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화 (179/269)

스악! 스슷!

데스 나이트가 착용하고 있던 견장은 분명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노칠 리가 없는 케실리온이다. 설사, 맨살이라고 할지라도 어깨가 벌어지는 방향을 보고 예측하는 것으로 적의 공격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검과 검의 싸움과 주먹과 주먹의 싸움은 별 차이가 없다. 누가 더 상대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가를 놓고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검에 얼마나 기운을 주입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당한 기량과 경험의 차이가 그런 관찰력에서 비롯된다. 그런 것을 따지자면 분명 케실리온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의 검에는 특별한 형(形 : 형태)이 없었다.

안개와 같은 검이었다. 왼쪽이라고 생각했던 검은 안개로 흩날리며, 오른쪽으로 날아들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케실리온은 왼손을 사용해 소수신장을 날렸다.

파팍.. 텅! 샥!

싸움에는 예측불허의 순간이 있듯이 케실리온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검의 싸움이라면 어떤 적이라고 이길 자신이 있는 케실리온이다. 검만 잡은 지가 벌써 몇 백 년이 지나도록 수련한 성과다. 아니 경험! 

칼 밥을 몇 백 년이나 먹은 만큼 어디를 공격해야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케실리온은 순간적으로나마, 소수신장으로 데스 나이트의 검을 튕겨 낼 수 있었다.

검은 안개와 같은 오러 블레이드를 정확히는 처 낼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목으로 떨어지던 검을 막아냈다.

스윽...

“대단하군. 처음부터 피를 보다니 말이야.”

케실리온은 스치듯 지나가듯 상처를 내고 지나간 녀석의 검을 쳐다봤다. 완벽한 흑검(黑劍)이었다. 목에 생겨난 작은 생체기에서 붉은 피 줄기가 가슴으로 흘러 내렸다. 그 피를 왼손으로 쓸어 넘긴 케실리온은 무릎을 살짝 굽혔다.

터벅... 터벅...

케실리온은 마영보((魔影步)를 밟았다. 왼발을 바닥에 살짝 끌면서 먼저 옮기고, 오른발이 뒤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데스 나이트의 주위를 빙글 빙글 돌았다. 아주 천천히, 그러면서 마령검에 기운을 살짝 모았다.

케실리온의 발걸음을 제외하고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산 중턱에는 근 60정도의 건장한 용병과 신성기사가 있었지만,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는 상대였기 때문에 케실리온의 발걸음은 명확하게 들려왔다.

바닥을 끌면서 나는 소리만이 주위를 울리고 있었고, 간간히 데스 나이트의 갑옷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윽, 스스슥!

끼릭.. 끼익

케실리온의 보법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순간 바닥을 끌던 발이 딱 멈춰 섰다. 적당한 크기의 검에서 미약한 기운이 흘러 넘쳤다. 그것을 시작으로 출렁이는 케실리온의 기운은 은빛의 섬광이 터졌고, 데스 나이트의 갑옷은 거짓말처럼 기척을 숨겼다.

은빛으로 발광하는 검의 기운이 데스 나이트를 향해 떨어졌다.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기 때문인지 그 모습을 본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본이라고 해봐야, 빠르게 지나간 잔영의 흔적을 봤을 것이다.

스악!

뒤늦게 터지는 검의 파공음에 용병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냥 마법사라고만 알고 있던, 케실리온이 저 정도의 검을 구사하는 고수라는 것이 충격인 모양이다. 그리고 저렇게 날이 잘선 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레종 여행자의 집’에서는 나이프를 이용해 자신들의 단장을 격퇴시켰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마법의 영향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신성기사들의 표정은 더 가관이었다.

그냥 3서클 정도의 마법사로만 여겼던 케실리온이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는 모습이 충격으로 받아 졌던 것이다.

“낙(落)!!”

케실리온의 입에서 터져 나온 기합과도 같은 소리에 데스 나이트는 본능적으로 검을 우로 틀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이 고스란히 녀석의 검과 맞부딪치겠는 가! 데스 나이트의 옆구리를 치고 가던 검은 용이 하늘로 승천하듯 몇 번 부르르 떨고는 데스 나이트의 목을 노렸다.

우우웅!

