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4화 (224/269)

에리스의 던전(2) - 넌 누구지?

‘기회다!’

시그너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가 생겼다. 던전의 보물을 지키는 던전 키퍼의 등장으로 가장 경계 해야 할 대상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것은 재단 위에 있을 비드를 차지하는 데 커다란 기회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두 존재는 나를 느끼지 못했다. 즉…’

시그너의 은신 능력을 탁월했다. 은신을 위한 투명화 마법과 주위의 체온을 동일하게 하는 체감마법 그리고 부유마법의 운용이 뛰어났다. 가장 중요한 마법이 바로 주위의 마나를 자연의 마나로 위장하는 시크릿 포스(Secret Force) 마법이 가장 중요하다.

시크릿 포스(Secret Force)는 마법사가 펼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마법진을 이용해 펼칠 수 있는 마법으로 아티팩트로 제작되는 것이 고작이다. 그만큼 술자인 마법사의 정신력과 자연의 마나를 동화시키는 것으로 경지의 깨달음으로 펼칠 수 있는 하이드 포스(Hide Force)와는 격이 다르다.

‘하이드 포스에 익숙해진 녀석들의 허를 찌르는 수법이 바로… 시크릿 포스다.’

시크릿 포스는 인위적인 수법으로 자신의 마나를 숨기는 것, 하이드 포스를 찾는 데 익숙해진 케실리온이나, 던전 키퍼의 경우 빙염의 마법사가 지니고 있는 아티팩트의 기운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케실리온은 하이드 포스를 펼치고 있었던 던전 키퍼를 찾아낸 것이고 공교롭게도 시그너의 경우 이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시그너는 이런 기회를 선사한 아티팩트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오른손 중지에 끼워져 있는 시크릿 포스를 펼치는 반지형 아티팩트는 잠시 반짝였다.

‘멍청한 것들… 유색의 비드는 내차지다!’

시그너는 검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에 마나를 불어 넣으며 제단 쪽으로 날아갔다. 그의 아래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     *     *

케실리온은 던전 키퍼와 대치했다.

“경고는 끝났다.”

검과 검이 교차하기에는 한보 정도 떨어진 자리에 선 녀석이 붉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안광을 터뜨렸다. 범인이 보았다면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 갔을 눈빛이었지만, 케실리온 역시 뒤지지 않고 안광을 터뜨렸다.

“돌아가라… 이건 오랜만에 보는 생명체에 대한 아량이다.”

“검이 오가는 곳에서 문답(問答)이 필요한가?”

꿈틀!

“문답이 뭔지 모르나. 거슬리는 대답이군. 죽어서야 후회하겠단 말인가?”

“오직 검만이 대답이 될 것이다. 무용(無用)!”

녀석의 마지막 경고를 듣고 케실리온은 마령검은 한차례 휘둘렀다. 바닥을 거칠게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는 하나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케실리온을 중심으로 반경 2미터 가량 반원을 그렸다.

“어리석은 자… 소원이라면!”

“갈(喝)! 문답무용(問答無用)!”

후오오!

케실리온의 일갈에 주위는 마기로 차갑게 식어갔다. 너무나 냉혹하게 피어오르는 기세에 던전 키퍼인 녀석은 대검을 꽉 움켜쥐며 눈을 부라렸다. 주위를 삽시간에 얼리는 케실리온의 기운과는 다르게 녀석은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았다.  

“에리스의 언약에 따라 나 엔드라 침입자를 섬멸한다.”

“서론이 길다. 덤벼라!”

엔드라는 대검을 힘껏 끌어당기며 케실리온을 향해 뛰어들었다. 보법을 펼친 것도 아니건만 대단한 운용이었다. 

팟!

대검의 무게감이 더해져 그의 스피드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타입이었다. 공기를 폐로 빨아들이기 전부터 파고드는 거친 몸짓에 케실리온은 마령검을 바닥을 살며시 그어 올렸다. 그 덕에 마령검과 바닥이 마찰음을 요란하게 터뜨렸다.

가가가각!

“스네이크 댄스(Snake Dance)!”

엔드라는 케실리온의 끌어 치기를 막아내며 스네이크 댄스를 펼쳤다. 저 검법은 페덜 왕국의 왕실기사 소속들만이 익힐 수 있는 검법이다. 지금은 잊힌 제왕의 나라지만 대륙을 질타하며 정복했던 왕국 최고의 검법이다.

지도에서 사라진 대륙 패자의 검법이 던전 키퍼 엔드라의 손에서 펼쳐졌다.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것 같았던 대검이 케실리온의 마령검을 타고 오르며 손목을 노리며 찔러 들어갔다.

피식

“…제법 이지만 그런 수법은 이미 겪었다!”

케실리온은 뱀처럼 타고 오르는 엔드라의 검을 보며 ‘피식’거리며 미소를 흘렸다. 그 순간 마령검을 중심으로 지각이 폭사하며 엔드라의 검을 튕겨냈다. 엔드라는 갑작스럽게 터져나가는 바닥을 보며 대검을 회수했다.

