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뜩, 예전에 읽었던 구운몽이 생각 나더군요.
호접지몽 = 호접몽... 아무튼 인상깊은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땐, 마냥 소설로 생각했는데 다르게 생각하니, 판타지 같더군요. 후후..
낚일줄은 몰랐습니다.
희열, 절망 그리고 죽음
일행들은 각자, 모닥불 앞에 모여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캠프를 쳐 놓은 상태다. 각자 맞은 일을 하듯, 음식을 하거나, 혹시나 있을 지모를 몬스터를 경계했다. 게다가, 어디서 구해 온 것인지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온 용병에서부터 모두 각양각색이다.
한편 릭과 라퓬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스프를 만들고 있었다. 노란색 국으로부터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가 용병들의 후각을 자극했다.
보글보글!
스프가 끓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용병들은 각자 자신이 맞아 두었던 자리를 잡고 릭과 라퓬이 끓인 스프를 기다렸다. 매일 먹는 스프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향기가 감미로웠다.
“여! 아직 다 안됐나?”
헬씨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것인지 릭과 라퓬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에 릭과 라퓬의 투덜거림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지만, 모두들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하하! 헬씨 조금만 참으라고. 저기 있는 요리사 양반들도 열심히 하고 있잖아.”
“야! 저렇게 스프를 끓이다가 다 쪼려지겠다.”
용병들의 시선이 헬씨에게 몰리자, 릭과 라퓬의 행동이 급해졌다. 안 그래도 구석진 곳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투명하고 반짝이는 시약병이 스프로 쏟아졌다.
양은 손톱만한 정도였지만, 제법 많이 들어갔던 모양인지 스프는 조금 위로 상승 한 듯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을 주시하고 있던 한스와 빈센트 등이 머리를 끄덕이자, 릭과 라퓬이 용병들에게 소리쳤다.
“자자!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완성입니다!!”
모락모락!
새하얀 김이 보일 정도로 밝은 달빛이다. 그 향긋한 냄새와 달빛이 어우러져, 스프는 그 어떤 음식보다 감칠맛 나고, 맛있게 보이는 스프로 비쳐졌다. 미리 준비해뒀던 그릇에 스프를 조금씩 뜨며, 한 사람씩 나눠주는 릭과 라퓬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와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미, 배고파 있던 용병들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미소였다.
“잠시! 우리의 은인이자.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한! 케실리온님의 첫 번째 시식이 있겠습니다.”
“우하하! 저 자식, 말 한번 잘하는구먼!”
라퓬의 입담에 용병들은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누구도 반박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데스 나이트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게 했던 장본인! 그 이름 케실리온! 모두들 구석에서 요상한 자세를 취하며 눈을 감고 있는 케실리온을 주시했다.
때마침, 케실리온도 허기졌던지 눈이 번쩍 떠졌다. 단전이 상하면서 배고픔을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음식 섭취는 필수다. 그 음식이라는 것이 육 고기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일단 배가 고팠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용병들 사이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자, 여기 있습니다. 맛없더라도 많이 드십시오. 멧돼지를 넣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상처에 좋을 겁니다.”
“그거 고맙군.”
후르릅..
케실리온은 노란색의 스프 위에 떠 있는 멧돼지 고기를 한 점 뜨며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뜨거운 화기가 얼굴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내장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기운에 머리가 상쾌해졌다.
그 뜨거운 열기 때문이었을 까? 케실리온의 얼굴이 붉게 비쳤다. 그때, 케실리온의 얼굴이 약간 찡그려졌다.
“맛은... 있군. 잘 끓였어.”
“하하하! 암이요. 누가 끓였는데. 자! 케실리온님의 시식도 있었으니, 모두 마음껏 드시오!”
라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실버 울프와 신성기사들은 각자, 주어진 스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모두들 배가 고팠던지 딱히 말을 잊지 않고, 먹기에 바빴다. 그에 따라, 한스 일행의 움직임은 분주해졌다.
이유인즉, 드래곤 하트가 있는 곳의 위치를 알아 둔다던가. 도망갈 퇴로를 찾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케실리온이라는 존재를 확보하기 위해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거렸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모두들 음식에 정신이 빼앗겨 있었다.
“자네들은 안 먹나? 간만에 맛있는 스프를 먹어보는 기분이야. 하하!”
로이젠은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는 한스 일행에게 눈을 흘겼다. 기껏 만든 장본인들은 정작 맛조차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멧돼지 고기를 몇 점 잘라 입에 가져가는 것이 다였다. 아마, 스프에는 손이 가지 않는 것 같았다.