케실리온의 빠른 칼부림에 주위의 공기가 공명하는 것이 귀곡성(鬼哭聲 : 귀신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워낙 빠른 칼놀림이었기 때문인지, 데스 나이트의 움직임이 뚝뚝 끊어졌다.

그 순간 케실리온의 검이 데스 나이트가 착용하고 있는 갑옷의 목 부위에서 날카롭게 뻗어 있는 세 개의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히는 소리가 주위를 진동 시켰다.

‘꽈과꽝’거리는 커다란 굉음에 주위의 공기가 울리며 고막을 뒤흔들었다. 때마침 바람까지 불어오니, 커다란 고목(古木)들의 잎이 파르르 떨리며 내는 자연의 소리에 데스 나이트의 몸은 앞으로 기울었다.

쿵!!

케실리온은 처음의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다만 데스 나이트가 방향을 바꾸어 대지에 몸을 뉘었다는 점이 바뀌어 있을 뿐이다. 데스 나이트가 쓰러지며 내는 소리는 빈 깡통이 바닥을 뒹구는 소리와 비슷했다.

%3C카아아아%3E

%3C...........%3E

속이 빈 갑옷이었던지 속은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명도 아니요. 갑옷이 부서지는 소리도 아니었다. 뭔가 분노에 찬 소리 같았지만, 금방 그 소리는 침묵했다. 단 일수에 정리된 데스 나이트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용병들과 기사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옛 전설이나, 신화로 등장하는 언데드를 만났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기사를 이긴 장본인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케실리온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목을 쓰다듬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목이 쓰라린 것이 분명했다.

“뭘 그렇게 보고 있나.”

“저... 저저!”

케실리온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한 로이젠은 입만 뻥긋 거리고 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인 분명한데 못 볼 것을 본 것인지 놀란 것인지 말이 제대로 튀어 나오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케실리온님!!!”

용병의 행태를 지켜보고 있던 케실리온은 멀리서 들리는 알파의 다급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귓가로 들려오는 선명한 소리!

끼익...

갑옷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케실리온은 다시 한 번 검을 세웠다. 거기다 알 수 없는 마기가 치솟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안 그래도 생명체가 가지고 있어야 할 생기가 없었기 때문에 녀석의 움직임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녀석은 그저, 물건 혹은 인형 같은 녀석이다. 때문에 저 갑옷이 없었다면 꼼짝 없이 뒤치기(?)를 당했을 것이다. 

%3C대단한 검술! 그대 진정한 기사! 정식으로 상대하겠다.%3E

데스 나이트의 말에 케실리온은 살짝 긴장했다. 아까도 그랬지만, 녀석에게서 호승심이라는 것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거기다. 아까의 폭주기 같았지만, 몸에서 뿜어지는 마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갑옷을 타고 하늘을 향해 뻗어갔다.

%3C데스 이밋(Death Emit)!!!%3E

죽음의 기운을 방출하듯 데스 나이트의 갑옷 사이사이로 검은 기운이 뿜어졌다. 그리고 주위로 풍기는 스산한 살기가 한층 더 짙어 지기 시작하더니, 녀석의 눈동자가 붉게 빛을 뿜었다.

무럭무럭 치솟는 살기에 케실리온은 주위를 힐끔 거리며 쳐다봤다. 레딕은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지만, 알파는 두려운 듯 몸을 떨고 있었다. 여기에서 무력의 차이가 확실해졌다. 아직 제대로 싸워 보지는 못했지만, 레딕 역시 숨기고 있는 한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버 울프, 흩어져라. 여기 있다면 죽을 지도 모르니!”

“무, 무슨... 소리입니까. 케실리온님!”

로이젠은 짐짓 모른다는 듯이 케실리온에게 반문했다. 이미 용병으로써 위험을 감지한 상태였다. 이곳에 있다면 죽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은 아까부터 들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용병들이 누구인가! 용맹하다는 실버 울프의 전사들이다!

“웃기지 말고, 빨리 다음 도시로 향해라...”

“하, 하지만!”

“수장의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저기 있는 용병을 보고 잘 생각해라.”

