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실리온이 한 가정에 머문 지 꼬박 3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 사이 케실리온에게는 크나큰 변화가 있었다. 일단 육체의 변화였다. 3달간의 피나는 고초 끝에 그 많던 살점을 떨쳐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수백의 겹 살을 벗겨 낸 듯 케실리온의 몸은 다소 가벼워 보였다. 물론, 여전히 체격은 건장했지만 처음보다는 보기 좋은 모습에 가연과 수강도 머리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그간 케실리온의 표정도 안정된 모습을 취했다.
“제현아! 빨리 나와.”
가연과 수강이 1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갈 때는 언제나 같이 나갔기 때문에 습관처럼 문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취했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오늘따라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꿈을 부수고 현실을 부수는 일! 이제부터 시작이다. 똑똑히 지켜보라! 세상이여. 꿈이여, 현실이여.
“가자.”
“응!”
케실리온의 다소 갑갑한 말에도 가연은 기쁘다는 듯이 앞서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아련하게 지켜보던 케실리온의 표정을 사납게 변했다. 이제 시작이다. 세상과의 싸움! 그 다짐을 하는 순간 케실리온의 손에는 익숙한 검 한 자루가 쥐어졌다.
마령검(魔靈劍)!
은빛의 검신이 차갑게 빛을 뿜었다. 반탄지기를 사용한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곳이 현실이 아닌 나비의 세계! 호접(胡蝶)의 세계라는 것을 말이다! 이건 모든 것을 깨 부셔야 깨는 꿈!
“죽어라!”
슈악!
그것을 다짐하는 순간, 가장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 케실리온의 손에서 죽어갔다. 되도록 무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꿈속에서 드러난 케실리온의 나약한 면이 빛을 발했다. 눈가에는 어울리지 않게 차가운 눈물이 고여 있었고 흘러질듯 말듯이 출렁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피 보라가 몰아쳤다.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살인에 비명을 지르거나 핸드폰으로 경찰에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둘리가 없는 케실리온이다.
“여, 여보세요. 경... 경. 경찰이죠. 선인도..ㅇ..?”
푸하학!
전화를 걸던 남자는 끝내 말을 잊지 못했다. 이미 거리는 케실리온의 검에 의해 처리된 상태였다. 여전히 몸속의 기운을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이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운은 그저 느껴지지 않을 뿐! 존재하고 있다고....
“중요한 벽이 있지... 학교! 질긴 인연의 끈을 끊을 시간이다. 양재석.”
케실리온의 신형은 빠르게 거리에서 사라졌고, 순식간에 학교에 당도했다. 이미 많은 학생들이 등교를 한 것인지 운동장은 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행보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쿠우웅!!
케실리온이 학교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하늘은 검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검은 먹구름이 몰아치며, 케실리온의 행보를 막았다.
“낄낄낄... 드디어 눈치 챈 것인가?”
“넌... 네크로맨서?!”
“낄낄! 데스 나이트에 당해 나의 마법도 눈치 채지 못했군!! 크크... 이곳은 나의 세계. 비젼(Vision)의 세계!”
네크로맨서의 말에 세계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뻣뻣하게 굳어가는 케실리온의 몸과 흩어지기 시작하는 마령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만의 세계를 갖는 것!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건 녀석이 건 마법적 세계, 그렇다는 것을 타개할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녀석을 쓰러뜨리는 것!
잠시 녀석의 주위로 불꽃이 피워 올랐다. 녀석의 의지가 이곳의 모습을 변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까지 미치자 무시 할 수 없는 압박감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어떻게 케실리온이 알고 있는 세계로 구현된 것일까? 라는 의문 말이다. 그건 케실리온도 이곳에 의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지옥...! 지옥!”
케실리온은 지옥을 떠올렸다. 무수히 많은 상념과 의지가 전달되자. 조금씩 주위가 변하기 시작했다. 붉고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압력에 네크로맨서의 몸이 한층 앞으로 숙여졌다. 갑작스런 변화에 놀란 듯 몸을 한차례 떨고는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리고는 그 불꽃을 케실리온을 향해 던지자 바닥은 수십 가닥의 마그마로 변해 버렸다. 그것에 닿자마자, 케실리온은 몸이 녹아내릴 듯 한 고통이 전해져왔지만, 이곳은 환상이다. 그리고 이곳은 지옥!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기에 고통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크하하하! 네놈도 비젼의 세계로 들어서면 별수 없는 모양이구나!”
