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전쟁(3) - 오백의 전설
고독(孤獨)
힘을 가진 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그것이 바로 고독이다. 최고라는 이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고독이라는 절망! 하지만 강자들은 알고 있다. 힘이란 희열과 강자를 꺾는 즐거움을... 그러니 이곳에는 강함을 추구하지만 다른 길을 걷는 자가 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영지를 지키기 위해!
힘을 추구하는 자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무려 500명이 되는 대 인원이었다. 그들은 힘을 얻기 위해 이곳에 서 있다. 어설프게 농기구를 움켜쥐고 있는 농부에서부터, 빨래방망이를 쥐고 있는 아낙네들 까지 굳은 표정으로 은발의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다.
“힘을 원하는 가!”
싸늘하기 이를 대 없는 눈빛과 목소리였다. 하지만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들은 무언가에 끌리듯, 흡수되듯 한 마음이 되어 소리쳤다. ‘힘을 원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진정 원하고 있었다.
“그럼 너희들에게 힘을 주마! 생살이 뜯어지는 고통과 정신이 붕괴되는 고통을 감내하라! 단 그뿐이다. 의심도 하지마라. 생각도 하지마라!”
장대한 연설이 아니었지만, 케실리온의 말에는 모순되거나 거짓된 말은 없었다. 오직 전진만이 그들이 강해지는 방법뿐이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케실리온은 마지막 선택을 원하고 있었다.
“진정 강해지고 싶은 자만 이곳에 남아라! 그것이 빛을 보는 마지막이 될 테니까! 빛을 보는 순간은... 전쟁뿐이다.”
꿀꺽...!
케실리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평범하게 농사를 짓던 자들, 아낙네들 그 누구도 자리를 뜨는 자는 없었다. 다만, 두려움이 앞설 뿐이었다.
500명의 의지를 엿본 케실리온은 천천히 주위를 돌며 이상한 문양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기다 이상한 글씨도 적고 있었기에 영문도 모르는 이들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대충 보아도 네 겹 정도 되는 원이 사람들을 감싸고 있었다. 그로부터 수십 초가 지났을 무렵, 케실리온의 입에서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개문(開門) - 흡(吸) 중(重) 환(幻) 역(逆)!”
케실리온의 손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인을 그리는 행동이었다. 엄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이 마주하는가 하면 손가락이 서로 교차하며 여러 모양으로 바꾸어 가며 수인을 그려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네 겹의 마법진은 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아아악!
큰 불꽃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듯 은빛의 섬광은 오백 명의 인원을 뒤덮고 남을 정도로 퍼져나갔다. 다행히 마법진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인지 그 빛은 큰 기둥이 되어 오백 명을 감추고 있었다.
“알파!”
“예!”
케실리온의 표정을 본 것인지 알파는 밝게 빛을 내뿜는 마법진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 뒤로 에레노아, 프린, 레나, 일레인 남작이 들어가고 나서야 케실리온은 뒤늦게 마법진속으로 몸을 던졌다.
화아악! 푸스스스...
케실리온이 마법진 속으로 진입한 순간 제니어스 영지에는 커다란 빛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 나타난 공터는 텅 비어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오백 명이나 되는 인원은 사라져버렸다.
“허억...! 이, 이곳은...?!”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일레인 남작은 묵직하게 느껴지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붉은 땅과 붉은 하늘이었다. 듬성듬성 솟아 있는 나무들은 괴기스런 느낌을 풍기며 사람들을 비웃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키키키키!
싸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귀곡성에 오백 명의 인원들은 약간 주춤 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들이 있던 곳은 분명 영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순식간에 이곳으로 이동한 것은 이해불가능의 상황이었다.
“케실리온님 이곳은....”
알파도 당황스러운지 케실리온에게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진법! 마법진 속이다.”
