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0화 (210/269)

남부전쟁(3) - 오백의 전설

보라색의 빛이 지상과 하늘을 뒤덮는다.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듯 둥근원속의 팔망성은 점점 붉어졌고, 하나의 통은 연상케 하듯, 500명의 여자들과 흑마법사 조안을 감싸 안았다. 누구도 접근 할 수 없는 절대 영역에 다다른 것 같은 위용을 내뿜었다.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어둠의 맹약에 따라, 벨즈비트! 북쪽의 왕이여 나의 소환에 응답하라. 신성한 지저스의 빛을 뚫고, 기나긴 어둠에서 깨어나라...”

둥근 원기둥 속에서 조안의 스펠이 시작됐다. 케실리온의 귀로 들려오는 비명과 끝없는 스펠은 잔잔하면서도 폭발적이었다. 순간, 큰 폭발음이 퍼져나갔다. 어둠의 게이트를 뚫고 나온 사악하면서도 끈적이는 마기로 인해 전쟁터는 삽시간에 중단되었다.

쿠쾅!

게이트에서 뿜어진 커다란 충격파에 케실리온은 천근추(千斤墜)를 이용해 충격파의 잠력을 견뎌냈다. 높게 치솟은 원기둥의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케실리온은 끝까지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충격파를 견뎌낸 것은 소수의 무리뿐이었다. 얼마나 강력한 살기와 충격파였던지, 도미노 쓰러지듯 하르그의 병력들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땅과 키스하는 장면을 연출해야 했다. 

“어둠의 율법에 따라, 나 그대에게 산 재물과 강림할 육체를 바치나 이니, 나의 소원을 들어주오! 그대와 나를 이어주는 어둠의 맹약의 앞에 나, 조안 둠 다크메이지의 이름으로!”

알파는 저 조안이라는 자의 스펠이 길어질수록 몸을 떨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강자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거기다. 주문과 벨즈비트라는 이름을 들으니, 그가 불러내는 존재가 마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간계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행위, 마왕소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흑마법사라고 한들, 마왕을 소환하는 행위는 금기에 해당했다. 그 이유는 과거 있었던 ‘비운의 영웅’이라는 소설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리즈라는 여인의 질투로 인해 중간계를 수호하던 영웅의 죽음은 마왕에서 비롯되었다. 그 밖에도 마왕은 중간계의 파괴를 원하며, 지배할 것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왕의 소환은 금지에 해당한다.

“부, 북쪽의 마왕 아크리치 벨즈비트!”

알파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조안의 스펠을 알아들었다. 마계의 지배자, 북쪽 마왕 아크리치 벨즈비트의 존재는 마족과 중간계에서 활동하는 11마족에게도 두려움의 존재였다. 비록 마신에게 선택받은 마족인 그들이라도 마왕을 무시 할 수 없다. 그들은 마계의 왕이기 때문이다.

“케, 케실리온님... 어처 도망을! 그는 마왕을 불러냈습니다. 그것도 북쪽의...!”

알파는 두려움에 떨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확실히 벨즈비트는 강하다. 10서클에 불사에 해당하는 몸을 가지고 있다. 아크리치! 마법에 있어서는 최강의 존재라고 불리는 자가 바로 아크리치 벨즈비트다.

인간이었으며, 지금은 마왕이라고 불리는 마계의 절대자. 하지만, 케실리온도 만만치 않은 존재다. 그는 차원의 절대자다. 1계와 명계를 아울러, 2계의 절대자가 될 존재!

“후퇴? 나에게 후퇴란 말이지? 하하하! 벨즈비트 따위.”

“따, 따위라니요. 그는 평범한 귀족계 마족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비록 중간계라고 할지라도 그는...”

게이트와 조안의 스펠이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하늘의 먹구름은 마왕 소환진을 중심으로 넓게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영웅소설에서나 나올법한 광경에 하르그는 물론, 제니어스의 병사들은 입을 벌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강하다면 도망도 소용없다! 부딪히고 깨부술 뿐!”

케실리온은 짧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마령검을 세게 움켜쥐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호승심이다. 2계에서 느껴보는 두 번째 호승심, 첫 번째는 마왕의 기사 크리넥스.. 그리고 두 번째 상대가 될 벨즈비트!