케실리온은 두려움보다도, 데스 나이트가 내뿜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몸을 떠는 용병들을 쳐다봤다. 케실리온 자신도 몸의 곳곳에서 찌릿찌릿 거리는 느낌은 받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여유가 넘치는 것은 확실하게 녀석을 이길 수 있다는 장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지키면서 한다는 것은 어렵다. 자신은 누군가를 지키는 것보다. 자신을 지키며, 당하기 전에 먼저 치는 것! 이건 1계에서의 약속이다. 선과 악을 선택하는 것처럼, 케실리온은 악을 선택했다. 누가 죽든 상관없다. 자신이 우선시 되는 것!

이기적이다고?

웃기지마라! 이것이 인간이자 마룡의 본능!

“지금 안 간다면... 데스 나이트의 손에 죽는 것보다... 내손에 먼저 죽을지도...”

케실리온은 단전에 잠들어 있는 기운을 끌어 올렸다. 하단전에서부터 솟구치는 강맹한 기운이 세차게 기맥을 타고 흘러 넘쳤다. 순행과 역행의 반복! 매끄럽게 움직이는 기운의 유동에 케실리온은 검을 앞으로 뻗었다.

“상대해주마!”

“그, 그럼 다음 도시에서... 피아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다음 도시가 피아트인 모양이다. 아무튼, 로이젠의 수긍에 용병들은 바삐 말에 올라타거나 마차를 타고 산 중턱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한스 일행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용케 5명 모두 무사한 모양이다.

“무슨! 데스 나이트여! 저들이 끌고 가는 마차를!”

%3C닥쳐라... 흑마법사여. 계약의 조건은... 적의 말살! 첫 번째 목표를 상대중이다.%3E

네크로맨서는 다급한 마음에 데스 나이트를 부르고 있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케실리온을 제1의 목표로 지정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산 중턱에 위치한 공터는 케실리온과 알파, 레딕 그리고 데스 나이트와 네크로맨서만이 남게 되었다.

“나도 진심으로 상대 해야겠지? 쿠쿡... 현신!!”

케실리온은 붉은 눈을 부릅뜨고 있는 데스 나이트를 향해 웃으며 소리쳤다. 이미, 신성기사가 빠져 나간이상, 마기를 숨길 이유가 없었다. 차갑게 흩뿌리는 달빛이 케실리온을 반겨주듯 냉마기가 뿜어졌다.

마령지기! 2계의 말로는 폭주라는 것이 터지자, 케실리온의 두 눈은 은빛으로 물들었다. 거기다. 검은 색의 망토가 등 뒤에 떡하니 생겨났고, 하나하나 문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문양이 생겨나자, 케실리온은 망토 자락은 뒤로 살짝 쓸어 넘겼다.

펄럭!

“지금 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마기와 마기의 격돌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세 명의 방관자, 알파와 레딕 그리고 네크로맨서는 묵묵히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미묘한 조합에 어색할 법도 하건만, 누구도 앞으로 나서는 이는 없었다. 자연히 방관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다.

%3C싸우기에는 좋은 날! 스칼렛의 빛이 성하니! 힘이 솟는 구나!%3E

팟!

데스 나이트는 앞으로 달려갔다. 붉은 달빛을 받아 서 인지, 아니면 본신의 능력이 강한 것인지 아까보다 배는 빠르기의 공격수법이다. 대기를 진동시키는 파공음과 두 검의 격돌음이 울려 퍼졌다.

꽝... 차장... 창... 챙!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다. 마치, 공성용 포석이 성에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그 커다란 굉음이 산을 뒤흔드니, 잠을 자고 있던 새들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파드득 거리는 날갯짓 소리를 시작으로 케실리온의 검은 쾌검에서 살검으로 변했다.

파다닥!

“살(殺)!!”

어두운 공간은 케실리온에게 지장이 될 것이 없었다. 검은 지체하지 않고 목과 가슴, 옆구리 양팔 등 사혈이란 사혈을 가격하기 위해 날아들었다. 은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모든 것을 소멸 시킬 기세였다.

실버 울프(Silver Wolf)와 죽음의 기사

살(殺)! 케실리온을 지존으로 끌어 올린 최고의 절기였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와 깨달음으로 가다듬어진 무살(霧殺)이라는 오의가 있었지만, 지금으로써는 그 절기를 펼쳐낼 재간이 없었다.

