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2화 (192/269)

남부전쟁(1) - 발록의 강림

“모두 전투태세를 갖춰라!”

로이젠은 긴장된 표정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일단의 무리를 노려봤다. 붉어진 석양만큼이나, 인상 깊은 광경이었다. 제대로 볼 수는 없었으나, 단 일수에 모든 적을 없애 버리는 무위에 놀란 것이다.

석양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장 앞서 걸어오는 존재는 위압감이 넘실거렸다. 붉게 보이는 눈빛, 피로 얼룩진 것 같은 아수라의 머리칼. 신비로웠지만 절로 몸이 떨리는 광경이었다.

어색하게 쌓아 올린 목책 사이로 보이는 모습에 생존해 있던 아이들은 두려운지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로이젠은 호기롭게 전방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냐! 더 이상 접근 한다면 주살하겠다!”

마음 한 구석에서 일렁이는 떨림을 무시하며 외친 로이젠은 두 눈을 부릅떠야 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석양이 질수록... 로이젠의 얼굴은 밝아졌다.

“오랜만이군. 로이젠!”

“케, 케실리온님!”

은안으로 번뜩이는 케실리온의 강인한 모습에 로이젠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 눈빛은 경계와 살기가 아닌, 반가움의 눈빛이었다. 근 한 달 만에 만나는 케실리온이었기 때문인지 로이젠은 어린 아이마냥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뭐하느냐! 목책을 열어라!”

카르르

로이젠의 큰 목소리에 용병들은 제각기, 자신들이 해야 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있었다. 조잡하게 펼쳐진 목책의 정문이 흙바닥을 끌며 조금씩 열렸다. 그렇게 큰 마을이 아니었기 때문에 목책은 한 대의 마차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케실리온은 지체 없이 목책 안으로 들어섰다. 목책 안에는 방금 전 전쟁을 치룬 것처럼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실버 울프들은 그 시체를 치우기 위해 동분서주 하듯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케실리온님... 뒤에 세분은...?”

“아... 알 필요는 없지만... 알파, 레나, 프린이다. 알파는 본적이 있을 텐데?”

“아하하... 모습이 조금 변한 것 같군요. 자칫 못 알아 볼 뻔 했습니다. 하하!”

“그런가..?”

케실리온은 그러려니 생각하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알파에게 시선을 주었다. 금세 자신에게 향한 관심에 싱긋 웃어 보이는 알파를 보며 케실리온을 머리를 좌우로 저었다.

싱긋! 

“케실리온님, 무슨 일이라도...?”

“아니다. 수련이나 열심히 하도록.”

“예!”

알파의 상큼한 목소리만큼이나, 저물어 가는 하늘은 서늘한 바람이 몰아쳤다. 붉게 변한 하늘을 보며 케실리온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전에서 구해온 정보에 의하면, 이곳... 남부에 분명 유색의 비드가 있을 것이다. 지금껏 구한 유색의 비드라고는 신전에서 보유하고 있는 그린 드래곤의 심장뿐이다. 남은 것은 다섯, 그것을 다 보아야 용신과의 계약이 어느 정도 해결된 셈이다. 허나.. 그 길은 멀고도 한참 남았다.  

“그나저나... 심하군. 로이젠! 설마 이 병력이 전부라는 건 아니겠지?”

“하하... 어떻게 아셨습니까. 솔직히, 진 전쟁입니다. 이정도의 물자와 군사력이라니...”

잠시 고민을 하고 있던 케실리온은 이곳의 정세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남부의 영지전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싶은 점은 없었다. 하지만! 유색의 비드가 남부에서도 영지전을 벌이고 있는 하르그와 제니어스 가문이 알고 있다는 것은 반드시 이 전쟁을 종결 시켜야 했다.

문제는 제니어스 가문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곳의 주인이 되는 귀족부터 만나봐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케실리온은 로이젠에게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제니어스 가문에 있다고 하더군... 그 성주(城主)를 만나고 싶군.”