“하하! 저희는 스프 체질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많이들 드시죠.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한스의 어색한 웃음에 용병들은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지만, 곧 배고픈 마음에 몇 번 스프를 더 떠먹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아무튼, 긴 식사 시간이 끝나자, 용병들의 일거리는 줄어들었다.
일이라고 해봐야, 케실리온의 알람 마법을 대신해 보초를 선다는 것이 다였다. 혹시나 모를 적에 대해 대비하는 것이다. 그 네크로맨서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 이유 때문에 신성기사들도 좀처럼 잠을 자지 않았다.
“로이젠님, 만약 네크로맨서가 나타난다면, 어디로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겠습니까?”
“한스인가...? 그런 건 왜 묻나?”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 그걸 안다면 빠르게 대처 할 것이 아닙니까.”
한스의 유수와 같은 대답에 로이젠은 살짝 머리를 주억거렸다. 한스의 말처럼 미리 주위의 지형을 파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딱히 특별한 지형이 없었다. 마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공간도 아니었고, 사방이 막혀 있는 곳도 아니다.
그저 평야였다. 문제는 네크로맨서가 사용할 수 있는 화속성 계열의 마법이 터진다면 주위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될 것이다.
“딱히.. 주의 점은 없군. 평야에다 풀이 많다는 것이 변수지만 말이야.”
“그건 왜 그렇습니까. 평야라는 이점으로 도망가기 좋잖습니까.”
“아니, 돌연 방해가 될 뿐이야. 사방이 마른 풀로 되어 있네. 자칫 그 마법사가 화염 마법을 펼친다고 해보세. 순식간에 퇴로가 막힐게야.”
“아... 그럼 불이 관건이겠군요.”
“그렇지. 지금 바람도 선선하고, 풀도 말라 있으니, 화재라도 난다면 꼼짝없이 가치겠어.”
로이젠의 답변에 한스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아주 좋은 정보를 얻었다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로이젠에 한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스의 표정으로 드러난 욕망은 희열에 차 있었다. 마치, 성공을 앞둔 자의 여유로운 모습과 같았다.
한스는 몸을 틀어 자신들의 동료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실버 울프와는 거리가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는 소외된 공간이었다.
“릭, 라퓬 확실히 탔겠지?”
“그래, 듬뿍. 한 병 째로 넣었다.”
“후후! 좋아. 일단 우리 마차는 포기한다.”
한스의 말에 주위의 동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마차 값이 얼마인데 버린단 말인가. 검은 철로 만들어져, 분해해서 판다면 상당한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거기다. 마차 바퀴는 미세한 틈이 있어 승차감도 어느정도 있다.
일반 마차로 개조 한다 해도 엄청난 이윤이 남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걸 버린다니 말이 되는 소린가.
“저 마차가 얼만데!”
“쉿! 멍청아. 조용히 해. 저 마차보다, 중앙에 있는 드래곤 하트의 값어치가 더 뛰어나다. 더욱이... 저기 요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1등품 이상의 노예도... 흐흐! 귀족부인이 좋아하겠어.”
빈센트의 목소리가 컸던지 한스가 낮게 으르릉 거렸다. 그만큼 용병들의 관심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침, 케실리온도 드래곤 하트가 있는 마차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납치와 탈취를 동시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퇴로는 생각해놨어?”
“그럼! 일단 마차와 녀석을 탈취한 후 각자 횃불을 하나씩 챙겨라. 가면서 바닥에 하나씩 버린다면 퇴로는 우리에게 열려 있다.”
빈센트의 적절한 질문에 기분이 좋아진 한스는 능글거리게 웃으며 대답했다. 바로, 화공! 불을 이용해 자신들의 퇴로를 열고 적의 퇴로를 막겠다는 소리였다. 용병술에 능숙한 실버 울프들이다. 그들의 조언에 의한 답은 정확하다.
그들의 명성과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한스 일행이 이런 말을 할때, 용병들은 몸의 이상을 느끼고 있었다.
“이, 이봐! 헬씨.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거 같지 않아?”
“글쎄,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니야?”
헬씨에게 말을 거는 용병은 몸에 대해 약간 민감한 반응을 했다. 벌써부터 약효과가 도는 것인지 몸의 기운이 쫙 빠지고 미약하게나마 움직일 수 있던 마나가 전혀 유동하지 않았다. 그걸 눈치 챈 이는 그 용병만이 아니었다.
