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케실리온이 있는 곳은 카르멘 공작령의 대도시인 스와츠라는 도시였다. 공작이 살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치안은 그런대로 잘 유지 되어 있었지만, 많은 상인들과 용별들 덕분에 속은 그렇지 않았다.
워낙 일거리가 없는 공작령이다 보니, 빈번히 일거리 때문에 벌어지는 싸움은 늘 상 벌어지는 곳이 스와츠였다.
“비켜! 거기 마차 지나가는 거 안보여?”
용병길드를 나서니, 시내에는 많은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때문에 우마차의 행렬은 끝이 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고용된 용병들은 기쁜 마음에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의 낮에 도착했기 때문인지, 여관이나 술집은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휴... 역시 너무 활발하군요. 방 잡기도 힘들겠습니다.”
한스의 말에 모두들 긍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지금 한스가 향하는 곳은 여행자들의 숙소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다른 여관과는 다르게 1층은 술과 음식을 먹는 곳이었고, 2층은 여행자들의 여독을 풀 수 있는 여관의 형태였다.
“한스, 아무래도 저기가 좋겠어. 그나마, 사람이 적어 보이니.”
“저기서 머무르도록 하지요.”
한스는 끌고 온 말을 건물 앞에 세웠다. 거기다 큰 마차까지 세워지자 길은 약간 정채현상이 벌어졌지만, 그것은 금방 해결될 문제였다. 때마침 여관의 종업원이 뛰어 나왔기 때문이다.
늘 상 있는 일인지, 종업원 세 명은 각자의 일에 맞게 마차를 끌거나 말을 마구간으로 들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명은 케실리온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레종 여행자의 집’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업원의 친절함에 케실리온은 작게나마 감탄을 터뜨렸다. 이정도의 서비스를 하는 곳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지만, 이곳의 생리라는 생각에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옆에 있던 용병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을 받아 들였다.
“이봐, 말 관리 좀 부탁하지. 건초와 건량을 적당히 주는 것도 잊지 말게.”
“당연합니다요. 물론입죠. 드시죠.”
종업원은 즐거운 얼굴로 일행을 ‘레종 행자의 집’이라는 곳으로 안내했다. 역시, 안은 겉과는 다르게 여행자들로 넘쳐났다. 이미 술판이 벌어진 것인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용병들은 그것이 나름대로 괜찮은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다른 종업원이 일행들을 맞이했다. 정말 교육이 잘된 곳이라고 생각한 케실리온이다. 노예로 팔려오던 기억으로는 이정도의 서비스는 없었기에 약간 탄성을 자아낼 정도였다.
“손님, 어서 오십시오~ 식사와 숙박 둘 중 어느 것입니까?”
“둘 다야, 우선 2인실 방 두개 개와 삼인 실 하나, 일인 실 방 하나 잡아줬으면 하는 군!”
“그러십니까? 그럼 절 따라 오십시오.”
한스의 말에 종업원은 2층 숙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온몸이 먼지 범벅이었다. 때문에 케실리온은 먼저 씻고 싶었지만 숙소가 먼저였다. 종업원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려던 찰나, 누군가 시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먼지! 꼬맹아. 먼저 먼지부터 털고 왔어야지.”
식당의 테이블 만도 거의 50여개 정도 될 정도의 넓은 공간이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려던 케실리온과 알파, 레딕을 발견하고는 장난기가 발동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약 14~16세 정도로 보이는 외모였기 때문이리라.
케실리온은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누구나 술을 먹으면 약간 개(?)가 되기 때문에 그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한 것이다.
“꼬마야 겁먹었느냐!”
“감히... 도련님에게..”
알파는 케실리온에게 어이없는 말을 내뱉는 말이 참을 수 없는 것인지 앞으로 나섰지만, 케실리온의 만류에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됐다. 알파.”
“아... 휴! 정말 괜찮으십니까. 저런 모욕적인 발언을...”
“상관없다. 빨리 씻고 싶군.”
“알겠습니다. 도련님. 거기, 빨리 안내해!”
알파는 자신의 모욕인양 화를 내며, 종업원에게 화풀이를 했다. 약간 살기가 섞였기 때문인지 종업원은 급히 일행을 숙소로 안내했다.
