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전쟁(2) - 일기당천(一騎當千)
퍼억!
“아악!”
길게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어지는 용병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진검과 주먹의 대결, 평소보다 힘을 빼고 하고 있건만 한방에 나뒹구는 용병의 모습을 보자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당하고 있는 용병으로써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벌써 네 명 째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눈을 알고 있되, 몸은 피할 수 없는 기묘한 방법에 당하고 있으니 비명은 악으로 바뀌고 있었다.
입에서는 줄줄이 쏟아지는 검은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지만, 용병들 누구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다. 자신들도 저렇게 당할 것을 알면서 그를 비난하거나 비웃을 용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당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상대는 마룡이다. 평범한 인간인 그들이 상대할만한 자가 아니다.
“움츠리지 마라! 눈을 감지마라! 공격만이 살길이다.”
케실리온이 쓰러져 가는 용병에게 속삭이는 말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수련방식에 모두들 의문을 품었지만, 자신들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전쟁에 유용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씨팔!! 빌어먹을...!”
헬씨였다. 지금은 실버 울프의 부단장 역을 맡고 있는 중책을 책임지고 있는 용병이었지만, 케실리온에게는 그저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약자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어야 할 욕을 내뱉으며 케실리온에게 당한 가슴을 움켜쥐었다.
입에서 흘러내리는 검은 피가 눈에 들어오자 정신이 나간 것인지 케실리온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바닥을 뒹구는 바스타드가 횡과 횡을 베어가며 삼재검의 초식을 펼쳐갔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검법이었기 때문에 무의식 적으로 펼치는 모양이다.
후웅!
바스타드 특유의 중압감과 굵은 느낌의 파공음이 퍼지며 케실리온의 목을 베어갔다. 용병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모두 진짜였다. 연습용이 아닌 실전용이었기 때문에 긴장의 끊을 노칠 수 없지만, 케실리온에게 만큼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
“날 죽일 정도로 휘두르라고 했을 텐데!”
“씨팔! 죽어!!”
차창!
삼재검의 첫 번째 초식이 가로막혔다. 케실리온은 맨손으로 삼재검을 펼쳐내고 있었다. 횡으로 베어오는 검을 감싸 안듯 교묘하게 타원을 그리며 검면을 잡은 케실리온은 진각을 밟았다.
쾅!
진각의 효과는 대단했다. 땅을 진동할 듯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헬씨가 움켜쥐고 있던 바스타드 소드는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각으로 이루어진 몸의 중심이 지면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어깨의 힘이 증폭되면서 헬씨의 무기는 지상으로 떨어졌다.
“빨리 주워라.”
“씨팔! 줍고 있잖아.”
케실리온의 재촉 하는 소리에 헬씨는 욕설을 퍼부었다. 어지간히도 당한 모양이다. 말이 헛나 올 정도의 고된 대련이 가져온 결과였다. 헬씨의 두 눈에는 살기가 맺혀 있었다. 이미 대련의 수준을 넘어서버렸다.
“뭐 라고? 씨팔?”
“크크큭, 강해서 좋겠수다.”
“푸하하핫!”
케실리온은 웃음을 터뜨렸다. 분노의 웃음도 아닌, 순수한 웃음이었다. 녀석이 하는 말이 가소로웠다. 강해서 좋겠다. 약자의 상상일 뿐이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가 이정도의 무력을 가져온 것이다.
죽음을 넘어, 생사를 넘어 일궈낸 무력을 헬씨라는 녀석은 힘들이지 않고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을 느낀 케실리온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부터 강했다고 생각하느냐. 그럼 보여주지. 일체의 마기도 사용하지 않고 너를 상대하지. 마나 사용을 허가한다.”
“후회하지 마시오!”
케실리온의 말에 용병들은 저마다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마룡이 누구인가. 최고의 마기를 지닌 마(魔)의 종족이다. 그 존재가 마기를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은 큰 약점이 된다. 거기다. 실버 울프의 단장보다는 아니지만, 강하다고 알려진 헬씨를 상대로 마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니. 그럼 허울뿐인 마스터가 아닌가!”
헬씨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케실리온은 양손을 살짝 풀었다.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마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상대를 제압 할 수 있다는 것을!
척!
헬씨의 검에서 마나의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소드의 단면을 간신히 채우고 있는 오러 소드를 보며 케실리온은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헬씨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며 지면을 박찼다.
“죽엇!”
진득하게 뿜어지는 살기! 오랜만에 느껴지는 흥분을 만끽하며 케실리온은 삼재보를 밟기 시작했다. 좌에서 우를 치고 들어오는 녀석의 검을 보며 케실리온은 발끝을 살며시 모았다.
촤락..! 촥!
바닥을 질질 끌듯 발끝을 모은 케실리온은 순간 하체의 근력에 힘을 주며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회전시킨 몸은 지상으로 떨어지며 오른손을 바닥에 받치게끔 만들었다.
“이겼다! 역시 헬씨!”
용병들의 눈에는 헬씨가 우위를 점한 것처럼 보일 테지만, 승지는 케실리온이다. 직접 대련을 하고 있는 헬씨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하체에 힘을 주었지만 이미 감각은 떠나간지 오래였다.
휙! 퍽!!
이미 케실리온의 발이 헬씨의 하단부를 공격하며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짚어진 오른팔에서 부풀어 올라가는 근육은 순식간에 케실리온을 허공으로 날게 만들었다. 머리가 아래로 향했으며, 하체가 하늘로 향하는 기묘한 모습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차올린 각술은 헬씨를 허공으로 띄워 올리기에 충분한 힘이었다.
