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전쟁(1) - 발록의 강림
“알파, 아무래도 넌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군. 몸속의 마기를....”
남부로 향하면서 케실리온은 알파에게 이것저것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특별히 가르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나타나는 산적들이나, 몬스터들의 습격에 나서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무식하게 블러드 네일을 휘두르는 알파를 보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알파에게 천마소수(天魔素手)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 천마소수라는 것이 지옥에서 자주 사용하던 소수마공의 공격수단으로써 병기 법을 제외한 최고의 공격 방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소수마공을 가르치기에 앞서 천마소수에 맞는 움직임을 가르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딱히 움직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움직임에 있어 큰 동작이나, 불필요한 동작이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공들여 알파를 가르치고 있었다.
“죄, 죄송...”
“죄송할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겠지만, 넌 동작이 너무 커. 가령 처음 뻗어가는 오른손의 경우... 합!!”
케실리온은 오른발을 축으로 팔을 앞으로 내저었다. 워낙 큰 동작이었기 때문에 옆구리와 가슴이 훤히 보이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내가 펼친 것을 봤겠지? 그게 너의 잘못된 점이다. 동작이 클수록 허점은 들어나기 마련이다. 옆구리, 가슴... 거기다. 뻗어나간 오른팔의 회수까지... 모든 것이 부족하다.”
“아...”
알파는 케실리온의 지적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틀린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케실리온의 말은 무조건 신용하고 보는 알파의 심중도 한몫을 단단히 했기에 충분히 수긍하고 있는 알파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답답하군... 잘 봐라. 발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니야. 하체를 활용하는 거다.”
케실리온은 오른발과 왼발의 앞면을 서로 오므렸다. 이 상태라면 균형을 잃고 쓰러져야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몸의 중심은 여전히 곧게 뻗어 있었다. 그 뒤로 출수된 오른손은 작은 타원을 그리며 순식간에 알파의 코앞까지 날아갔다. 그야말로 극도의 쾌속이었다.
“뭐가 보였지?”
“양발이 한 점에 모였고... 작은 원을 그리며 날아왔다는 것... 인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군.”
케실리온의 짧은 대답에 알파와 뒤에서 따라오는 두 명의 소녀는 머리를 갸웃 거렸다. 케실리온이 하는 말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체의 중심은 분명 처음과 같았다. 하지만... 한 점으로 모인 발과 약간이었지만, 앞으로 움직인 무릎을 중심으로 힘의 방향이 앞으로 쏠려 있었다. 그리고... 팔은 처음과 같은 크기로 휘둘렀을 뿐... 하체의 움직임만으로도 속도는 차이가 난다.”
“아...”
그제야 알파는 알겠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만큼, 보법과 손동작이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 상태를 잘 깨닫고 움직이는 것이야 말로, 상대를 이기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강해지는 지름길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알파는 걷는 방법과 뻗어나간 팔을 회수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우선이다. 그 알량한 실력으로는 도움도 되지 않으니...”
“죄, 죄송합니다.... 케실리온님.”
“역시... 가르치는 건 어렵군.”
케실리온은 머리를 몇 번 젓고는 남부로 향하는 것을 재촉했다. 똑같은 풍경, 싸늘하고 푸른 하늘이 펼쳐진 공간을 보며 여행을 한다는 것도 좋지만, 매일 같은 모습만 본다면 지루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
무슨 의미가 담긴 한숨인지는 몰라도, 케실리온은 짧게 한숨을 터뜨리고는 뒤에서 졸졸 따라오고 있는 알파와 레나, 프린을 돌아봤다. 세 명의 여자들은 각자,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딱히 관심 가질 만한 행동은 없었다.
알파가 하는 일이라고는 어설프게나마 천마소수를 따라하는 모습이었고, 레나의 경우는 심심 한 것인지 프린에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프린이야, 레나의 행동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정령에 대해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여행이었다.
두두두두두!!
“응..?”
저 평원 넘어 새하얀 먼지구름이 흩날리고 있었다. 많은 무리가 이곳으로 향하는 것인지 평원의 지축이 흔들릴 정도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먼지를 보고 있던 케실리온의 시야에 많은 무리가 몰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케실리온님! 아무래도 이곳으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케실리온은 시시하다는 듯이 금세 흥미를 잃어 버렸다는 듯이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뒤에서 쫑알거리는 레나의 경고어린 목소리에 다시 멀리서 달려오는 먼지를 주시할 뿐이다.
“그렇군이 뭐야! 이곳으로 향하는 거 안보여? 습격이면, 혹시 다치면 어쩔 거야!”
“시끄럽.. 군...”
