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206/269)

남부전쟁(3) - 오백의 전설

개선(凱旋)

승자의 어깨는 항상 당당하다. 거기에 단순한 승리가 아닌 완승이다. 탈취한 물자는 제니어스가 사용할 보급품이 되기 때문에 실버 울프의 개선은 제니어스로써는 필수사항이다. 사망자가 없는 대승에 제니어스는 축제분위기였다.

“실버 울프 만세에!”

“만세에!”

“와아아아!”

실버 울프를 연호하는 제니어스의 시민들의 얼굴은 불리한 전운에도 불구하고 빛이 나고 있었다. 환호를 받으며 성에 입성한 실버 울프들은 빼앗아온 물자를 풀기 시작했다. 주룩주룩 떨어지던 봄비는 어느새 멎어 있었기 때문에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50기의 말이 성으로 완전히 들어서자 제니어스를 감싸고 있는 해자와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한 달 전의 어설픈 성의 모습은 없었다. 질서정연한 군사와 철옹성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 성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또각... 또각!

실버 울프들이 공통 적으로 착용하고 있는 강철로 된 신발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을 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후 은발과 은안을 하고 있는 자의 앞에 다가서며 무릎을 꿇었다.

척!

“신 로이젠! 명을 완수하고 왔습니다.”

50명의 실버 울프가 무릎을 꿇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성벽과 그 주변에 있던 500의 병사들도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허리를 펴고 서 있는 존재는 단 5명에 불과했다. 케실리온과 일레인 남작, 알파, 레나, 프린을 제외한다면 모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다.

숨 막히는 광경을 눈앞에 두고 있는 케실리온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라.”

“충(忠)!”

짧은 한마디였지만 누구도 무시 할 수 없는 음성이었다. 그렇게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케실리온은 푸른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모든 것은 갖추어졌다. 무력! 물자! 용기! 이제 남은 것은 침략과 진군뿐이다.”

위엄어린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몸이 떨렸다. 가슴이 답답했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퍼지는 잔잔한 울림에 입을 열수 없었다. 이것이 전율이라는 것일 까? 500인의 병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니어스의 백성들이여! 우린 무적이다!”

챙!

케실리온의 옆에서 잠자코 있던 일레인 남작은 진중한 어조로 말하며 허리에 매달려 있던 검을 뽑아 올렸다. 거기다. 새벽을 뚫고 하늘로 치솟는 새벽의 여명에 제니어스의 백성들은 감동스런 표정을 지으며 창과 검, 방패를 하늘을 향해 들어올렸다.

“와아아아아!”

“제니어스 만세! 케실리온님 만세! 일레인 남작님 만세!”

“만세!!”

끝도 없이 대지로 퍼지는 만세 소리에 떠오르는 태양은 급히 하늘로 떠올랐다. 함성을 지르던 그들은 케실리온을 축으로 하르그를 향하는 진군을 시작했다. 지축을 울리는 당당한 행보에는 질퍽한 땅도, 매서운 바람도 소용없었다.

“진! 군!”

“진군이다!”

척... 척척!

오직 진군소리와 발걸음 소리만이 그들의 귀에 들릴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하르그를 무너뜨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뿐!

*           *          *

같은 시각 제니어스의 북서쪽에 위치한 하르그의 성

제니어스와 마찬가지로 만 명이 넘는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 일개 남작이 보유할 수 있는 병력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수였다.

하지만, 그 병력의 대부분이 언데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의 마지막 추위가 내뿜는 봄의 향연에도 입김 한번 쏟아지지 않는 망자의 모습은 기이한 모습으로 비춰졌지만 하르그의 병사들은 모두들 익숙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하하하! 나의 군대여!”

쿵!

성의 중앙에 있는 문을 통해 나선 두 명의 모습에 만 여명의 인간 병사와 언데드들은 지축을 흔들 정도로 발을 내려찍었다.

“망자들이여! 때가 되었노라!”

“크아아아!”

하르그의 주인인 남작의 말에 언데드들은 더러운 침을 질질 흘리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더러운 광경에도 남작과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흑마법사인 조안은 미소를 지었다.

“남작. 제물은 준비 되었소?”

“아아! 그거 말이오?! 크큭... 힘들었소이다. 주위 영지의 눈치도 봐야 했으니 등골이 빠지는 줄 알았소! 마침 전쟁이 터졌기에 망정이지.”

“크크큭! 이번에야 말로... 크하하하!”

흑마법사의 물음에 남작은 힘들었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미소를 지었다. 1만이 넘는 군대를 소유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 흑마법사 조안의 힘 덕분이다. 이대로 간다면 남쪽의 주인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상상과 오만을 품기에도 충분했다.

“남작은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이오.”

“하하하! 조안 당신만 믿겠소이다.”

흑마법사 조안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은빛의 눈동자! 절대 잊을 수 없는 눈동자 일 것이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며, 마왕에 가장 근접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존재감. 그리고 그날의 치욕을 잊을 수 없었다.

