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269)

데스 나이트와의 전투가 끝난 지 꼬박 하루가 지난 때였다. 서둘러 피아트로 향한 실버 울프 용병단들은 이미 도시 내부에 위치한 여관에 자리를 잡아 우울한 표정으로 각각,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은 코로 들어가는 것인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도록, 모두들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그 많던 용병단원들은 반수 이하로 줄어 40정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끔 시선이 맞부딪히는 기사들을 보자면 분노가 절로 끓는 것인지 거칠게 고개를 홱 돌리고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기사들의 거짓의뢰로 동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같은 용병인 케실리온을 두고 도망치듯 이곳으로 빠져나왔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상심이 크겠습니다.”

“아... 한스라고 했던가?”

“예, 이름 없는 용병입니다. 그나저나... 케실리온님들은 무사한지...”

또르륵...

조심스럽게 로이젠의 테이블로 다가온 한스가 비워진 술잔에 술을 채웠다. 그 모습에 로이젠은 머리를 살짝 끄덕이고는 한스의 잔에도 술을 채워 넣었다. 맑은 소리를 내는 술이었지만, 로이젠은 얼굴을 구기고 술을 들이켰다.

“크으...”

안주 없는 술을 두세 잔 들이켰을까. 속이 타는 것인지 로이젠이 신음을 터뜨렸다. 심란한 마음을 대변한다는 듯이 그의 표정은 우울했다. 때마침, 한스가 적적하게 술을 들키고 있던 로이젠에게 말을 걸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은 풀린 상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 케실리온님의 도움을 받았다지?”

“예, 그렇습죠. 케실리온님이 아니었다면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이거... 우린 도움만 받고 사는 군. 그 강한 짐을 케실리온님에게만 짊어지게 했으니...”

로이젠의 말에 한스는 주억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에 로이젠은 덩달아 케실리온을 칭찬한다거나, 그의 무위에 대해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단장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용병들도 간간히 맞장구를 치며 우울한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했다.

“아무튼! 자네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군. 처음엔 마냥 경계심이 들었는데 말이야.”

“하하! 이거 영광입니다. 아무쪼록, 근 이삼 주 남은 기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아닐세. 어려울수록 돕고 살아야겠지. 여기서 삼일 정도 더 기다린 후에 출발할 생각이네, 분명 케실리온님은 이곳으로 오실분이야.”

“그렇고말고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한스는 로이젠의 비위며, 대화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한스의 꿍꿍이를 어느 정도 눈치 챘을 터였지만, 로이젠은 이미, 우울한 기분과 술기운에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다. 

근 일주 전부터 계략을 준비했던 한스에게는 큰 기회였다. 많은 변수가 있었지만, 이렇게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 한스였다. 이제 남은 것은 큰 기회! 한탕뿐이다.

“그럼 전, 동료들에게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게.”

한스는 2층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을 동료들 생각에 급히 자리를 떴다. 그의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들떠 있었다. 이것으로 술과 도박으로 날린 돈을 다시 회복하는 일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볼 살이 씰룩였다.

1층에서 벗어난 한스는 지체하지 않고 동료들이 있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구석진 곳으로 걸음을 옮긴 한스는 두세 번 문을 두들겼다.

똑, 똑똑!

“나다.”

문으로 들어선 한스는 쿰쿰한 사내가 풍기는 냄새에 얼굴을 찌푸렸다. 좁은 방에 4명이나 있으려니, 이런 냄새가 풍기고 있으리라. 아무튼, 한스는 사전에 오고간 이야기대로 먼저 질문을 던졌다.

“독은 구했어?”

“그게... 아직, 길드를 찾기가 여간 어렵잖아.”

“그걸 아직도 못 찾았다고?”

에휴...

한스는 한숨을 터뜨리고는 머리를 설래 설래 저었다. 분명 위치를 말해주었을 텐데, 그것도 찾아가지 못하는 바보 녀석들의 행태에 한숨이 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녀석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일정이 잡혔다.”

“그, 그럼!”

“그래, 어느 정도 실버 울프의 단장과 친해졌다고 해야겠지. 쿠쿡...”

