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전쟁(1) - 발록의 강림
“너... 넌!”
“그딴 망발은 지껄여 보거라. 나의 목숨을 취한다고?!”
흑마법사의 계열인 네크로맨서는 저번의 일이 그제야 떠올랐던지, 케실리온을 가리키며 떨리는 표정으로 지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로브자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거친 피부를 따라 흘러내리는 굵은 땀방울은 차갑게 식어갔다.
“후욱... 후, 후욱! 어, 없애주마!”
“가능하다면!”
케실리온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언데드들을 보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의지라곤 느껴지지 않은 아니꼬운 마물주제에 같은 대지에 서 있는 것이 불쾌한지, 케실리온은 마령지기(魔靈志氣)를 끌어올렸다.
의지의 표출! 케실리온은 사방으로 쏟아져 나가는 마기의 의지에 순응하듯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몰아치는 무한의 기운에 언데드들은 마지막 발악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괴성과 끈적이는 침이 뚝뚝 떨어뜨리며 케실리온에게 접근 한 것이다.
“사라져라! 하찮은 것!”
쿠와앙!
쏟아지는 기파에 언데드들은 뒤로 물러나야했다. 자신의 주인인 흑마법사에 비해 뛰어난 기운에 감히 접근할 엄두도 나지 않았던 모영이다. 무형(無形)의 기파는 날카로운 냉풍(冷風)의 칼날이 되어 언데드를 농락했다.
파사사삭! 스걱!
무형은 유형으로 바람은 얼음의 칼날이 되어 흩날렸다. 흑마법사를 지나 주위에 포진해 있던 일단의 언데드들에게만 집중된 기파는 여지없이 망자를 지옥으로 이끌었다. 무시하지 못할 한기의 기운에 흑마법사는 화(火)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빠지직! 파삭!
“아, 아닛!”
기운과 기운의 충돌이었다. 극한으로 끌어올린 화의 기운을 뚫고 지나가는 대량의 마기에 흑마법사는 절망했다. 이정도의 마기를 가진 자는 처음이었다. 8서클에 해당하는 흑마법사가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 마기를 뚫고 엄습해 오는 한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푸수수수!
“망자가 있을 곳은 지하(地下) 뿐이다. 어리석은 자여!”
케실리온의 시린 말에 언데드들은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대지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더러운 침을 흘리고 있던 좀비와 굴, 인간에게 대항하던 스켈레톤들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 어둠의 마물을 불러들인 흑마법사만이 대지를 밟고 있을 뿐이었다.
“지, 지금이다! 실버 울프! 공격하라!”
“닥쳐라. 로이젠... 이건 나와 저 흑마법사의 은원(恩怨).”
케실리온의 위엄서린 목소리에 흑마법사를 향해 돌진하던 실버 울프들은 바닥에 아교(阿膠)로 붙인 것 마냥 얼어붙어 있었다. 그만큼 케실리온의 살기, 그러니까. 드래곤 피어는 누구도 무시 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물론, 예전부터 그러했지만 이렇게 의지가 강하게 깃든 것은 오랜만일 것이다. 살기로 사람까지 죽일 수 있다고 했다. 하물며 이정도의 인원의 행보를 막는 것은 충분했다.
“보여라. 흑마법사! 최고의 마법을... 소환을!”
케실리온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과거, 그러니까. 지옥에 있을 때의 무위를 어느 정도 회복한 상태였다. 약간 부족한 상태였지만 자신의 무위를 믿고 있는 눈치였다. 물론 만검 2장 4초의 무살(霧殺)을 어설프게나마 펼칠 수 있다는 점을 볼 때, 완벽하게 무위를 찾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크큭.. 보여주마! 버러지 같은...”
“오호...”
