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락!
용병들이 펼친 포메이션은 뛰어났다. 느린 공격방법이었지만, 적절하게 공격을 가하고 있었고, 헬 하운드의 발톱까지 막아내고 있었다. 공수가 적절하게 조합된 연계기였다. 그러나 헬 하운드의 오감도 뛰어났으니, 쉽사리 끝날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자명한 사실이다.
거기다 저 네크로멘서라는 녀석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에 이 전투는 용병들이 불리한 싸움이다. 수적으로나, 무력적으로나 많이 차이가 나는 싸움이다. 하지만, 용병들에게는 케실리온이 있었기에 쉽게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크와앙!”
후웅!
용병들이 휘두른 검을 살짝 흘려 넘긴 헬 하운드는 재차 날카로운 발톱을 크게 휘둘렀다. 덩치가 2미터 가량이나 되는 헬 하운드 답게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도 사나웠다.
스슷!
붉게 타오르는 털 사이사이로 검은 마기가 넘쳐흘렀고, 그 힘에 의해 언데드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마냥 느리기만 하던 언데드들이 헬 하운드라는 상급 마물을 등에 업고 인간들의 살점을 뜯기 위해 공격 범위 안으로 파고들었다.
“지금이다! 다시 한 번, 브러트를 사용하라!”
로이젠은 공격 범위 안으로 파고드는 언데드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정확하게 머리를 가르는 깔끔한 수법을 선보이고는 실버 울프 단원들에게 똑같은 지시를 내렸다. 둥근 원을 치고 있었기에 언데드들의 숫자는 눈에 뛰게 줄어가는 형국이다.
파삭!
“머리가 약점이다! 일체, 접근을 허용치 말라! 우린 실버 울프다!”
“다, 단장! 언데드들이 너무 많습니다.”
“칫! 앤더슨님! 신성력을...!”
죽여도 끝이 없었다. 헬 하운드의 공세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언데드들만을 공격하는 자살행위를 하는 짓고 같았다. 때마침, 뒤에서는 신성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며, 로이젠에게 외쳤다.
“알겠네. 어서 길을!”
“헬씨! 포메이션의 축을 열어라!”
앤더슨의 검에서는 은은한 신성력이 피워올랐다. 그리고 로이젠은 느슨한 공격을 펼치고 있는 헬씨에게 길을 트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헬 하운드를 향해 실버 패닉을 날렸다. 계속되는 공격에 점점 체력은 바닥나고 있었지만 아직은 버틸만 했다.
문제는 저 네크로맨서일 것이다. 계속해서 부활하는 언데드들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크로맨서를 공격하자니, 헬 하운드의 공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젠 한시름 놓을 걸세! 모두 불굴의 기상을 사용하게!”
“알겠소! 앤더슨경!”
앤더슨의 지시에 다른 신성기사들은 마지못해 그의 의견을 따라야 했다. 불굴의 기상, 어떤 사악한 존재의 기운이라도 흘려보낼 수 있는 기운을 보호하는 성력이다. 마기로 심신을 더럽히는 존재였기에 이런 방어 계열 마법은 필수였다.
“성 카르디스! 사악한 존재에게 맞설 수 있는 불굴의 의지를 내려주소서!”
“불굴의 기상!”
기사들의 몸에서 은은한 신성력이 풍겨났다. 그에 언데드들은 주춤 거리며 뒤로 물러났지만, 헬 하운드와 네크로맨서가 내뿜는 마기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언데드들은 기사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혼전이다! 각자 기량에 맞게 언데드들의 머리를 공격하라!”
“알겠소! 단장!”
신성 기사들의 투입에 활기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언데드들의 급소 따위는 몰랐지만, 저것들이 신성기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었기에 큰 힘이 되었다. 수백이나 되던 언데드들은 용병과 신성기사에 의해 조금씩 줄어가고 있었다.
신성력에 당한 언데드들은 두 번 다시 부활하지 못했다. 물론, 머리가 부셔진 언데드들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네크로맨서의 힘에 의해 부활하곤 했기 때문이다.
“크크크! 어리석은 것들! 익스플로젼 언데드(Explosion Undead)!!!”