육체와 정신이 합일 하는 순간, 케실리온의 모든 힘은 깨어날 것이다. 지옥에서 깨달은 만검의 제 2장을 말이다. 정형화 되어 있지 않은 절기, 특별한 초식도 없지만, 어떤 검술보다 뛰어난 검이 제2장이다.

아무튼, 케실리온의 검은 데스 나이트의 갑옷과 갑옷을 잇는 마디를 향해 날아갔다. ‘쉬익’거리는 파공음도 미약할 정도로 케실리온의 검은 은밀했다. 간간히 보이는 검로가 검의 방향을 알려줄 뿐이었다.

스슷... 쉬익!

케실리온의 검은 빨랐다. 빨라도 너무 빨라 거의 눈으로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어깨와 팔꿈치, 손목이 축이 되어 케실리온의 검은 수십 갈래로 기운을 뿜었다. 그저 빠르기만 하거나, 변화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일검(一劍)마다 오롯이 체중을 실었고 기운을 실었다.최단거리를 택해 날아오는 검로에 시선을 빼앗긴 데스 나이트의 갑옷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캉!

파캉!

갑옷과 검이 부딪히자, 불똥이 튀기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마치 검을 다듬는 중이라는 듯이 망치질 소리와 비슷했다. 공격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이 만만치 않은 것인지 아니면 데스 나이트의 갑옷이 특이 한 것인지 한 치의 망설임 없는 수법으로 공격하는 케실리온의 검이 막히고 있었다.

갑옷의 최고 약점인 이음새를 공격했지만, 녀석의 갑옷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가히, 최고의 무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 무거운 갑옷이라는 패널티가 있음에도 케실리온의 속력을 따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케실리온님! 데스 나이트의 갑옷은 특별합니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해야만 부서집니다. 거기다. 폭주 상태에서 적월인 스칼렛이 떴으니 그 방어력은...”

뒤늦게 케실리온에게 데스 나이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대강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녀석과의 싸움에 집중할 뿐이다. 실상, 케실리온의 검이 먹혀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는 데스 나이트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걸음이 워낙 미세해서 알아 볼 수는 없지만, 싸우고 있는 당사자들은 잘 알고 있다.

%3C파멸의 검! 데스 블로우(Death Blow)!%3E

처음으로 데스 나이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잠깐 알파의 소리에 주춤 거린 것이 화근 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케실리온의 의도된 것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공격만 한다면 재미없는 싸움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공격이 막혔으니, 상대의 공격도 막아 봐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의 검을 견식 하는 것도 발전을 의미한다. 검의 고수가 모여 있다는 지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케실리온이다.

더 강한 검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더욱이, 2계에서 검으로 당해 낼 자가 없다는 데스 나이트였기에 케실리온은 흥분된 마음으로 데스 블로우라는 검술을 주시했다.

만검의 살(殺)과 비슷하게 들어오는 초식에 케실리온은 살짝 긴장했다. 녀석의 검은 치명적인 곳을 향해 찔러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옥과 2계의 관점이 다른 사혈이지만, 충분히 위험한 곳이었다.

지옥의 검은 인간을 중심으로 한 검이었고, 녀석의 검은 인간은 물론, 몬스터에게도 적용되는 치명적인 곳이다. 특별히 사혈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잠시 무력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대표적으로 쇄골 쪽에 있는 중부혈이라는 곳을 당한다면, 검을 잡은 손에 힘이 풀리며 방어를 하지 못하게 된다든가. 허벅지 쪽에 있는 풍사혈을 중심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녀석의 수법은 실전을 통해 얻어진 것 같았다.

푸사사삭!

단 일수에 수십 개의 오러 블레이드가 번쩍 하더니, 케실리온을 향해 덮쳐왔다. 피할 곳은 없었다. 데스 나이트의 검은 앞과 뒤 그리고 까지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실리온은 데스 나이트를 향해 신법을 펼쳤다.

미약하게나마 호신강기를 펼쳤지만 녀석의 데스 블로우라는 기술을 막기에는 약간 모자란감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번 수로 녀석에게 커다란 데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격의 순간 녀석에게는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탁!

푸슉! 주르륵!