바로 케실리온! 벌써 그것을 눈치 채고 몸의 치유를 멈추었다. 오직 해독을 하기 위해 불완전한 단전에서 무리하게 기운을 기맥을 통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처절한 행동이다.
‘뭐가 잘못됐단 말인가. 암습? 독?’
케실리온의 머릿속에는 수십 가지의 생각이 교차했다. 데스 나이트와의 싸움에서 단전에 손상이 갔던 만큼 케실리온의 힘은 약해져 있었다. 몸의 상처를 치유한다면 달라지겠지만, 일단 단전에 약하게나마 손상이 있었기에 그 약기운을 모두 흘려보낼 수 없었다.
“아, 알파! 듣고 있나?”
“케실리온님 부르셨어요?”
멀리 떨어져 있던 알파는 케실리온의 부름에 발 빠르게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알파는 물론, 케실리온 레딕까지 중독된 상태였다. 그나마, 마족이라는 이점으로 독을 자체 치유하고 있었지만, 치유 속도가 한없이 느렸다. 그때, 한스 일행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스슷.
일사분란! 미리 짜여진 각본처럼, 중앙 마차를 접수한 한스 일행은 곧 바로, 독에 당한 알파를 제치고 케실리온의 몸을 움켜쥐었다. 몸의 이상을 느꼈던 알파는 아차 하는 순간 케실리온을 빼앗기고 말았다.
케실리온의 상처는 심상치 않았기에 한스 일행의 손길에 따라 그저 잡혀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황당한 일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케실리온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 상처 부위는 치명상뿐이었다. 하단전의 배꼽 아래주위에 커다란 상처가 있었고, 옆구리와 가슴 쪽에 있는 치명적인 상처는 검을 잡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더욱이 참을 수 없는 것은 몸의 기운이 점점 사라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마! 실버 울프 새끼들아! 기사 새끼들아! 이쪽이다. 너희 새끼들 오늘 다 뒈졌다.”
빈센트와 룩이 외치는 소리에 용병들은 다급하게 검을 뽑아 들었지만, 몸속의 기운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에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나마 독이 많이 처지지 않은 로이젠이나, 기사들은 빈센트와 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후웅!
“크윽!”
기사의 휘두름에 비명을 지른 이는 다름 아닌, 검을 휘두른 기사였다. 갑작스럽게 움직인 신성력 때문인지 몸속의 기운이 그래도 독에 당해 버린 것이다. 아직 2계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할 독의 대처법이 없다.
그저 강력한 마나로 제압하는 것과 해독약을 섭취하는 방법뿐이다. 때문에 순간의 방심은 독을 온몸으로 퍼지게 하는 결과를 낫고 만다. 점점 허물어지는 기사들과 용병들은 허망하다는 표정과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
“한스! 이곳은 다 처리됐다. 얼른 출발하자.”
“모두 타라! 이미 끝났다. 마지막 선물로 횃불이나 던져줘라!”
한스의 지시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릭과 라퓬은 그래도 바닥을 향해 횃불의 불씨를 번지게 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타오르는 불길에 용병들과 기사들은 절망했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 죽음을 느낀 것이다.
이런 허무맹랑한 수법에 당하는 것에 화도 났고, 곧이곧대로 외부인을 받아들인 자신들에게도 화가 났다.
“이럇!”
화르륵!
한스의 마차를 끄는 소리와 함께 주위는 불바다로 변해 버렸다. 점점 다가오는 열기에 모두들 절망한 눈동자로 불길을 바라 볼 뿐이다. 하지만, 불길의 저 너머로 시선을 주고 있는 존재도 있었다. 바로 알파! 그녀의 두 눈동자에는 무한한 분노가 치솟았다.
“마스터!!!!!”
알파의 커다란 외침에 옆에 같이 쓰러져 있던 레딕이 몸을 일으켰다. 어딘가 히죽히죽 웃음을 흘리는 것 같았다.
“보기 좋게 당해 버렸군. 후후후.”
레딕의 표정으로 드러난 것은 어이없음이었다. 이렇게 독에 당해 쓰러져 있던 자신이 한심한 모양이다. 그리곤 옆에 쓰러져 있는 알파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아직도 독을 해독하지 못한 알파를 탓하는 모습이다.
“쿠쿡, 다 네 탓 아니야? 자기 주인이라는 작자를 지키지 못한 무능한 녀석. 네가 알아서 구해라.”