2층 역시 큰 축에 속하는 공간이었다. 오밀조밀하게 있는 복도였지만, 방안은 의외로 큰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손님, 최대한 거리를 가깝게 했습니다. 이 인실은 204호와 206호고, 일인 실은 그 중앙인 205호입니다.”
“이봐, 그럼 삼인 실은 어디지?”
“약간 구석인대 괜찮으시겠습니까? 저기 310호입니다.”
종업원의 말처럼 310호는 가장 구석진 공간이었다. 워낙 깊숙한 곳이라 그런지 칙칙한 느낌도 들었다. 그에 한스 일행은 약간 불만인지 종업원을 노려봤다. 그 살벌한 분위기에 종업원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는 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럼, 저희가 2인실 하나와 삼인 실을 쓰겠습니다. 들으셨다 시피 욕실은 방에 있기 때문에 크게 불편 하신 점은 없을 겁니다.”
이 여관은 약간 비싸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일인 실을 기준으로 하루 묶는대 드는 비용은 약 10실버 그리고 2인 실은 8실버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때문에 케실리온이 진 빛은 총 28실버나 되어 버렸다.
돈에 대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던 지옥과는 달리 지금은 약간 돈에 대한 걱정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저 바보 같은 레딕이라는 녀석이 무일푼이라는 것에 대해 화가 났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레딕과 내가 이인 실을 써야 하나?”
케실리온은 옆에 있는 알파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알파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머리를 저었다.
“어찌 감히 제가... 도련님께서 일인 실을 써야지요.”
“됐다. 나에게도 그 정도의 아량은 있으니. 불편은 하겠지만 그것도 괜찮겠지.”
케실리온은 204호로 들어갔다. 그 뒤로 레딕이 따라 들어왔기 때문에 알파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누구도 볼 수 없었다. 방으로 들어선 케실리온의 첫 소감은 딱 하나였다.
“아카데미의 기숙사 인가?”
“쿡...”
옆에서 레딕이 웃고 있었지만, 케실리온은 상관하지 않았다. 케실리온의 일행이 가져온 물건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케실리온이야, 마령검을 옆에 차고 있었고 망토를 걸쳤기 때문에 일행중 가장 물건이 많았지만, 딱히 가지고 있어야 할 만한 물건은 없었다.
모든 물건은 소환으로 불러 낼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흑색의 망토를 해체시킨 케실리온은 마령검을 침대에 올려놓았다. 귀찮게 그림자 속에 넣어 두는 것은 싫었기에 침대위에 올려놓았다. 설사 누군가 그 검을 가져간다 할지라도, 케실리온의 기감 범위 안에서 가져간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내가 먼저 씻지.”
케실리온은 욕실로 들어서며 레딕에게 말했다.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창가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간간히 하늘로 떠오르는 달을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케실리온과 레딕은 샤워를 한 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한스의 말도 있었지만, 점심때를 놓쳤기 때문에 약간 허기가 지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지 않고도 며칠은 버틸 수 있지만, 굳이 버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녀석들 아직도 있네. 어쩔 거야.”
레딕이 처음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2층으로 올라갈 당시 케실리온에게 모욕적인 말을 내뱉었던 녀석들이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한스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자리에 앉을 뿐이었다. 알파는 먼저 내려와 있었던지, 묵묵히 케실리온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무뚝뚝하지만, 자신의 주인을 위하는 마음이 갸륵했다.
“신경 쓰이신다면 제가 처리 할까요?”
“됐네.”
한스는 테이블 옆에 있던 바스타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나 케실리온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평소에는 그런 사소한 일에도 복수를 한답시고 피를 뿌리던 케실리온이다. 이정도의 아량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심히 궁금했지만, 이건 여행이라는 생각에 조용히 넘어가자는 생각이었다.
“괜..”
한스가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음식 주문을 위해 다가온 종업원에 의해 그 이야기는 끝나버렸다. 다들 허기진 것인지 양이 많은 음식을 주문하기 바빴다. 이곳 음식에 대해 잘 모르는 케실리온은 한스 일행이 대신 주문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음식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손님이 많아서 인지, 빠른 속도는 필수 인 것 같았다. 때문에 이렇게 손님이 많은 것도 이해가 갈 정도다.