지면을 살짝 박찬 케실리온은 마영신법(魔影身法)을 밟았다. 앞으로 쭉 뻗어 나가는 신형으로 녀석의 오러 블레이드가 케실리온의 허리를 관통했고,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케실리온의 신형은 멈추지 않았다.

옆구리와 얼굴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가 하늘로 치솟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 된 것처럼, 케실리온의 피는 한줄기 방울이 되어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케실리온의 검에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어렸다.

쿠아아앙!

대기를 찢어발기듯이 무식하게 앞으로 솟아난 케실리온의 오러 블레이드가 데스 나이트의 이음새 사이를 뚫고 갑옷의 안으로 들어갔다. 

“만검... 1장 2초 파(破)!!!”

케실리온의 거친 소리에 데스 나이트는 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케실리온의 검에는 착(着 : 붙다.)이라는 수법으로 녀석과 갑옷과 검을 결합 시킨 것이다. 보통 검과 검에 사용되는 수법이지만, 이처럼 상대를 묶어 두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이 방법의 대처법을 아는 자라면 금방 풀려나겠지만, 2계의 존재들은 이런 생소한 수법의 대처법을 알 리가 없다.

쿠아앙!

케실리온의 검이 이음새를 통해 기운이 폭사되었다. 만검의 파! 검의 기운을 한 점으로 뭉쳐 한꺼번에 폭사시키는 기술로 찌르기 공격이다. 케실리온의 검중, 패도 적이고 무거운 한수였다.

데스 나이트의 갑옷을 통해 뿜어진 커다란 기파에 산의 흙바닥에서 자욱한 먼지가 치솟았다. 케실리온의 시야마저 가릴 정도로 자욱한 연기에 케실리온은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 정도로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3C어떻게 알았지...? 허점을...%3E

녀석은 적잖게 놀란 모양이다. 데스 나이트가 공격하는 순간, 이음새가 조금 벌어진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수와 고수의 싸움에서는 작은 빈틈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만다.

%3C그 누구도 나의 갑옷을 뚫은 적이 없다. 나의 검마저!%3E

“웃기지마라. 내가 이기지 못할 적은 없다.”

케실리온은 녀석의 오만함에 비웃음을 날렸다. 오만함은 오직 강자가 가져야 하는 것이다. 오직 자신! 그 누구도 오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에 떨고 눈치를 살펴야 한다! 케실리온은 볼을 타고 흐르는 피를 살짝 쓸어 넘겼다.

간만에 생긴 생체기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정도의 공방을 펼쳐 본 것이 얼마 만인가! 확실히 녀석이 오만할만했다. 물론, 케실리온의 힘이 반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상 만검의 2장을 펼치지 못하는 커다란 패널티가 크게 작용했다.

거기다. 의지를 한껏 먹어야 할, 검에는 상단전이라는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너무나 큰 패널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녀석에게도 어느 정도 패널티가 있을 것이다.

검이 향하는 방향을 보건데, 눈과 마음을 그곳을 향했지만, 몸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덜컹...

녀석이 움직이자 아까와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이음새 부분이 파손되었기 때문인지,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물론, 케실리온은 의지로 상처에 대해 잊고 있었기 때문에 움직임에는 큰 지장이 없었지만, 계속된 출혈 덕분에 마음 한구석은 상처로 향해 있었다.

%3C이번엔 틀릴 것이다!%3E

녀석이 취한 자세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틀린 자세를 취했다. 가볍게만 느껴지던 자세가 돌연 무거운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움직임도 빠르지 않고 느리면서도 진중했다.

신중하게 거리를 좁혀 들어 온 데스 나이트는 오른발을 크게 들어 올렸는데, 다음순간 크게 내딛으며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쿵!

산이 울리듯 둔중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갑옷의 무게가 그대로 실린 검이 곧장 앞으로 떨어졌다.

‘우웅’거리는 데스 나이트의 검이 마치 공기를 떨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검에서 무슨 공명음이라도 되는 듯이 몇 차례 빛과 울림이 몇 번 되더니, 커다란 기파가 케실리온에게로 몰렸다.

