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4화 (204/269)

남부전쟁(3) - 오백의 전설

“일주일! 죽고 싶나?”

“조, 존명(尊名)!”

케실리온이 펼쳐 놓은 마법진에서의 생활이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의 시간은 고작 7시간이 지난 것이 다였지만 진법 안에서는 찰나의 시간이 지나듯 일주일이나 흘러 있었다.

일주일!

그것은 500명의 인간들이 중력에 익숙해진 것이었으며, 마나라는 기운을 느낀 시간이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이곳의 인간들은 천재라고 불려야겠지만 실상 케실리온의 마나 밀집진에 의한 효과였다.

중력과 마나는 의외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은 마나라도 중력의 한계를 느낀다면 자연히 알게 되는 성질이 있다. 그곳이 바로 생(生)과 사(死)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 터득한 마나다.

“이제 너희들은 마나라고 불리는 기(氣)를 느낄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축기(縮氣)의 경지에 달해 있다는 소리다.”

“그, 그럼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케실리온의 위엄서린 목소리에 놀란 이들은 저마다 꿈에 부풀어 있었다. 마나를 느낀다는 것은 마법을 익힐 수 있는 상태라는 소리다. 흙을 파먹고 사는 농사꾼이라도 이정도의 사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갈(喝)! 일레인...이곳은 내가 법이요.  신이다!”

일선에 나서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일레인 남작을 보며 케실리온은 살짝 으르렁 거렸다. 그 모습에 수련에 지쳐 헐떡이고 있는 기사들은 케실리온을 쏘아봤지만 일주일간의 고된 수련과 은연중 풍기는 위엄에 움츠려 들 뿐이다.

“고작 마법사 따위가 되고자 이런 수련을 한 것이 아니다! 너희는 죽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다. 그리고 너희들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존명(尊名)뿐이다. 그것을 명심해라.”

“존명(尊名)!”

“절대복종! 불혹복명! 그것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지금 부터는 효과적으로 적을 죽일 수 있는 곳과 간단한 병기술을 배울 것이다.”

케실리온은 전쟁에서 오래 살 수 있는 방법과 적을 적절하게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거기다 체력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간단한 심법과 체력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병사보다 강할 것이다.

또한, 연계 공격도 가르쳤기에 마나를 사용하는 기사들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니어스 영지의 기사들과 용병들에게는 지옥에서 익히 알고 있었던 무공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지만 소수의 인원으로 전쟁에서 이길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왜, 내가 이딴 녀석들을 위해’라는 의문을 품은 것도 없잖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일이었다. 다 쓰러져 가는 영지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 각자 일러준 숨 쉬는 방법으로 체력을 보충하라.”

“존명!”

케실리온이 가르친 병기술은 도법과 창법이었다. 가장 익히기 쉬우며 빠른 성취를 볼 수 있는 것이 도법과 창법이다. 거기다 체술도 가르쳤기에 일대 일의 싸움에서는 절대 지지 않을 것이다.

“쉬면서 들어라. 내가 가르친 두 가지 병기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도법의 사혼도법(死魂刀法)과 창술의 사륜창법(死淪槍法)은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도법과 창법이다.”

휙! 휘리릿!

케실리온은 직접 펼쳐 보이며 일정한 동작과 크기로 손을 내저었다. 사혼도법과 사륜창법은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은 병기술이었다. 이름만 다를 뿐, 그다지 차이가 없는 병기술이다.

“작은 동작으로 적을 죽인다. 이것을 위해 만들어진 필살의 무공이라는 것을 알아둬라. 이것을 익힌 순간 네놈들은 짧은 순간 강해질 것이다. 너희가 말하는 익스퍼트! 즉 달인의 경지에 오를 것이다.”

웅성웅성!

케실리온의 돌발적이 발언에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익스퍼트가 무엇인가? 바로 기사의 경지라 일컬어지는 것이 바로 익스퍼트다. 기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지! 그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에 모두들 들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속성법인 만큼 큰 경지에 오를 확률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평생 익스퍼트의 경지에 안주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왜냐 하면 이것이...”

“.......”

“힘의 등가교환(等價交換)! 쉬운 만큼 그 대가는 크다. 그것만 명심하라.”

케실리온은 속성법으로 강해지는 수법을 많이 알고 있다. 900년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은 아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많은 고수와 조우(遭遇)했으며, 무공을 빼앗았다. 그리고 익혔다.

그 끝에 발견한 것이 만검의 2장이다. 그것이 드넓은 깨달음의 끝에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케실리온이 알고 있는 초식만 해도 만 가지는 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조합해 무공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사혼도법과 사륜창법은 마교 무공에 속하는 아류무공에 속하는 저급한 무공이다. 물론, 케실리온은 어느 정도 그 무공의 단점을 보완했지만 하급무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내공의 상승과 경지의 빠른 속성을 위한 무공인 만큼 그들은 빠른 시간 내에 강해질 것이다.  

