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1화 (221/269)

에리스의 던전(2) - 넌 누구지?

“꺄아악!”

검은색 이빨을 드리운 공간에 레나는 비명을 질렀다. 중력의 법칙에 의해 떨어지는 육신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낙사할 위기에 처해 있다.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지, 레나는 지금껏 배운 무공을 활용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허공에 손을 휘저을 뿐이었다.

인간이 새가 아닌 이상 하늘을 자유롭게 날지 못한다. 그것의 이치에 맞는 행동을 보이는 레나를 보며 알파는 마음을 다시 잡았다.

‘누구 때문에 떨어지는 데!’

알파는 지금껏 당해온 설욕을 느끼며 속으로 곱씹으며 자신의 진실 된 모습을 내비칠 것을 각오했다. 뱀파이어라면, 아니 마족이라면 가지고 있는 현신(現身)의 능력이다.

“현신!”

알파의 간결하고도 절강한 목소리가 허공에 울리기가 무섭게 의복의 날개 뼈 부근에서 검은색의 넓은 물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알파의 푸른색 눈이 붉은색으로 변하며 매력적이지만, 매혹적인 눈빛으로 바뀌었다.

펄럭!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가운데 날개를 펼치며 힘껏 내지르자 붙었던 가속도가 떨어지며 레나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한 템포 늦게 떨어지는 프린 마저 무사히 받은 알파는 짧게 한숨을 터뜨렸다.

둘의 몸무게는 의외로 가벼워 하늘을 비행하는 데 지장을 주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깊은 것인지 한참을 내려와서야 지상을 밟을 수 있었다.

“아… 나, 산거야!?”

“예, 아주 무사하죠. 당신 때문에 케실리온님과 떨어졌습니다.”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대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를 터트리는 레나의 작태에 알파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파의 말대로 레나 때문에 케실리온과 떨어졌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기에 레나는 그녀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미안…”

훌쩍-

흐느끼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레나는 기어코 코를 훌쩍이며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에 당황한 것은 알파였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프린은 둘의 미묘한 대화를 무시하며 떨어진 곳의 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 사방이 꽉 막혔어.”

훌쩍이고 있던 레나와 그녀를 살살 달래고 있던 알파는 프린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떨어진 곳이 하필이면 사방이 막힌 곳일 줄이야. 알파는 허탈한 느낌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그런! 케실리온님과 떨어진 것도 억울한데… 사방이 꽉 막혀!?”

“으아앙. 나 어떻게!”

꼬르륵-

“배도고파…”

알파와 레나의 한탄에 프린은 의외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떨어진 공간은 의외로 좁았다. 어둠에 가려 자세히는 볼 수 없었지만 가로세로의 길이가 대략 20미터 정도로 세 명이 있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문제는 식수와 음식이었다. 알파야 두 명의 핏덩이(?)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둘은 인간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트랩에 의한 위험보다는 아사에 의한 죽음을 당할 것이 뻔했다.

“확실히… 빠져나갈 구멍은 없군.”

프린의 잔잔한 목소리가 울리자 레나의 칭얼거림은 더욱 커졌다. 프린의 말이 결정타였기 때문이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군.’ 그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다.

“휴… 책임을 떠넘겨도 지난 일을 가지고 추궁하기도 뭣하니. 방법이라도 찾아보죠.”

“으응…”

알파의 말에 레나는 힘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배가 고팠기 때문인지 대꾸할 힘도 없는 모양이다. 벽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던 프린도 지치는 것인지 레나의 곁에 앉으며 눈을 감으며 침묵을 지켰다.

크르릉- 크릉!

“응? 설마!”

휙!

알파의 귀에 기관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레나와 프린도 들었던지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연히 알파의 시선은 레나에게 머물었고, 프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왜 나를 보는데! 난 아니야!”

레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알파에게 해명했다. 지금껏 일을 저질러 온 자가 자신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레나인 만큼 지금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그 모습에 알파는 살며시 한숨을 내 쉬며 기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후… 아마, 떨어진 직후부터 기관이 움직이는 것 같군요.”