점점 타들어가는 케실리온을 쳐다보는 네크로맨서의 모습에 묘한 감정이 치솟는다. 케실리온은 비웃어 주고 싶었다. 녀석의 몸은 점점 얼어 가고 있건만, 웃을게 무엇이란 말인가! 케실리온의 묘한 표정에 녀석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 봤다.
쩌저적!
“크아아아....!”
점점 얼어붙어 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녀석은 케실리온에게 쏘아 보냈던 불꽃을 자신에게 쏘아댔다. 너무나 뜨거운 불꽃! 그 불꽃이 닿자 녀석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게 되었다.
“으아악!”
고통에 단련되어 있는 케실리온이야. 이런 정신세계의 거짓된 고통을 참아 낼 수 있다. 하지만, 저 네크로맨서가 언제 저런 고통을 느껴봤을까? 아마 자신도 모르게 정신적 충격이 엄청날 것이다. 기껏 정신적 충격이라고 하겠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더한 것이 정신적 고통이다.
아무튼, 녀석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인지 다음을 기약하는 말을 내뱉고는 사라져 버렸다.
“다, 다음에... 두고 보자! 어..어, 어둠으로....!”
스팟!!
녀석의 모습이 온대간데 없이 사라지자, 지옥의 풍경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검은 풍경으로 비치는 작은 은빛의 길을 따라, 케실리온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빛 사이로 비치는 몇몇의 인영들이 눈에 들어왔다.
“케, 케실리온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녀석은 푸른빛 머리칼에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알파였다. 그것 떠올리자, 케실리온은 왼지 모르게 푸근하게 미소가 지어졌다. 엄청 걱정한 표정이었다.
희열, 절망 그리고 죽음
“케실리온님! 깨어나셨군요.”
“쳇!”
두 가지 상반된 목소리에 케실리온은 침침한 눈을 비볐다. 오랜 시간을 꿈으로 보낸 것인지,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려 있었다. 상당히 긴 악몽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잊었다고 생각했던 얼굴들을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물론 그것이 그 네크로맨서에 의한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모든 행복이 깨졌지만 말이다.
“호접몽(胡蝶夢)...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군.”
케실리온은 꿈속을 현실로 착각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자질 구래 한 느낌에 얼굴을 구겼다. 그 사이, 방안을 둘러볼 여유가 생길 즘, 방한 구석에서 누군가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희끗 희끗한 백발과 때와 먼지로 탄 의복, 그리고 얼굴 전체로 퍼져 있는 검버섯이 인상적인 노인이 들어왔다. 케실리온도 익히 알고 있는 노인이다. 바로, 꿈속에서 이상한 점을 보던 늙은이였다.
“끌끌끌... 잠을 잘 잤나? 흑마법! 비젼(Vision : 환상, 몽상, 공상, 상상)이라는 마법일세.”
“흑마법? 딱히 당할 시간도 없었건만...!”
케실리온은 사라졌던 네크로맨서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기에 그 네크로맨서가 나타난단 말인가. 거기다 흑마법에 당할 정도로 정신을 잃었다면 주위에서는 어떻게 했단 말인가.
“죄, 죄송합니다. 케실리온님. 제 불찰입니다.”
머리를 숙이며 용서를 구하는 알파의 모습에 케실리온은 살짝 머리를 끄덕였다. 다만, 옆에 있던 레딕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녀석의 무력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케실리온이다.
그 네크로맨서가 나타났다는 것을 눈치 챘어야 할 존재는 아무 말이 없다는 생각에 알파에게 다시 눈길을 주었다.
“레딕은... 케실리온님이 깨어나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후후후... 우리의 관계가 그런 거잖아? 케실리온”
케실리온은 알파의 말에 대강 짐작했다. 레딕과 케실리온의 관계는 어중간했다. 적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고, 같은 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태. 누가 위며, 누가 아래인지도 애매했다. 그저 같이 동행하는 어중간한 상태 일뿐.
“레딕... 한 가지만 알아둬라. 내 일을 방해한다면... 넌 그것으로 끝이다.”
스스슷..
“흠칫!”
