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전쟁(3) - 오백의 전설
쭈우욱!
대지를 흥건히 적시고 있는 피의 연못에서 끈적이는 굳은 피가 케실리온의 손짓에 하늘로 떠올랐다. 흡혈마공을 펼친 것도 아니건만, 무형의 기운에 동조하듯 케실리온의 주위로 몰아쳤다.
“오랜... 만이군. 벨즈비트! 근 800년 만인가?”
케실리온의 표정은 차분해졌다. 이곳은 지옥과 다르다. 벨즈비트의 모습은 여전했지만, 좀처럼 그의 무력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지옥에서는 그의 향기가 끈적이는 어둠이었다면, 지금은 어딘가 여유롭고 부드러운 마기를 소유하고 있다.
“그때는 혈마와 천마의 방해로 제대로 붙어 보지도 못했던 것 같군. 누구의 존재가 더 가치 있는 지 확인해보자. 이 자리에서!”
[900년? 혈마? 천마? 그게 무슨 말이지?]
벨즈비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900년이라는 시간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만든 것인지 몰랐다. 아니, 케실리온은 확신했다. 지옥 40년, 천마와 혈마, 그리고 벨즈비트를 소멸시키는 것 까지 눈으로 확인한 케실리온은 그가 모든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도 망각의 존재라는 것!
“그딴 건 상관없겠지! 지금이 중요할 뿐!”
케실리온은 벨즈비트가 모든 것을 잊어 버렸다고 확신했다. 자신도 900년이라는 시간을 모두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지옥에서의 팔대 지옥을 겪으며 참회의 시간을 지내며 자신도 모르게 기억을 잃곤 한다.
그 고통에 벨즈비트는 지옥에서 겪었던 모든 일을 잊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확실히 지금에 있어서는 그런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순간, 벨즈비트는 적이며, 부셔버려야 할 존재라는 것이 뇌리에 틀어박혔다.
“처음 만났던 순간을 기억하는 가? 벨즈비트! 나의 낙인을 풀어주기 위해 풍운지를 계약의 대가로 삼았지. 그때 난 너에게 이렇게 소수마공을 펼쳤다!”
쩌저적... 쩌억!
케실리온의 강한 일갈(一喝)과 함께 뽀얀 피부를 지닌 손은 투명할 정도로 투명해졌다. 그리고 뼈가 훤히 보이듯 케실리온의 손은 은빛으로 빛을 발하며 공기를 얼려버리며, 주위를 긴장시켰다.
옆에서 멍하니 마왕을 쳐다보고 있는 알파는 급격히 낮아지는 온도에 신형을 뒤로 날리며 케실리온과의 거리를 벌렸다.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추위와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케실리온의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실상, 소수마공의 극성의 효과치고는 과한 면이 있다. 소수마공은 엄연히 발경의 수법을 지닌다. 그리고 무림인이 기운을 줄기줄기 흘리고 다니는 것은 멍청한 짓에 해당한다. 그런 것을 종합하면 케실리온이 멍청한 축에 속해야 하지만, 그와는 반대에 해당한다.
케실리온은 내공을 일부러 흘리는 것이다. 살기와 섞여 대기를 타고 흐르는 소수마공과 냉마기! 그것은 케실리온의 공격범위에 속한다. 하나의 원이 그려지듯 케실리온의 주위로 퍼지는 한기는 무려 20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거리다.
[호오... 대단한 마기군. 리치인 내가 추위를 느낄 정도라니.]
벨즈비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찢어져 괴기스럽게 느껴지는 로브는 벨즈비트를 더 사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앙상한 뼈가 쥐고 있는 지팡이는 마왕의 무기라고 전해지는 5대 마병이다.
마병은 마계에서 전해지는 무기로 총 5종류가 존재한다. 그중 케실리온이 소유하고 있는 다크 드래곤(마령검)이 하나였다. 그리고 벨즈비트가 들고 있는 군주의 지팡이가 바로, 5대 마병에 속한다.
쿵!
군주의 지팡이를 소유한 벨즈비트는 한기를 몰아내기위해 지팡이로 땅을 내려쳤다. 그 순간, 지팡이의 끝에서 소리없이 다크니스가 퍼져나가며 케실리온의 기운을 억제했다. 서로 다른 마기는 각각의 주인에 걸맞게 서로의 기운을 밀어내기를 하며 기 싸움을 시작했다.
스스슷... 펑!