알파의 추리는 완벽했다. 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은 위에서 떨어지고부터였다. 한참을 유동하던 기관이 조금씩 더디게 돌아갔다. 그 순간, 레나의 말에 알파와 프린은 어떤 트랩이 작동하는 지 추측했다.

“왠지 공기가 습하지 않아?”

“물이 차오른다.”

공기가 습해졌다. 아까는 마른 공기였다면 지금은 수분이 충만해진 공기다. 그리고 가장 바깥쪽에서부터 미량의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콸콸콸!

“!!!!”

“중앙으로 모이세요!”

순간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에 따라 알파는 중앙으로 모일 것을 권했다. 그만큼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만만치 않았다. 이미 무릎까지 차오른 물줄기에 레나는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빠져나갈 방법 없어!?”

“칫! 주위에서 방울이 올라오는 곳을 찾아주세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

알파의 지시에 레나가 반박했지만 워낙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이었기에 프린과 레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포가 올라오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고요하게 차오르는 물줄기였기에 관찰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없어! 이곳은 틈이 없는 거야!”

프린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다급한지 절실히 깨닫게 해줬다. 바닥은 꼼꼼하게 자리를 잡아 있다. 그리고 바닥에서부터 기포가 올라오지 않다는 뜻은 외부와의 접촉이 없으며 마법적인 활동에 의해 기관이 움직인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알파의 기준으로 가슴까지 차오르자 레나와 프린은 머리까지 잠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에 알파는 두 명을 끌어안으며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등 뒤에서 날개가 펴지며 하늘로 날아오르자 약간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휴… 고마워.”

“미안하지만, 제 날개는 장시간 날수 없습니다. 전 은신과 공격에 특화된 존재.”

알파는 찹찹하게 말하고는 혹시나 벽에 붙을 틈이 있는지 여기저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 이곳으로 떨어질 때는 몰랐지만 벽의 곳곳은 벽돌 하나가 빠져 있는 형태였다. 그리고 물이 차오르는 곳이 5미터를 넘어가자 물속은 검은 물체로 들끓기 시작했다.

사사삭!

“저건…!?”

“매직 피쉬(Magic Fish)!”

알파의 의문에 프린이 답을 했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영지의 해자에 쓰이던 마법 생명체였다.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서식 할 수 있는 마법 생명체다.

“그게 뭐야?”

“200년 전 영지를 지키기 위해 해자와 영지 밖을 이어주는 물줄기에 풀어 놓은 식인 물고기다.”

레나의 물음에 프린은 가장 간략하게 답했다. 프린을 말처럼 매직 피쉬는 식인 물고기다. 그 짧은 대답의 의미를 모를 정도로 무지하지 않은 레나다. 그녀의 말에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매직 피쉬(Magic Fish)

마탑에서 만들어진 생체병기다. 영지를 지켜주는 해자의 낭더러지에 있는 물에 서식하는 물고기다. 마법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생리적 욕구는 무의미하다. 오직 떨어지는 상대로 하여금 죽음과 공포를 선사하는 물고기로 아군에는 든든한 방패요, 적군에게는 공포였다.

“저게… 매직 피쉬!?”

“날개에 히, 힘이 빠집니다.”

“헉! 제발 버텨봐!”

알파의 다급한 말에 레나의 표정을 창백해지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변해 버렸다. 이젠 물에 들어 갈수도 없다. 하지만, 피할 틈도 없다. 이런 핀치도 없을 것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다급한 상황.

“더, 더 이상! 모두 무기를…”

알파의 말에 프린은 정령을 소환했다. 과거에 비해 뚜렷하게 보이는 정령의 모습은 프린의 표정만큼이나 무뚝뚝했다. 여타의 정령과는 다르게 지팡이를 쥐고 있었는데 그 지팡이의 헤드가 사람의 눈과 닮아 있었다.