“손님! 맛있게 드십시오. 그럼.”
테이블이 휠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에 모두들 만족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누군가 큰 소리로 케실리온이 있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꼬마야, 보아하니 귀족 같은데 이곳에 웬 행차시냐?”
“나 말한 건가?”
케실리온은 슬슬 짜증이 치솟았다. 개도 밥먹을 때 건들지 않는 다고 했다. 그것이 마룡인 케실리온이라면 더더욱 건드려서는 안 될 존재다. 그 존재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알파와 레딕은 앞에 있는 용병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왜! 용병이 존대를 하지 않으니 배알 꼴 리냐?”
케실리온의 앞에까지 찾아온 녀석은 사나운 표정으로 케실리온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때문에 케실리온은 음식을 떠보지 못한 숟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아야 했다.
탁...
“나에게 무슨 용무라도?”
케실리온의 음성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진정으로 화를 삭이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이 두려움에 벌벌 떠는 모습이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주위에서 터져나오는 야유에 용병은 의기양양해졌다.
휘익~
“꼬마야, 그냥 죄송하다고 하렴!”
푸하하하하!
어떤 용병의 말에 주위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모두들 즐거운 모습이었지만, 케실리온의 일행이 있는 곳은 싸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물론, 한스 일행들은 케실리온의 진정한 면모를 몰라 알파와 레딕의 표정에 의문을 섞인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마스터... 살인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신전으로 가는 길이 어려워질지 모릅니다.... 부디’
알파는 케실리온의 안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용병 녀석을 죽이지 않기를 기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혹여, 녀석을 죽인다면 신전으로 가는 길이 어려지기 때문이다.
“죄송? 다시 한 번 더 지껄여 바라.”
“와하하하! 어떻게 할 거냐!”
“꼬마가 저런 소리를 하는데 뭐하는 거냐!”
“우우우우!”
녀석들은 케실리온에게 시비를 건 용병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때문에 녀석은 얼굴을 붉히며 케실리온을 툭 쏘아봤다. 아무래도 싸움을 피하지 못할 것 같았기에 용병은 힘껏 케실리온에게 주먹을 뻗었다.
“감히! 누구에게 그딴 망발을!”
녀석은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저 꿈틀 거리는 주먹에 케실리온이 당할 것만 같았다. 코앞까지 들이 닥친 주먹에 케실리온은 어떤 움직임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위의 용병이나, 모험가들은 그 모습이 포기한 것으로 비춰졌다.
퍽!
강한 타격감, 하지만 덩치 큰 용병은 알 수없는 느낌에 머리를 갸웃거렸다. 얼큰하게 술에 취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꼬꾸라졌을 꼬마를 향해 욕을 퍼부으려 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머리를 급히 뒤로 돌렸다.
“다... 한 건가?”
“뭐, 뭣!”
휙!
어떤 타격의 흔적도 없었다. 구리 빛 피부는 그대로였지만, 케실리온의 얼굴에 남아 있는 감정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희미하게 웃고 있던 표정은 싹 지워진지 오래였다. 녀석은 잘못 건드린 것이다.
케실리온의 모습은 지옥에서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흑안(黑眼)에서 뿜어지는 스산한 심연의 살기와 약간 긴 머리칼은 몸에서 발산되는 미세한 기운으로 출렁였다. 조금만 더 도발한다면 폭발할 것 같았다.
“상대를 봐가면서... 시비 거는 것도 현명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목적지, 디바인 내추럴(Divine Nature)
휘익!
“헬씨! 뭐하냐. 꼬마 때문에 얼었냐? 내가 나서주리? 키키킥”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녀석이었다. 이미, 케실리온 앞에 있던 저 헬씨라는 녀석은 전의를 상실한지 오래였다. 체인메일로 가려진 몸의 살결은 끈적이는 땀으로 축축해진지 오래였다.
케실리온의 몸에서 뿜어진 미세한 기운은 헬씨라는 녀석에게만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케실리온의 마지막 말이었던 ‘상대를 봐가면서... 시비 거는 것도 현명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라는 말은 큰 의미가 있었다.