명계에서 상대해 본적이 있던 존재인 만큼 케실리온 역시 긴장한 듯 마른 침을 삼켰다. 옆에 있던 알파가 보기에는 케실리온 역시 두려운 듯 침을 삼키자 덩달아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머무를 몸을 바쳐!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소서! Summon Belzbit!]

쿠왕! 구구구구구!

조안의 스펠이 끝나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심장을 찌르며 소환진의 중앙에 서서 붉은 피를 줄줄 흘리며 마왕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후 커다란 폭풍이 몰아치듯 어둠의 그림자가 게이트를 타고 나타났다.

[나의 종 조안이여... 꼴사납구나.]

어둠의 게이트를 뚫고 나타난 이는 북쪽의 마왕 벨즈비트였다. 누더기 같은 검은색 로브, 후드로 깊게 눌러쓴 그의 모습은 괴기스러웠다. 근육은 고사하고 앙상한 뼈만이 그를 지탱할 수 있는 축이었다.

후드의 깊숙한 곳에서 뿜어지는 붉은 안광은 그가 리치라는 것을 증명시켰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퍼지는 기운과 후드를 뚫고 튀어나온 하얀 뿔은 그가 아크리치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의 주인... 이시여! 소원이 있습니다.”

조안은 심장에서 뿜어지는 피를 둘러막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정신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말을 하려는 집념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러나 그 모습은 아크리치의 유희거리에 지나지 않았던지 무심한 음성이 공기를 뒤흔들었다.

[종이여... 너의 의지는 알겠으나, 대가가 부족하구나. 500명의 성처녀의 영혼을 사용할 곳이 있더냐.]

“허, 헉... 허억! 저, 저의 영혼과 그릇을 드리겠습니다. 허억... 부디... 부디 저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조안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말을 길게 이었다. 마왕은 흥미로운 듯 찢어진 로브를 펄럭이며 마기를 토해냈다. 그 마기는 조안의 몸으로 흡수되며 상처가 도진 심장부위를 감싸 안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조안의 가슴에서는 더 이상 피가 뿜어지지 않았다.

[호오... 너의 영혼과 그릇을 바치겠다!? 하하하! 그것은 곧 넌 나의 진실 된 종이 되며, 영혼을 맞기겠다는 말이 아니더냐!]

“예, 예!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의 왕이시여!”

흑마법사가 영혼과 그릇을 바치는 것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다. 계약을 통해 종이 된 것으로 흑마법사의 실력을 한 단계 상승 시킬 수 있다. 하지만, 마왕을 불러내, 소원을 부탁하며, 자신의 영혼과 그릇을 바치겠다는 것은 그의 수하가 되며, 목숨을 맡긴다는 뜻이다. 바로 리치의 생명그릇인 라이프베슬이다.

[크하하하! 좋다! 너의 영혼과 그릇은 잘 받겠다. 자... 소원을 말하라! 비록 마계에서 사용 할 수 있는 힘의 1/3 밖에 사용 할 수 없지만 이루어 주마!]

마계의 마족은 중간계에서 술자에 의해 소환 당하게 된다. 그때, 마계의 힘을 온전히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육체와 그릇은 그대로 마계에 머무르며, 정신과 영혼의 조각이 중간계로 강림하는 것이다.

하지만, 1/3의 힘만이라도 중간계에 머문다면 엄청난 재앙이 찾아온다. 그것이 마왕이라면 재앙이 아닌, 파멸로 이끌 것이다. 그 대담한 소원을 어떤 것으로 할지 궁금해 하는 벨즈비트였다.

“저의 소원은... 저자를 유린하며 파멸하는 것입니다. 마왕이시여!”

조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의외로 가까웠다. 벨즈비트와는 고작 30미터 가량 떨어진 거리! 그리고 조안과는 정면에 해당하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은색의 머리카락, 170센티미터 가량의 키

오만하게 그려져 있는 눈썹, 세상을 호령하기 위해 있는 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존재는 바로 케실리온이다. 그는 벨즈비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입 꼬리가 살짝 말아 올라간 그 미소에 벨즈비트는 깊은 심연의 안광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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