레딕은 점점 쏟아지는 불길을 향해 중얼거렸다. 순간 두 눈동자가 붉게 변한 레딕의 입에서는 거침없이 주문이 튀어나왔다.
“너희들의 마스터! 여기 있노라. 달의 일족이여, 나의 의지가 되어라. 차가운 달빛은 나의 송곳니가 되고, 송곳니는 나의 욕망이 되니, 너희들은 보여라. 나 여기 있노라. 문라이트(Moon Light)”
쩌저적!
무려 6서클이다. 레딕의 손으로 뿜어진 문라이트! 차가운 달빛의 힘으로 주위로 번지고 있는 불길은 순식간에 얼어버렸다. 그 쏟아지는 한기에 정신을 차린 알파는 차갑게 눈을 빛냈다.
아마 해독을 다 한 모양이다. 마족의 육체는 특별하다.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는 것! 아니, 치유 능력이 탁월하다. 거기다 전투에 관한 것에 능통하니, 인간의 범주로 나타 낼 수 없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
“넌 나에게 빚 하나를 졌다. 알파.”
“반드시... 내가 구해내겠어. 마스터를...”
알파의 굳은 결심에 레딕은 입을 다물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짜증나는 불길이 사라졌으니, 느긋하게 알파의 행동을 주시할 것이다. 이런 일을 미리 예측하고 있던 레딕은 갑작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설마 이런 수법을 사용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 인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레딕이다.
희열, 절망 그리고 죽음
케실리온의 몸은 결박되어 있었다. 결박용 줄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단전에 향한 상처로 인해 몸의 기운이 쫙 빠져 있는 상황이다. 물론, 독이라는 것에 당해 있었지만, 서서히 해독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 때 같았다면, 흡혈마공의 수법으로 독기(毒氣)를 배출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단전에 많은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조금씩 해독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흐흐흐. 이게 드래곤 하트란 말이지?”
마차를 모는 한스를 제외하고는 4명의 녀석들이 마차 안에 타고 있었다. 그 안에는 ‘트롤의 피’와 ‘드래곤 하트’가 들어 있는 검은 묵빛의 상자가 있었는데 상자의 틈사이로 뿜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솨아아... 우우웅!
상자의 틈사이로 뿜어지는 빛은 녹색이었다. 그 미세한 틈을 뚫고 찬란한 빛을 뿜어대는 드래곤 하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녀석들은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케실리온 역시 괜스레 피부가 따끔 거릴 정도로 찬란한 기운을 뿜었다.
“이 새끼 보소! 뭘 그렇게 꼬나보고 있어!”
퍽!
룩이라는 녀석이 휘청거리며 다가왔다. 아마, 마차의 흔들림 때문에 몸이 비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의 표정은 가히 불쾌하다는 듯이 일그러져 있었고, 흥미와 성취감! 그리고 절대자라도 되는 것인지 오만했다.
그런 눈빛을 하고 있던 녀석은 케실리온의 무표정한 모습에 주먹을 끌어당기고는 힘껏 내려쳤다. 그러자, 케실리온의 얼굴로 날아든 주먹은 케실리온의 입안을 터뜨리고 나서야 회수되었다.
주르륵...
입안으로 퍼지는 쌉싸래한 혈향과 감촉에 케실리온은 입을 오물거리며 마차 한 구석으로 침을 뱉었다. 어두운 공간이었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드래곤 하트로부터 뿜어지는 빛 때문에 확현히 보이는 침이 보였다.
붉은 침에 케실리온은 속으로 허허 거리며 웃었다. 저런 녀석들에게 이런 수모를 당한다는 것보다. 이딴 술책에 당한 나약한 자신을 자책했다.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점! 이런 바보 같은 수법에 당한 자신의 무력,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가만히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분노가 들끓었다.
그런 생각이 교차하자, 두 눈은 차갑게 식었다. 싸하게 흔들리는 두 눈동자가 점점 은빛으로 물들었다. 몸의 균형이 허물어지는 현상이다. 기껏 폴리모프로 과거의 육신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 정신력과 몸속의 기운에 부조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기운은 몸속의 기운을 억제하는 독을 해독시키는데 투자되고 있었다.
“뭘 그렇게 꼬나봐! 포박되어 있는 주제에!”
“이 줄... 풀어라.”