죽이지는 않을 테니, 안심해라는 함축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것이 헬씨에게는 그렇게 들렸던 것이다. 고작 자신의 키에서 가슴에 올 정도의 키를 가진 녀석이 이렇게 두려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 어이... 그만해. 우리가 잘못했잖아.”
헬씨는 두려운 마음에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동료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도발했다가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섭게 치켜뜬 두 눈을 보는 순간 장난치려던 생각은 싹 달아 난지 모래였다.
하지만, 용병은 그 말을 무시하고는 헬씨의 어깨를 툭 치며 스쳐지나갔다.
툭!
“뭐야 헬씨! 겁먹은 거야? 내가 보여주지.”
자신 만만하다는 듯이 그런 말을 내뱉고는 케실리온의 앞에 선 녀석은 다짜고짜 멱살을 움켜쥐었다. 검은 흑색의 망토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의 우악스런 손길에 망토가 출렁거렸다. 도발적인 행동에 1층, 식당은 후끈 달아올랐다.
저 용병이 건방진 꼬마 녀석을 혼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하하! 봐, 별거 아니잖아. 우린 라디안 왕국의 귀족도 죽였으니, 이곳에 있는 바보 같은 꼬마 도련님을 죽여도 상관없지. 크큭”
스윽..
녀석은 마른 입술을 살짝 쓸어 넘겼다. 그 우악스럽고 추잡한 얼굴이 케실리온의 얼굴로 향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약간 구리 빛 피부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쌍흑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녀석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 강렬한 눈빛이었다.
“그... 손 놔라.”
케실리온은 명령조로 녀석에게 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멱살을 잡고 있던 녀석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힘을 풀어야 했다. 이건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란 것 본능적으로 느꼈는지도 모른다.
“무.. 무어, 뭐야!”
쿵!
뒷걸음질 치는 용병은 가까운 곳에 있던 테이블에 부딪혔다. 그에 느릿한 걸음으로 녀석에게 다가간 케실리온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뻗어진 손에서 검은 빛의 기운이 어리더니 용병의 목을 잡아챘다.
꽈악!
1서클의 데스 핸드(Death Hand)였다. 검은 빛의 손을 만들어내는 마법이었다. 특별한 캐스팅도 필요 없었기 때문에 상대를 제압할 때나 사용되는 마법이다. 잠시 후 녀석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2미터의 덩치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하늘로 치솟는 모습에 모두들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상대가 안 돼도 너무 안 돼는 싸움이다. 어린 아이와 어른의 싸움이라고 해야 할까. 겉으로 본다면 두 명의 용병이 강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슈악!
녀석의 발이 10센티미터 정도 하늘로 치솟았을 까. 누군가 검을 휘둘렀다. 옆을 힐끔 쳐다본 케실리온은 잘 정리된 갈색 머리칼의 사내가 마나가 잔뜩 담긴 검으로 데스 핸드를 자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예상대로 데스 핸드는 순식간에 캔슬 당해 버렸고 하늘로 치솟았던 녀석은 중력에 의해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쿠당탕!
“커억... 케. 켁!”
장시간 하늘에 떠 있었기 때문일까. 녀석은 켁켁 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관심은 자신의 마법을 캔슬 시킨 녀석에게 닿아 있었다. 저런 허약한 녀석에게 줄 관심은 없었기 때문이다.
“동료의 무례를 용서해다오.”
갈색 머리의 사내는 그런대로 예의는 있었지만, 전혀 사과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 할지는 몰라도, 케실리온이 보기에는 전혀 사과의 모습은 담겨 있지 않았다.
“다시 해라. 그 눈빛 마음에 들지 않는 군.”
“.... 동료의 무례를 용서..”
“눈 깔고 다시 하라고 했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녀석의 재수 없는 눈에 케실리온은 녀석에게 다시 사과를 할 것을 요청했다. 마나를 어느 정도 이용 할 줄 아는 녀석인지, 케실리온의 시선을 받아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볼 것이 있고 못 볼 것이 있는 것이다.
꼬나보게 자신을 쳐다보는 갈색머리의 용병에게 그 말을 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왼쪽에서 느껴지는 시린 마령검의 느낌에 마음은 편안해졌다. 어느 정도 화는 풀렸지만, 저 눈빛을 보고 도저히 넘어 갈수 없을 것 같았다.