엔드라는 방금 그 수법이 검으로 펼쳐낸 현상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기운을 검신의 끝에 모으며 폭사시키는 수법으로 ‘만검의 파’라는 수법이었다. 모든 초식을 자신의 수족(手足)처럼 부리는 케실리온의 검은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쓸데없는 움직임이 없었다. 필요 이상의 공간을 베지도 않았다. 보완에 보완을 거듭한 결과 얻어진 것이 지금의 만검이다. 이것이 다 제니어스의 전쟁에서 얻은 부산물, 케실리온의 순수한 노력으로 맺어진 결과다.

“신경전은 이걸로 끝내지…”

케실리온의 말에 엔드라는 머리를 살짝 끄덕였다. 비록 에리스에 의해 만들어진 마도병기라고 할지라도, 엄연히 몸속에 피가 흐르는 생명체다. 설사 세상이 인정하지 않더라고 눈앞의 존재에 피가 끓는 투지가 그를 증명한다.

“피가 끓는다…”

“뭐? 하하하! 투지나 호승심을 말하는 건가?”

엔드라의 말에 케실리온은 웃음을 터뜨렸다.

“2계 녀석들은 하나 같이 재밌지. 나를 자극하는 녀석들이 많거든. 이곳은! 하지만…”

스악!

케실리온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케실리온이 있던 자리에는 수북하게 쌓여 있던 먼지가 피어오르며 조금 전까지 있었다는 의미만 부여하고 있었다. 잠시 후, 곳곳에서 그와 비슷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캉- 캉!

푸슈우우!

찰나의 순간이 지나기 무섭게 케실리온은 처음 있었던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바뀐 점이 있다면 두 차례의 검이 오고갔으며 엔드라의 볼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싸움이었건만 생겨난 상처는 경미했다.

“모두 나의 검에 무릎을 꿇었다.”

주르륵-

케실리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엔드라의 볼과 팔에서는 가느다란 선이 생겨났다.

“겨우… 그 실력으로 건방지게 나에게 말했던가? 알파에게 조차 이기지 못할 실력으로 나의 앞을 가로막지 마라!”

겨우 두세 번의 검이 섞였지만 역량의 차이는 명백했다. 케실리온의 지척처럼 알파와 싸워도 엔드라라는 던전 키퍼는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케실리온이 강해졌으며, 알파 역시 강해졌다.

케실리온의 경지는 혈신의 끝자락에 닿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혈신의 다른 말이 현경이다. 지옥에서의 마지막 경지가 마신의 경지였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케실리온은 마신의 경지에 닿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케실리온의 무력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알파의 경지는 화경 중반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케실리온에게 배운 수법과 2계의 존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한 힘을 낼 수 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케실리온을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는 엔드라의 경우도 비슷했다.

화경의 경지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상태다. 알파와 싸웠다면 대등하거나 그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였을 것이다. 아무튼, 2계의 존재를 지옥의 법칙으로 양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플레어 아머(Flare Armor)!”

머리를 숙이고 있던 녀석이 케실리온을 쏘아보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갑옷인가?”

케실리온은 녀석의 무미건조한 말보다도 갑옷을 입듯 몸 주위가 불타오르는 형상의 갑옷을 보며 호기심이 동했다. 감히 다가가기도 어려운 열기였지만, 케실리온의 마기 특성상 녀석과는 상반되는 기운을 지니고 있다. 말인즉 충분히 버텨낼 수 있는 열기였다.

화르륵!

붉은 머리카락을 시작으로 얼굴, 가슴 등 차츰 전신을 뒤덮는 열기에 케실리온은 기운을 끌어올렸다. 던전의 바닥은 특별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인지 녀석의 열기에도 쉽게 녹아내리지 않았다.

저벅, 저벅

이상한 기술을 펼친 녀석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고요한 던전 지하에는 오직 녀석의 발걸음이 울릴 뿐이다. 케실리온은 녀석의 기운이 한층 높아져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어리석은… 이 모습을 보고도 살아간 자는 없다.”

“하하하! 고작 기운의 상승으로 상황이 바뀌리라 생각하느냐!”

케실리온을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기운의 상승으로 기고만장(氣高萬丈)하는 모습이 웃겼기 때문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문답은 필요 없다!!”

아래로 향했던 검신이 측면으로 세워졌다. 날카롭게 예기를 내뿜는 마령검에서 은빛의 기운이 일렁이며 검 전체를 완전히 감싸 안았다. 무식하게 기운을 내뿜는 것이 아닌, 검과 팔이 움직이기에 가장 적당하게 오러가 씌워져 있다.

“후웁-”

팟!

케실리온의 호흡이 끊겼다. 그 찰나의 순간 신형은 앞으로 쭉 늘어나며 엔드라의 정면에서 나타났다. 여러 개의 잔영이 따라 가듯 뒤를 따랐고 엔드라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케실리온의 검을 막기 위해 대검을 치켜세웠다.

“눈으로 쫒는 게 아니다.”

퉁!

엔드라의 앞에 나타난 케실리온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짧게 이야기 했다. 그 모습도 잔영에 불과했다. 뒤늦게 던전 지하에 울리는 파장에 엔드라는 눈을 번쩍 뜨며 대검을 왼쪽으로 휘둘렀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슷

“끝이다!”

엔드라를 우롱하듯 케실리온의 모습은 정면에서 나타나며 마령검이 출수했다. 허초에 허초를 거듭한 검법에 엔드라는 당황해했다. 대검으로 케실리온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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