상당한 거리를 벌리고 있던 알파와 레딕이 들을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다. 아무튼, 데스 나이트가 펼친 것은 소위 검경(劍經)이었다. 발경과는 또 다른 것이지만, 검을 통해 상대의 검을 파괴한다든지, 찌르지 않고도 충격파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건, 지옥에서도 흔히 사용했던 기술로 고수들도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다.

%3C전률의 검! 오스모틱(Osmotic)%3E

녀석의 기합성을 시작으로 케실리온도 무시하지 못할 기파가 전해져왔다. 이건 검경과도 다른 수법이다. 이런 생소한 기술에 케실리온은 눈을 땅으로 향하게 하고는 그대로 마령검을 땅으로 찔러 넣었다.

물론, 하늘로 피한다거나 회피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녀석의 뒤이은 자세가 심상치 않았다. 끌어 치듯 검을 가슴 쪽으로 당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하늘과 땅을 동시에 공격하겠다는 심산이다.

‘행동을 보건데, 땅에서 튀어 오르는 수법이다. 하늘로 피하는 건 자살행위. 그렇다면...’

“파(破)”

케실리온이 선택한 것은 녀석의 기운과 응수하는 것! ‘공격이야 말로 최고의 방어다.’라는 말이 있듯이 케실리온 역시 그 방법을 택했다. 공격에는 공격이다. 마냥 피하기에는 케실리온의 자존심이 상했고, 전략상 피한다면 또 다른 수법으로 공격할 것이다.

이렇게 몰리는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즐거운 느낌도 살짝 들었다. 자신의 절기를 펼칠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것만큼 즐거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여서 연마하고 갈고 닦은 절기를 가지고 있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절기를 펼쳐 낼 상대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저 단순한 필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쿠콰콰쾅!

땅이 폭사하듯 점점 폭사되어 파편이 튀는 땅바닥에서 케실리온의 기운이 다시 한 번 폭사되었다. 케실리온의 중심으로 덮쳐오는 데스 나이트의 기파에 케실리온은 약간 긴장했다. 이대로 당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묘하게 등줄기에서 땀이 흥건히 고였다.

쿠앙!

케실리온의 바로 앞에서 폭사되는 데스 나이트의 기운을 보면서 케실리온은 만검의 파를 다시 한 번 사용했다.

“지금이다! 합!”

케실리온의 기합을 시작으로 만검의 파가 동시다발 적으로 뿜어졌다. 그 거대한 기류를 타고 흩날리는 먼지구름이 케실리온과 데스 나이트의 시야를 가렸다. 이미, 폭풍의 핵 속으로 들어온 케실리온은 녀석의 기운을 막아내고 있었다.

끝도 없이 몰아치는 녀석의 기운에 케실리온의 정신력은 극에 달해 있었다. 조금만 허튼 생각을 한다면 녀석의 기운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생길 것이다.

콰앙! 쾅쾅!

두어 차례 더 폭음이 들렸을 까? 데스 나이트의 기운도 멈춰 버렸다. 약간 안심하고 있던 케실리온은 먼지를 뚫고 찔러오는 데스 나이트를 보며 마령검을 치켜들었다. 뱀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찔러오는 데스 나이트의 검을 바라본 케실피온은 땅을 박차며 검을 정면으로 향하게 했다.

찌르기로 응수한다면 케실리온도 찌르기였다. 그 숨 막히는 상황에도 힘든 신음 한번 내뱉지 않은 케실리온은 온 정신을 마령검으로 집중시켰다.

스앙...

아련하게 들려오는 각각의 검이 한 점에 만났다. 케실리온과 데스 나이트는 스쳐지나가듯 검을 찔러 넣었고, 살짝 무릎을 굽혔다. 각자, 등을 돌린 체, 먼지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때마침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먼지는 씻은 듯이 날아 가 버렸고, 새벽을 알리는 태양이 산을 타고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휘이잉~

그 싸늘한 가을의 공기가 케실리온의 상처로 들어갔다. 태양은 강산을 비추었다. 이윽고 어두웠던 곳은 산 중턱에 있던 이들에게 휘광(輝光 : 찬란한 빛)을 뿜었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휘잉~

“큭...”

다시 한 번 불어온 바람에 케실리온은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입으로 흘러내리는 작은 선혈에 미간을 좁히면서도 바닥에 마령검을 더욱 깊게 꽂아 넣었다. 데스 나이트의 검에 확실히 당한 것이다. 