“그런! 케실리온님! 저희에게 따로 가르친 것도 그런 종류입니까!”

케실리온의 발언에 가장 당황한 이들은 기사들과 용병들이었다. 그들은 케실리온이 직접 사사한 무공을 배우고 있었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조금 전의 발언으로 갈등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너희들의 무공은 상승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무공이다. 저들이 저것을 배운 것은 기운을 느끼지도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처음 말했을 텐데... 의심하지 말라고!”

케실리온은 그런 말을 내뱉으며 강한 살기를 내뿜었다. 사위로 뿜어진 스산한 살기에 기사들과 용병, 500명의 병졸들은 헛바람을 삼키며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며 떠는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이 일이었다.

“의심하지마라! 앞만 보고 나아가라. 그것이 너희가 할 일이며 유일한 길이다. 너희가 의심하면 어쩔 것인가! 나약한 주제에 약한 주제에! 너희는 병신처럼 나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케실리온은 그 말을 내뱉고는 환상진 속에서 멀어졌다. 이제 가르쳐야 할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기에 주눅 들지 않게끔 강한 의지를 키워야 하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몸을 사려야할 이유가 없었기에 보법조차 가르치지 않았다.

그들은 앞만 보고 나아가야하는 병졸들이다.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 그런 각오도 없이 어떻게 영지와 가족을 지킨단 말인가. 케실리온의 수련방법은 탁월했다. 효과적으로 강하게 만들었으며, 강한 의지를 가지게 만들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케실리온님.”

“......”

케실리온이 있는 장소는 지옥에 있을 때 지냈던 절벽 밑에 있는 오두막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고향의 향기에 케실리온의 잘 벼려진 눈동자는 조금 누그러들었다. 비록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었지만 마음을 편하게 만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많이 가르치신 것은 아닙니까?”

“아아... 기사들과 용병 말인가?”

“예. 각각 다른 것을 전수해주시다니...”

알파의 말에 케실리온은 웃음이 띠는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럽게 그려진 미소에 알파는 약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순수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걱정할 것 없다. 지금까지 상대해온 자의 무공들이니까.”

“그것이 아니라...”

“위험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예...”

알파의 걱정은 정확했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여전히 웃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느긋한 얼굴을 하며 환상 속에 펼쳐진 공간이 일그러졌다. 잠시후 보이는 수천의 무인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존재가 그려졌다.

“내 사람으로 만들면 될 것이 아닌가.”

“예?!”

“배신하지 못하게 만들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알파. 너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 모습처럼!”

케실리온은 아련하게 비치는 무인들의 모습을 보며 감상에 젖어들었다. 확실히 케실리온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흡수(Absorption)다. 상대의 능력을 빼앗는 것도 흡수였지만, 왠지 케실리온에게는 사람을... 인간을... 그리고 다른 이들을 끌어 들이는 묘한 마력이 있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마라.”

케실리온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알파를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 속에는 묘한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강한 의지였다. 그 의지가 마법진에 퍼진 순간. 오백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남부전쟁(3) - 오백의 전설

대륙력1911년 1월 30일

남부 최남단, 제니어스의 성에선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 겨울의 얼음을 녹일 듯 한 따뜻한 봄비의 향연이 시작될 무렵, 각종 병기로 무장한 오백의 무리가 성벽위에서 굳건히 서 있었다.

소년, 소녀, 중년에 이르기 까지 모든 이들이 병기를 쥐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은연중 풍기는 무인의 향기가 스멀스멀 일렁였다. 그 뜨거운 열기에 수증기로 변해가는 봄비는 유형의 기운으로 변한 듯했다.

저벅... 저벅...

흥건히 고인 물줄기가 얼어붙어 버릴 듯 한 존재의 등장으로 봄비는 차갑게 식어갔다. 그의 일보 일보에 모두들 긴장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듯 네 명의 존재가 좌우에 서 있었다.

“근 네 달간 수고 많았다.”

케실리온의 등장과 짧은 한마디에 긴장된 표정이 풀리듯 오백의 존재들은 저마다 흥분된 기색으로 창과 도를 쓰다듬었다. 비록 환상이었지만 148일 간의 고통 속에서 단련된 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을 알리고 있었다.

쿵! 쿵! 쿵!

“조용!”

거대하게 울리는 발 구름 소리를 들으며 케실리온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발을 구르던 자들의 행동이 멈칫 거리며 조용해졌다. 사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보슬보슬 내리는 빗방울뿐이었다.