케실리온에게 윽박지르는 녀석들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승리감 성취감! 그리고 지배욕. 그런 번뜩이는 눈을 뚫고 케실리온의 진심어린 목소리가 전해졌다. 진득하게 뿜어지는 살기에 녀석들은 한차례 몸을 떨어야 했지만, 케실리온은 포박되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살기를 내뿜는 들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이 새끼가! 야! 밟아!”
퍽!
“씨파! 저 눈깔 좆나 마음에 안 들어!”
빈센트가 화를 참을 수 없는 것인지 옆에 있던 룩과 라퓬, 릭에게 명령을 내렸다. 흔들리는 마차에서 몸을 일으킨 녀석들은 케실리온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먼저 발을 차 버린 녀석은 빈센트였다.
케실리온은 어디를 때리는지 천천히 살폈다. 누가 어딜 때리는 것인지, 모두 기억하겠다는 눈빛이다. 고통을 줄 수 있는 명치와 목, 옆구리를 걷어차는 녀석들은 신음 한번 흘리지 않는 케실리온을 쳐다보며 눈을 부릅떴다.
“이이... 돈 거 아니야? 신음 한번 안 흘려.”
“이... 줄 풀어라. 목숨은 살려주마.”
케실리온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이건 거짓과 진실을 떠나, 맹세와 같은 것이었다. 그 충고어린 말에도 녀석들은 무시했다. 포박되어 있는 녀석의 말을 들은 필요가 없다는 것인 모양이다. 그리고 독에 당했으니, 아무리 강한 고수라도 상대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목숨? 살려줘? 푸하하! 이 세끼, 아직도 지가 잘난 줄 알고 있어.”
“니 씨발 새끼! 목숨 줄은 우리가 쥐고 있어 임마!”
걸쭉하게 뽑아 올리는 말투에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차갑게... 또 심연 속으로 숨어 버렸다. 케실리온은 처음부터 화를 잘 내지 않는다. 몇 번이고 되짚는다. 화를 삭이고 삭여서. 진정 화를 나게 만들면 손을 쓰는 것이다.
부들부들... 스르륵.
케실리온의 몸을 부르르 떨렸다. 두려움도 고통도 아니었다. 기억 저편에서 떠오르는 잔잔한 파장의 기억처럼, 뭔가 떠오른 것이다. 잊고 지냈던, 아니, 봉인해두었던 기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자연히 몸의 떨림은 사라졌다. 그 이상한 행동에 녀석들은 유심히 살폈지만, 곧 표정을 거두고 희열에 찬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하하하! 우린 부자야! 부자라고!”
쾅쾅!
“어이! 한스! 뭐라고 말 좀 해봐! 우린 이제 부자라고! 이번엔 공평하게 가르고 각자의 길로 가는 거야!”
희열! 녀석들은 희열에 떨고 있었다. 오랫동안 정해왔던 목표와 청취를 했다는 것에 즐거워했다. 어려움과 역경을 이기고 이뤘다면 그 희열은 클 것이다. 그만큼, 절망감을 맛보기에는 좋은 순간이다.
“크크크큭... 생각 나버렸다. 거기 너희들... 반 년 전이었던가? 1년 전이었던가? 중앙신전 근처의 화전민들이 살고 있는 곳을 습격한 것을 기억하나?”
케실리온의 음침한 웃음에 녀석들은 한차례 몸을 떨어야 했지만, 그것이 허세라는 생각에 능글거리며 케실리온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며 대답했다.
퍽!
“이 새끼... 또! 기억하고말고. 그 바보 같은 하프 드래곤을 잡아들인 곳이지 쿠쿡!”
2계에서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곳! 중앙신전으로 가는 길목의 구석진 곳에 있는 곳이 케실리온의 고향이다. 화전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 세금을 내지 못해 숨어 사는 인간들. 평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이들. 그들이 바로 화전민이다.
도망자들이 모여 만든 곳! 그런 곳에서 태어난 케실리온의 어린 시절은 달콤한 꿈과 같았다. 그런 꿈을 무참하게 짓밟고 마성을 깨운 것이 바로 녀석들이다. 바로, 노예 상인!
“그 바보 같은 하프 드래곤이 나였다고 하면 기억할까? 크큭... 그땐 고마웠다. 애송이들아.”
케실리온의 말투가 변했다. 몸의 상처도 기운도 회복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몸을 속박하는 줄을 푼 것도 아니었지만, 이 오만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케실리온의 말투 하나하나에 진득한 살기가 묻어 날 무렵, 스칼렛이 빛을 뿜는 하늘은 요사스러운 붉은 달이 떠올랐다.