멀리서 네크로맨서의 외침이 들려왔다. 혼전에 혼전을 겪고 있던 용병들과 기사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는 외침이었다. 언데드의 자폭! 거기다. 뭉쳐서 싸우고 있던 용병들이었기에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퍼퍼퍼퍽!
수백의 언데드들이 자폭하는 소리에 용병들은 자신들의 병기나 체인메일에 의해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처럼 신성갑(Divine Armor)을 착용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방어가 뚫리는 방어구였다.
신성갑은 신성력이 깃들어 있어 방어력을 높이는 대단한 아티팩트다. 물론, 마법의 힘을 빌려 방어력을 높이는 버프도 있지만, 신이 내려주는 신성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물론, 신성갑이 많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신성기사가 착용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방어구다.
또한, 신앙심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착용한다고 한들 사용이 불가능한 갑옷이다. 그리고 아까 펼친 불굴의 기상이 바로, 신성갑을 강화시키는 주문이다.
퉁! 투퉁!
“기사들은 용병들을 보호하라!”
신성갑에서 뿜어지는 신성력에 의해, 언데드들의 파편이 튕겨나갔다. 은은한 은빛의 방어막이 주위를 보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경 1미터 정도를 보호하는 구에 간간히 몸을 숨긴 용병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아악... 다, 단장!”
언데드들의 자폭공격에 희생된 용병들은 부상당한 부위를 감싸 안으며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었다. 부상당한 부위가 점점 썩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용병들은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잘라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담이 큰 용병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용병의 생명은 육신이다. 감히 누가 자신의 육신을 자를 생각을 할까! 간혹 신성기사에게 도움을 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직 공격 쪽으로 신앙심을 키운 기사들이다. 치유 계열이 있을 턱이 없었다.
“네놈...! 감히!”
“단장! 위험하우!”
“닥쳐! 네크로맨서를 공격한다!”
로이젠은 많은 용병들이 썩어 문들어지는 모습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을 치켜세웠다. 이대로 네크로맨서에게 달려들 심산이었다. 때마침, 신성기사가 하운드를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네크로맨서를 공격할 틈은 얼마든지 있었다.
“로이젠! 여긴 걱정하지 말게!”
“고맙소이다. 앤더슨경!”
로이젠의 발이 지축을 흔들었다. 아마, 마나를 발에 주입한 모양이다. 그 큰 발 구름에 로이젠의 신형은 네크로맨서의 근처까지 도달했다. 이미, 언데드들의 시선이 신성기사와 부상당한 용병에게로 향했기 때문에 로이젠의 행방에는 어떤 관심도 없어 보였다.
“크크큭, 가소로운 녀석!”
네크로맨서는 자신에게로 뛰어드는 로이젠을 보고 가소롭다는 웃음을 흘렸다. 간간히 움직이는 로브자락으로 삐져나온 앙상한 손가락 사이게 끼워져 있던 해골 모양의 반지가 빛을 뿜었다.
사아악!
“본 실드(Bone Shield)!”
텅!!
네크로맨서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공기를 때렸다. 본 실드! 뼈로 이루어진 방어막이다. 실드 마법답게, 둥글게 회전하며 로이젠을 검을 튕겨냈다. 뼈로 이루어진 실드라고 무시 할 수는 없다. 서클의 단위가 높아질수록, 뼈의 강도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쉽게 바스라질수도 있겠지만, 저 네크로맨서의 마법 실력이 뛰어난 것 같았다. 물론, 전투에도 능숙한지, 필요한 마법은 반지에 담아 몇 번이고 펼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기 까지 했으니,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라이프 서크(Life Suck)!”
로이젠의 근방으로 죽음의 숨결이 전해졌다. 네크로맨서가 펼친 손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지더니, 로이젠의 주위를 감싸 버린 것이다. 라이프 서크! 이건 죽음의 손길이라고도 불리지만, 그 격이 다른 마법이다.
생명력을 고스란히 흡수 해버리는 것이다. 그 마법이 6서클에 해당하는 고 서클이라는 점을 감안 한다면 그 네크로맨서가 얼마나 대단한 흑마법사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백마법사와는 다르게 공격마법에 특화 되어 있기 때문에 7서클에 해당하는 파괴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크윽.. 누가 당할 성 싶으냐!”
흐아압!!