케실리온의 간단한 설명에 알파의 표정은 한결 풀리는 듯했지만 이해 못할 상황이었다. 어떤 곳보다 풍부한 마나량과 더불어 몸을 짓누르는 공기의 압박감이라니!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마법진이다. 분명 이곳에서 수련한다면 금방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흡수, 중력 환상, 역행의 마법! 이곳은 나의 의지를 반영한 곳! 이곳에서 너희들은 강해 질 것이다. 죽어도 나의 허락이 없다면 죽을 수도 없을 것이다.”
케실리온이 펼친 마법은 간단했다. 마나를 끌어 모으는 집약진과 몸을 짓누르는 중력진, 그리고 주위 환경을 바꾸는 환상진... 마지막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하는 역행진을 펼침으로써 단시간 내에 오백 명이나 되는 인원을 강하게 만들 속셈인 것이다.
황량한 벌판이 눈에 들어오자 케실리온의 표정은 밝아져 있었다. 비록 환상일 뿐이지만 고향과 같은 지옥이다. 붉은 하늘, 붉은 대지에 익숙한 케실리온은 어떤 심리적 동요도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오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두려움을 일으키고 있었다. 거기다. 호흡곤란도 오는 것인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지금 너희들은 포크하나 잡을 힘도 없을 것이다.”
“그, 그런! 훈련은 어떻게 하란 말이오!”
케실리온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악을 쓰듯 말하는 자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 차가운 미소였다.
씨익!
“이곳에 온 순간부터 너희들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익숙해져라! 이 중력에! 그리고 느껴라. 죽음의 공포를! 잊어라 평소의 호흡을!”
케실리온은 무리한 주문을 하고 있었다. 중력에 익숙해지는 것은 힘들다. 평소보다 몇배나 되는 중력을 견딘다면 근육강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것은 살기와 주위의 마나의 존재를 아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소의 호흡을 잊는 것은 내공심법의 기초인 축기(縮氣)를 불러일으킨다. 운기토납법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최고의 속성(速成) 수련법이다.
“이것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 전략이다. 오백 중 고작 둘!”
케실리온이 말한 숫자는 중력을 견디는 자였다. 그들은 알파와 실버 울프의 로이젠이 중력에 견디고 있었다. 물론, 몇 십 명은 더 있었지만 케실리온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곧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모든 이에게 충고를 하듯 입을 열었다.
“숨쉬기 힘들 것이다. 지금부터 말하는 방법대로 숨을 쉬도록! 이 방법뿐이다. 배로 숨을 쉬어라!”
“헉... 허억... 어, 어떻게, 배로 숨을 쉬란... 말이오!!!”
기사는 구부린 무릎을 펴며 간신히 케실리온에게 입을 열었다. 그 말에 기가 막힌 케실리온은 신형을 날리며 기사의 앞으로 날아갔다. 코앞까지 다다른 케실리온은 생각할 겨를 도 없이 주먹을 뻗었다.
퍽! 우지끈!
주먹과 강철의 갑옷이 부딪히며 기이한 소리를 내뱉으며 복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케실리온의 주먹질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기사는 억울하다는 듯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케실리온에게 보냈다.
“까불지 마라. 내 말이 곧 법이다. 배로 숨 쉬는 것이 어려운가? 갓 태어난 아이도 할 수 있다. 숨을 쉬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케실리온은 착실히 이곳에서 해야 할 방법을 가르쳤다. 몸을 압박하는 방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숨쉬기뿐이다. 중력에 대항하며 숨을 쉬는 행위는 그들의 근육 발달의 촉진을 더불어 몸 곳곳에 노폐물과 고른 호흡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고른 호흡을 가진다면 쓸 대 없는 마나 배출을 줄일 수 있으며, 피로를 덜 느끼게 될 것이다. 케실리온은 확실히 그들을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중력을 통해 근육을 기르며 끈기를 기를 것이다.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누구보다 강해 질 것이다. 중력에 익숙해져라. 호흡을 느껴라! 너희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다.”
스윽... 까딱!
케실리온은 몸을 틀며 알파와 로이젠을 향해 손짓했다. 녀석들에게는 중력훈련은 필요 없을 것이다.
“너희 둘에게는 다른 것을 가르치지... 한번만 말한다.”
“예!”
