 까. 찔끔 세어 나온 피는 순식간에 얼음으로 변해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병들은 입을 쩍 벌렸다.

“마... 마법사?!”

모든 용병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던지, 두려움의 눈빛으로 케실리온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마법사가 흔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국가의 차원이었고, 용병들이 마법사를 보는 것은 전쟁을 제외하고는 보기 드문 존재였다.

더욱이, 평민들은 죽을 때까지 볼까 말까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마법사를 보는 것도 어렵건만, 마법을 펼치는 것까지 봤으니 자연히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자... 넌 나에게 뭘 보여 줄 거지? 후후후.”

차갑게 냉소를 지은 케실리온은 카운터에 앉아 있는 용병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 용병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 목에 있는 스피어 때문인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 가입시켜주겠다.”

부들부들...

녀석은 떨리는 손으로 깃펜을 쥐고 있었다. 그 모습에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으며 스피어를 캔슬시키고는 느긋하게 앞에 있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순식간에 주위의 페이스는 케실리온에게 넘어갔다. 무력은 상대를 두려움에 떨게 할 수도 있지만, 주위의 상황을 자기 페이스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부터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 일 것이다. 게다가, 녀석들은 케실리온의 마법 실력을 보았다. 비록 3서클의 힘만을 보였지만, 무시 하지 못하리라.

“여기 작성해야 할, 서류다. 혹시 글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모른다면 대필을...”

“걱정하지 마라. 애송아.”

삐질.. 삐질...

녀석은 되레 상황이 변한 상황에 삐질 삐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시원한 공기와는 다르게 더운 듯했다. 그 서류를 받아든 케실리온은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딱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없군. 이름하고 출신... 그리고 생명수당?”

“아.. 혹시 죽는 다면 그 생명수당을 친지에게 전해주는 방식이다.”

그 용병의 간단한 설명에 케실리온은 공석으로 놓아두었다. 앞의 이름과 출신은 가볍게 적을 수 있었지만, 알고 있는 존재는 없었기 때문에 공석으로 만들어 두었다. 그 다음은 일사 천리였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무리 없이 다 쓸 수 있었다.

“이름 케실리온... 출신, 란델 제국의 코리안 공작령... 생명수당을 받을 자는... 없음?”

케실리온의 서류를 읽고 있던 녀석은 의아한 듯 그 공석을 쳐다봤다. 보통 그 자리에는 가족의 이름을 적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케실리온은 아무이름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적을 필요도 없었다.

“필요 없다. 길드 명의로 하도록.”

“그, 그러지....”

케실리온의 일축적인 말에 녀석은 다급히 그곳을 용병길드, 카르멘 공작령이라고 적어 놓았다. 그 간단한 절차가 끝나자, 녀석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케실리온은 뭐냐는 식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가입비... 10실버.”

그제야 이해가 갔지만, 케실리온에게는 수중에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다. 그때, 앞으로 나서는 녀석이 있었으니, 같이 온 용병인 한스였다. 여전히 참견을 하는 것인지 수중에서 돈을 꺼내고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은화였다. 은화 열 개가 카운터에 있던 용병에게 올려 지자, 녀석은 재빠르게 그 돈을 갈무리 하는 것으로 가입을 끝났다. 그 쉬운 가입 조건에 케실리온의 짜증은 덜했지만, 녀석들의 무례는 잊지 않았다.

“다 끝난 건가?”

“아! 용병패는 하루 뒤에나 나올 것이니, 직접 찾아오는 것을 지참 하도록 하고 있다.”

저벅.. 저벅.

“내일 오지... 그럼.”

그 말에 케실리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밖으로 나섰다. 내일 이면 패가 나올 테니, 출발도 내일로 하면 될 것이다. 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진 케실리온은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괜찮다면 저희가 여관비는 대지요. 도움도 받았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다. 무일푼인 일행이 머물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에 약간 난감한 상황이다. 그때, 한스 녀석이 말해주니 약간 마음이 동했지만, 케실리온은 약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련님, 역시 그것이 좋겠습니다.”

“나 역시 좋다고 생각해.”

알파와 레딕까지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지만 케실리온은 솔직히 탐탁지 않았다. 건방지게 용병길드에서 까지 돈을 내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때문에 케실리온은 약간 진심이 담긴 어조로 한스에게 말했다.

“그 호의는 잊지 않겠다. 10배로 값아 주지.”

“후후.. 마음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엄연히 목숨의 은인인데.”

묵묵하지만, 어딘가 따뜻한 느낌에 알파와 레딕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케실리온을 쳐다봤다.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생활 한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케실리온은 한스라는 용병을 따라 여관으로 이동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