로이젠은 어둠의 두려움에서 피하기 위해 큰 기합을 터뜨렸다. 하지만, 네크로맨서가 펼친 마법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당연할 것이다. 6서클의 마법인 만큼, 의지가 한껏 깃든 마법이다.
점점 조여 오는 검은 물결에 로이젠의 몸은 비틀거렸다. 점점 힘이 빠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대로 몇 분만 더 검은 물결에 노출된다면 생명에 큰 지장이 생긴다.
“실버울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로이젠의 큰 외침 덕분이었을 까? 검은 물결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이미 힘은 빠질 대로 빠져 있었지만,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얼마 남아 있지 않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그림자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푹!
‘드... 들어갔다.’
로이젠이 확신에 선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에 힘이 빠졌다. 너무나 익숙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점점 사라지는 검은 물결로 비치는 모습은 소년의 모습이었다. 검은 머리칼... 검은 눈!
“닥치고 숨이나 돌려라. 저 네크로맨서는 내가 맡지. 후후”
무덤덤한 목소리에는 무한의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사라져 가는 검은 물결에 나타난 모습은 케실리온이었다. 왼손으로 가볍게 쥐고 있는 로이젠의 검이 처량하게 보일 정도로 케실리온은 당당했다.
“라이프 서크? 좋은 거 하나 배웠군.”
케실리온은 바닥에 나가 떨어져 있는 네크로맨서를 향해 조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때마침, 근처에 있던 알파와 레딕은 케실리온에게 접근 하는 언데드를 부수며 지금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불쌍해지는 건 역시 저 녀석이군...’
움찔 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네크로맨서를 보던 레딕은 괴성을 흘리고 다가오는 언데드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그 표정은 더러운 물건을 만졌다는 듯이 역겨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 네놈은... 누구냐!”
“나? 실버 울프라고 해두지 크큭.”
케실리온은 자신을 향해 가리키는 네크로맨서의 앙상한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음성이 얼마나 들떠 있었던지, 케실리온의 얼굴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지루한 알람 마법을 거는 것 보다, 이렇게 전투를 하는 것이 케실리온의 체질이다.
“덤벼라! 네놈의 한계를 보여 다오.”
케실리온의 모습은 평범했다. 현신이라고 불리는 망토는 없었으며, 마검이라고 불리는 마령검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 그저 본신의 육체만이 자리에 남아 있었다. 오만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사이로 비치는 눈동자는 확신이 깃들어 있다.
간간히 비치는 햇빛에도 케실리온의 두 눈에 깃든 어둠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진정한 마룡의 눈동자다!
실버 울프(Silver Wolf)와 죽음의 기사
케실리온과 네크로맨서는 적당한 간격을 벌리고 마주섰다. 거리를 벌린다고 해봐야 아비규환으로 변해 버린 산 중턱이었기에 5미터를 넘기지 않았다. 아무튼, 네크로맨서는 로브의 소매에서 해골모양의 매직스틱을 꺼내 들고 있었다.
이곳의 마법사들은 모두 60센티미터 정도의 스틱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았다. 물론, 전투에서 사용하기 편한 스틱이 마법사들에게 유용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무게와 증폭력을 따진다면 스틱이 가장 좋은 지팡이에 들것이다.
후우웅!
녀석이 쥐고 있는 매직 스틱에서 검은 기류가 뿜어졌다. 앙상한 오른손에 움켜쥔 매직 스틱은 케실리온을 가리키고 있었고, 왼손은 자신의 심장을 감싸고 있었다. 두 무릎은 살짝 구부리고, 오른발과 오른 어깨를 앞으로 내밀어 마법을 펼치기 쉬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케실리온과 마주하는 몸의 면적을 최소화 하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담겨 있는 행동이었지만, 모든 곳이 약점으로 비치는 케실리온에게는 그저 허튼 자세로 보이는 자세였다. 한 동안 서로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던 두 사람 중에 먼저 움직인 것은 네크로맨서였다.
“카악!! 커스 페럴라이즈(Curse Paralysis)!!”
파파팍!
앙상한 손목이 보였다. 마치, 뼈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확실히 살가죽이 비치는 모습이다. 앙상한 손목을 타고 흘러나온 마력은 매직 스틱을 통해 발현되었다. 검은 빛줄기가 케실리온에게 날아들었다.
