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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212/269)

남부전쟁(3) - 오백의 전설

다섯 가닥의 어둠의 빛이 케실리온에게 쏟아진다. 거칠고도 끈적이는 살기와 함께 아크리치의 마나가 무섭도록 치고 들어왔다. 피할 수도, 도망갈 곳도 없다. 오른쪽, 왼쪽, 앞, 뒤... 그리고 하늘마저 점해버린 고도의 마법에 케실리온은 분노의 일갈을 터뜨렸다.

쿠왕!

다크 버스터가 다가올수록, 케실리온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갔다. 무식하게 뿜어지던 냉마기(冷魔氣)는 돌연 몸속으로 갈무리 되었다. 완벽하게 기척을 죽인 상황. 하지만, 두 눈은 어떤 상태보다 안정되었다.

“우후...”

소리 질렀던 분노의 일갈 때문이었을 까? 케실리온의 표정은 온화해졌다. 죽음의 손길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세상을 굽어보듯, 5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마령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빠르게... 부드럽게... 패도적이게... 세상을 굽어보며, 인생을 흘리듯 케실리온의 검은 움직였다.

“지옥에서 쌓은 정수를 보여주마!”

차라랑!

케실리온의 검과 마음은 무심(無心)을 내뿜었다. 지옥의 정수 그리고 창안으로 이끈 최고의 깨달음을 펼쳐냈다.

만검(萬劍) - 2장 3초 유유(流柳)

마음으로 읊조렸다. 깊게 펼쳐진 평원의 버들처럼 케실리온은 바람에 따라 흘러갔다. 풍운지의 무공에서 깨달음을 얻어 만든, 최고의 수법이다. 부드러움에 부드러움을 더한 오의! 케실리온의 검에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1초의 빠름, 2초의 패도, 3초의 부드러움, 4초의 날카로움

지옥과 중원무림인들의 검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 한 가지 우물만을 파기도 어렵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무공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최고의 수법이며,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노력의 대가는 녹록치 않다.

우우웅!

잘 갈무리된 케실리온의 기운은 자연스럽게 검과 몸을 감싸 안았다. 마치, 주인을 보호하듯, 세상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감싸 안았다. 포용하는 모습 같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펼쳐낸 수법은 의외로 벨즈비트의 다크 버스터를 막아서고 있었다.

스악!

정면을 베었다. 그리고 케실리온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 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듯, 정면에서 우측으로 검을 회전시켰다.

슉! 콰쾅!

하체에 중심을 두어 몸을 회전시키니 4방을 가로막던 다크 버스터는 케실리온의 몸에 닿기도 전에 잘려나가며 마법의 궤도를 벗어나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머리 위의 다크 버스터는 끝끝내 케실리온을 덮쳐갔다.

“갈(喝)!”

펑!

침착함도 이런 침착함이 없었다. 케실리온은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듯 빠르게 날아드는 마지막 다크 버스터를 보며 일갈을 터뜨렸다. 심후한 내공이 깃든 일갈이었기 때문이었을 까?

사자후(獅子吼)의 정수가 깃든 내기는 다크 버스터가 케실리온의 몸에 닿기도 전에 미리 터져나가 버렸다. 이 찰나의 수법에 공격을 펼친 아크리치 마저 놀랍다는 듯이 은은한 안광을 터뜨리고 있을 뿐이다.

[끌끌...]

“장난은... 끝이다!”

벨즈비트의 어색한 웃음이 퍼지자, 전쟁터는 무음의 공간으로 바뀌어버렸다. 완벽하다고 보였던 마법을 완벽하게 차단한 것도 모자라, 다친 곳 없는 위용으로 자리에 선 케실리온을 괴물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끌끌! 과연... 마계의 구석에 틀어박혀 뭘 하는 가 했더니 조잡한 검을 익히고 있었군.]

“개 소리!”

케실리온은 검을 갈무리 하며, 다음 수를 생각했다. 녀석의 군주의 지팡이가 있는 이상, 장기전을 끄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판단했다. 보아하니, 군주의 지팡이가 촉매가 되어 캐스팅과 수인을 대폭 축소시켜 의지로 마법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녀석이 10서클이라는 것은 지옥에서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익히 짐작했다. 또한 녀석의 무서운 점은 중간계라는 패널티를 가지고 있음에도 쉽게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완벽한 상태라면 지금의 케실리온은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하루 빨리, 지옥에서의 내공과 무위를 회복해야 했다. 지금가장 절실한 것은 내공도 무공도 아니었다. 상위의 깨달음만 있다면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다. 문제는 역시 깨달음이 문제다.