철렁.... 텅!

때마침 뒤에서도 들려오는 소리에 케실리온은 청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천천히 무거운 몸을 뒤로 돌렸다. 몸을 트는 순간에도 고통이 엄습해왔지만, 상관없었다. 몸을 틀수록, 데스 나이트의 갑옷에서 흘러나오는 마찰음도 더해졌다.

타앙!

%3C저...졌다.%3E

쿵!

녀석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였다. 검을 쥐고 있던 오른쪽의 건틀릿은 완벽하게 부서져 가루로 흩날리고 있었고, 갑옷의 곳곳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또한, 붉게 빛을 내뿜던 안광은 희미해져 있었다. 

%3C마계...의...1...기...사...크리넥...스...그대...의...이...름...은...%3E

녀석이 사용했던 폭주가 풀린 것인지 말을 띄엄띄엄 말하고 있었다. 케실리온의 이름을 묻는 것인지 간신히 갑옷의 머리 부위가 약간씩 덜컹 거렸다. 그 곧은 모습에 케실리온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록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케실리온, 자신을 이정도로 몰아세운 녀석이다. 그 정도의 아량은 있었다. 물론, 조금만 몸을 비틀지 않았다면, 당했던 녀석은 자신이 될 것이다.

“케실리온이다.”

%3C케...실...리...온...! 다...음...에...또...검...을...섞..지...않...겠...나...%3E

“후후...좋다. 만날 수 있다면!”

쿠우웅!

케실리온의 웃음에 녀석의 갑옷이 몇 차례 부르르 떨려왔다. 그리고는 검은 먼지로 돌아가면 검은 문이 열리더니 그 먼지를 빨아 당겼다. 아마, 마계에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게이트로 사라졌다.

“크리넥스라고 했던가? 기억해두지... 큭!”

“케, 케실리온님!!”

뒤늦게 케실리온의 신형이 흔들리자 알파가 뛰어나왔다. 레딕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알파가 하는 짓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음습한 소리가 들려왔다. 레딕이 있는 곳의 근처였다.

“비록.. 오늘은 이렇게 돌아가지만... 언젠가 네놈의 목숨을 취할 것이다! 그리고 유색의 비드 까지!!”

“언제든지... 그때는 네놈을...큭, 없애 주마!”

케실리온은 검은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네크로맨서를 향해 능청스럽게 말했지만, 곳곳에 난 상처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터뜨렸다. 네크로맨서는 서있기도 힘들다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 데스 나이트를 소환한 덕분에 마기의 대부분을 소진했을 것이다. 때문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케실리온을 보고도 물러 날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튼 네크로맨서에게는 큰 오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케실리온을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칫...! 어둠으로.... 덤(Dum)!!”

네크로맨서의 주위로 어둠이 몰아닥치자, 놀랍게도 씻은 듯이 산 중턱에서 사라져 버렸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다. 녀석이 사라짐과 동시에 케실리온의 신형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물론, 알파가 부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파에게 기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케실리온의 정신이 끊어지기가 무섭게 망토와 마령검은 어둠으로 사라졌다.

“지금이... 기회군. 위험인자는 지금...!”

우웅!

갑자기 케실리온 쪽으로 걸음을 옮긴 레딕은 붉은 손톱을 꺼내 들었다. 다섯 손가락에서 붉은 빛이 50센티미터 정도 돋아나자, 그대로 케실리온을 찔러 버릴 기세였다.

“레딕... 더 이상 저의 마스터에게 접근한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어.”

“하하하! 농담도 모르는 게냐... 키워준 나에게 그런 살기라니.. 쿠쿡.”

알파의 서늘한 기운에 레딕은 블러드 네일을 해체하고는 멋쩍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로 싸운다면 레딕이 이길 수 있지만, 혹시라도 케실리온이 깨어난다면 다음 일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작은 일이 끝나고 알파와 레딕은 정신을 잃은 케실리온을 이끌고 피아트라는 도시로 향했다. 아마, 이런 속도라면 반나절 이상은 걸릴 것이다. 더욱이 부상당한 케실리온이 있으니, 하루를 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희열, 절망 그리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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