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전쟁(1) - 발록의 강림
발록!
마계의 마물 중 가장 흉폭 하다고 알려져 있는 마물이었다. 인간과 같이 이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생명체였다. 머리위로 돋아 있는 두 개의 두꺼운 뿔과 벌름거리는 코에서는 활화산이 터지듯 불꽃이 터져 나왔다.
감히 주위로 다가 설수 없는 불꽃의 갑옷은 절망을 상징했으며, 대지를 쪼개고 마그마를 분출시키는 프레임 위프(Flame Whip) 당당히 발록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파멸의 채찍을 뒤로 하고 쭉 뻗어 있는 두 장의 날개는 하늘까지 지배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음우우우!!]
쫘악! 화르륵!
발록의 거친 포효를 동반한 프레임 위프가 대지에 작렬했다. 떨어져 내린 채찍은 대지를 찢어발기듯 마그마를 분출시켰다. 케실리온의 발치에 떨어진 파멸의 채찍은 방향을 틀며 케실리온의 하체를 향해 날아들었다.
휘리릿!
공기를 가르고 날아드는 발록의 채찍을 노려보고 있던 케실리온은 마령검을 소환하기 위해 그림자에 손을 뻗었다.
“섀도우 웨폰!”
찰나의 순간 그림자 속에서 당당히 위용을 내뿜는 마령검이 케실리온의 손에 안착했다. 오른손에 쫙 달라붙는 느낌이 드는 순간 케실리온은 마령검에 마기를 분출시켰다. 발록과는 반대 속성에 해당하는 빙마의 기운이었다.
쩡!
불꽃과 얼음의 만남이었다. 케실리온은 정확하게 날아드는 채찍을 보며 마령검을 대지로 찔러 넣었다. 녹고 얼리는 긴박한 상황에서 조차 케실리온의 투지는 끝도 없이 타올랐다. 발록이 휘두른 채찍은 케실리온의 발치에 닿기도 전에 회수되며 다음 수를 위해 준비 동작에 들어가 있었다.
[인간 주제에 제법이구나!]
휘익!
채찍은 뒤로 물러나며 발록의 후방 저편까지 기운을 끌어 올렸다. 채찍으로 모여드는 불꽃의 기운이 거칠어질수록 뿜어지는 불꽃의 향연은 커져만 갔다. 그 지옥의 불길에 흑마법사는 일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었다.
육체적으로 도저히 견디기 힘든 화기였다. 물론, 케실리온은 극한의 냉기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후방에 위치하고 있던 자들은 기파의 범위 밖으로 물러나 있어야 했다. 그만큼 두 존재는 상상을 초월했다.
푸후!
발록은 거칠게 숨결을 토해내며 케실리온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채찍과 몸에서 뿜어지는 불꽃의 기운에 케실리온은 급히 마령지기를 끌어 올렸다. 발록과 마찬가지로 은빛의 한기가 몸에서 뿜어지기 시작했다.
일종의 호신강기와 비슷했지만, 맞수를 놓기 위해 공격성 호신강기를 펼친 것이다. 누구의 마기가 강한지 기운과 기운의 대결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발록의 등 뒤에서 펄럭이는 긴 두 장의 날개에서는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펄럭.. 펄럭!!
[음무우우!]
짧은 순간 하늘로 치솟았던 발록은 여지없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는 길목길목 불꽃으로 휩싸이는 장관이 펼쳐지자, 케실리온을 얼굴을 구기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플라이 마법이었다.
무공에 비해, 내력의 소모가 적은 플라이 마법은 허공답보에 비해 가장 실용적인 마법이었다. 케실리온의 용천혈에 기운을 집중시키며 하늘로 떠오른 후, 발록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늘의 공기를 타격한 왼손의 장은 추진력을 가했기에 빠른 속도로 날아갈 수 있었다.
[벌레 보다 못한 녀석이 이 몸에게 육탄 공격이라니! 음무우!!]
발록은 케실리온의 만용에 비웃음을 날렸다. 무려 6미터나 되는 몸집과 괴력에 맞수를 놓는 케실리온이 웃겼기 때문이다. 케실리온의 몸통과 비슷한 굵기의 팔뚝을 자랑하는 발록은 날개를 활짝 펴며 케실리온을 향해 날아들었다.