척!

케실리온은 잡념을 털어버리고는 검을 들어올렸다. 무공을 익힌 지 약 90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도 길지도 않았다. 그만큼 무공은 끝을 모르는 공부다. 하지만, 마법은 다르다. 한계라는 틀을 잡고 시작하는 공부다.

질적으로나, 깨달음의 정도를 보더라도 무공이 한수 위다. 그렇다고 마법이 결코 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왕에게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있다. 마법과 무공이 추구하는 목표를 말이다.

“무공(武功)이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강해지며, 군림하기 위한 숭고한 목표의 공부다! 그것이 신일 지라도 뛰어넘는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무공의 정의!”

세상의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것! 무공을 익히는 자라면 이정도의 포부와 호기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고작 진리만을 추구하는 마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공은 진리와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최고의 공부다.

“몸소 깨닫게 해주마. 벨즈비트!”

쿠우우우!

잘 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던 살기(殺氣)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군림자로서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지배자의 권위가 발산되자. 전쟁터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아니,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하르그나 제니어스 측 역시 살기의 영향권에 벗어나지 못했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살기라는 공포에 발걸음조차 뗄 수 없는 현상과 같았다. 케실리온의 위용어린 모습에 벨즈비트 역시 일갈을 터뜨리며 살기를 내뿜었다. 앙상한 해골바가지에서 뿜어지는 붉은 안광 역시 짙어졌다.

바스락... 쩌저적!

둘의 살기에 대지가 갈라지며 그 파편이 하늘로 떠올랐다. 기(氣)와 기(氣)의 싸움이다. 처음의 기 싸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역을 두고 싸우는 야수처럼 둘의 기운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순간... 물러 설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소리 없이 둘은 움직였다.

스팟!

차라랑- 우우웅!

케실리온이 보법을 밟으며 남긴 잔영과 둥근 먼지가 피워 오르며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검이 진동하는 음율과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이 전쟁터에 들릴 뿐이다.

벨즈비트 역시, 마법과 리치 특유의 방법으로 케실리온의 움직임을 피하며 마법을 이리저리 날렸다. 전투마법사와 무인과의 싸움이다. 한 치도 물러 설수 없는 자존심 싸움. 이건 하찮은 마법과 검술의 싸움이 아닌, 마왕과 마룡의 싸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역사에 기리 남을 싸움이다.

펑! 꽈드득!

녀석의 마법이 지상으로 떨어지자 약간의 빈틈이 발생했다. 마법을 펼치고 난 뒤에 있는 미세한 공백, 그것을 케실리온이 눈치 챘다. 마법이든, 검이든 약간의 공백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막기 위한 것이 허초와 실초의 상호작용!

케실리온의 검은 허초와 실초를 완벽하게 펼쳐내고 있다. 실초인듯 하면서 허초를 펼쳐내며 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바로 검의 싸움이다. 하지만, 마법은 직선적이며 파괴력을 중시하기에 마법을 펼쳐내고 난후의 공백이 크다.

‘지금이다!’

케실리온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벨즈비트의 공격마법이 대지와 닿는 순간의 작은 공백! 먼지구름이 하늘로 피워 오르자 케실리온의 눈은 한층 가라앉았다.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살기를 최대한 억누르며 풍류마신보(風流魔神步)를 펼쳤다.

샤샤샥!

먼지구름 사이를 뚫고 벨즈비트의 뒤를 노렸다. 녀석은 명백히 먼지 구름에서 나타날 케실리온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약간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 번 거리며 외치고 있었다.

[그 정도로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와라!]

녀석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케실리온의 신형은 녀석의 뒤에 나타났다. 싸늘한 조소를 머금은 표정과 억눌렀던 살기가 폭사했다.

“끝이다.”

왼손과 오른손이 교차했다. 왼손은 소수마공이 일렁이고 있었으며, 오른손은 마령검이 찬란한 은빛을 토해냈다. 그 찰나의 순간 검강은 벨즈비트의 몸을 꿰뚫었고, 왼손의 소수마공은 기운이 강한 부위만을 골라 혈도를 찍어 누르듯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타타타탁!

비록, 로브로 가려져 볼 수는 없었지만, 뼈 마디마디에서 느껴지는 강한 마기가 확실히 느껴졌다. 그 마디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자, 벨즈비트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죽을 정도는 아닐지라도 상당한 충격에 빠졌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크아아아! 네, 네놈이 감히!]

벨즈비트의 성난 목소리와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끝도 없이 몰아치는 케실리온의 손속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의 로브사이사이로 먼지가 피워 오르듯 검은 안개가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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