레나의 핏대선 목소리에 무덤덤하게 프린과 케실리온이 중얼거렸다. 이럴 때 마음이 통하는 둘이었기에 말없이 눈으로 서로를 향해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이상하리 만치 프린과 케실리온은 통하는 면이 있는 듯했다.
“레나... 잊었나? 분명.. 케실리온을 믿고 있다고 했을 텐데...?”
발끈!
“그 일은 그거고 지금은 지금이잖아! 프린!”
프린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레나가 발끈 거리며 얼굴을 붉히며 프린의 말을 부정하다 시피 떠들어댔다. 아마, 남부로 향하면서 많은 적들... 그러니까. 몬스터와 산적들을 만나면 모두 케실리온이 처리했기 때문에 프린은 나름대로 안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점점 가까워지는 말들의 행렬에 당황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있다면, 무덤덤하게 앞서가는 케실리온과 알파가 유일 할 것이다.
두두두두!
“이럇!”
“헉... 헉, 적들은 쫒아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웃기지마! 녀석들은 실버 울프라고!”
먼지 구름 사이로 튀어나온 수많은 용병들과 병졸들이 지친 기색으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멀리 도망쳐 왔다는 것처럼 지쳐 바닥을 나뒹구는 이도 있었다. 말의 속력은 줄어 이제는 완전히 자리에 서버렸다.
“부단장! 이제 어떻게...”
“어쩌긴! 젠장... 설마 단장이 죽어버릴 줄이야... 명색이 다크 크로우 인데!”
팍!
검은색 휘장을 두르고 있는 사내가 짜증난다는 듯이 바닥의 돌을 차버렸다. 멀리 나가떨어지는 돌의 모습에 마음이 풀리는 것인지 씩씩 거리던 숨결을 고르게 만들었다.
“실버 울프라고 했나?”
“앙...? 뭐야 네놈!”
짜증의 극에 달해 있던 다크 크로우의 부단장 보엠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네 명의 여행자를 보며 얼굴을 구겼다. 한명의 성인 여자와 세 명의 꼬맹이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피크닉이라도 나온 모양인지 무기하나 챙기지 않은 모습이었다.
“피크닉이라도 나왔나? 전쟁터에?”
“피크닉? 그럴지도.”
보엠은 앞으로 나서서 말하는 15세 정도의 은발 애송이의 말투에 핏대를 세웠다. 뒤에 늘어져 있는 군대를 보고도 긴장하지 않고, 귀찮다는 투로 말하는 꼬마를 보자 화가 났기 때문이다. 거기다. 단장 까지 잃었으니, 지금 기분은 최악이었다.
“뭐야 꼬마! 죽고 싶어. 앙?”
“짜증나는 군...”
보엠은 옆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더 이상 말을 한다고 해서 겁먹을 애송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저 놈은 미친놈이라 판단하고 검을 뽑아 든 것이다.
“케실리온님! 처리... 할까요?”
은발의 꼬마를 처리 하려고 검을 뽑아 들었던 보엠은 웬 파란색 머리칼을 가진 여성이 앞을 가로막자 입술이 씰룩였다. 고운 피부에 검 한번 잡아 보지 못한 손을 보니 웃음이 터져 나오려던 참이었다.
“크크크... 잘됐군. 안 그래도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는데 말이야... 아그들아! 기분도 꿀꿀한데... 어때?”
“흐흐.. 부단장,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당연히 합죠.”
비록, 제니어스의 공격에 패했지만, 여전히 군사는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많은 인원이 있기 때문에 고작 네 명의 애송이에게 질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앞서 있던 용병들이 재미삼아 무기를 뽑아 들었다.
“알파... 천마소수를 이용해라.. 수련이다.”
“예! 케실리온님!”
알파는 케실리온의 간단한 명령에 활기차게 대답했다. 끝도 없이 꿈틀거리는 마기(魔氣)를 끌어 올리자, 블러드 네일의 길이는 대충 보아도 1미터는 넘어 보였다. 자칫, 움직임이 둔해 질수 있는 크기였지만, 알파 나름대로 조종할 수 있을 정도의 컨트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많은 적을 상대 할 때, 블러드 네일의 길이가 장점이 되었다.
“뭐, 뭐야... 저 기분 나쁜 손톱은...”
우우웅!
“블러드 네일이라고 하지... 멍청한 인간!”
알파는 케실리온에게 배운대로 자세를 잡았다. 느슨하게 자세를 잡았지만, 이건 케실리온이 자주 펼치는 마영보법(魔影步法)이라는 것일 것이다. 좌우로 넓게 자세를 잡고 양손은 땅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마영보법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발바닥에 마기를 뿜어냄과 동시에 기운을 거둬들이는 것을 이미지로 그려 펼쳐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했다.
“포기 한 건가..? 흐흐흐, 그럼 죽어랏!”
