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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화 (200/269)

남부전쟁(2) - 일기당천(一騎當千)

약자는 빼앗기는 존재! 약자는 강자에게 굴복하는 존재! 언제나 당하며, 참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그것을 잘 아는 케실리온은 보고 싶었다. 약자이면서 강자에게 떳떳한 자를 보고 싶었다. 만용이라도 좋았다.

“차핫!”

에레노아의 목검이 케실리온의 하단을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체격 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케실리온은 보법을 밟으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살며시 검을 앞으로 뻗으며 에레노아의 검로를 차단하며 공격적인 수를 놓았다.

팍!

목검과 목검이 부딪혔다. 쓰린 소리가 들려오자, 에레노아의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힘과 체격이 비슷하다고 한들, 경험과 기술의 차이를 극복 할 수 없다. 상대는 900년이나 검을 수련한 최고의 검수다.

“아얏!”

에레노아는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느낌에 쓴 신음을 터뜨렸다. 힘과 체격으로 밀리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렇게 쉽게 자신이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보여주고 싶었다. 진정으로 영지를 위하는 마음을!

그 마음가짐이 변하는 순간 에레노아의 검은 굳게 쥐어졌다. 그리고 어깨넓이로 벌어진 보폭과 검을 잡는 특이한 기수식이 눈에 들어왔다.

“!!!”

그 모습을 본 순간 케실리온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특별할 대가 없는 기수식이었지만, 케실리온에게는 특별했다. 어찌 잊을 수가 있을 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수식이었다. 검을 잡은 손바닥은 약간의 공기가 통할 정도로 쥐어져 있었다.

세게 잡았어도 세게 잡지 않은 느낌!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바람을 지배하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 기수식을 어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푸... 풍운지!”

케실리온이 본 것은 풍운지가 자세를 잡던 모습이었다. 공격과 방어가 쉽게 변형시킨 기수식과 보폭은 케실리온이 닮고자 했던 기수식이었다. 때문에 지금, 만검의 기수식이 그런 모습으로 변형되었지 않은가.

“반드시 이긴다!”

에레노아의 의연한 음성에 케실리온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경지의 차이는 극과 극이라고는 하나, 녀석의 굳은 마음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의지가 강해질수록 케실리온의 미소는 짙어졌다.

타탓!

짧은 발구름 소리와 함께 에레노아의 몸은 앞으로 쏘아졌다. 바람처럼, 자유로운 느낌의 보법이 펼쳐지며 케실리온의 후방을 점했다. 빠르지도 느지리도 않았지만 케실리온은 순간 넋을 잃어 버렸다.

알고 있었으면서 움직임을 노친 것이다. 후방을 점한 에레노아의 목검은 매서워졌다. 공기를 가르며 미세하게 들려오는 손목의 떨림까지 전해지자 케실리온은 신형을 아래로 낮추며 몸을 회전시켰다.

휙!

검이 하단을 치며 하늘로 상승하는 듯 한 광경이 펼쳐지자 에레노아는 당황해했다. 등을 보인 순간 이겼다고 들던 생각이 싹 가신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수법에 더욱 놀란 것은 용병들이었다.

지면을 가르며 날아오를 듯 한 검의 수법에 한 번 놀랐으며, 에레노아의 순간적인 방어기술에 다시 놀랐다. 어린 나이에 저 정도의 반사 신경이라면 다음에 크게 될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훌륭하지만!”

케실리온은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에레노아가 검을 끌어 치며 막아냈을 때, 이미 케실리온의 신형은 좌에서 우로 위치를 바꾼 상태였다. 근력의 차이를 극복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오랜 경험이다.

시각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이용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기술이다. 인간의 눈은 약 130도 정도로 반경을 계산하며 위치를 알 수 있다. 하물며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하단과 130도가 넘어가는 지역을 이용해 위치를 바꾼다면 감쪽같이 속이고 공격을 할 수 있다.

무인들이 왜 안력을 수련하는 가.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하고 방지하기 위해서 안력 수련을 하는 것이다. 물론 케실리온의 안력은 이미 한계점에 다달 했을 정도로 시각의 자율화를 가지고 있다.

퍽!

케실리온은 목검을 왼쪽 손으로 바꾸며 오른손을 이용해 에레노아의 옆구리를 살짝 가격했다. 그대로 폐부의 공기를 차단 한 것인지 에레노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컥... 컥! 아...”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과 숨쉬기 어려운 듯 고통스러운 표정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만들었지만 이것이 강자와 약자로 갈린 모습이었다. 무표정하게 폴리모프를 푸는 케실리온을 뒤로하고 눈물을 머금은 에레노아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흑.. 흑... 도대체... 노력했는데... 왜!”

“알량한 노력으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리석은...”

케실리온은 비웃음이 가득 머금어진 얼굴을 하고선 허름한 저택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미 흥이 깨진 것이다. 슬슬 밤이 되어 가고 있었고, 더 이상의 가르침은 필요 없을 듯했다. 오늘 했던 대련으로 모두들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약자는 강자의 먹잇감이다. 지키고 싶다면 힘을 이기는 수밖에...

“아무리 강하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헬씨 안 그래?”

“웃기는 군. 인간들이란... 그분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수련? 알량하게 검이나 휘두르고 있는 너희보다 그분은 더 많은 수련을 하셨다.”

알파의 쓰린 말에 용병들의 표정이 변했다. 하늘만 보고 있는 케실리온의 모습이 어디가 수련하는 모습이란 말인가. 그저 피곤하다 싶으면 눈이나 감고 가끔 뻐근한 듯 팔을 휘두르는 모습이 어디가 수련하는 모습이란 말인가.

그 말을 듣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하는 용병들은 건방진 마족을 향해 살기를 내뿜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내뿜는 살기다.

스슷... 화아아악!

“뭐, 뭐야?!”

용병들은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자신들의 살기에 놀랐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지만 더 없이 늘어난 투지와 상쾌한 기분, 뻐근하기만 한 몸에서 알 수 없는 기분이 느껴졌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인간 주제에... 꺼져라!”

알파는 케실리온의 알 수 없는 행동에 화가 났다. 왜 용병들과 기사, 그리고 에레노아라는 꼬마에게 큰 가르침을 내렸는 가 이해되지 않았다. 가끔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방식과는 조금 달랐지만 자신에게 행해주던 타혈법과 비슷한 수법으로 용병에게 가르침을 베풀던 케실리온이 야속했다.

그때, 멀리서 먼지구름이 번지며 성문으로 달려오는 하나의 말이 보였다. 말의 뒤에는 커다란 깃발 하나와 붉은 깃발, 두 장이 펄럭이고 있었다.

두두두두!

“길을 열어라! 하르그 가문의 전령이다! 길을 열어라! 전령이다!”

붉은 깃발은 전령을 상징했으며, 옆에서 큰 위용으로 펄럭이는 깃발은 하르그 가문을 상징하고 있었다. 전신 갑옷을 걸친 전령은 제니어스 가문의 저택으로 질주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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