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전쟁(2) - 일기당천(一騎當千)
두 명의 병졸은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1월의 서늘한 한풍(寒風)을 잊었다는 듯이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과 꽉 쥐어진 주먹에서는 흥건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한 병졸은 힘겹다는 표정으로 열을 식히고 있었다.
“오늘쯤 입성하신다지?”
“아아... 헛!”
둘은 느긋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교대 시간이 빨리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보초를 서고 있는 병졸들에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제, 제니어스 남작님! 공기가 찬데 이런 곳엘...”
“정말 그들이 대단한가? 이 영지를 지켜 줄 만큼.”
“아이고... 남작님 진짭니다요. 특히 은발을 하신 분은 발록이라는 마물까지 퇴시하신 분입니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자는 제니어스 영지의 주인이 되는 일레인 남작이었다. 이미 망해가고 있는 영지인 만큼 귀족에 대한 위엄과 격식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지금은 귀족이었다.
거기다. 영지민들에게 세금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것을 받고 있었기에 민심도 나쁘지 않았기에 병졸들은 최대한 예의를 차리며 대답하고 있었다.
“제발 그가 대단하길 빌 수밖에 없겠군... 지금의 어설픈 평화가 깨질 날도 그렇게 멀지 않았구나...”
축 처진 어깨를 부여잡으며 영주가 사는 저택으로 돌아가는 일레인 남작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약자의 비애, 고통이 느껴지는 등이었기에 두 명의 병졸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보초를 서야했다.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두 개의 달이 유난히 쓰리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 * *
“삼재검(三才劍)... 마지막 시범이다.”
26일 전, 냉전 체제로 돌입한 이래, 케실리온은 제니어스 남작가의 기사와 실버 울프의 검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검을 다루지 않는 이들도 자신들의 무기에 맞게 수련 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 줬기 때문에 특별히 무리는 없었다.
“삼재검에는 3개의 초식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가 천(天)!”
휙! 휙! 쉐에엑! 촥!
지옥의 기초 검술이라고 불릴 정도의 기본검술이었기 때문에 검을 처음 잡는 자들도 쉽게 펼칠 수 있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2계의 인간들이 보기에는 특별해 보이는 검법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케실리온을 주시하고 있었다.
좌우로 그어지는 두 번의 횡 베기를 시작으로 대각선을 두 번 긋고 나서 끝나는 것이 삼재검의 첫 번째 초식인 천이었다. 단순히 펼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케실리온은 삼재검의 특성상 최대한의 쾌와 묵직한 중을 담아 펼친 것이다.
삼재검에는 쾌와 중을 중하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현란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검법이다. 첫 번째 초식을 펼쳐 내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은 케실리온은 두 번째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지(地)!”
스팟!
두 번째 초식부터 케실리온은 검무를 추듯 삼재보를 밟기 시작했다. 땅의 호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케실리온은 어떤 움직임보다 절제 되어 있으며 경건한 모습이기 까지 했다. 상하 좌우, 대각선등 이번 초식은 짧게 끊어 치는 행동까지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용병들과 기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두 번째 초식이었다.
상체를 최대한 낮추어 펼치며 오른 발을 살짝 끌며 무릎을 차올리며 검을 베어 올리는 것으로 두 번째 초식이 끝맺자 모두들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초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다음 초식은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위력 있는 검초였다. 삼재검의 필살기라고 까지 불리는 이 초식은 발검술로 유명하다. 가장 먼저 펼쳐할 검초이며, 가장 마지막에 펼쳐야할 검초였다.
“인(人)은 가장 처음과 가장 마지막에 펼치는 검술이다. 일명, 발검술과 납검술이다.”
케실리온은 납검수을 먼저 선보였다. 발검술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지만, 극의 쾌를 보여주는 만큼 주위의 군중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케실리온의 검과 팔을 주시했다.
휙! 착!
순식간에 베고 들어오는 검 끝이 검집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미 베고 지나간 허상일 뿐이었던지 케실리온의 검은 완전히 납검되어 있었다.
“완벽한 납검을 펼치기 위해서는 하체와 상체, 팔의 힘이 균등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 저서는 안 되며, 천(天)과 지(地)의 초식이 완벽해야만 펼칠 수 있다. 그리고... 발검술은...”
촥!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가 무섭게 케실리온의 검은 검집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그야 말로 전광석화가 따로 없는 수법이었기 때문에 실버 울프들과 기사들은 두 눈을 껌뻑이고 있어야만 했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짐작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빼는 것이 아니다. 가장 빠르게, 효과적으로 적의 기선제압 및 적을 사살해야하는 수법으로 극도의 쾌속을 익힌 자는 쾌검술 만으로도 적을 제압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삼재검의 마지막 초식인 인(人)만을 익힌다면 능히 상대를 제압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웬만한 기사들도 맥을 못 출 것이다.”