케실리온은 갑작스럽게 기세를 변화시킨 흑마법사를 보며 이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살기를 받아내며 마법을 펼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가상했기 때문이다. 아까의 두려움을 잊은 듯, 동요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지옥을 지키는 수문장이여. 나의 대답에 응답해다오. 나의 피를 바치니 너의 모습을 보여라! 헬 하운드(Hell Hound)!”
쩌저적!
흑마법사의 영창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이 찢어지듯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놀라운 점은 허공을 가르고 나타난 문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발톱이 보였다. 검은 색의 털 사이로 비치는 지옥의 불꽃을 연상케 하는 기파(氣波)가 전해졌다.
크르르...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비치는 붉은 혓바닥은 이미 붉은 피가 고여 있었다. 이미 무언가를 해치운 듯 흘러내리는 불꽃의 액체는 마그마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쿠쿡... 어떠냐! 고위 소환마법. 헬 하운드다!”
“무르군...”
케실리온의 심정은 솔직히 실망이었다. 고작 소환한다는 것이 지옥을 지키는 똥개였다는 생각에 분노마저 치솟는 듯했다. 그토록 갈망하던 데스 나이트는 끝내 모습을 비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아앙!
헬 하운드는 케실리온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 지, 두터운 발톱을 세우며 케실리온을 향해 도약을 시도했다. 뜨거운 헬 파이어를 두르고 있는 헬 하운드의 육신을 보며 케실리온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대로 팔을 내비친 케실리온의 팔은 헬 하운드의 먹잇감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도약을 한 헬 하운드는 6미터 정도의 위까지 떠오르기 무섭게 케실리온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 위치가 묘하게 케실리온의 팔인 점을 볼 때, 어느 정도 공격 센스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용병들과 여러 인간들... 그리고 알파는 초조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케실리온을 믿고 있었지만, 이 처럼 무모한 짓을 할 줄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퍽! 퍼퍽!
“깽... 깽깽!”
팔이 잘려나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낙하하던 곳을 향해 다시 치솟는 헬 하운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단 일수였다. 케실리온의 팔은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움직이며 헬 하운드의 주둥이와 복부를 향해 천마소수를 펼쳐 낸 것이다.
총 여섯 번의 움직임이었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세 번 뿐이었다. 그만큼 케실리온의 천마소수는 극에 달해 있었다. 로이젠과 알파는 영문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헬 하운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작 개새끼를 상대하자고 나선 게 아니다.”
“네, 네놈! 후회하게 해주마!”
한방에 나가떨어진 헬 하운드를 보며 부들부들 떨던 흑마법사는 결심 한 듯 갑작스럽게 자신의 팔을 향해 칼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쏟아지는 붉은 피들은 땅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세 개의 점으로 시작했던 마법진은 어느새, 헬 하운드의 몸을 가릴 정도의 크기로 커져 있었다. 대단한 소환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는 헬 하운드를 향해 지팡이를 내려쳤다.
“불꽃의 마물이여... 소멸의 채찍이여... 여기 그대의 수문장을 바칩니다. 미천한 피와 지옥의 불꽃을... 파멸의 군주여, 존재를 증명하라... 어스 게이트(Earth Gate)!”
“저, 저런 미친! 케실리온님 소환이 되기 전에 흑마법사를 죽이십시오! 케실리온님!”
알파는 흑마법사가 펼치려는 마법을 눈치 챈 듯 보였다. 지옥의 수문장인 헬 하운드와 큰 마법진 그리고 저 캐스팅의 조합에 놀란 알파였다. 고운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는 것은 물론이었다.
케실리온의 의중과는 관계없이 다급히 몸을 날리며 블러드 네일을 펼친 알파는 흑마법사의 심장을 향해 블러드 네일을 휘둘렀다. 다급한 나머지 케실리온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 보였다.
캉!
“이, 이런! 늦... 었다.”
알파는 떨리는 표정으로 펼쳐진 실드를 향해 몇 번이고 블러드 네일을 휘둘렀다. 하지만, 펼쳐진 마법진에 의해 가로막힌 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 알파의 마기조차 뚫지 못하는 벽을 보는 케실리온은 다소 흥미로울 뿐, 일의 심각성은 눈치 채지 못 한 듯 했다.