잠시 웃음을 흘린 한스는 기대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들을 한차례 쭉 둘러봤다. 그 행동에 다른 녀석들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무슨 일이냐는 듯이 의문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좋아 하긴 이르지. 그 검은 머리가 돌아올지 안 올 지로 목표가 정해지거든.”

“그럼 목표가 둘?”

“당연하지 이 멍청한 녀석들!”

“다른 목표물은 뭔데 그럼.”

“그건...”

한스는 녀석들의 기대 어린 표정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녀석들이 발끈 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한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래곤 하트!”

“드래곤 하트?!”

“그래 드래곤 하트. 하프 드래곤을 팔아도 3만 골드였다. 그러니, 최소 1만골드 정도는 받아 낼 수 있을 걸? 네크로맨서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물건이니. 더 값질지도 모르지 후후” 

한스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드래곤 하트에는 많은 문제점이 많았다. 일단, 신전 측에서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과 정체모를 네크로맨서라는 거대한 적이 버티고 있다는 것! 그렇다고 케실리온이 살아온다는 장담도 없었다.

“위험하잖아 그거. 신전과 네크로맨서 둘의 적이 되고 싶은 거야?”

“전혀. 위험도가 클수록 돈은 더 많아진다는 것을 생각해야지. 아무튼 독이나 빨리 준비하도록 하자. 알겠어? 알았냐고!”

“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한스의 말에 마지못해 답하는 빈센트의 모습에 모두들 각자 머리를 끄덕였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돈을 벌어야 한다. 이번에 큰돈을 만진다면 노예상이나, 이런 위험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모두들 결심했다.

“아무튼, 각자 실버 울프와 가깝게 지내라. 그럴수록 성공확률은 높아지니까.”

“물론이지.”

한스는 다시 일층으로 내려갔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용병들은 물론, 기사들까지 친해질 것이다. 그리고 며칠 있으면 돌아올지도 모르는 케실리온들에 대비해, 강한 독을 준비해야 한다.

희열, 절망 그리고 죽음

어디든지 세상에는 이면이 있다. 양지와 음지! 살기 좋은 란델 제국이라 한들 예외는 아니었다. 양지인 세계가 있다면 음지가 있다. 그곳은 바로, 굶주림과 살인, 방관이 가득한 곳인 슬럼가의 일종이다.

“정말 찾기 힘들군...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는데.”

한스는 아까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슬럼가의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국의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는 추악한 곳이다. 길가에는 굶주리고 있는 거지들이나,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이리 저리 움직이는 꼬마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더러운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앞을 걸어가던 한스는 골목길 한구석에서 풍기는 찌를 듯 한 혈향 냄새를 맡고는 찌푸려진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위위위윙!

파리가 꼬이는 것을 봐서는 상당히 오래된 시체였다. 언뜻 보기에도 성인 남자의 몸은 핏덩어리처럼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날카로운 무기에 당한 것은 아니었는 듯, 허리를 기준으로 우악스럽게 뜯겨진 모습이다.

게다가. 죽으면서 눈조차 재대로 감지 못한 것인지 두려움에 놀라 커다랗게 뜨여있었다. 입에서는 붉고 검은 피가 흘러내려 굳어 있었다. 뜯겨진 허리 쪽에서 터져 나온 내장들은 이미 고양이나, 다른 종류의 동물의 먹잇감이 된 것 같았다.

“크큿... 뭘 그렇게 보지?”

잠시 시체에 넋을 잃고 바라보던 한스는 어디선가 들리는 늙은이의 목소리에 급히 표정을 고쳤다. 살짝 긴장감이 감도는 것이 여간 오금이 저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면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당혹스런 표정이 드리웠다.

“밑이다. 밑!”

“우악...!”

한스는 자신의 발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급히 작은 비명을 내지르고는 뒤로 물러났다. 웬 앉은뱅이 노인이었다. 허리를 굽은 것인지 머리를 제대로 들지 못한 완벽한 앉은뱅이다. 이 노인네는 팔아도 돈 한 푼 못 받을 관상이었다.

“이런 미친 노인네!”

“헐헐! 그래, 여긴 무슨 볼일이지? 양지의 인간이 올 곳이 못된다.”

한스의 대답에 노인은 크게 웃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한스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누구에게 독을 구하러 왔소! 라고 말할 처지가 되지 못 되기 때문이다. 이런쪽에 몸담고 있지만 한스도 슬럼가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곳이다.