그런 마법에 케실리온은 왼발을 움직였다. 왼쪽으로 살짝 비껴나며 오른손을 휘저었다. 무슨 보법을 펼치는 것도 아니건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에 로이젠은 두 눈을 껌뻑 거렸다.
바로 코앞까지 닥친 마법을 피하기는커녕 앞으로 더 다가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놀라운 그 자체였다. 오른손을 타고 흐르는 네크로맨서의 마법이 조금씩 튕겨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무브 매직(Remove Magic)!”
케실리온이 펼친 것은 뜻밖의 마법이었다. 디스펠 매직도 아니었고, 리무브 매직! 상대의 마법을 되돌리는 상급 마법에 속하는 것이다. 없애는 것보다 되돌리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에 상급 마법에 속한다.
다시 되돌아오는 마법에도 네크로맨서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예상한 것처럼, 몇 수를 내다보는 것 같았다. 확실히, 케실리온은 마법에 익숙하지 않았다.
무식하게 서클만 높을 뿐 마법의 활용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과 몸을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마법이라는 편법이 거부감이 드는 것도 있었다.
촤촤촥!
되돌아가는 마법의 파공음은 요란했다. 거기다. 케실리온의 마력까지 더해졌으니, 범위까지 넓어져 있었다. 이건 도무지 막을 방도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녀석은 차분하게 입을 열며 매직 스틱을 휘둘렀다.
“가로막아라! 본 월(Born Wall)!!”
창백한 빛과 함께 땅에서 솟구친 언데드가 역으로 날아오는 커즈 페럴라이즈를 고스란히 막아 버렸다. 그 언데드들은 뼈로 이루어진 스켈레톤이었다. 곧 케실리온이 쏘아 보낸 마법과 충돌했고, 본 월은 당장이라고 부서질 것처럼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느긋하게 몸을 사리고 기다릴 케실리온이 아니었다. 리무브 매직이 펼쳐지는 순간 뒤이어 앞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본 월 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그 순간! 네크로맨서의 반지가 빛을 발했다. 마법 아티팩트가 사용된 것이다.
“폭발하라! 본 익스플로젼(Born Explosion)!”
콰쾅!!
뼈의 벽이 검은 빛과 함께 폭발했다. 그리고 하얀빛의 뼈들은 케실리온을 향해 덮쳐갔다. 수많은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폭쇄하여 케실리온의 온몸을 뒤흔들고 있었다. 물론, 멀리서 가까운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언데드들은 물론 용병들까지 그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 모습에 네크로맨서의 로브자락이 움찔 거리며 위아래로 펄럭였다. 아마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크크큭... 어리석은 인간 녀석!”
본 익스플로젼에 케실리온이 당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화려하게 폭사되었기 때문에 케실리온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마지막에 검은 빛이 미심쩍었지만, 그 마법을 정면에서 맞고 살아날 녀석은 없을 것이다.
한편... 본 익스플로젼을 정면으로 받아낸 케실리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3~4서클로 녀석을 상대하자니 너무 벅찼기 때문이다. 적당히 어울려 주려고 했던 케실리온은 마음을 바꾸었다.
당하고 있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슷한 부류인 흑마법사에게 당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였던가! 1계에서 최고의 흑마법사라고 불리던 자신이다.
백마법사를 격퇴시킨 최고의 흑마법사! 아무리 마법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2계의 녀석이라고는 하지만, 케실리온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따위로....!’
케실리온의 목에 있던 ‘페덜의 돌’이 빛을 뿜었다. 은빛의 안개가 몰아치듯 온몸을 속박한 뼈의 파편을 향해 소리쳤다.
[사라져라!!]
용언이 터지자 본 익스플로젼은 힘없이 주위로 터져나갔다. 강렬한 은광(銀光)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촤촤촤촥!
강렬한 은빛의 섬광에 네크로맨서는 로브로 머리를 숙였다. 너무나 밝은 빛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움켜쥔 매직 스틱에서 검은 운무(雲霧)가 뿜어졌다. 주위를 감싸는 검은색 안개에 정신이 드는 것인지 침음 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다크니스(Darkness).... 크윽!”
스스스!
검은 안개가 주위를 감싸자. 용병들과 신성기사들은 주춤 거렸다. 어둠속으로 잠기는 언데드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어두운 곳이었다. 그런데 검은색의 안개가 더해지자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안개에 녀석은 안정된 목소리로 케실리온에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자신감을 회복한 모양이다.