“!!!!”
녀석들은 케실리온의 살기에 놀란 것인지 뜻밖의 상황에 놀란 것인지 모르겠지만, 놀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긴 녀석들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케실리온의 두 눈동자는 은빛을 넘어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줄 풀어라!]
붉은 두 눈동자 사이로 케실리온의 눈은 강력한 정신력과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마룡으로써의 의지! ‘페덜의 돌’에서 용언이 뿜어진 것이다. 마룡은 마룡! 케실리온은 자연스럽게 용언을 사용했다.
몸에 무리가 가고 있었지만, 이미 어느 정도 독기를 제거했다. 사실, 드래곤이라고 한들 독이 안통할 리가 없다. 드래곤도 엄연히 생명체! 심지어 마족조차 독에 당한다. 다만, 몸에 이상이 갈 정도로 중독이 되지 않을 뿐!
혹시 이 사실을 아는가? 개미에게 독이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인간들이 물려도 아무 이상도 없는 것은 그 보다 상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죽을 정도로 독에 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인간과 마룡의 관계는 어떤가.
극과 극이다. 마치, 인간과 개미의 관계처럼 케실리온도 그와 같았다. 그렇지만, 개중에 특별한 개미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케실리온의 의지가 발하는 순간, 의지가 가장 박약한 룩이라는 녀석이 케실리온에게 휘적휘적 거리며 걸어왔다.
[그 줄을 풀라!]
절대자의 명령에 룩의 손을 천천히 밧줄을 향해 떨어졌다. 그 모습에 다른 녀석들은 크게 놀라며 룩을 잡아채는 것으로 막아냈지만, 한숨을 돌릴 수 없었다. 저 붉은 두 눈의 안광이 자신들을 집어 삼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쾅쾅!
“어이! 빈센트! 무슨 일이야.”
마차 안이 조용해지자 이상함을 느낀 한스가 소리쳤다. 그 어색한 공간에는 한스라는 작은 매개체 때문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정신을 회복한 것이다.
“개 시바! 저 새끼 눈 못 뜨게 밟아 버려.”
퍽!
녀석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떨어진 명령에 케실리온을 죽어라 밟고 있었다. 하지만, 정자세에게 꼼짝도 하지 않는 케실리온을 보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젠 희열보다 절망이 찾아왔다. 더 이상 이런 공간이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점 케실리온의 살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쾅!!!
그 순간 마차의 천장이 뜯어지기 시작했다. 길쭉하게 갈라지는 마차의 지붕을 보며 녀석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거기다. 밖에 있던 한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우아아악! 괴, 괴물! 마족이다!!!”
히히히힝!
덜컹덜컹!
푸드득!
말을 몰던 한스의 외침 때문이었을까? 말들은 거친 소리를 내질렀고, 마차는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며 점복되었다. 마차의 바퀴가 빠진 것이다. 다행히 평원에 있는 풀이 무성하게 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충격은 없었지만, 하늘을 비행하고 있는 푸른빛의 눈동자가 시리도록 마차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길게 돋아난 송곳니! 옷을 찢고 돋아난, 기다란 날개가 마족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하고 있었다. 거기다. 인간이 아니라는 듯이 창백한 피부로 드러난 특유의 무표정! 그 존재가 속박되어 있는 케실리온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죄송합니다. 케실리온님. 저의 불찰, 또 저의 불찰입니다. 용서를...”
“이 줄이나 풀어라.”
길게 뻗은 날개가 달빛을 가렸다. 푸른 두 눈과 푸른 머리칼을 보고 짐작했지만, 확실히 알파였다. 다만, 몸은 성인의 모습이었던지 입고 있던 옷이 꽉 조이는 형국이다. 그 옷으로 드러난 가슴 굴곡을 타고 흐르는 기다란 청발이 아름다운 빛을 뿜었다.
거기다. 알파 특유의 체취로 뿜어지는 향기는 뭇 남성을 유혹하는 호르몬이 분부 되는 것 같았다. 아마, 뱀파이어의 특성 인듯하다.
촤라락
케실리온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밧줄은 알파의 손톱에 의해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그리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케실리온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다. 아니, 무표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너흰.. 내 진심어린 말을 무시했다. 모두 죽여주마. 알파. 저 마차를 몰던 녀석을 제외하고 모두 처리해라. 아! 저 빈센트라는 덩치도 살려둬라.”
“케실리온님의 명은 절대적인 것! 이행하겠습니다.”