“남작, 준비 되었소. 시작하시오.”

조안은 수인을 그리며 마나를 불어 넣었다. 확성마법이었다. 해골모양의 지팡이 끝에서 가느다란 마법진이 생겨나자, 하르그 남작의 앞에 지팡이를 옮겼다.

“나의 백성들이여! 보이는가? 저 멀리 보이는 간악한 제니어스의 무리들이!”

하르그 남작은 저 멀리 비치는 제니어스의 성을 가리켰다. 점으로 보일 정도로 멀었지만, 1만의 병력은 군말 없이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간악한 존재다! 감히 나의 청혼을 거부 한 것도 모자라, 나의 아버지를 살해했다. 누가 악이며 누가 정의 인가! 우리가 곧 법이요. 정의다. 저 간악한 제니어스에게 법의 철퇴를 내려야 할 것이요. 반드시 멸해야 할 존재들이다!”

젊은 하르그 남작의 짧은 연설에 1만의 무리들은 침과 더러운 기운을 내뿜었다. 그리고 시작된 진격에 지축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격하라! 간악한 제니어스를 멸하라! 전군 진격이다!”

조안의 확성마법에 1만에 이르는 대 무리는 제니어스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지축이 울렸다. 그들의 행보 앞에는 개미새끼 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죽음만이 존재 할 뿐이다.

“크르르르!”

주르륵..!

“크와크와!”

“진격이다!”

“모두 진격! 언데드를 앞세워라! 하르그의 병사는 후방으로 빠져라!”

“진격!”

1만에 이르는 언데드를 앞장세우며 하르그의 병사와 기사들은 후방으로 빠졌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흑마법사 조안이 앞장서고 있었다. 검은 로브자락 사이사이로 뿜어지는 어둠의 기운에 기사들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말을 몰며 뒤를 따를 뿐이다.

“진격!! 간악한 제니어스를 척살하라!”

끝도 없이 들리는 제니어스의 척살과 말살의 명에 모두들 두근두근 거리며 광기에 휩싸여 갔다. 망자들이 내뿜는 썩은 냄새와 겹치자 묘한 기운을 풍기기 시작했다. 하늘은 다시 어둑어둑 해져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남부전쟁(3) - 오백의 전설

제니어스와 하르그의 근방 작은 숲의 경계점

500명에 이르는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숲의 경계점에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숲을 가로지르며 발 빠르게 달려오는 말의 모습에 급히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은 길을 열었다. 그 행로는 진형의 가장 중앙에 위치한 총사령관이 머무는 막사 앞에 멈춰 섰고 급히 막사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령관님!”

“웬 호들갑이냐! 케실리온님이 계신 것이 안 보이느냐!”

지금 총사령관의 막사 안에는 케실리온을 비롯해, 알파, 실버 울프의 단장 로이젠, 레나, 프린, 에레노아 등 중요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비록, 타 영지의 사람인 프린과 레나의 경우 전쟁에 참여 할 필요성은 없었지만 케실리온의 행보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급보 입니다!”

척후병은 안색이 굳어지며 뻣뻣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급한 정보인지 보고를 올리기 위해 무릎을 꿇으며 총사령관인 일레인 남작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케실리온은 살짝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 일레인 남작은 표정을 풀고 보고를 듣기 시작했다.

“보고하라.”

“충(忠)! 하르그가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병력이 1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접전을 가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허...! 1만!”

척후병의 보고에 막사 안이 약간 술렁였다. 무려 1만이다. 500명의 인원이 익스퍼트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고작 10명 정도를 상대하는 것이 다일 것이다. 숫자 노름을 하자면 5천 명 정도는 어느 정도 막아 낼 수도 있겠지만, 1만은 무리였다.

“1만씩이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1만이라니...잘못 본 게 아니냐!?”

“아닙니다.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사옵니다.”

일레인 남작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재차 척후병에게 물었지만 바뀌지 않는 답변이었다. 무려 1만에 이르는 병력을 상대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벌써부터 기가 죽어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막사 밖을 쳐다 볼 뿐이다.

“아버님! 이미 죽음을 각오한 전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게다가, 전쟁은 숫자싸움이 아니라고 아옵니다.”

이제 막 11살 먹은 에레노아와 기타등등(?)들은 걱정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일레인 남작은 병력과 차이가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기에 에레노아와 기타등등(?)의 천진한 모습을 보고 한숨만 내 쉴 수밖에 없었다.

“에레노아야... 아직 어려서 전쟁에 대해서 모르고 있구나. 물론, 전쟁은 숫자 싸움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건 너무 많은 숫자가 아니냐. 500대 1만이다. 무려 1만!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일레인 남작의 걱정에 케실리온은 머리를 몇 번 끄덕였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케실리온에게는 그저 개미들의 행보하고 밖에 보지 않았다. 숫자도 숫자 나름이요. 실력도 실력 나름이다. 비록 숫자는 적을 지라도 실력이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기죽을 필요는 없다. 나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가?”

“아...닙니다.”