“크크큭.... 크키키키! 키하하하!”
지이잉!
화아악!
네크로맨서의 바로 아래에 있는 발치, 알 수 없는 룬어로 그려진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몇 번 검은 빛이 깜박이기 시작하더니, 눈 깜작할 사이에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검은 안개가 사라져 버렸다.
“한수 있는 모양이지만... 크큭, 이걸 사용한 이상 몇 번이고 죽여주마!”
네크로맨서는 모든 언데드와 헬 하운드를 불러 들였다. 큰 마법을 사용할 것인지 언데드들이 케실리온을 지나쳐 네크로맨서의 앞으로 모여들자 땅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헬 하운드 역시 땅으로 꺼지기 시작하자, 용병들은 허탈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손짓 한 번에 사라지다니... 하하”
용병들은 끝난 싸움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입장에서는 더 큰 수를 꺼내 놓으려는 준비로 보였다. 케실리온은 녀석이 마법을 사용하기 전 없앨 마음을 품고 신형을 앞으로 날렸다. 이대로 녀석의 심장을 부술 작정이다!
단전으로부터 솟구치는 기운이 양손으로 모여들었다. 은빛의 휘강이 쳐지자, 케실리온의 손은 더없이 투명해 보였다. 소수마공이었다. 이대로 녀석의 심장은 얼어 버릴 것이다.
“그만 죽어라!”
슈우욱!
케실리온의 오른손이 출수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다가선다면 녀석의 몸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끝나 버릴 것이다. 오른발이 땅을 구르는 군간, 케실리온의 주먹은 녀석의 가슴으로 떨어졌다.
텅!
“아니!?”
예상과는 다르게 케실리온의 주먹은 이상한 막에 의해 튕겨나갔다. 마법을 펼친다면 마력에 의해 실드가 형성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술 자신이 있었던 케실리온은 예상외의 결과에 눈을 부릅떴다.
때마침, 녀석의 발치로부터 솟구치는 검은 물결에 급히 케실리온은 뒤로 물러났다. 예상외의 강렬한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개! 헬 하운드와 무한의 육체인 언데드를 바치니! 그대! 죽음의 기사여 깨어나라!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히히히힝!!
네크로맨서의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룬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에서 거대한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검은 흑마와 흑기사가 나타났다. 두 개의 뿔 투구를 착용하고 있으며, 갑옷의 어깨에는 뾰족한 가시가 박혀 있었다.
말의 안장을 제외한 부위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돋아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다가가기 힘든 모습이었다. 투구를 통해 뿜어지는 날카로운 안광은 용병들과 신성기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케, 케실리온님! 데스 나이트입니다.”
알파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케실리온은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레딕과 알파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데스 나이트가 어쨌다는 것인지 모르는 케실리온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평범한 데스 나이트가 아닙니다!! 마계의 데스 나이트! 상급 마물과 수백의 언데드를 바치면서 까지 불러낸 데스 나이트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저 네크로맨서의 마법력이 7서클에 달한다는 말임과 동시에 데스 나이트의 힘은 소드 마스터 이상입니다!”
보통 네크로맨서들은 기사의 육신을 이용해 데스 나이트를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하급 데스 나이트를 만드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물론 소드 마스터의 육신을 이용해 만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 육신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마계의 데스 나이트는 다르다. 제물! 제물만 있다면 얼마든지 소환해 낼 수 있는 것이 데스 나이트다. 마족보다 쉽게 소환에 응하는 존재 역시 데스 나이트! 거기다 무력까지 강하니 네크로맨서들이 선호하는 소환물이다.
히히힝!
%3C네...가...날...불...렀...는...가...!!!%3E
“마계의 기사여! 상급 마물 헬 하운드와 300의 언데드를 바치겠으니 저들을 없애 주시오! 크크큭!”
%3C좋...다...!%3E
케실리온과 알파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녀석들의 계약은 성립되어 버렸다. 쉬운 계약 조건에 레딕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원래부터 저런 녀석들이었다는 생각에 머리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마계에서 데스 나이트의 숫자는 극히 적다. 마왕의 군대라고 불리는 데스 나이트를 제외하고는 마계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데스 나이트다. 아마 저 녀석도 4대 마왕의 기사인 것이 분명했다.