주춤... 스륵.
“다, 단장!”
약간 주춤 거리던 녀석은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주위의 용병들은 크게 소리쳤다. 아마, 저 녀석이 이들의 단장이리라. 단장의 비참해지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녀석까지 있었다.
“이 개자식! 단장께...”
스릉!
헬씨라는 녀석은 두려움이 일어났지만,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허리에 걸려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주위의 용병들도 검을 뽑아 들었다. 그 흉흉한 기세에 다른 용병들은 구석 쪽으로 몸을 사렸다.
혹여, 그 피해가 자신들에게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용병들 대부분이, 이 녀석의 부하였던지 모두 자리에 일어나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수적으로 열세였다.
“도련님, 도울까요.”
“됐다. 알파.”
케실리온은 뒤에서 속삭이는 알파의 목소리에 머리를 저었다. 알파가 나서지 않아도 이런 일은 간단하게 처리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거기다, 허리에 있는 마령검이 있다면 어떤 적이라도 상대해 낼 수 있다. 얼마나 든든한 아군인가.
생사를 넘어, 소멸에 이르기 까지 함께했던 검! 이 검은 케실리온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였고 동료다. 거짓말에 능숙한 유사인종과 인간보다는 이 검이 더 낳았다. 그것이 아무리 수하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
“그만!!! 이건 우리의 실수고 잘못이다. 용서를 비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누구냐!”
“.......”
“실버 울프입니다!”
“우리가 누구라고?”
“실버(Silver)!”
“울프(Wolf)!”
의외로 녀석들이 유명한 용병 단이었던지 주위의 용병들이 술렁거렸다. 하지만, 케실리온에게는 허명일 뿐이다. 그들이 어떤 존재이건 간에 케실리온이라는 존재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울프는 긍지가 높은 전사다!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도 실버 울프다! 너희들의 단장이 누구냐!”
“실버 울프, 로이젠!”
주위를 압도하는 그 기세에 케실리온은 팔 장을 끼고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어디서 굴러 먹다 온 녀석들인지는 몰라도, 위계질서는 잘 잡혀 있는 것 같았지만, 용병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너희들이 누구건 관심 없다. 그 건방진 눈부터 치워라.”
시비를 건 주제에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그 큰소리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려 왔으면 조용히 휴식만 취하면 될 것을 왜 자신을 건드렸단 말인가. 더욱이 유명한 용병 단 일수록 그런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쓰레기 집단이군. 이름 좀 날리면 모든 것이다 용서가 되는 가.”
꿈틀...
녀석들은 케실리온의 발언에 몸을 움찔 거렸다. 아마, 단장 앞이라 그런지 화를 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달려들 기세였건만, 저런 모습이라니, 단장의 말은 절대적인 것 같았다.
“수하의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실버 울프 용병단을 비하하는 말은 용서하지 못하오!”
“푸하하, 이거 웃기는 녀석이군. 지금 누가 누구를 용서해? 착각하지마라. 이곳에서 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
“귀족이란... 역시나 건방지군!!”
녀석은 참고 있던 화를 폭사 시키든 커다란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 검까지 고쳐 쥐고 있으니, 싸우겠다는 의미 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쳐다보던 케실리온은 옆에 있던 헬씨에게 말했다.
“그 고기 써는 나이프를 가져와라.”
위엄 서린 말에 헬씨라는 용병은 마지못해 테이블 위에 있던 나이프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냥 주기 싫은지 주먹을 꽉 쥐고는 케실리온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정확하게 틀어박힌 주먹에 헬씨는 약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표정을 얼마가지 못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것인지 고통에 찬 표정으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어이, 네 녀석.. 그 옆에 있는 나이프 가져와라. 또 이딴 짓을 한다면 네놈은 병신으로 만들어 주지.”
케실리온에게 처음으로 주먹을 날렸던 녀석이었다. 녀석은 의외로 고분고분하게 케실리온에게 나이프를 건넸다. 10센티미터가 될 듯 말 듯 한 나이프 쥔 케실리온은 차갑게 웃었다.
“쿠쿡, 네 놈은 이정도로 충분하다.”