“하하하! 생명이 줄어들겠지만... 오만한 네놈을 죽여주마! 크하하!”
붉은 마법진 사이로 보이는 흑마법사는 처음보다 다소 늙어 보이는 얼굴로 케실리온을 비웃고 있었다. 순식간에 헬 하운드를 집어 삼킨 마법진을 통해 거대한 팔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지옥의 불꽃에 타 버린 것인지 검은 피부였다. 하지만, 그 피부를 두르고 있는 불꽃의 갑옷은 대지를 녹일 듯 타오르고 있었다.
[쿠아아아!]
케실리온의 사자후와 비견될 정도의 목청이 울리자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붉은 마기가 출렁이는 것은 물론, 케실리온의 은빛의 머리칼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거대한 마기였다.
촤아악!
불꽃의 채찍이 대지에 떨어졌다. 그리고 육중한 육체가 하늘로 떠오르자, 등에 붙어 있는 검은 날개가 대기를 찢어발기듯이 파공음을 터뜨렸다.
“마물의 군주... 바, 발록!”
알파는 떨리는 목소리를 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작 8서클의 마법사가 발록을 소환해 낸 것이다. 마계에는 총 6대 세력이 있다고 한다. 마계를 대표하는 4대 마왕과 마신에게 선택된 11의 마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마지막 세력인 마물이 있다. 이 마물들은 마족들에게 그저 몬스터처럼 취급 받고 있지만, 실상 하나의 양대 산맥처럼 군림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다. 다크 드래곤, 즉 마룡 역시 마물에 속하고 있었기에 마물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직감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마룡이 마물에 속한다는 속설일 뿐이다. 어떤 세력에도 들어가 있지 않은 유일한 존재가 마룡이었다. 아무튼, 마물의 군주라고 까지 불리는 발록 일족이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허억... 허억... 비록 힘이 일천하다 보니, 완벽한 성체의 발록은 소환하지 못했지만... 네 놈 쯤은 반드시!”
흑마법사는 힘겹다는 표정으로 케실리온에게 툭 쏘듯 말했다. 힘든 와중에도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발록의 등장함과 동시에 케실리온은 죽었다는 것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만큼 발록이 강하다고 대변하는 것과 같았다.
“케, 케실리온님! 어, 어서... 피신을... 발록입니다. 발록!”
“알파...”
“어, 어서! 발록은...”
“알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케실리온은 알파의 다급한 음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구보고 도망이나 치라고 하는 것이란 말 인다. 도망이란 약자에게나 해당되는 소리였다. 강자는 당당히 앞을 보며 적을 없애는 것!
“내가 누구냐!”
“케, 케실리온님...”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바로 마룡이다. 고작... 미물 따위에게 등을 보일 쏘냐!”
케실리온은 불꽃의 채찍을 휘두르며 대지를 박살내고 있는 발록을 보며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마계에서 알아주는 마물, 발록! 케실리온의 상대로도 부족함이 없을 듯했다. 비록 데스 나이트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복수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발록을 처리하고 두려움에 떨, 흑마법사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는 것! 그리고 철저히 농락시켜 줄 것이다. 자신에게 검을 들이댄 이상... 편히 잠을 잘 수도... 음식에 입을 델 수도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줄 것이다.
[크르르... 고작... 인간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소환 한 것인가...?]
“고작... 저 미물을 믿고 설치는 것이냐! 흑마법사여...!”
케실리온과 발록은 각자의 생각으로 흑마법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교차하는 군주의 시선에 케실리온은 비웃음과 살기를 내뿜었다. 숨 막히도록 짙은 살기에 평범한 어린아이들은 기절 한 것인지 축 늘어져 있었다. 고르게 볼록이는 가슴을 보건데 죽은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