%3C나... 북...마...왕...벨즈...비트..님...의...기...사!... 계...약...을...이...행...하...겠...다!%3E
뚝뚝 끊기는 목소리에 용병들은 얼굴을 구겼다. 녀석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마기가 주위로 몰아치자 모두들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알파의 말을 들어보니, 녀석들은 최소 소드 마스터였다.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신성기사들과 용병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크크큭, 유색의 비드를 넘겨준다면 생각을 바꾸지 키키킥!”
“유, 유색의 비드가 뭐요...!”
로이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데스 나이트가 내뿜는 살기는 엄청났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울리는 심연의 두려움에 눈가에는 물기가 찔끔 흘러 내렸다. 그건 모든 용병들과 신성기사들도 마찬가지다.
“내 놔라! 어차피... 뺏어 가면 그만이다... 키키키”
네크로맨서의 말에 용병들은 마차를 돌아봤다. 빼앗길 것이라고 해봐야 마차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마차에 뭔가 비밀이 있다는 생각에 용병들은 앤더슨을 노려봤다.
“저 마차에 뭐가 들어 있소! 기사양반!!”
헬씨였다. 참기 힘든 분노를 참고 있다는 듯이 볼이 씰룩 거리고 있었다. 분명, 마차 안에는 트롤의 피가 들어 있어야 한다. 만약 트롤의 피가 아니라면 계약 위반은 물론, 의뢰수행의 의미가 사라진다!
“아...아아! 그것이...”
“우릴 속였어! 이게 무슨 수송 의뢰인가! 이런 내용은 없었다고!”
앤더슨의 주춤거림에 용병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위험한 의뢰를 한두 번 맡아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마물을 상대 했어야 하는 의뢰는 없었다. 처음 보는 적과 처음 상대해보는 언데드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욱이 속아서 의뢰를 받았다는 생각에 그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만! 속았다 할지라도 의뢰를 받았다. 신용은 용병의 생명이다.”
“아니, 단장! 화도 안 나시오! 죽은 동료 만해도 두 자리 숫자요!”
쾅쾅!
용병들은 답답한지 가슴을 몇 차례 두들겼다. 그것도 참을 수 없는 것인지 애꿎은 땅에다 발길질을 가했다.
“동료가 죽었다는데 화가 안날리가 없다! 하지만! 우린 의뢰를 받았다!”
“아아... 단장!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이런 거짓 의뢰에 신뢰가 필요하겠소! 속인 건 저쪽이오!”
용병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속았고, 동료가 죽었다. 아침까지 만해도 같은 밥을 먹고 떠들었던 동료가 죽었다. 이건 참을 수 없는 분노였고 치욕이다. 거짓 의뢰에 이정도로 줄어버린 실버 울프에 모두들 침울해졌다.
그것이 다, 신성기사들 탓이라고 생각하니 적대감이 일렁이는 것은 당연했다.
“후... 드래곤 하트였네! 신탁을 수행하기 위해!”
앤더슨의 말에 가장 반가운 표정을 짓는 것은 네크로맨서였다. 드래곤 하트! 이것이 바로 유색의 비드다. 마차 한곳에 분명 유색의 비드가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비밀을 말했음에도 용병들의 화는 누그러들 기미가 없었다.
“크큭, 데스 나이트여! 저들을 어서 없애시오!”
%3C알...겠...다!%3E
이제 필요 없어진 떨거지들을 제거 하라는 듯이 네크로맨서가 소리 높여 외쳤다. 이대로 모두 처리한다면 유색의 비드를 차지 할 것이 분명했다. 데스 나이트는 검은 흑검을 뽑아 들었다.
히히히힝!
말이 거칠게 소리를 지르고는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앞줄에 있던 케실리온을 공략하겠다는 듯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슈아악!
거친 파공음에 용병들과 신성기사들은 각자 무기를 고쳐 쥐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잘잘못은 살고 나서 해야 할 일이다.
“케실리온님!!!”
알파는 묵묵히 서 있는 케실리온을 보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의 적과는 다르게 질적으로 상대가 다른 녀석이다. 물론, 섀도우 로드라는 적도 있었지만, 그들은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자들!