“양지? 웃기지 마쇼! 아래 뵈도 엄연히 노예상이오.”

“오호... 그래서 노예라도 잡으러 왔나? 푸헐헐헐!”

“누가 값도 제대로 쳐주지 못할 노인네 따위를...”

한스는 노인네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노인네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가까운 위치에 있던 노인이 듣지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한스의 목적은 이런 노인네의 상대가 아니라. 독을 구하러 온 것이다.

“난 노인네랑 농담 따먹기 할 시간이 없소이다. 암살길드의 위치나 알면 말해주시오.”

“암살길드? 그게 무엇인고?”

“이 늙은이가... 미쳤나!”

슬슬 부아가 치미는 것인지 한스는 거칠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뒤에서는 ‘헐헐’거리며 웃고 있는 노인네가 뒤늦게 한스가 원하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망자의 골목으로 들어가게. 젊은이. 헐헐헐...”

노인의 말에 한스는 옆에 있는 골목을 힐끔 쳐다봤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운 공간, 거기다 꺼림칙한 시체가 있던 곳이다. 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 한스는 걸음을 멈췄다.

“겁나지? 돌아가. 암살을 의뢰하려면 그 정도의 담력은 있어야지.”

노인의 목소리가 느긋하게 변해 있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한스는 아무래도 저 노인네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에 까지 생각이 미쳤다. 저렇게 느긋하게 표정을 지을만한 것은 노인네가 암살길드로 향하는 길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증거다.

그 느긋한 모습에 오기가 생긴 것인지 한스는 시체가 있는 골목으로 성큼 성큼 걸음을 옮겼다. 너무나 큰 보폭이었기 때문에 걸음에 부자연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부자연스러움 때문이었던지, 한스는 몇 걸음을 걷지 못하고 시체 앞에서 걸음을 멈춰야 했다.

“뭐... 뭐야. 이 무거움은...?”

우웅!

어깨를 짓누르는 듯 한 중압감에 한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체 앞이었기 때문일까? 썩은 내가 코를 통해 폐부를 가득 채웠다. 아래로 향한 한스의 표정은 이루어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체의 얼굴과 몸이 무언가에 짓눌린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건 하루 이틀 방치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확실히는 알 수 없었지만,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두건으로 가려져 있었다.

“망자의 고통이다. 산자의 책임감. 그곳은 길드의 정문이다.”

뒤늦게 서서히 굽은 허리를 억지로 펴며 몸을 일으키는 앉은뱅이 노인네가 힘겹게 일어서고 있었다. 앉은뱅이가 아니었던지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었다. 그 부자연스러운 모습에 한스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다.

허리를 펴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노인은 한스가 있는 곳까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시체를 보며 걸 죽 한 소리를 내며 입을 오물거렸다.

카악!!

“퉷!”

누런 가래가 시체의 두건에 떨어졌다. 그 더러운 가래를 뒤로 하고 노인네는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져 버렸다. 뒤늦게 사라진 노인을 쫓아 걸음을 움직였지만, 평소보다 무거워진 몸의 무게로 인해 한스의 속도는 많이 떨어져 있었다.

거북이걸음이 이 정도였을까? 몸을 짓누르는 중력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생각으로는 벌써 저 골목 끝에 있을 길드로 가 있을 테지만, 입구에서 그렇게 멀지 않는 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뭐야! 이딴 무게감은!!”

한없이 느려진 걸음에 한스는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 노인네가 들을 리는 없었지만,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어두운 골목의 끝이 어딘지. 얼마나 걸어야 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도 엄습했다.

혹여, 그 시체처럼 말라붙어 죽으면 어쩌나? 라는 생각도 교차하고 있었다. 게다가. 곳곳에서 풍기는 진득한 혈향은 한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였다. 거기다. 비오듯 쏟아지는 이마의 땀줄기는 주체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검으로 어느 정도 단련된 한스였다. 거기다 최근 들어 검에 마나를 씌울 정도로 발전을 이룬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상태였기에 이런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중압감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가야하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인지. 남은 거리가 얼마인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한 시간을 가야할지. 일분을 더 걸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시각으로 보는 것과 감으로 따지는 것이 다르듯, 한스는 심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얼마나 불안에 떨며 걸었을까? 이미 탈진 지경에 이르렀던 한스에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스 스쿼드(Deat Squad)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한스는 무뚝뚝한 음성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있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누군가 한스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화아악!