알파는 날개를 접었다. 그 대신 더욱 강렬하게 돋아난 손톱은 뚝뚝 떨어지는 피 줄기를 연상하듯 기다랗게 하늘로 치솟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절단 시킬 듯한 그 손톱은 케실리온을 욕보이게 한 녀석들을 처단했다.
목을 가르며 지나간 손톱은 여지없이 좌우를 갈라 버렸고, 그것도 내키지 않는 것인지 뇌를 부셨다. 거기다. 내장을 휘저으며 복부를 갈랐고, 육신의 한 가닥도 세상에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육신을 잘게 조각내 버렸다.
스칼렛이 뜬 밤! 희열은 절망으로 바뀌었고 죽음으로 변해 버렸다.
“크아아아!”
스아악!
피가 튀고 살점이 튄다. 그리고 만 조각으로 갈리는 육체와 영혼! 알파의 분노는 노예상인들에게로 향했다. 마스터를 모시지 못 한 점을 사죄하듯 녀석들의 육체는 온전하지 못했다.
“사, 살려줘... 제발!”
뒷걸음을 치며 물러나는 룩을 보며 알파는 조소가 어렸다. 검은 로브의 하단부로 타고 흐르는 누런 액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알파는 그대로 하체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블러드 네일!!”
슈악!
상체와 하체가 좌우로 갈리며 룩의 상체는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직도 육신을 살아 있는 것인지 하체가 몇 걸음 뒷걸음질 치다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으아아.. 아아아!”
상체의 복부를 통해 흘러나오는 내부 장기가 볼썽사납게 알파의 발에 무참히 짓 밟혔다. 룩의 눈은 알파의 얼굴도 아니었고 자신과 불리 된 하체도 아니었다. 유난스럽게 붉은 빛을 뿜는 스칼렛이 원망스러웠다.
“감히! 마스터께 그런 짓을!”
“아... 아아...”
룩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죽어가고 있는 소리였다. 그 죽음의 안식을 느낄 세도 없이 알파의 손톱은 룩의 얼굴을 잘라버렸다. 결국 녀석들은 같은 절차를 밟았지만,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도망도 맞서 싸우는 짓고 알파에게는 부질없는 짓이다. 그녀는 마족이고, 케실리온의 수족이다. 누구보다 강해야 하며, 잔인해야 한다. 케실리온의 명을 이행한 알파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했다.
마스터의 명령을 완벽하게 이행한 것이다. 그녀의 표정은 안도와 희열이 감돌았다.
“자... 이제 너희 둘만 남았다. 어쩔 거지?”
덜덜덜..
녀석들은 차가운 케실리온의 말투 속에 비웃음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몸을 떨어야 했다. 그리고 문뜩 화전민들 사이에서 몸을 떨고 있던 한 검은 머리의 꼬마 녀석이 기억났다. 하프 드래곤!
저 앞에 있는 녀석... 그 존재가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빈센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가장 먼저 죽을 것을 직감 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이렇게 한스와 빈센트를 끝까지 살려둔 이유!
“크큭, 궁금하지? 너희 둘만 살아남은 이유 말이야. 그렇다할 정은 없지만 그런대로 좋은 어머니였거든? 그런데 너희가 나의 작은 행복을 깨버렸지. 꿈을 깨버렸단 말이다!!”
케실리온은 지금 이 순간 제현이 아닌, 과거의 케실리온이 되었다. 복수! 복수가 눈앞에 다가 온 것이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뻗어진 손을 통해 몰려드는 핏빛 물결이 한곳으로 뭉치자 하나의 점이 되었다.
“고통에 몸부림 쳐라. 데스 스웝(Death Swamp)!”
케실리온이 펼친 마법은 데스 스웝이었다. 물론, 흡혈마공을 이용해 펼친 마법이다. 몸속의 기운은 몸을 회복하는데 이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흡혈마공을 통해 많은 피를 모아, 펼친 마법이다.
즉 재활용된 기운이라는 소리다. 죽은 세명의 녀석들의 피에 깃들어 있는 기운을 긁어모아 사용한 기술로 펼쳐진 마법은 확실했다. 비록 위력을 약할지 모르나, 빈센트라는 거구를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게 할 정도는 되었다.
부글부글 끓는 늪이 생성되자, 빈센트는 조금씩 깊은 심연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몸부림칠수록, 비명을 지를수록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사, 살려줘! 부탁이야.... 제바...ㄹ!!!”