둘은 갑작스런 말에 바짝 굳은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알파는 익히 알고 있던 장소에 와 있다는 신비로움에 취해 있었고 로이젠은 강한 자에게 무언가를 배운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알파는 평소와 같이 수련을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로이젠 넌 따로 가르치겠다.”
로이젠은 침을 한번 삼키고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이른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로이젠의 경지는 이제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속해 있는 용병이다. 현재 A급의 용병패를 소유하고 있는 배태랑 용병이다. 거기다. 다음 경지로 넘어간다면 충분히 S급 용병도 될 수 있는 자였다.
“네가 알고 있는 어설픈 기술은 모두 잊어라.”
“예! 예에? 무, 무슨!?”
케실리온의 주문에 당황한 로이젠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몸이 알고 머리가 알고 있는 기술을 잊으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자신의 기술을 어설픈 기술로 만들어 버린 케실리온에게 화도 나기 시작했다.
“어설픈 기술은 잊으라고 했다. 실버 패닉? 개가 웃겠군.”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실버 패닉이 어떻다고요?!”
“어설픈 기술이라고 했다.”
로이젠의 눈이 붉어졌다. 지금껏 저런 치욕은 없었을 것이다. 바스타드를 이용한 실버 패닉은 용병계에서 로이젠을 은빛의 늑대로 불리게 만든 기술이었다. 물론, 그 기술을 사용한다면 근육에 무리가 갈지는 몰라도 여러 번 목숨을 구해준 특별한 기술이다.
“이유를 말해주지.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기술이다. 근육에 무리가 가는 기술을 필살기라고 말할 수 있겠나! 너에게 어울리는 것은... 파괴력 있는 기술이다. 그 기술을 익히고 실버 패닉을 완성해도 늦지 않을 터!”
“.....”
케실리온의 지적은 정확했다. 로이젠의 몸은 근육을 이용해 폭발적인 힘을 방출할 수 있는 근육이었다. 쾌검을 익히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몸이다. 한마디로 로이젠은 검보다는 도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두 가지 기술을 가르쳐 주지. 분광도법의 필취파멸도(必取破滅刀)와 분뢰우혈도(分雷雨血刀)다.”
케실리온은 지옥에서 많은 초식을 얻을 수 있었다. 풍운지와의 수련을 끝으로 처음 여행의 길에 올랐을 무렵 상대했던 마호영이라는 자의 무공이다. 분광도법은 분명 로이젠에게 알맞은 무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른 용병에 비해 근육이 적은 편인 로이젠은 분광도법을 익히기에는 적합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찌르는 검술 보다는 베는 근육으로 발달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로이젠에게는 분광도법이 어울렸다.
“이곳의 이름으로는 루인소드와 블러드 라이트닝 정도가 어울리겠군.”
케실리온은 나름대로 이곳의 이름으로 분광도법의 초식 명을 바꾸었다. 잠시후 케실리온은 분광도법을 펼치며 로이젠에게 분광도법을 펼칠 때 쓰이는 호흡의 흐름과 함께 초식을 자세하게 가르쳤다. 이것으로 로이젠은 한걸음 상승의 무공에 다가선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로이젠 스스로는 느끼고 있었다. 이 기술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점점 멀어지는 케실리온의 등을 보던 로이젠은 살며시 머리를 숙였다.
“휴식 따위는 없다! 죽고 싶나? 내 허락 없이는 이곳에서 죽을 수 없다! 죽고 싶으면 강해져라!”
케실리온의 음성이 오백 인에게 울려 퍼지자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꿈틀거리는 와중에도 배로 숨쉬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단한 집념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강해지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고통도 강해지기 위한 인내일 뿐이다.
이렇게 마법진 속의 하루는 점점 저물어 가고 있었지만, 마법진 밖의 시간으로는 고작 1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하루의 고된 고통이 현실에서의 1시간이라는 것을 알면 모두 까무러치겠지만 모두 그들을 위한 방법일 뿐이다. 일주일 뒤의 영지전을 생각하면 이것은 약과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