갑자기 쏟아지는 빛줄기에 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검은 공간에서 벗어나자 환한 불빛에 눈이 절로 감긴 것이다. 그에 손을 잡아끈 사내는 한스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했다. 차츰 눈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자. 주위의 환경은 어떤 건물 안이었다.

그 기묘한 방법에 한스는 과연 암살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안은 어떤 기척도 없었고, 자신을 이끈 존재를 제외하고는 사람이라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지켜보는 시선만이 어디선가 한스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침을 꼴깍 삼켰다.

꿀꺽...

침을 넘기는 소리가 컸던지 건물 안이 울릴 정도로 생생하게 들려왔다. 건물안도 꾸불꾸불한 길로 되어 있는지 몇 분을 더 걸어서야 응접실로 보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다리십시오. 관찰이나, 시선의 유동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바닥만 보시길...”

그렇게 건방진 말을 내뱉고 사라진 녀석은 순식간에 기척을 지웠다. 이건 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공간이다. ‘망자의 길’보다는 아니었지만, 어깨가 무겁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닥을 하염없이 바라 볼 때 쯤, 누군가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도 느끼지 못했건만 나타났다는 생각에 한스의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시선을 앞으로 향해도 됩니다.”

뒤에는 여전히 안내했던 녀석이 있던지 무뚝뚝하게 말하고 있었고, 앞의 인물은 얼굴을 검은 두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녀석들은 모두 두건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와 만났던 암살길드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암살, 추적, 정보, 침투, 관찰 모든 것을 맡고 있소. 용건은?”

“흐음... 독은 구할 수 있소?”

“간접 암살인가? 어떤 종류의 독을 원하시오.”

담담하게 업계를 설명하는 앞의 검은 두건의 말에 한스는 독을 주문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두건 사내의 말에 당황한 것은 한스였다. 단순한 독을 간접 암살이라고 명명하는 저 모양새가 특이했던 것이다.

뭐 이런 업계에 있는 자라면 그렇게 해석 할 수도 있겠지만, 한스가 원하는 것은 암살이 아니라 생포다.

“상대를 무력하게 만드는 독이나, 잠에 빠지게 하는 독을 원하고 있소만...?”

“우리 데스 스쿼드는 죽이는 대만 중점을 두고 있소이다. 그런 독은 이곳에서 구하기 힘들 것이오.”

“그, 그런! 그럼 최대한 죽지 않는 선에서 상대를 무력하게 만다는 독은 있소?”

“암살에 필요한 페러록(Paterok) 뿐이오. 일단 먹는 다면 몸속의 마나를 흩어지게 하는 기능이 있소. 대개, 귀족들이 선호하는 암살 방식이지. 기사간의 결투에 종종 쓰이는 암살 방식이오.”

검은 두건이 말한 페러록은 일시적으로 몸속의 마나를 흩어버리는 무서운 독이다. 간혹, 귀족간의 불화로 벌어지는 기사간의 결투에서 쓰이는 독으로 상대 기사의 마나를 없앰으로써 편하게 처리하는 방식이다.

직접적인 암살을 할 때나 쓰이는 방법이기에 암살자들은 그렇게 추천하고 싶어 하는 암살방법이 아니었다. 물론 직접 복수하는 쾌거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이런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수면향을 취급을 안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극히 미량이라 길드에 들어오는 암살에나 쓰이는 물건이었기에 판매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페러록의 물량이 많다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비싸게 취급되는 물건이다.

“그럼 그것으로 하겠소.”

“페러록을 가져와라.”

뒤에 대기하고 있던 녀석은 발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그 페러록이라는 것을 가지러 간 모양이다. 두건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을 받고 있는 한스는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습니다.”

앞으로 내민 작은 시약병에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었다. 그 액체에 대해 눈길을 주던 두건은 간단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용법 인 것 같았다.

“무색, 무취로 어떤 고수도 알아 챌 수 없소. 음식과 혼용이 가능하며, 직접 투사해, 신체 상처 부위를 통해 독을 사용하는 특수한 방법도 있소. 알아서 잘 사용하겠지만, 많이 사용한다고 한들 그 효과는 같을 것이오.”