대립에 대립을 하고 있던 케실리온과 벨즈비트는 어느 순간 서로의 기운을 폭사시키며 신형을 앞으로 뽑아 올렸다. 벨즈비트는 앙상한 뼈로 이루어진 육체였지만, 케실리온에게 질세라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며 마령검을 튕겨냈다.
캉!
붉고 검은 번개가 치듯 서로의 무기는 뒤로 튕겨났다. 잠시 노려보고 있던 둘은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나며 서로의 무기에 기운을 끌어 모았다. 케실리온은 특유의 기수식을 취하며 준비했으며, 벨즈비트는 낮게 중얼거리며 로브를 펄럭였다. 세기의 대결에 두 영지전은 유명무실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까까지의 인간과 인간의 싸움은 마왕과 마룡의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그들의 사소한 부딪힘으로 대지는 갈라졌고, 하늘은 커다란 천둥이 내려쳤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눈으로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각자 최대한 뒤로 물러나며 몸을 사려야 했다.
“제법이군. 벨즈비트!”
케실리온은 만검의 낙의 수법으로 벨즈비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세상이 느려지듯 케실리온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벨즈비트의 허름한 로브자락을 파고든 마령검은 그의 뼈를 갈라버릴 것처럼 파고들었다.
스악...!
공기를 가르고 파고든 마령검에는 미세한 마기가 어려 있었다. 시리도록 은빛을 토해내는 모습에 절로 몸이 떨리는 검이었지만, 벨즈비트는 앙상한 뼈로 웃음을 지었다. 베었지만 벤 것이 아니다.
로브자락을 베는 순간 벨즈비트는 뒤로 블링크(Blink)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캐스팅도 없었고, 수인도 없었다. 하물며 마법진도 없이 펼쳐내는 마법에 케실리온은 벨즈비트가 과거의 벨즈비트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저급한 마법이라도 약간의 낌새는 있다. 마룡인 케실리온 역시, 시동어는 외쳐야 펼쳐 낼수 있는 것이 마법이다. 그런데 벨즈비트는 시동어도 없이 펼쳐내자 내심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크흐흐! 설마 이정도로 강한 인간이 있을 줄은...!]
벨즈비트의 괴소가 흘러나오자 케실리온은 덩달아 작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싶지 않은 녀석이라고 판단했다. 지옥에서는 그나마 싸우기 편한 축에 든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몸 풀기는 이정도로 끝내지.”
[좋다. 하찮은 인간이여!]
케실리온은 마령검에 달라붙어 있는 피를 살짝 털어내고는 몸을 약간 낮추었다.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근육을 이완시켰고, 오른팔은 방어와 공격이 편하게 팔을 약간 굽혔다. 벨즈비트 역시 케실리온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군주의 지팡이를 앞세우며 안광을 터뜨렸다.
“크아악!”
하르그 측에서 터져나온 비명소리를 시작으로 케실리온과 벨즈비트의 전투는 시작되었다. 짧은 침묵이었지만, 제니어스와 하르그의 전쟁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케실리온과 벨즈비트는 그들을 무시했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았다.
서로를 향해 겨눈 무기는 순식간에 각각의 속성에 맞게 빛을 뿌리며 섬광을 터뜨렸다. 케실리온의 섬전과 같은 찌르기 공격은 벨즈비트의 로브를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벨즈비트의 지팡이 끝에서 뿜어진 검은색 기운은 케실리온의 가슴에 적중 당했다.
퍽!
찰나의 순간, 케실리온의 가슴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기운에 급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벨즈비트가 리치라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 이정도로 빠른 속도로 마법을 펼쳐 낼 것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 정도로 긴장과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짧은 안이함이 불러일으킨 결과다.
탁, 타타탁!
케실리온은 몸속으로 침투하려는 이질적인 마기를 느끼며 왼손으로 주요 혈도를 짚으며 마기의 유동을 막았다. 그리고 흡혈마공을 이용해 벨즈비트의 마기를 정화시키며 밖으로 배출했다.
푸쉬시시...
[대단한 판단력이군. 어떻게 알았지?]
벨즈비트는 감탄하며 케실리온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다크 에로우와 다크 캐넌을 적절하게 섞어 공격하는 벨즈비트의 공격 센스에 감탄 할세도 없이 케실리온은 마검을 역수로 쥐었다.