몸 상태가 불완전한 상황이건만, 케실리온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도는 범상치 않았다. 물론, 케실리온으로써는 약간 무리한 것인지 몸이 휘청거렸다. 아니, 오랜만에 깨어나 몸의 기력이 쇠한 것이리라.
한차례 몸을 떤 레딕은 구석으로 몸을 옮겼다. 더 이상 끼어들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녀석들을 주시하고 있을 뿐. 거기다. 알파가 하는 모양새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다.
마스터랍시고 모시는 케실리온을 부축하는 꼴이 마치 애인을 다루는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그 재미있는 모습을 혼자서 봐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케, 케실리온님! 아직 무리 하시면...”
“괜찮다. 그나저나... 늙은이는 할 말이 있는 듯한데...?”
알파의 손을 가볍게 뿌리친 케실리온은 앞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 노인도 자리에 앉고는 입을 살짝 벌렸다. 늙은이, 특유의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데스 스쿼드(Deat Squad) 이곳의 이름이지. 자네를 살렸으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니겠나.”
“그래서... 뭘 원하지?”
“우리 길드에게 치욕을 안겨줬다. 너희들은... 우리 길드는 오직 살인. 누굴 살리는 일이 아니다.”
“호오... 그래서 날더러 다시 죽으란 소린가?”
케실리온의 말에 앞의 늙은이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감각하게 소리치는 말이 모든 것이 익숙하다는 것 같았다. 주위에서 쏘아보는 압박감에도 그저 평범한 곳에 와 있다는 것 같았다.
살인에 굶주린 어쌔신의 눈빛도 느긋하게 넘기는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그 한스라는 녀석은 벌벌 떨며 시선도 바닥으로 내려 깔던 녀석과는 반해 앞의 케실리온이라는 녀석은 당당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아니! 언젠가 있을... 아니, 가까울지도 모를 암살을 자네가 해야 하네, 특급살수도 해내지 못할 그런 암살행을... 죽음은 죽음으로써 보답한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 기억 속에 있더군.”
“내 기억? 그러고 보니, 잘도 내 기억을 훔쳐봤군. 그렇다면 내가 누군지 알겠군. 크크크.”
케실리온은 눈앞의 늙은이를 처리할 마음을 먹었다. 비밀...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다. 알려져도 상관없는 것과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 케실리온에게도 존재한다. 그런 비밀이. 과거의 나약함이 드러나길 싫었다.
그 비참한 모습. 당하고 또 당항기만 하는 모습이 알려지길 싫었다.
“그만하는 게 좋을 걸세. 여기 있는 것이 누군지. 자네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네. 그걸 알고도 우리 길드가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호오... 알고 있겠군. 그렇기에 내가 널 죽이겠다고 마음을 품었지. 그딴 술책에 내가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쾅!
케실리온의 손은 앞에 있는 테이블을 세게 내려쳤다. 그 갑작스런 행동에 숨어 있던 어쌔신들이 움찔거리며 밖으로 튀어 나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우리 길드는 비밀을 잘 지키지. 후후, 자네가 약속만 지킨다면 말일세. 그 살수행!”
“내가 포기했다고 생각지 마라!”
“아무렴... 기대하고 있지. 자네가 그 살수행을 마치는 순간. 자네에 대한 정보는 일체 팔지도... 사지도 않겠네. 어떤가.”
“좋다. 한 번 배신은... 영원한 소멸로 이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케실리온의 진심어린 충고에 늙은이는 그저 머리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방금 케실리온의 표정은 진지를 넘어 굳건한 의지가 돋보였다. 아무튼, 그 노인은 주위에 손짓을 하자, 작은 구슬 하나를 건네 왔다. 어떻게 본다면 작은 돌멩이라고 착각 할 정도로 불규칙한 모양 세를 뛰고 있었다.
“소형 수정구네. 살수행을 알리는 것이 될 것이네. 진동과 빛이 뿜어지는 순간. 자네에게는 살수행이라는 임무가 부여 될 걸세.”
“그게 한가할 때면 좋겠군. 가자! 알파.”
케실리온은 그 돌멩이 같은 수정구를 받아 들며 문을 나섰다. 물론, 앞서 나가는 알파가 있었기 때문에 길을 찾는 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긴 복도를 지나, 빛이 약간 들어오는 곳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잘 가시게나.”