“똑똑히 지켜봐라. 버러지들아!”
중력에 의해 지상으로 떨어지는 헬씨를 보며 케실리온은 크게 소리쳤다. 사납게 빛나는 은안의 사이로 줄기차게 뿜어지는 살기는 헬씨의 곁에 머물렀다. 팔의 힘만으로 5미터가 넘는 높이로 도약한 케실리온이 괴물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지상으로 떨어지는 헬씨를 따라 케실리온은 주먹을 불끈 쥐며 지상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후 헬시의 비명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졌다.
“컥...!
쿠당탕!
“눈 떠라!”
케실리온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헬씨를 보며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용병들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케실리온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 기백! 마기와 마나의 힘이 아닌 정신력의 차이는 엄청나다는 것을...
“하앗!”
쾅!
케실리온의 일갈과 함께 내질러진 주먹은 헬씨의 귓불을 지나 바닥으로 내질러졌다. 일말의 망설이 없는 주먹에 헬씨의 눈은 두려움에 떨며 사물을 인지하는 동공이 풀어져 있었다.
“이것이... 나와 너희들의 차이다. 수련이다. 수련만이 너희를 강하게 할 것이다.”
케실리온은 이 말을 남기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알파의 곁으로 다가갔다. 할 일 없이 제니어스 남작가에 머문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기 때문에 이 처럼 용병과 기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을 뿐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케실리온님.”
알파의 말에 케실리온은 살짝 수긍하면서 옆에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에레노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내게 볼 일 있나?”
“그... 그게.. 나에게도 대련... 대련을...”
“뭐? 대련? 풉..!”
케실리온은 에레노아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찾아와 대련을 해달라는 말에 웃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거기다. 옷차림도 대련할 차림이 아니었다. 드레스를 차려입은 것을 보아하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말을 돌리니 웃기지 않을 소가 있을 까.
“분명 대련이 아닐 텐데...? 이번엔 남작이 무엇을 시켰지?”
“그... 그게...”
“또 나에게 잘 보이라고 했겠지. 필요 없다. 거짓된 호의! 필요하면 용기와 기백을 보여라. 도움은 그 뒤다.”
“내, 내가 부족해? 나이가 어려서? 아니면... 몰락해 가는 가문이라 거들떠보기도 싫다는 거야?”
케실리온은 웃던 표정을 지우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에레노아의 글썽이는 눈물과 어리석은 대답에 좋던 기분이 가셨던 것 이다. 케실리온은 무를 숭상하면서 여자와 남자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
짝!
케실리온의 손바닥에 에레노아의 뺨을 때리고 스쳐지나갔다. 붉게 달아오른 에레노아의 뺨 사이로 투명한 물기가 스쳐지나갔다. 서러운지,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조차 세어 나오지 않았다.
“난 그저 영지를 생각해서! 영지를 지키기 위했던 거야! 너에게는 그저 무너져 가는 영지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영지야!”
“소중하면... 지켜라. 너의 힘으로... 강자에게 빼앗기기 전에 강해져야 할 것이 아닌가. 힘이 없다면 가질 자격도 없다. 그렇기에 내가 있는 것이다. 보여라. 용기를, 기백을! 행동을 보이란 말이다.”
케실리온의 진심어린 말에 에레노아는 눈물을 훔쳤다. 서글퍼 보이던 눈빛은 하나의 맹수로 변해 있었고, 굳게 닫혀 있던 입술에서는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나랑 대련을 해줘! 반드시! 널... 이기겠어!”
에레노아의 음성은 거짓이 없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기백이 느껴지는 음성, 두 눈에서 뿜어지는 안광은 케실리온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굳은 표정의 얼굴에서 얼굴의 근육이 씰룩이기 시작했다. 안면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감각이 전해지자 케실리온의 얼굴은 웃음이 드리웠다.
“상대 해주마.. 하지만... 체력, 근력의 차이부터 없애야겠지..”
케실리온의 몸은 180에 달하는 장신에 체력과 근력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에 달해 있었다. 때문에 케실리온은 에레노아와 비슷한 상황에서 대련할 생각이었다. 녀석의 눈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음... 폴리모프(Polymorph)!”
케실리온은 오랜만에 마법을 펼쳤다. 폴리모프 마법이었다. 변신 마법이라고 불리는 마법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인간이 펼치는 마법은 같은 종족인 인간의 모습으로 변 할 수 있겠지만 케실리온은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마법을 소유하고 있다.
바로, 마룡의 마법! 마법의 조종이라고 불리는 드래곤이다. 케실리온에게 종족, 성별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솨아아아!
새하얀 빛이 뿜어졌다. 그와 동시에 케실리온의 몸을 뒤덮은 새하얀 빛 속에서 뼈와 살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케실리온의 몸은 점점 줄어들었다. 에레노아와 비슷한 키로 변한 케실리온은 평소보다 더 어려 보였다. 은빛과 은색의 눈동자는 여전한지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지으며 에레노아의 앞에 섰다.
“보여라... 너의 모든 것을!”
“조, 좋아!”
에레노아와 비슷한 외모로 변한 케실리온은 멀리 떨어져 있는 목검을 두 개 들고 왔다. 처음 에레노아와 만났을 때 보았던 공간인 만큼 수련장으로 쓰이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목검을 구하는 것은 쉬웠다.
“와라!”
손가락을 까딱 거리는 케실리온의 모습에 에레노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삼재보를 펼치며 케실리온을 향해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와 코리안 공작의 기사에게 배운 검술을 펼치며 케실리온은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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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퇴보하는 느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