“......”

“한명 당 한 방울! 가격은 1골드요.”

묵묵히 듣고 있던 한스는 뜻밖의 거금에 눈을 부릅떴다. 평민들이 마실거 안마시며, 먹을 거 안 먹어 가며 모아야 한 달에 1골드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음식과 술, 세금을 안내는 것을 포함해서였지만, 이건 너무나 큰 가격이다.

하물며 기사들도 1달에 10골드밖에 벌지 못하기 때문에 이정도의 파격적인 가격은 없었다. 만약 암살의뢰를 했다면 얼마나 큰 거액을 냈어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참고로...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다면... 물건을 잡은 손을 자르겠소.”

한스의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는 두건의 사내를 보며 머리를 세차게 흔든 한스는 옆에 있던 돈 자루에서 은화 10개를 꺼내 앞에 두었다. 10실버 동전 10개였다. 그 아까운 실버들을 떠나보내는 한스의 마음은 찹찹했다.

독이라고 해서 10실버면 살줄 알았던 것이 이런 거금이 들어간다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이것으로 더 큰돈을 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누가 그깟 푼돈 내지 못할까. 여기 있소이다.”

빠르게 사라진 1골드를 보던 한스는 페더록을 가슴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눈알을 좌우로 굴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몸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누군가 목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컥...”

“시선은 저희가 정해준 대로만 움직여야 함이다. 관찰은 허용치 않습니다.”

“으으..으...”

한스는 꼼짝 없이 당해버린 자신의 목줄을 느끼며 눈알을 연신 위아래로 끄덕였다. 목도 움직일 수 없었고 입을 통해 말할 처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목을 잡고 있던 사내는 천천히 한스를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크헉.. 켁켁!”

한스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찔끔 흘러 내렸지만, 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았다. 한스는 땅만 보며 앞서 가는 저 사내의 뒤를 따를 뿐이다. 혹시 시선이 저절로 좌우로 향하지 않을 까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그 살벌한 분위기를 통해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몸소 체험했던 한스는 꼼짝없이 눈알을 고정시켰다.

“헐헐헐! 젊은이 잘 가시게.”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한스는 시선을 천천히 앞으로 향하게 했다. 다행히 그것은 허용되는 것인지 앞서 가던 사내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점점 그 노인네의 곁으로 다가갈수록, 앞서 가던 사내는 머리를 숙였다.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게. 저 친구도 엄연히 손님인데 말이야. 헐헐헐!”

“예, 마스터.”

짧게 인사를 마친 사내는 한스를 이끌고 ‘망자의 골목’으로 향했다. 점점 다가갈수록 아득해지는 느낌에 한스의 표정을 일그러졌다. 다시 한 번 저 골목을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인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골목은 온대간데 없고 시체 하나만이 문 앞을 떡하니 지키고 있었다. 골목은 없었다. 그저 앞의 길목과 시체가 길을 통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 긴 길을 걸어온 한스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이.. 이게 무슨?”

“망자의 한은 깊고 깊으니... 그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길이오. 길면 길수록... 당신에게 향한 원한과 원망은 하늘을 찌를 것이오. 그럼...”

알 수없는 말을 내뱉고 사라진 길드원을 보며 한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슬럼가를 벗어나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저 시체의 얼굴을 가린 두건은 길드의 상징 인 것 같았다.

같은 두건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스에게는 그딴 시체 따위 관심 없었다. 그저 독을 구했다는 생각에 들떠 있을 뿐이다. 점점 사라지는 한스의 뒷모습을 지켜본 늙은이는 시체가 있던 곳을 쳐다보자, 시체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작은 돌멩이가 놓여 있을 뿐.

“우리 길드는 점도 본다네... 후후. 네놈은 죽을 관상이야.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찌불어지는 관상 말이야.”

그 노인은 그런 말을 하고는 다시 앞의 길목에 자리를 잡고 하염없이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정말 특별한 노인네였다. 한 길드의 수장이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 하며, 다음 손님을 안내하는 안내자라는 생각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음 손님이군. 크큿.”

그 노인은 다시 앉은뱅이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고 그 행세를 할 것이다.

희열, 절망 그리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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