“예!”
“나머지는... 대련을 하던 수련을 하던 알아서 하도록.”
케실리온은 긴 설명을 마치고는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 그들이 알아서 수련해야 할 것이다.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짓을 하고 있었기에 질릴 만도 했지만, 모두들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기 때문에 케실리온은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이면 제니어스 영지로 들어서기 때문에 짜증은 나지 않았다.
“또 시작했군요. 대련”
알파의 목소리가 숲에서 들려왔다. 혼자서 수련을 하고 있었던지 숨결이 약간 거칠어져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모두들 수련을 하고 있었다. 물론, 혼자가 아닌 대련 형식의 수련을 하고 있었기에 공기가 뜨겁게 달구어졌다.
“굉장하군요. 저 기사들...”
“아아, 굉장하지... 어떻게 저렇게 못할 수가!”
케실리온의 능청스러운 말에 알파는 나직이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의 경우는 더 심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발전한 모습이었지만 케실리온의 관점에서는 어린아이 장난 수준에 불과했다.
지옥에서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 못해도 저정도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케실리온이다. 검의 끝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터뜨린 케실리온은 알파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발전은 있나?”
“옛! 걷는 방법과 손쓰는 방법!”
“좋아. 대련이다.”
케실리온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용병들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공터로 이동했다. 제니어스에 있는 숲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경계해야할 적은 없었다. 몇 걸음 옮기자 대련하기에 알맞은 공터가 나왔다.
“자유대련이다. 먼저 공격해라.”
“하, 하지만... 마기를 쓰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네 공격에 죽을 정도로 허약하지 않다. 와라!”
케실리온의 강경한 말에 알파는 마기를 끌어 올렸다. 붉게 타오르는 블러드 네일을 피워 올리며 케실리온을 향해 보법을 펼쳤다. 신속하게 치고 들어오는 수법에 케실리온은 그와 같은 보법을 펼치며 좌에서 우로 이동하며 알파의 손짓을 피해냈다.
“핫!”
알파의 기합이 터져 나오자 천마소수의 수법으로 파고드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케실리온의 안광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알파의 손을 쳐내며 수도를 알파의 목에 가져다 댔다.
“한번 죽었다.”
단 일초에 목숨이 날아갔다는 말에 알파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케실리온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이 여유롭게 피하는 반면 알파는 혼심의 힘을 다해 무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어설펐던 초식들이 날카롭게 변하며 케실리온의 급소를 향해 공격을 하기도 하며, 허초로써 공격을 무마시키기도 했다.
“이번엔 다를 겁니다!”
스팟!
땅을 박찬 알파는 땅을 밟듯 허공에 뜰 듯 가벼운 몸짓으로 케실리온의 가슴을 향해 파고들었다. 그리고 블러드 네일을 찔러 넣을 듯 빠른 기세로 손을 놀렸다. 그야 말로 급소필살의 수법이었다. 단번에 죽일 의도로 찔러 오는 블러드 네일을 보며 케실리온은 오른발을 왼쪽으로 틀었다.
그 순간 정면을 찔러 들어오던 알파의 손이 빗나갔다. 케실리온은 스쳐지나가는 알파를 보며 살며시 왼발을 뻗어 알파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뻗어진 수도는 정확히 미간을 향해 닿아 있었다.
“두 번 죽었다. 실전이었다면 넌 이미 죽었다.”
“으윽...”
케실리온의 직설적인 말에 알파는 머리를 떨어뜨렸다. 솔직히 알파는 약하지 않았다. 케실리온이 비정상적으로 강할 뿐. 하지만 케실리온이 손속을 두지 않았다면 이정도의 공방도 없었을 것이다.
“반드시... 케실리온님을...!”
“오호!?”
케실리온은 갑작스럽게 강한 기세를 내뿜는 알파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붉은 기운이 몸 밖으로 배출되자 알파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쏟아지는 살기를 보며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블러드 와일드(Blood Wild)!”
알파의 손에서 기운이 뿜어졌다. 수십 개의 마기의 구슬이 생성되자 케실리온은 살며시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천마소수의 수법으로 펼쳐지는 마기의 공격이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0개의 구슬이 20개로 변하자 알파는 케실리온을 향해 블러드 와일드를 펼쳤다. 스물 개의 구슬이 쏘아지자 케실리온의 신형이 약간 흔들렸다. 전방으로 쏟아진 구슬을 피할 곳은 없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몇 개의 구슬을 소멸 시키며 앞으로 뻗어나갔다.