케실리온의 말에 일레인 남작은 마지못해 대답하고는 척후병을 물리쳤다. 폭풍처럼 1만의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나자 막사 안은 조용해졌다.

“로이젠이 해낸 일을 보라. 50대 1천이었다. 똑 같은 조건이 아닌가? 우리는 강하다. 그리고 그들은 약하다. 무엇이 두려운가!”

“지당한 말씀입니다.”

케실리온의 당당한 말에 로이젠은 머리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일전에 물자를 구하기 위해 짧은 전쟁을 했던 로이젠은 많은 자심감에 차 있었다. 50명에 이르는 용병을 이끌고 정규군정도의 병력을 괴멸 시켰으니 어찌 어깨가 펴지지 않을 소냐!

“케실리온님. 지금이라도 성으로 돌아가서 농성전을 펼치는 것이...”

일레인 남작은 약한 소리를 했다. 물론, 중년에 이르는 일레인 남작의 계책은 가장 적합했다. 수적으로 딸리니 성을 지키는 것이 가장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정면 돌파를 원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쾅!

“닥쳐라. 농성전? 웃기는 군. 허름한 성으로 농성전이 가능할 것 같은 가? 이대로 게릴라 전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500의 군사를 쪼개고 쪼개, 부대를 편성해 양동작전을 펼치는 것도 좋겠지.”

케실리온은 거칠게 앞에 있는 원탁을 내려치고는 에레노아와 일레인 남작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은빛의 눈동자가 몇 번이고 마주치자 에레노아와 일레인 남작은 약간씩 움찔 거리고 있었다. 

후우웅!

원탁과 원탁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케실리온의 살기와 위엄에 모두들 떨어야 했다. 투명할 정도로 차가운 은빛의 눈동자와 비단결 같지만 거친 눈보라를 연상케 하는 은빛의 머리칼이 찰랑이자 주위는 침묵에 휩싸였다.

몸을 떨던 소리도 죽었으며, 막사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와 용병들도 조용해졌다. 하지만, 멀리서 퍼지는 언데드와 적병의 함성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진격! 간악한 제니어스를 척결하라!”

“제니어스 남작의 목을 베는 자는 권력을! 팔과 다리를 베어오는 자는 여자를! 몸통을 가져오는 자는 금화를 하사하겠다!”

“와아아아!”

벌써 숲의 경계점에 도착한 것인지 숲속은 언데드의 마기와 하르그의 병사들이 지르는 함성에 하늘을 나는 새들은 ‘까악!’ 거리는 소리를 내며 푸드득 하늘로 날아 올라갔으며, 육상을 행보하는 동물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해보시지! 농성전을... 이미 늦었다. 우리에겐 오직 돌격과 승리뿐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일레인 총사령관!”

비수와 같은 케실리온의 발언에 일레인 남작은 머리를 떨어뜨렸다. 벌써 시작된 것이다. 농성전을 펼치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다. 이대로 진격과 승리라는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스프가 되던 빵이 되던 돌격이다.

“큭... 케실리온님의 말씀을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나의 명령은 절대적이오. 지금 이 순간, 아니 제니어스의 주인은 나 일레인이란 말이오!”

피식.

“원래부터 이곳의 주인은 너였다. 착각한 것은 네놈이었을 뿐.”

케실리온은 일레인의 갑작스런 반말에도 미소와 함께 답변을 했다. 처음부터 영지의 주인은 일레인이었다. 근본도 없는 케실리온이라는 존재가 큰 힘이 되었고 방패가 되었기에 벌어진 일이었을 뿐. 이곳의 진정한 주인은 일레인 남작이다.

아무튼, 케실리온의 긍정에 일레인 남작은 크게 힘을 얻었고 500명의 병사와 50명의 용병, 10명의 기사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제니어스의 백성들이여, 그리고 용병들이여!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우린 자신과 싸웠으며 피와 땀을 흘렸다!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우린 오늘 부로 전설을 만들 것이다. 500의 전설이란 이름으로 우린 기억될 것이다. 각자 무기를 들라! 그리고 돌진하라! 그리고 승리하라!”

일레인 남작의 일목요연한 연설에 주위는 조용해졌다. 엄청난 감동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500명이 넘는 그들은 머리를 숙이며 조용히 읊조리고 있었다.

“제니어스의 주인 일레인 남작님의 명을 받듭니다.”

작게 속삭인 말이었지만, 못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마음이 된 이들의 목소리가 숲의 경계선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1만이 넘는 적병과 언데드의 괴성을 뛰어넘었다.

“존명(尊名)! 뜻을 이루소서!”

“와아아아!”

챙챙!

“진격하라! 하르그의 잔당에게 절망을! 망자에게 안식을 선사하라!”

500인의 진심어린 말에 일레인 남작의 볼에는 작은 물기가 어렸고, 그 순간 10명의 기사와 50명의 용병을 중심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날카로운 창과 검이 뽑혀 졌고, 지진이 일어날 듯 한 진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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