펄럭!
힘차게 날개 짓을 한 발록은 꿈틀거리는 근육에 자신의 속성에 맞는 화기를 덮어 씌웠다. 숄더 어택을 할 작정인 모양이다. 공기의 저항을 받으며 날아간 케실리온과 발록은 일정한 점에서 맞부딪혔다.
쾅!!
불꽃과 은빛의 잔영이 한 점에서 만난 순간 공기가 폭사하듯 사방으로 마기가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케실리온을 압도하듯 날아들었던 발록의 기운인 화기가 사방으로 뻗쳐 나가자 모두 걱정과 절망의 표정이 드리웠다.
누가 보아도 케실리온의 체격 적으로 불리했다. 거기다. 마기의 범위 또한 케실리온을 능가하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파, 파이어 어택!”
“무, 무슨?!”
“발록이 사용하는 근접 기술이다.”
알파의 말에 로이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파는 심히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그 진심어린 말투에 로이젠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 케실리온의 도움으로 이곳에 서 있지 않았던가.
데스 나이트때도 홀로 맞서 싸운 자가 바로 케실리온이다. 거기다. 저런 마물을 상대하는 것도 케실리온 뿐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무력에 대하 한탄해야만 했다. 그 심정은 주위에 있는 모든 이가 통감하는 듯했다. 굳게 쥐어진 주먹 사이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그 말을 대신했다.
[무우우! 어떠냐. 인간... 발록에게 육탄 공격이라니... 자살 행위를 하는 구나!]
화마(火魔)에 휩싸인 케실리온을 노려보는 발록은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상급 마족조차 발록의 파이어 어택... 즉 육탄 공격을 상대 할 수 없다. 어깨에 마기를 집중시킴으로써, 육체의 특별한 장점을 살린 기술로 누구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선사하는 기술이 파이어 어택이다.
화르르륵!
은빛의 섬광은 잦아드는 것 같았다. 화마에 휩싸인 케실리온의 모습을 본 알파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정통으로 당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발록은 파멸의 군주! 도망도 공격도 허용치 않는 존재였다.
장거리 공격의 채찍, 근거리의 육탄 공격! 전투에 기본을 고루고루 갖추고 있는 발록은 전신이라고 까지 불리는 최강의 마물이다. 그런 존재에게 육탄 공격을 한 케실리온의 실책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빠지직...
[음무우우...]
화마에 휩싸여 있던 대기에서 작은 손이 튀어나왔다. 우유 빛의 여린 손목이 발록의 툭 튀어 나온 주둥이를 쥐고 있었다. 갑작스런 움켜쥠에 발록은 당황한 것인지, 고통에 찬 비명인지는 몰라도 당황스런 포효가 터져 나왔다.
뿌드득...!
화마에 휩싸인 케실리온의 육체가 조금씩 커져갔다. 165정도로만 보이던 키는 180으로 변해 있었고, 여린 팔은 굵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발록의 주둥이를 움켜쥐고 있는 손바닥에 무시하지 못할 악력이 가해졌다. 약 3배가량의 덩치를 자랑하는 발록은 잡아 챈 것이다.
“기어코... 미물 따위가 열 받게 하는 구나!”
변해버린 모습만큼이나 케실리온의 목소리는 약간 굵어져 있었다. 등 뒤로 흩날리는 마룡의 망토가 펄럭였다. 현신(現身)이었다. 육체의 힘을 반절이상으로 떨어뜨리면서 까지 변해 있던 어린 모습을 탈피해 케실리온,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케실리온은 가히 투신(鬪神)처럼 비춰졌다. 무심하도록 차가운 눈빛만큼이나, 목소리는 싸늘함을 더해갔다.
“돌아와라... 마령검!”
케실리온은 파이어 어택의 영향으로 지상으로 떨어져 버린 마령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둥둥!
놀랍게도 마령검은 케실리온의 내력에 의해 하늘로 떠오르며 오른손으로 감기듯 돌아와 있었다. 그 모습에 모두들 놀라는 한편,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곳에서 감히 누가 발록을 상대 할 것인가!
있다면, 알파뿐일 것이다. 하지만, 알파의 육체와 기량을 본다면 어려울 것이다. 그저 막상막하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고작이다.