거기다, 인간과 비슷한 로브를 입고 있었지만,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프린은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레나는 레이피어를 들어올렸다. 심히 떨리는 몸이었지만, 살고자 하는 의식에 정신은 차갑게 식어갔다.

“나의 친구여… 정신의 정령이여… 나의 부탁을 들어주오. 전쟁의 두려움을,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 주오. 아군에게는 축복을! 적에게는 절망을!”

끄덕-

허공에 나타난 마인더라는 정신계 정령은 커다란 눈이 달린 지팡이를 허공을 향해 휘두르자 분홍빛 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심히 떨리던 레나의 몸의 떨림은 멈췄고, 알파의 눈은 차갑게 식어갔다.

“뭐, 뭐지!? 떨림이 멈췄어.”

“일시적으로 두려움을 없애는 안티 피어(Anti Fear)라는 정령마법.”

프린의 정령마법은 일취월장해 있었다. 대륙에서 희귀하다는 정령마법사다. 정령과 마법의 조합은 쉽지 않았다. 거기다 정령사도 드문 존재였기에 프린의 존재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다. 거기다 정신계 정령은 희귀하기에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좋아요. 저도 심적 부담감이 사라졌습니다. 레나! 프린! 죄송하지만, 벽의 틈을 잡고 싸워 주십시오.”

“뭐야!? 우린 죽으라는 말이야?”

“저의 절기를 사용합니다! 한 번에 처리할 겁니다.”

알파의 말에 반박하는 레나였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에 머리를 살짝 끄덕였다.

“확실히 처리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까운 벽에 두 명을 두고는 알파는 허공으로 치솟았다. 잠시 두 눈을 감고 있던 알파는 온몸의 마기를 양손에 집중 시켰다. 붉게 타오르는 양손의 모습에 주위는 마기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 집중력과 마기는 뱀파이어 로드에 근접해 있을 정도로 대단한 양의 마기였다.

후우웅- 찌릿! 찌릿!

알파를 중심으로 강한 강풍이 몰아쳤다. 거기다 마기의 스파크가 튀기 시자가하자, 레나와 프린은 힘겹다는 듯이 신음을 터뜨렸다.

“흐음.”

“조금만 참으십시오.”

20초가량 더 마기를 모은 알파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빨갛다 못해 피가 흘러내릴 정도의 안광이 터짐과 동시에 알파의 손끝은 피가 흘러내리듯 붉은 구체가 생성되었다.

“사라져! 블러드 와일드(Blood Wild)!!”

푸솨솨솨!

알파의 일갈과 함께 마기가 폭사하며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10개가 20개로, 20개가 40개로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수면을 향해 질주하는 블러드 와일드의 위용은 대단했다. 물살을 가르며 떨어져 내리는 모습에 레나와 프린의 얼굴을 붉게 비춰졌다. 

쿵! 쿠쿠쿠쿵!

다연발의 블러드 와일드가 물에 잠겨 있는 땅을 강타하며 충격파가 물 안에서 터졌다. 그리고 물은 하늘로 치솟으며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 충격에 레나와 프린의 몸이 심히 떨렸다. 그 순간 레나의 손이 벽에서 떨어져 버렸다.

“어어!? 악!”

풍덩!

압력을 이기다 못한 레나와 프린이 물에 떨어지자 알파의 두 눈이 흔들렸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물 안에는 식인 물고기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알파 역시 물속으로 급히 잠수를 했다.

보글보글!

알파가 입수하기가 무섭게 물속 안에서는 무수히 많은 기포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아래로 가라앉는 레나와 프린을 보는 순간 알파는 헤엄을 치며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 주위에는 식인 물고기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시체마저도 사라진 것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런!’

알파는 입에서 많은 산소를 뿜어내고 있는 레나와 프린을 보며 손을 뻗었다. 숨넘어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알파는 아직 여유가 있었기에 레나와 프린의 입에 산소를 불어 넣었다. 그 순간, 두 명을 잡고 있던 몸이 아래로 기울며 블러드 와일드에 의한 공격으로 부서져 내린 벽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