“이... 이이! 감히... 날 무시해?”
로이젠이라는 용병 단장은 긍지가 높은 것 같았다. 어떤 기운에도 무릎을 꿇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쉽사리 도발에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 정도는 칭찬할만했지만, 2계의 녀석은 2계의 녀석이다.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 응용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귀족이 얼마나 나약한지 보여주마! 그 건방짐, 잘 기억 뒀다.”
로이젠은 검을 우측으로 틀었다. 검 날이 번쩍이며 잘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케실리온이 들고 있는 나이프가 초라해질 정도였다. 크게 치켜세운 검은 여지없이 케실리온의 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진심으로 할 작정인 것 같았지만, 케실리온에게는 장난 수준에 불과하다. 크게 휘둘러 파괴력을 중시하는 것보다, 케실리온은 연계를 중시한다. 힘이 세고 빨리 지치는 것보다, 약하지만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 그러나, 케실리온의 검은 이상하게도 강하지만 쉽사리 지치지 않는 검이다.
후웅!
공기를 부수고 날아드는 검에 케실리온은 정확하게 자신의 왼쪽 목 부분을 막았다. 녀석의 큰 동작을 보는 것으로 어느 곳에 공격해 올지 파악이 가능했다. 거기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는 케실리온이기에 녀석의 눈동자를 똑똑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공격하는 순간, 짧지만 공격하는 방향을 보기 때문이다. 거기다, 팔과 손목의 관절이 움직이는 것으로도 유추 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안력이 어느 정도만 받쳐 준다면 모두 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카앙!
나이프와 검이 내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였다. 어째서 저런 조잡한 나이프가 청명한 소리를 내는 것인지 로이젠은 궁금했다. 용병계에서도 자신의 검을 제대로 받아 내는 녀석은 없었기에 자신만만했던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케실리온이 막아낸 것을 우연이라고 치부했다. 게다가, 녀석은 마법사다. 마법사가 검까지 잘 쓴다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우연은 거기까지다. 그 나이프 까지 잘라 버려 주마!”
우우웅!
녀석의 검에 푸른빛과 은빛이 살짝 비치는 기운이 감돌았다. 마치, 늑대의 입에 있는 송곳니 같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 사나운 기운에 케실리온은 나이프를 옆으로 비틀었다. 그 순간 녀석의 검은 놀랍게도 케실리온의 막아섰던 곳의 반대쪽에서 검이 나타났다.
“나왔다! 단장의 실버 패닉(Silver Panic)”
한 용병의 말에 케실리온은 급히 왼손을 출수시켰다. 녀석과 싸우며 처음으로 왼손을 사용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검술에 당황한 것은 처음 일 것이다. 오른쪽에서 나타났던 검이 왼쪽으로 순간이동을 하듯 이동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케실리온이었다.
슈아악!
“끝이다! 귀족!”
팅..!
녀석은 그 검이 케실리온의 왼손과 함께 갈라 버릴 것을 확신했다. 인간의 살이 쇠를 이길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녀석은 승리의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뭔가 튕겨 나가는 소리가 의아 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앞에 있는 케실리온에게 시선을 두었다.
손가락이 검을 튕겨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연약한 인간의 손이 검을 튕겨 낸다는 말인가. 거기다 녀석은 기운조차 일으키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경험을 한 로이젠은 다음 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부르르!
튕겨져 나간 로이젠의 검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가볍게 친 것 치고는 큰 떨림이었다. 마치 검과 검이 닿은 것처럼 거친 떨림이다. 하지만 그 떨림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짧은 나이프가 로이젠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딜!”
사라락.. 슉!
다급히 검면을 이용해 나이프를 막아섰다. 케실리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나이프를 살짝 흔들었다. 갈대가 흔들리듯이 정면을 막아서고 있던 로이젠의 검을 비껴나가며 목을 베고 지나갔다.
고기를 써는 나이프답게 날카로웠다. 어딘가 무딘 느낌이 들었지만, 케실리온의 기세로 그것을 메울 수 있다. 지금 조잡한 그 나이프를 케실리온이 잡음으로써 어떤 검보다 날카로운 예기를 띠고 있었다.
“다음은 없다.”
털석...
“져... 졌다!”