“물론... 네놈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케실리온은 통찰력은 뛰어났다.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적이 어떤 공격을 할지 어느 정도 추측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벨즈비트가 케실리온의 가슴에 펼쳐낸 마법은 저주마법이었다. 일종의 속박저주로써, 케실리온의 움직임을 둔화 시키려던 것 같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케실리온은 몸속으로 들어오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는 즉시 혈도를 짚었고 흡혈마공으로써 기운을 중화시키며 방출시켰다.
이것으로 벨즈비트의 마법은 무효화 된 것이다. 이런 빠른 대처는 무림인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빨랐으며, 효율적이었다. 만약 거기서 케실리온이 디스펠 매직을 사용했지만, 더 큰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벨즈비트도 상대가 마법을 할 수 있다는 가정하게서 전투를 임하고 있었기에 적이 마법을 펼치는 순간, 대인저주마법인 안티매직쉘을 펼쳐 상대의 마법을 무력화 시키며 전투를 이끌었을 것이다.
[대단해! 대단해... 인간이 이정도의 능력을 가졌을 줄이야.]
“인간이라고? 난 마룡이다. 멍청한 마왕이여!”
케실리온은 벨즈비트의 지팡이를 쳐내며 라이프 베슬이 있을 법한 곳으로 검기를 날렸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벨즈비트는 자존심과 자신의 실력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자신의 생명인 라이프 베슬을 몸에 지니고 있다.
물론, 어떤 마법건 것인지는 모르지만, 라이프 베슬은 빠르게 이동을 반복한다. 몸속에 있지만, 어느 곳이 급소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빠르기만 해서는 녀석을 처리 할 수 없다.’
케실리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벨즈비트는 빠르기만으로 상대하기에는 벅찬 상대다. 특별히 급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녀석의 기운을 느끼며 가장 밀집되어 있는 곳을 찔러 넣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자존심 상하지만... 누군가 녀석의 시선을 끌어줘야...’
케실리온은 미간을 좁혔다. 녀석의 움직임을 봉쇄하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유동하는 녀석의 라이프 베슬을 부수지 못한다.
휘리릿!
벨즈비트의 공격을 피하며, 주위의 모습을 지켜봤다. 하르그와 제니어스의 전쟁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있었다. 알파는 마왕의 기운에 두려움을 떠는 것인지 멀리서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케실리온과 벨즈비트를 쳐다보고 있었다.
[크하하하! 마룡? 마룡이라... 오랜만에 듣는 단어군.]
벨즈비트는 미친 듯이 웃었다. 마룡의 이름이 웃긴 것일까? 그는 웃음을 흘리며 케실리온을 찬찬히 뜯어보며 뻥 뚫린 해골에서 안광을 터뜨렸다.
[자존심 높은 마룡께서 어인 행차신가? 조용히 마계 구석에서 처박힐 것이지. 마신의 행사를 방해하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케실리온은 또 다시 생각의 늪에 빠져버렸다. 마신의 행사는 또 무엇일 까? 용신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와는 또 다르다. 2계에서의 생활 할수록, 여행할수록 알아서는 안 될 것을 더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크크큭. 지금 인간들이 모으고 있는 비드가 마계의 문을 여는 행사라는 것은 모르지 않을 텐데.]
벨즈비트는 케실리온의 놀란 얼굴에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말은 케실리온도 알고 있었다. 유색의 비드는 드래곤의 부활뿐만 아니라. 마계의 문인 다크 문을 여는 의식과 같은 것이다.
[꼴에 드래곤이라고 일족의 부활을 꿈꾸고 있군. 상관없겠지... 마계의 출두는 드래곤의 부활과 마찬가지니 편안히 죽어라!]
벨즈비트는 싸늘하게 뇌까리며 케실리온을 향해 어둠의 계열 중 단 일 공격으로는 최고 공격 마법인 다크 버스터를 펼쳤다. 활화산과 같이 뜨거운 열기와 함께 벨즈비트의 마기가 케실리온을 뒤덮었다.
도망 갈 곳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하늘과 좌우 등 모든 곳에서 마법이 쏟아졌다. 이것이 벨즈비트의 진정한 능력! 팔방을 점하는 전투마법사의 능력이다. 블링크를 응용해 마법의 위치선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만큼 마법으로 마왕에 이른 벨즈비트의 존재는 엄청났다.
“지옥이나... 2계나 행동하는 것은 여전하구나. 벨즈비트! 넌 간과한 것이 있다! 내가 흡혈지존 조제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