“제니어스 남작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럼, 누굴 만나겠나. 제니어스 남작을 만나고 싶다. 로이젠”

“아무래도 지금으로써는 무리라고 봅니다. 케실리온님”

케실리온은 미간이 꿈틀 거렸다. 감히 누구 앞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케실리온의 결정은 누구도 번복할 수 없다. 하지만, 그만한 사정이 있는 듯 로이젠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유가 뭐지?”

“지금 영지전입니다. 케실리온님... 거기다. 이곳은 제니어스로 향하는 길목... 이곳이 뚫린다면 제니어스는 삽시간에 무너질 것이 뻔합니다.”

“호오... 그럼 이 길목만 막으면 된다는 말로 들리는 군..?”

“그, 그게...”

“이번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날 실망시키지 마라. 로이젠...”

케실리온은 안광을 쏘아냈다. 이번에도 허튼 소리를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은빛으로 물들어 보린 안광을 보며 로이젠은 굵은 침을 꿀꺽 삼켜버렸다.

꿀꺽...

“아무래도 만나는 건 역시 어려우실 겁니다. 솔직히... 오늘이 영지전의 시작은 아니었습니다. 하르그 가문에서 흑마법사라도 영입한 모양입니다.”

“흑...마법사?”

“예! 밤이면 어디서 솟아나는 건지, 하급 마물이며, 스켈레톤 등 언데드들이 활동합니다. 때문에 제니어스의 문이 되는 이곳을 막고 있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말은 잘하는 군. 그 흑마법산지 뭔지를 처리하면 남작을 만날 수 있단 말이군.”

“에... 예!”

“물러... 너무 물러진 것 같군. 로이젠 언제 실버 울프가 흑마법사를 두려워했지? 하하하.. 웃기는 군.”

케실리온의 큰 웃음에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던 실버 울프들의 시선이 조용히 로이젠과 케실리온에게 향했다. 그만큼 그들의 목소리는 모두 듣고 있었다. 구석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알파는 물론, 휴식을 취하던 레나와 프린, 기타 병사... 기사들의 시선도 자연히 한곳으로 쏠렸다.

“케실리온님!! 이건 전쟁입니다. 단체와 단체의 싸움... 개인의 싸움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하! 단체와 단체? 개 소리마라. 전쟁은 자신과 자신의 싸움이다. 얼마나 죽이느냐 따위는 상관없다. 얼마나 큰 각오를 하고 있느냐. 긍지와 의지만이 승리를 이끈다. 얼마나 전쟁을 치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딴 소리는 하지 않았다.”

“......”

“막으면 뚫는다. 방해는 죽인다. 아군의 죽음은 10배로... 강자가 곧 법이다... 그것이 전쟁이다.”

케실리온은 그 말을 내뱉고는 어둠과 동화되어 조용히 주위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케실리온의 말을 곱씹으며 멍하니 있던 로이젠은 희미하게 몸을 떨어야 했다. 조금씩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리던 로이젠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과 부끄러움으로 몸을 떨었다.

“하하하! 우리 실버 울프가 있는 곳은 오직 승리뿐이다! 모두 알고 있나! 실버 울프에게 도망이란 없다는 걸!”

“단장!! 당연한 걸 말하고 있소! 우리가 누구요. 실버 울프가 아니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이제 그 망할 흑마법사가 올 시간이다!”

로이젠은 자신의 애검인 바스타드 소드를 꽉 움켜쥐었다. 이제껏 잊고 있었던 긍지와 용기 그리고 기합이 되살아 난 것이다. 로이젠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50명의 동료, 그것이 바로 실버 울프의 긍지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작 하나의 흑마법사 따위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불리해도... 뚫고 나가는 것이 바로 실버 울프다. 고작 한 달 만에 피폐해진 정신력을 한탄하던 로이젠은 어둠을 뚫고 달려들기 시작한 마물을 보며 공격명령을 내렸다.

“막아라! 죽여라! 뚫어라! 실버 울프!!!”

로이젠의 큰 목소리에 제니어스 가문의 기사들과 병졸들은 힘차게 마물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물론,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던 케실리온이 움직이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기억났다... 그 더러운 기운... 그 놈이군! 리턴... 매치다.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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