케실리온의 결정적안 한마디에 녀석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껏 저런 수를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저 강하고 파괴적인 검이라면 누구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저 케실리온이라는 소년의 검은 부드러웠지만, 자신의 검 못지않게 강맹하다는 생각에 감히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껏 생각해왔던 검이 허망해질 정도로 녀석은 강했다. 그저 약간 마법사라고만 생각했던 녀석이 저런 검술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거기다, 마나의 유동을 느끼지도 못했건만, 저런 움직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짜인 각본처럼 자신의 검을 너무 쉽게 피했기 때문이다.
“실버 패닉이라고 했던가... 조금만 갈고 닦는 다면 최고의 기술이 될 것이다.”
케실리온은 저 로이젠이라는 용병이 펼친 실버 패닉이 상당히 고급에 드는 검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변칙적인 검술에 익숙해져 있는 케실리온이 당황할 정도라면 대단한 기술임에는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저런 기술을 천마나, 혈마와 같은 지옥 고수가 사용했다면 케실리온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절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기술의 단점은 손목에 무리가 간다는 점과 많은 기운을 써야 하는 것 같았다.
많이 움직이지도 않았건만, 녀석은 규칙적이지 못한 숨결을 토해냈다. 간간히 비치는 땀과 손목의 미세한 어긋남이 그 이유였다. 일격필살의 수로는 좋을 것 같았지만, 장기전에서 사용할 정도의 기술은 되지 못했다.
“A.. A급 용병을...! 나이프로 이겨?!”
주위의 용병들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케실리온을 쳐다보고 있었다. 단 일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빠른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빠른 시간 안에 제압당해 버린 로이젠이었다.
거기다 검사도 아니었고, 마법을 펼치는 마법사였다. 아까 검은 손이 나온 마법이 어떤 것인지는 몰랐지만 분명 마법사였다. 근접전에 약하다고 알려진 마법사가 근접전에서 강한 A급 용병을 이겼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 것인가!
“죄, 죄송합니다. 부디 자비를....”
제일 먼저 시비를 걸어왔던 녀석이 급히 무릎을 꿇었다. 케실리온의 주먹에 맞고 쓰러졌던 녀석이었다. 덩치가 큰 녀석이 무릎을 꿇으니 케실리온의 가슴 정도의 크기가 줄었지만 여전히 크게 보였다.
“닥쳐라... 조용히 식사를 하고 싶을 뿐...!”
케실리온은 그런 말을 남기고 알파의 옆에 앉았다.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지만 약간 미지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에 확 짜증이 치솟았다. 때문에 멀리서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종업원을 불렀다.
“거기.. 너!”
“아... 예, 예?! 저 말씀입니까?”
종업원은 자신이 뭘 잘못했나? 라고 생각했지만, 케실리온의 말에 급히 그릇을 받아 들었다. 다행히 음식을 데워오라는 지시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혹여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내심 걱정되었지만 그 말에 밝은 표정을 지었다.
“따뜻하게 데워 와라.”
“가, 감사합니다.”
이미 왁자지껄하던 1층 식당은 엡솔루트 가든의 만년설로 뒤덮인 곳처럼 싸늘해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는 로이젠이나, 무릎을 꿇고 있는 헬씨를 제외하더라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녀석은 없었다.
모두들 케실리온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기 때문이다.
“도련님, 손속을 두셔서 감사합니다. 자칫 죽어버렸다면 귀찮아 질지 모르니...”
알파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1층의 용병들이 충분히 듣기에는 남을 목소리였다. 굴욕적인 발언임에도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확실히 케실리온이 손속을 두지 않았다면 저 용병들은 죽음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난 식사가 하고 싶었을 뿐이다. 착각하지 말도록.”
“호호.. 예, 도련님”
알파는 웃음을 띠우며 애써 부정하는 케실리온에게 머리를 숙였다. 한스 일행은 뭐가 불편한지 하얗게 뜬 얼굴로 고기를 썰고 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대륙의 잘나가는 용병 중, 하나인 로이젠이라는 A급 용병이 몇 수도 펼치기 전에 당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끄러운 식사를 끝마친 일행들은 각자의 방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한스 일행은 무슨 생각인지 1층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