알파의 어설픈 자세를 포기로 착각한 용병들은 좌우로 나눠지며, 알파를 제치며 케실리온을 향해 달려들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 케실리온은 검이 눈앞까지 날아드는 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감히! 그분에게 검을!”
스각!
알파는 마영보법을 펼쳐냈다. 아직 미숙해 보였지만, 그림자를 밟으며,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비해 불가피한 움직임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천마소수는 전혀 발전이 없었던지 아직도 큰 동작으로 용병의 검을 잘라내며 케실리온의 발치에 검이 떨어졌다.
“느리다... 알파! 동작이 너무 커!”
알파의 움직임을 보고 있던 케실리온은 잘못된 곳을 지적하며 일체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하앗!”
푹!
알파의 블러드 네일이 좌우로 뿜어졌다. 끝도 없이 길어진 블러드 네일이 순식간에 다섯 명이나 되는 인원을 꼬챙이에 꿰듯 꿰뚫어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괴수와도 같았다. 일체의 동요가 없는 살행에 용병들은 질렸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저년이!! 약점은 저 뒤의 은발이다! 공격해! 하르그 병사들은 뭐하고 있어! 진격이다!”
순식간에 당해버린 다섯의 동료 때문이었을 까? 일명 다크 크로우의 부단장이라고 불린 녀석이 어이없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하르그 가문의 병졸들은 진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미간을 꿈틀거리며 녀석의 말을 곱씹고 있던 케실리온은 디바인 네추럴에서 남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로이젠의 말이 생각났다.
‘하하핫! 간만에 영지전이 터진다지 뭡니까. 아마... 제니어스와 하르그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분명... 로이젠은 제니어스로 간다고 했지? 그럼 적이군.”
휙!
후우우웅!!
케실리온은 겁도 없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일단의 무리를 보며 살짝 손을 휘저었다. 그들은 무슨 폭풍이라도 만난 것 처 럼 휘청거리며 뒤로 튕겨나가고 있었다.
“으아아!”
가볍게 휘두른 것 이었지만, 사실, 케실리온은 장풍과 비슷한 장력을 쏟아 낸 것이었다. 물론, 직접 공격한 것이 아닌 공기를 가볍게 쳐내면서 일정 거리 밖으로 몰아냈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알파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알파! 계획 변경이다. 없애라.”
“하, 하지만... 수련은...?”
“나중에 따로 지도 해주지.”
“예, 예!!”
케실리온의 달콤한 말에 알파는 기쁜 표정으로 마기를 방출했다. 점점 뿜어지는 붉은 색의 마기를 보며, 용병들과 병졸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점점 붉게 번져 가는 하늘을 보며 그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블러드 와일드(Blood Wild)!!”
쿠구구구구!
알파는 양쪽의 손톱으로 모여드는 짙은 붉은 색의 마기를 느끼며 양팔을 좌우로 교차시켰다. 그리고 기운을 뿜어내듯 뭉쳐진 마기를 방출시킴과 동시에 ‘블러드 와일드’라는 이름의 기술을 펼쳤다.
파앙!
마치, 총이 뿜어지듯 10개의 붉은 구체가 하늘로 쏘아지더니 비가 되듯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우박을 보는 듯 10개였던 블러드 와일드는 순식간에 20개로 20개에서 40개로 변해가며 녀석들을 향해 덮쳐갔다. 그야 말로 피의 폭풍을 보는 것 같았다.
크아아...
비명과 비명이 겹치며 소음을 만들어 냈고, 피와 살점이 겹치며 지옥도를 만들어냈다. 이것을 두고 아비규환(阿鼻叫喚)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끝도 없이 뿜어지는 피의 잔영과 비명들은 레나와 프린을 자극했다.
지극히 평범하게 비치는 (물론 케실리온과 알파의 관점이었지만) 레나와 프린으로써는 이정도의 참극을 보고 참을 수 없는지 시선을 돌리며 구토를 하고 있었다. 흰색의 위액이라도 올라오는 것인지 구역질에 구역질을 거듭했다.
“가로막지 마라... 이건 케실리온님의 명령.”
“사, 살려줘...”
“죽는 건... 순식간이다. 인간!”
스악!
일말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알파의 무심한 말이 입에서 떨어짐과 동시에 부들 부들 떨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던 다크 크로우의 부단장의 비참한 최후였다. 멀리 나뒹구는 보엠이라는 인간의 머리통을 쳐다보고 있던 케실리온은 천천히 앞으로 손을 뻗었다.
“보기 역겹군... 혈우(血雨)!”
케실리온은 대지에 흩뿌려진 피를 보며 역겹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혈우를 펼쳤다. 그 뒤로 쏟아지는 남부대기의 황홀한 해질녘 평야는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