문 앞까지 배웅하러 나온 것인지 노인은 한참이나 문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케실리온을 보는 것이 아니라, 땅 바닥을 내려다보는 느낌도 들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케실리온이다. 가벼운 걸음으로 문을 나선 케실리온은 슬럼가라 불리는 곳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제 음지에서 양지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진정한 세상 속으로! 신전으로 향하는 길로 말이다.
“헐헐헐... 그 많은 업에 비해서 비치는 것은 투명하구만. 마치.. 굳건만 철옹성을 보는 것 같아. 원한도 침범하지 못할... 아니, 흡수당한다고 봐야 겠구먼... 원한마저 흡수를 하고 있어... 허허허!”
원한은 살기가 되며!
살기는 의지가 되니!
세상은 흡수로 통하는 구나!
“기대하겠네...! 자네의 미래를 말일세.”
그 노인은 다시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처 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 * *
“크윽... 역시 데스 나이트에게 당한 상처가 심상치 않군.”
“케실리온님! 괜찮으세요?”
케실리온의 배꼽 아래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알파가 호들갑을 떨었지만, 케실리온의 간단한 타혈법에 상처의 피는 금방 멈추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렇게 케실리온은 알파에게 부축까지 받아 가면서 걸음을 옮겼다. 아마, 실버 울프들이 머무는 곳으로 가는 것 같았다. 거리는 대체적으로 한산한 편이었지만, 케실리온을 힐끔 거리며 쳐다보는 이들의 시선에 케실리온은 얼굴을 구겼다.
어쩌겠는가.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여야지. 아무튼 케실리온은 10분 정도 더 걸어서야, 실버 울프들이 있는 곳으로 갈수 있었다. 약간 넓은 곳을 택한 것인지 큼지막한 건물 하나가 드러났다.
여관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덩치 산만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의 로브를 하고 있는 녀석이다. 잠시 후, 케실리온을 발견한 것인지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케실리온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케실리온으로써는 저 말투가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지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한스의 큰 목소리를 들었던지 여관 안에서 용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가장 앞에 보이는 이는, 로이젠이었다. 실버 울프들을 쳐다보는 케실리온의 표정을 찹찹했다. 녀석들이랑 얼마나 지냈다고 정이든 것인지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하기도 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무사귀환을 축하드립니다. 케실리온님!”
“이 꼴이 무사귀환? 하하하!”
케실리온은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고는 어설프게 웃었다. 솔직히 웃을 힘도 없었다. 데스 나이트에게 호되게 당한 것이다. 방심도 없었고, 어설픈 실력으로 싸우지도 않았다. 비록, 모든 힘을 찾지 못했지만, 데스 나이트는 진정 강했다.
전력으로 싸운 결과가 이 정도라는 생각에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는 케실리온이었다. 이참에 게을렀던 기초 수련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육체도 다시 가다듬는 것으로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아직 꺾어야 할 적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뭐하냐! 케실리온님이 오셨다. 파티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술판을 벌여라!”
로이젠은 어색한 분위기에 큰 소리로 실버 울프들에게 명을 내렸다. 그제야 용병들은 활기를 띠며 케실리온의 귀환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 술은 끝이 없었고, 맛있는 구이들은 용병들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동료의 죽음도 잊겠다는 듯이 크게 웃고 떠들었다. 그 파티는 밤새 이루어졌고, 하루를 더 여관에서 보내고 나서야, 용병들과 기사들은 중앙신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물론, 앞으로 도사릴 위험도 무시 할 수 없겠지만, 한번 잡은 의뢰를 죽는 한이 있더라도 완수할 것이다.
“우린 다 죽었다. 이번 의뢰는 거짓으로 이루어졌지만, 반드시 해난다! 우린 실버 울프기 때문이다. 동료의 죽음은 잊어라! 그 슬픔은 의뢰가 완수 되는 순간 떠오를 것이다! 앞으로 전진 하라! 실버 울프여!”
“출~ 발!!!”
쿵! 끼리릿!
실버 울프의 커다란 발 구름을 시작으로 마차는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드래곤 하트가 있는 마차는 정중앙에 있었고, 실버 울프들은 그 마차를 중심으로 길게 늘어졌다. 반수로 줄어 버린 실버 울프들이었지만, 그 기상과 기개는 줄지 않았다.