천마소수와 소수마공을 펼치며 움직였기 때문에 알파의 블러드 와일드에 대한 회피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정면으로 치고 오는 몇 개의 구슬을 제외한다면 위험하지 않은 수법이다. 정확하게 노려서 공격하는 것이 아닌, 두 손의 마기를 이용해 전체 공격을 할뿐!
한명을 상대 할 때는 마기 소모의 낭비만 클 뿐 효용성이 떨어지는 기술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펼친 알파를 생각하니 머리가 저려왔다.
“끝입니다. 케실리온님!”
그 순간 케실리온의 예상과는 다르게 알파가 정면을 향해 블러드 네일을 찔러 넣고 있었다. 케실리온으로써는 이런 식으로 공격을 가해 올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동작과 마기의 소모가 큰 블러드 와일드였다. 그만큼 다음 공격의 공백이 큰 만큼 준비기간도 있는 법이다. 그 예상을 뛰어넘고 공격을 들어온 알파의 수법에 케실리온은 감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이대로는 당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아직 멀었다!”
툭!
케실리온은 지형을 이용하기로 했다. 숲이라는 점과 밤의 서늘한 공기의 특성상 밤의 숲은 땅이 질다. 때문에 딱딱하던 땅은 약간 물렁해지는 점이 있다. 몇 번의 움직임으로 생겨난 작은 족적은 케실리온에게는 가장 좋은 회피 수단이 되었다.
땅으로 들어간 작은 구덩이를 박차며 케실리온은 알파의 찌르기를 회피했다. 그 순간을 노치지 않을 케실리온은 살며시 알파를 향해 일장을 가하기 위해 알파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팟!
하지만, 알파 역시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지 케실리온을 향해 신형을 밀어 넣었다. 이 상태로 라면 케실리온과 알파의 신형은 여지없이 부딪힐 것이다. 이 상태로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케실리온으로 써도 약간 힘든 상황이었다.
눈앞의 지형은 알파가 가리고 있었으며,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알파를 공격하는 방법뿐이었지만, 이미 알파의 손은 회피 행동이 두드러져 있었다. 물론, 기운을 넣어 공격한다면 알파를 튕겨 낼 수 있겠지만, 상처가 깊을 것이다.
때문에 케실리온은 그대로 몸을 보호하는 한편 일체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휘청!
“저, 저런! 황당한!”
케실리온의 생각을 뒤엎는 변수가 나와 버렸다. 알파의 보법이 꼬이면서 케실리온을 덮쳐 버린 것이다. 이 황당한 우연에 케실리온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것이 역력할 정도로 드러나 있었다.
쿠당!
밤이었지만, 케실리온과 알파의 시각을 방해 할 수는 없었다. 뿌연 먼지구름이 피워 올랐고 케실리온은 어이없게도 바닥에 쓰러져야 했다. 그 위로 넘어져 버린 알파는 나름대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케실리온은 분명 일장을 날리기 위해 손을 앞으로 뻗어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넘어지면서 알파의 가슴과 케실리온이 손이 맞닿아 버렸으니 황당한 침묵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황당하군. 나의 예상을 뒤엎는 수법이었다. 알파”
“죄, 죄송...”
케실리온은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알파는 아닌 모양이다. 그 멋쩍은 흐름에 케실리온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있었고, 알파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짧은 대련을 끝내 버렸다.
“죄송할 것 없다. 그만 돌아가라. 레나와 프린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 그런... 그럼 케실..”
“아아... 신경 쓸 것 없다. 나도 수련은 해야 하지 않겠나.”
케실리온은 그렇게 알파를 보내고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두 개의 달, 끝도 없이 펼쳐진 별이 수를 놓고 있었다. 전혀 색다른 세계와 공기를 느끼며 벌써 1년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고작 어린 아이... 하하하! 나도 욕구 불만인가?”
짧은 감상을 마친 케실리온은 여전히 느껴지는 알파의 감촉을 털어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수련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육체와 초식의 한계를 맛본 케실리온은 수련의 필요성이 떨어진다. 수련이라고 한다면 명상과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일 것이다.
육체적으로 완벽한 마룡의 육신과 정신... 그리고 과거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강해지는 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미 한계에 다다라 버린 깨달음의 감은 잡을 수 없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한 오묘한 깨달음의 벽은 어디에든 존재한다. 하지만, 그걸 알 방법이 없다는 것 뿐.
“드디어 내일 인가? 제니어스 남작이라는 작자를 보는 게...”
점점 겹쳐져 가는 두 개의 달을 보며 케실리온은 중얼거리듯 말을 내뱉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와공(臥功)이었다. 굳이 좌공을 통해 수련을 할 필요는 없었기에 달이 잘 보이는 풍경을 느끼며 케실리온은 수련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