[어, 어떻게?! 분명 당했을 텐데!]
“당한 것처럼 보였을 뿐!”
케실리온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소대가리를 보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비웃었다. 처음과 비교 되지 않을 정도의 침착한 기운이 발록의 주위로 포진하자, 발록은 마음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고작 망토하나 둘렀을 뿐인데!
고작 자세를 고쳤을 뿐인데!
이정도의 위압감을 내뿜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발록은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을 부정하고 싶었다.
[음무우우우우!!!]
발록의 포효가 터지자 케실리온의 손을 타고 열화가 몰아쳤다.
화르륵!
팔을 타고 전해지는 뜨겁고, 피부를 녹일 느낌이 전해졌지만 케실리온의 냉마기가 발록의 기운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뿜어지는 케실리온의 장법!
파팟!
소수신장이었다. 위험한 기운이었지만 케실리온은 발록의 기운에 순응했다. 천천히 받아들이며 기운을 끓어 올렸으며, 역행을 했다. 이것이 바로 케실리온의 추구하는 무공의 깨달음이다.
발록의 화기를 흡수해 되돌린다. 이것이야 말로 지옥에서 깨달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가진 게 있다면 내어 놓는 것! 죽을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버리고 간다. 이것이 바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으면 빈손으로 돌아가라! 미물이여!”
쩌저적!
케실리온의 장법은 정확하게 녀석의 주둥이를 얼려버렸다. 인간과 다른 육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몸속의 화마기(火魔氣)가 강했던 탓인지 녀석의 주둥이를 얼리는 정도의 타격을 주었지만 효과는 있었다.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었다. 거대한 육체와는 다르게 심하게 고통을 느끼는 모양이다.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순간 얼어버리는 주둥이의 고통을 어찌 모를까. 하지만! 케실리온이 지옥에서 느낀 고통과는 비교 할 수 없다.
추위, 더위, 정신의 파괴 등 어떤 고통과 죽음을 경험한 케실리온에게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발록의 불꽃 따위 몸을 데우는 정도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감히 누구에게 불꽃을 들이댄단 말인가!
덜덜덜...
[무, 뭇무우우!]
화륵, 화르르!
발록은 얼어버린 주둥이를 간신히 떼며 웃음과 비슷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금세 불꽃의 갑옷이 피워 오르며 주둥이를 얼렸던 소수의 기운은 사라져 갔다.
[베히모스의 빙마에도 지지 않는 나다. 고작 인간의 빙마에 질것 같으냐! 무우!]
발록이 불꽃의 지배지라면, 베히모스는 빙화의 지배자였다. 양대 산맥 같은 두 상급 마물은 최고의 자리를 노리는 라이벌! 때문에 마계에서 자주 벌어지는 싸움은 두 마물의 영역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허다했다.
불꽃과 빙화는 서로 얽히지 않은 종속이다. 죽고 죽이는, 얼고 녹이는 관계인만큼 불꽃과 빙화의 싸움은 익숙해져 있다는 증거였다. 그 모습에 케실리온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간단히 끝날 미물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회심의 소수신장을 파훼 할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소수신장은 소수마공을 근본으로 한, 침투 경을 오의로 두고 있다. 제대로 당한다면 빠른 시간 안에 몸속에 빙마의 기운을 퍼뜨림으로써 서서히 육신을 열러가는 방식으로 말(唜)에 이르러서는 심장을 얼리며 서서히 죽어가는 극마의 장법이다. 그 장법을 파훼했으니,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할 상대 일 것이다.
척!
케실리온은 조소어린 표정을 지웠다. 이제 제대로 된 싸움을 벌려 볼 상대가 눈앞에 있는 이상 방심과 비웃음은 금물이다. 상대가 미물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상관없었다. 녀석은 싸움을 알고 있으며, 싸움을 즐기는 녀석이었다.
“최선을 다해 싸워주마! 인정하지. 네놈의 불꽃을”
케실리온은 마령검을 쥐며 지상으로 떨어지듯 착지했다. 그에 따라, 발록 역시 지상으로 떨어지며 불꽃의 갑옷에서 채찍을 꺼내들고 있었다. 검은 피부사이의 땀구멍에서 불꽃이 일렁이며 대지를 태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