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 (220/269)

에리스의 던전(2) - 넌 누구지?

팟- 파파팟!

일행의 걸음이 계속 될수록 던전의 벽에 매달려 있는 횃불이 저절로 켜지고 있었다. 벽은 여타의 동굴 같은 벽이 아니었다. 석질(石質)로 만들어진 벽돌을 이용해 하나하나 쌓고 축적한 형태의 벽이었다.

“와… 공기가 맑아. 분명 오래된 던전 맞지?”

“…정복왕의 아내가 만든 던전이니.”

레나의 지적은 정확했다. 이곳의 공기는 맑고 깨끗했으며, 바람이 외부와 통하는 것인지, 마법적 작용에 의한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던전 내부의 공기는 대체적으로 깨끗한 축에 속했다. 

몇 백 년을 밀폐된 채 있어야 할 던전 내부에서 이정도의 신선한 공기를 맞을 수 있는 것은 드문 경우다. 그만큼 에리스라는 마탑의 탑주의 마법 적 경지가 얼마인 지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왠지 으스스하지 않아?”

레나는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떨었다. 횃불은 바람에 의해 요동치고 있었지만,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기에 꺼질 위험은 없어 보였다. 케실리온을 비롯한 두 명은 레나의 말을 살짝 무시하고 던전을 살폈다.

던전이라고 한다면 함정과 같은 트랩이 즐비하다. 마법사가 보물을 지키기 위해 많은 기관과 마법의 함정을 설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일국에 왕의 여인이라면 그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저벅, 저벅…

케실리온의 청각에 일행들의 일정한 보폭이 이어졌다.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 녀석들인 만큼 보폭의 크기와 무게감이 일정하다는 것은 보법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그런 발걸음을 뒤로한 채 케실리온은 주위를 살피며 다른 기척을 찾아내기 위해 정신을 곤두세웠다.

주위를 살피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다. 던전의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 자연히 경계심이 든 것이다. 

“발걸음에 신경 써서 움직여라. 혹여 기관이라도 건드리면 귀…”

푹- 크르릉!

케실리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뭔가를 밟았거나 건드린 것이다. 서둘러 케실리온은 내공을 끌어 올리며 혹시나 있을 공격을 대비했다. 하지만, 주위는 살기라고는 눈곱만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 어어… 뭐, 뭐야!?”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케실리온은 급히 몸을 틀었다. 기관을 건드린 주범은 레나였다. 그녀도 당황스러운지 미처 발을 떼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미 엎질러 진물. 그곳에서 발을 떼라.”

“안 돼!”

“뭐야!? 지금 장난 하는 건가.”

“바, 발이 안 떨어져!”

케실리온의 표정이 굳어졌다. 레나의 말에 일말의 거짓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농담이라도 했다간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케실리온의 눈빛도 있었지만, 그녀의 간절함도 한몫을 더했다.

쿠르르- 쿠릉-

기관이 땅을 밀어 넣으며 어딘가에서 뭔가 마찰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레나의 두려움은 배로 증가되었고, 덩달아 프린과 알파도 긴장한 눈치였다.

“알파!”

“옛!”

케실리온은 알파를 향해 눈으로 명을 내렸다. 딱히 입으로 명을 내리지 않더라도 상황을 적절하게 판단한 알파는 레나의 곁으로 다가서며 그녀를 강제로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레나의 발과 케실리온을 보며 머리를 좌우로 저었다.

드드득!

콰르릉!

“헉!”

“꺄아악!”

케실리온이 알파를 부르려는 순간 레나를 중심으로 던전의 복도를 지탱하고 있던 바닥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대략 10미터 가량의 거리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케실리온은 급히 소리쳤다.

“알파! 물러서라!”

케실리온이 소리쳤을 때는 이미 상황이 많이 흘러간 뒤였다. 뛰어난 판단을 내렸지만, 기관은 유동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말이 늦어버렸다. 무려 10미터나 되는 범위가 순간 무너지자 검은 공간이 바닥에 드러나며 레나와 알파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범위에 벗어나지 못한 프린 역시 휘말리고 말았다.

파파팟!

휘청-

떨어져 내리는 레나와 알파, 프린을 보며 케실리온은 급히 마법을 펼쳤지만, 검은 공간으로 떨어진 후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추락해 버린 세 명의 존재를 보다 자신의 균형이 아래로 쏠리자 케실리온은 신법을 전개했다.

팟!

“칫!”

짧게 불만을 터뜨리며 마영신법(魔影身法)을 전개한 케실리온의 신형은 아래로 떨어지는 벽돌을 박차며 반대편의 복도로 뛰어넘었다. 허공의 계단을 타듯 넘어가는 케실리온의 몸짓은 신기에 가까웠다.

케실리온은 반대편으로 도착하자, 짜증이 확 치솟았다. 자신의 실책이다. 빠른 판단을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소중한 수하 하나를 잃었다는 생각에 분노에 목을 타고 흘러나왔다.

“젠장!”

쾅!

케실리온은 일갈을 터뜨리며 벽을 향해 주먹질을 했다. 단 한 번의 주먹이었지만, 모든 분노가 담긴 주먹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벽은 강한 진동을 동반하며 굉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던전은 고요해졌다.

“허허!”

분노 뒤에는 허탈감이 찾아왔다. 레나를 시작으로 프린, 알파까지 떨어지자 어이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레나와 프린은 모르겠지만, 알파마저 트랩에 휘말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크르릉-

뒤늦게 트랩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원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트랩치고는 정교했으며, 이목을 숨기기에 충분했다. 케실리온의 안력으로도 구분하기 어려운 곳에 트랩이 설치되어 있었다. 

시각의 사각지대(死角地帶)였다. 눈으로 보기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다. 그렇다고 못 찾을 것도 없지만, 그런 곳에 시간을 허비하는 곳에 투자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자신의 실력쯤이라면, 아니, 알파 정도의 실력이라면 함정에 걸리고도 빠져 나올 실력이 된다. 

하지만! 하지만, 알파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너무 교묘한 트랩이었기 때문이다. 좌우로 벌어졌던 바닥은 제자리를 찾았고, 레나와 같이 추락했던 벽돌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시… 혼자인가.”

케실리온의 짧지만, 심도(深到)있는 목소리가 던전에 울렸고 곧 침묵에 접어들었다. 그 고요함에 케실리온도 덩달아 조용해지며 앞으로 전진해갔다. 혹시 아래로 떨어진 알파며, 레나, 프린 등을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어느 정도 들었다. 던전이 묘하게 아래로 향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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