적을 마주보며 싸우는 데스 나이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알파는 케실리온의 행동에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른 것이다.
“네놈이 그렇게 강하다고? 아직 모든 힘을 회복하지 못한 나의 힘과 너의 힘! 누가 더 강할까. 크큭!”
섀도우 웨폰(Shadow Weapon)!!
케실리온은 아직 불완전한 자신의 힘을 느끼고는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섀도우 웨폰! 이곳에 잠들어 있는 마령검을 꺼내기 위해 케실리온의 손은 그림자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데스 나이트의 검이 케실리온의 목으로 떨어졌다.
팟! 캉!
순식간에 당도한 데스 나이트의 검에 케실리온은 마령검을 빼듦과 동시에 목을 보호했다. 팔로 저려오는 강한 충격에 돌연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호승심이다.
이건, 카논 공작과 기사단장인 라일과 싸울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살기부터 차원이 다른 존재였기 때문에 케실리온으로써는 즐거운 마음으로 검을 들었다.
“케실리온님! 검으로는 데스 나이트를 이길 수 없...!!”
“닥쳐라! 누가 누굴 이겨? 웃기지마라.”
케실리온은 알파의 다급한 소리에 데스 나이트의 검을 뒤로 튕겨냈다. 만만치 않은 공방에 데스 나이트는 말에서 내려와 지상을 밟았다. 갑옷에서 나는 쇠 마찰음에 맞추어 녀석의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좌우로 벌어졌다.
%3C죽...인...다!%3E
촤르륵!
땅으로 내려온 데스 나이트는 땅을 박차고는 앞으로 뛰어 들었다. 리드미컬하게 요동치던 칼날이 채찍처럼 휘어지더니 원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2계의 녀석 치고는 쾌검과 중검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녀석이었다.
거기다. 일정한 보법도 있는 것 같았기에 케실리온의 상대로는 적당했다. 케실리온의 경지는 소드 마스터의 최상급 정도에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초입이다. 한마디로, 현경에 막 접했다는 소리와 같았다.
이미 깨달은바가 많았기 때문에 어검술이나, 이기어검을 사용하는 데는 어렵지 않지만, 내공의 소비가 많았기에 자주 사용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이대로 상단전만 열린다면 심검과 같은 극 최상의 검술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아직도 멀고도 먼 일이다.
휘우우우우!
데스 나이트의 검에서 마기의 광풍(狂風)이 몰아치며 하늘로 치솟는다.
파즈즈즈즈! 콰르르릉!! 콰앙!
마치 태풍이라도 몰아치는 것처럼 요란한 노도성이 울린다. 그것은 마계의 우뢰! 녀석의 검에서 뿜어진 기세가 산 중턱을 요란하게 울렸다. 무시무시한 검은빛 뇌전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녀석의 몸을 덮쳤다.
번쩍!!
무채색으로 물든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소름끼치는 몽환적인 광경에 용병들과 신성기사들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짙은 회색빛 하늘이 우뢰와 방전을 하는 것처럼 데스 나이트의 몸에서 뿜어졌다.
%3C후후... 오랜만이군. 중간계라는 것이!%3E
녀석의 군마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없어져 있었고, 녀석의 두터웠던 갑옷은 헐거워 졌다. 그렇다고 온몸을 가리던 갑옷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딘가 모르게 여유가 넘치는 모습! 게다가 말투까지 온전했다. 아까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3C폭주를 쓸 줄은 몰랐지만... 네놈을 죽여주마!%3E
“폭주? 카논과 라일이 썼던 골드 브레스와 비슷한 건가..?”
케실리온은 일전에 겪었던 카논과 라일의 골드 브레스를 떠올렸다. 확실히 폭주기라는 것으로 들었다. 케실리온도 폭주기가 있다. 물론 그것을 다르게 불러 마령지기라고 부르지만, 육체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을 뿐!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3C그만... 죽어라!%3E
팟!
녀석의 신형이 사라졌다. 케실리온은 속으로 생각했다.
‘오른쪽? 아니! 왼쪽이다!’
%3C틀렸다! 죽어!%3E
슈욱!
녀석의 검이 케실리온에게로 날아들었다! 날카로운 어둠의 마기로 이루어진 오러 블레이드가 차갑게 빛을 뿜었다.
실버 울프(Silver Wolf)와 죽음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