녀석의 거친 몸부림에 순식간에 늪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 광경에 한스는 눈알을 굴리며 도망갈 길을 찾고 있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알파가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한스의 몸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봐 외이래. 아깐 희열을 띤 표정이었잖아. 이젠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군! 크큭.”
케실리온은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한스를 보며 비웃었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이 지긋지긋한 숙원. 비록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머니였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을 겪게 했던 이였다. 이런 복수는 당연한 것이다.
“살려주마. 어때? 스스로 혀를 뽑아라.”
“!!!!”
녀석은 케실리온의 말에 희망을 띤 표정이었지만, 스스로 혀를 뽑으라는 주문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진심을 알았기 때문일까? 주춤 거리면서도 혀를 뽑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 한스라는 녀석의 표정은 두려움과 절망이 떠올라 있었다. 그때 문뜩, 케실리온이 웃으며 한스의 로브의 모자를 씌웠다.
“그 더러운 표정을 보고 싶지 않군. 어서 해라. 3초 주마.”
“아아!!”
녀석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 서서히 옮겨지는 손에는 자신의 칼이 들려져 있었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인지 로브자락을 타고 흐르는 하나의 눈물이 땅을 적시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슈악!
케실리온의 큰 웃음에 녀석은 멈칫 손이 멈추었다. 그 순간 녀석의 상체와 하체는 분리되기 시작했다. 언제 든 것인지 케실리온의 손에는 마령검이 들어져 있었고, 거칠게 검을 비틀며, 녀석의 하체를 잇는 허리 부분을 잘라 버린 것이다.
깔끔한 수법은 아니었다. 최대한 고통을 주기 위해 양손으로 검을 쥐며 이리저리 흔들었기 때문에 잘려진 단면은 울퉁불퉁했다. 그리고 서서히 쓰러지는 한스의 육신은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상체와 하체가 분리 되었다.
“죽어도 편안하지 못하게 해주마.”
케실리온은 그래도 녀석의 온몸을 중력마법으로 깔아뭉개 버렸다. 이것 역시 녀석의 몸에서 뿜어진 기운을 흡혈마공으로 재활용한 방법이었다. 그러자 녀석은 순식간에 찌부러지며 온전한 시신이 되지 못했다.
얼굴의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찌부러진 시체 사이로 찔끔 찔끔 흘러내리는 피가 대지를 적실뿐이었다. 이것으로 녀석들의 계략은 하루 천하로 끝나 버렸다. 그리고 녀석들은 희열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죽음을 맛보아야 했던 것을 말 할 것도 없었다.
“알파. 드래곤 하트을 잘 챙겨라.”
“알겠습니다. 케실리온님.”
일전에 레딕이 말 한대로 드래곤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드래곤 하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만 없었다면 벌서 그 드래곤 하트는 케실리온의 기운으로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아쉽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딴 영약이 없어도 강해 질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케실리온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실버 울프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물론, 알파가 부축을 했기 때문에 걸음을 옮길 수 있었지만 말이다.
문뜩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에 케실리온이 입을 열었다.
“향기가 좋군. 무슨 향수라도 쓰나?”
“가, 감사합니다. 케실리온님.”
케실리온이 알지는 모르지만, 뱀파이어의 몸에서 뿜어지는 향기는 본능적인 기술이다. 남성의 뱀파이어는 여성을 홀리기 위해, 여성 뱀파이어는 남성을 홀리기 위해 뿜어내는 향기였다.
케실리온의 말에 알파가 살짝 얼굴을 붉혔지만, 케실리온의 시선은 하늘로 향해 있었다. 요즘 들어 하늘을 보는 날이 잦아졌다. 점점 하늘에 떠 있는 스칼렛과 쥬얼이 합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른 가자. 신전으로 말이야.”
“예... 옛! 케실리온님.”
잡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알파의 목소리가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언제 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알파는 케실리온을 주군으로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신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주군의 감정을 뛰어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마음이 두근거리기도 했으며, 괜스레 체온이 상승하기도 했다. 이런 감정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알파는 그저 긴장이라고 생각했다.
케실리온이 납치 되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가? 마치, 가슴에 뜨거운 인장이 찍힌 것처럼 마음이 찌를 듯 아파오던 알파다. 이걸 무슨 감정이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뭐하느냐. 얼른 가지 않고.”
케실리온의 재촉에 알파는 급히 머리를 끄덕이고는 실버 울프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참으로 묘한 감정이다.
은빛의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