“이 전쟁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다.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오백의 무리에게 정확하게 울리는 절대적인 목소리에 모두 화답했다. 위축이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다.

“그럼 왜 싸우는가!”

“가족을 위해! 영지를 위해!”

“이미 물자는 다 떨어진 상황이다. 수성전은 있을 수 없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

케실리온의 거침없는 물음에 오백의 무리는 긴장과 침묵을 유지했다. 물자 없이 싸우는 전쟁은 승리할 수 없다. 배고픔을 이기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 답답함 속에서 누군가 크게 외쳤다.

“적의 물자를 빼앗아 오면 됩니다!”

“하하! 적의 물자를 빼앗아 온다? 그럼 하르그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약자의 것을 빼앗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 너희들은 약자인가?”

“아닙니다! 약자의 위에 군림하는 강자입니다!”

케실리온의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원하던 대답이다. 약자의 위에 군림하는 것이 강자의 미덕(美德)! 본분이다. 약자의 위에 군림하며 착취한다. 강자는 그럴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자지존의 법칙!

무엇 때문에 지옥에서 수련을 했던가? 바로 강자지존의 법칙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살아남기 위해 약자의 것을 빼앗는다. 이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법칙이다. 거기다. 자연의 법칙에서도 통용되는 것이 강자지존! 약자는 언젠가 먹히는 법이다.

그전에 강자가 되어 약자를 죽이고 빼앗고 착취한다. 이것이 케실리온이 원하던 대답이었다. 서서히 그 법칙에 동화되어 가는 자들의 눈에서는 서슬 퍼런 살기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순박하게 보이던 농민과 아낙네들... 그리고 천진난만하던 아이들의 눈에서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빼앗는 것이 살길이다. 강해져라. 약자를 밟고 뛰어넘어라! 그래야 비로소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실버 울프는 들으라.”

“존명!”

“로이젠을 중심으로 하르그의 물자를 탈취하라! 이것이 처음으로 내리는 명령이다. 실패는 있을 수 없다. 빼앗아라. 죽여라!”

“명을 받듭니다!”

케실리온이 마법진에서 한 일은 무공과 전쟁을 위한 준비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속적인 교육! 케실리온 자신에게 만큼은 절대적인 복종을 원한 것이다. 그것이 찰나의 복종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대적인 복종을 원했다.

“그리고 총사령관은 일레인 제니어스로 임명한다!”

“명을 받듭니다.”

마법진에서의 훈련은 성공적이었다. 케실리온에 대한 광적인 믿음이 바로 그 증거였다. 이곳의 절대적인 군주는 케실리온이다. 비록 실질적인 성주(城主 : 성의 주인)는 일레인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케실리온이 이들의 중심이 되었다.

두두두두!

“보고 드립니다! 하르그의 선발부대가 제니어스의 중심인 이곳을 향해 진군 중입니다.”

봄 이슬을 뚫고 달려온 자는 케실리온과 일레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보고를 올렸다. 척후병의 등장에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시작인 것이다. 길고 길었던 훈련을 끝마치고 실전에 들어섰다.

두근두근

케실리온은 간만에 펼쳐지는 군대간의 전쟁을 피부로 느끼며 서서히 달아오르는 흥분에 미소를 지었다.

“로이젠! 실버 울프를 이끌고 임무를 수행하라!”

“충(忠)!”

뜻도 모르고 사용하는 이들이었지만 어설프게 들려오는 충성심보다도 확고한 의지가 깃든 한마디에 케실리온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하늘로 도약했다.

팟!

순식간에 성의 중심에 선 케실리온은 성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법처럼 저절로 문이 열리는 순간 오십의 실버 울프들은 각자 말과 수례를 이끌고 서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봄비로 인해 축축해진 땅위로 달려 나가는 실버 울프들의 뒷모습은 어떤 기사단 보다 든든했다.

두두두두!

“시작이다! 실버 울프!”

실버 울프의 단장인 로이젠은 이들 중 가장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어설펐지만 마스터만이 펼쳐 낼 수 있다고 하는 오러 소드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케실리온이 전수 해준 무공은 어떤 실전 검술보다도 뛰어났다.

“단장 너무 들뜬 것 아니오!”

“헬씨! 너야 말로 너무 들뜬 것 같구나!”

가장 선두에 선 헬씨와 로이젠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피워 올랐다. 생각지도 못하게 실버 울프의 단원들은 강해져 있었다. 어떤 존재가 와도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두두!

서서히 하르그의 진군 경로인 이름 모를 숲이 보이자 로이젠은 손을 치켜세웠다. 속도를 줄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잠시후 실버 울프들은 기척을 죽이며 숲 속으로 스며들었다. 숲 밖에는 오십의 말과 물자를 담을 수 있는 수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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