이번 의뢰에는 한스 일행도 정식 채용됐기 때문에 제일 후미를 지키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한스 일행의 검은색의 마차도 함께 움직였다. 케실리온은 한적한 두 번째 마차에 올라타 있었다. 그곳의 물건은 한스 일행이 끄는 마차에 실려 있었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짐마차였지만, 케실리온으로 써는 감지덕지였다. 이대로 몸을 회복시킬 장적이었다. 케실리온의 자세는 특이했다.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단전 부위를 감싸 앉았고, 왼손은 오른쪽 가슴에 올라가 있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상처가 깊은 부위를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케실리온의 손에서는 미약하지만, 은은한 기운이 몰려 있었다. 그 기운은 다친 부위를 통과했다.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왕복작용을 하고 있었다.
우우웅!
마차 안은 의외로 넓었기 때문에 한 구석에서 알파와 레딕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알파는 레딕을 못마땅하다는 시선을 주었지만, 레딕은 여유롭게 그 시선을 받아 넘기며 어깨를 으쓱 거리고 있었다.
“알파, 지금은 네 마스터와 동급이라는 걸 알아야지. 후후..”
“언젠가... 내손에 당신을 죽을 거야. 명심해!”
“명심하지! 하지만 이걸 알아야지. 네 손에 죽기 전 내손은 이미 너의 심장을 꿰뚫어 있다는 것을 말이야.”
부르르르!
알파는 레딕의 말에 몸을 떨고는 분노를 집어 삼켰다. 이곳은 엄연히 마스터가 있는 자리다. 살기를 내비치는 불경한 짓을 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저 묵묵히 레딕을 감시 할뿐!
그 어색한 침묵은 계속되었다. 일행들이 마차에 내려, 캠프를 치기 전까지 말이다. 그야 말로 말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알파와 레딕 사이에는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감정들이 주고받아 졌다.
그렇게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을 사이, 마차의 제일 끝에 있는 한스 일행들은 일을 척척 진행 시키고 있었다.
데스 스쿼드(Deat Squad)에서 얻어온 페러록이라는 독을 가슴에 품고 있는 한스의 표정은 희열에 차 있었다. 희열! 케실리온은 물론, 드래곤 하트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빈센트와 룩은 용병들의 시선을 끌기만 하면 된다. 릭과 라퓬은 음식에 독을 타라.”
“한스, 넌 뭘 하는데.”
빈센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마, 주정뱅이 룩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이 불만인 모양이다. 거기다 용병들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시선이나 끌라니 이런 치욕도 치욕이 없었다. 릭과 라퓬은 그나마 음식에 독이라도 타고 있으니 부러운 빈센트였다.
“나? 당연히 물건을 챙겨야지. 흐흐흐! 이래저래 정신없을 용병들이다. 그저 우린 물건을 챙기기만 하면 되지. 그 날이 오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흐흐흐!”
“좋아. 이번에 돈만 벌면 이 업계에서 떠나는 거다? 우린 남남이고 말이야.”
“물론! 이제 손 뗄 때도 됐지. 쿠쿡. 일만 잘 성사 되면 똑같이 가르자. 어때!”
“당연하지. 누구 때문에 이런 개고생인데.”
빈센트는 한스의 말에 수긍하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제 밤이 되면 일의 시작은 독을 타면서부터 이루어질 것이다. 한스로 들은 바로는 힘만 빼는 약이라고 하니, 그대로 용병들을 처리하고 앞으로 전진 하면 될 것이다.
그래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힘을 뺀다고 할지라도 무려 50명이 되는 용병과 10명의 기사다. 쉽게 이길 상대가 아닌 만큼, 시선을 끌어야 할 것이다.
“어이! 거기 잡담은 삼가도록.”
“예, 예!”
멀리 떨어져 있던 실버 울프들이 한스 일행에게 짧은 호통을 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무래도 동료들이 죽었다는 것이 큰 타격이었던지, 신경이 날카로워 져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오늘 밤이면 더 절망적인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의뢰물품의 탈취와 케실리온의 납치! 이런 대 희대 극을 두 눈으로 목도 할 것이기에 한스 일행들은 기대에 부풀어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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