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스의 던전(2) - 넌 누구지?
푹!
엔드라의 대검이 앞을 막았지만 케실리온의 마령검은 교묘하게 복부를 찔러 넣었다. 하단부로 찔러 넣었던 검은 세차게 요동치는 심장을 뚫고 등 뒤로 튀어나왔다. 차가운 검이 녀석의 몸에 들어가자 엔드라의 눈동자는 세차게 떨렸다.
잠시 엔드라의 눈동자를 쳐다보고 있던 케실리온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자리했다. 그 미소를 본 엔드라의 눈은 붉게 출혈됐다. 붉은 머리만큼이나 충혈된 눈동자는 케실리온의 얼굴을 시작으로 목, 팔로 천천히 시선이 떨어졌다.
“듣고 있겠지? 내장, 위, 간, 폐, 심장이 파괴됐다. 넌 죽은 목숨이다.”
케실리온의 말에 엔드라는 몸을 떨었다. 정확히 아랫배로부터 시작된 찌르기 공격은 심장을 꿰뚫고 등 뒤로 튀어나오 있었다. 설사 목숨을 부지한다고 한들 치명상이었다.
“컥-”
푸웃!
녀석은 입에서 붉은 피를 뿜어냈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케실리온은 천천히 마령검을 뽑기 위해 팔과 손목에 힘을 줬다. 조금씩 뽑혀 나오는 검을 보며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웃고 있는 미소였지만 차가운 미소였다.
“너의 실수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는 거다.”
케실리온은 자신의 입술을 쓸어올리고는 휘청거리는 엔드라를 내려다 봤다. 휘청거리던 녀석은 줄 풀린 인형처럼 축 늘어져 갔다. 과다출혈과 장기파괴로 인해 죽음이 임박 한 것 같았다. 그 찬란하던 불꽃의 갑옷도 사라져 있었다.
뚝뚝, 뚝-
복부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케실리온의 손을 적셨고 땅을 적셨다. 조금씩 뽑혀가던 마령검의 검신이 반쯤 드러나자 케실리온은 빨리 검을 뽑기 위해 검병에 힘을 주었다. 미세하게 떨리던 녀석은 금세 잠잠해졌다.
푹!
검을 뽑기 위해 힘을 주던 케실리온은 앞으로 쏠리는 자신의 신형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엔드라에게 시선을 주었다. 녀석의 왼손이 자신의 손을 움켜쥐며 뽑아내던 검을 도리어 찔러 넣고 있었다.
분명 마령검에 의해 중요장기가 모두 파괴당했다. 거기다 과다출혈까지 있으니 이미 죽었어야 하는 목숨이었다. 그런데 살아 있다. 케실리온은 이해 할 수 없었다. 어떤 마법적 작용도 없었다.
“…피하지 못한다면, 기회를 만들라!!!”
스릉!
중심을 잡기 위해 바닥에 꽂혀 있던 대검이 뽑히며 케실리온을 향해 뻗어갔다. 워낙 순식간이었기에 케실리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검이 뽑히질 않는 다!’
케실리온은 당황해 했다. 찔러 넣은 검이 뽑히지 않는다. 당연히 인간의 육신에 검이 들어간다면 잘 뽑히지 않는다. 근육이 이완해 검을 꽉 잡아 버린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완력이라면 충분히 뽑혀야 하건만 뽑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녀석의 손이 케실리온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피가 잔뜩 묻은 손이 케실리온의 손을 포개고 놓아주지 않았다. 검이 뽑히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엔드라의 손이었다.
후우웅!
거친 파공음을 내며 베어오는 대검을 보며 케실리온의 눈동자는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 뿐이다. 자신을 난처하게 만든 엔드라의 수법에 치를 떨었다. 완벽하게 죽었다고 생각했던 놈이 번듯하게 이런 공격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엡솔루트 실드(Absolute Shield)]
긴박한 상황에 케실리온은 용언을 사용했다. 좀처럼 잘 사용하지 않던 절대언령이었다. 용언을 사용하면 정신적 피로와 기운의 소모가 크지만 긴급한 상황에는 그걸 따질 상태가 아니다.
고오오오오!
공간을 뒤흔드는 광기어린 기운이 느껴졌다. 던전 지하를 가득 메우는 기운에 케실리온과 엔드라는 멈칫 거렸다. 생사를 건 싸움을 펼치고 있건만 제단 쪽에서 벌어지는 일은 입을 벌리기에 충분한 광경이다.
공기와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케실리온은 공기기를 찢어발기듯 베어오는 엔드라의 대검을 잊은 채 제단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제단을 중심으로 검은색의 커다란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시각적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보는 것 같았지만 그 어떤 물체도 빨아들이지 않았다. 약간만 관찰력이 뛰어나다면 주변을 밝히고 있는 빛을 빨아 당기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 치고는 뭔가 달랐다. 마치 어떤 것을 방출하는 것처럼…
챙, 타앙- 탕!
“문이, 문이 열렸다…”
뭔가 떨어진 소리에 멍하니 허공에서 회전하고 있는 게이트를 보고 있던 케실리온은 굉음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주변에는 은빛의 엡솔루트 실드가 건재하게 주변을 막아서고 있었다.
스르륵-
케실리온의 손을 움켜쥐고 있던 엔드라의 손이 살며시 풀렸다. 그리고는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엔드라는 하염없이 게이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의문을 느낀 케실리온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저게 뭐지?”
“소환진이다. 이계의 존재를 소환하는…”
“…….”
엔드라의 말에 케실리온은 이해 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 정도의 일로 허탈해 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계의 존재를 소환하는 것이 뭐 어때서 그런가. 케실리온은 이곳의 신이라는 녀석이 자신의 세계로 왔던 것을 목격했다.
물론 스스로 차원이동마법을 펼 칠 수 없는 케실리온은 약간 놀라워했다. 더욱이 이계의 존재를 소환하는 마법은 더 고차원적인 마법이다. 하지만, 녀석이 대검을 노칠 정도로 당황해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금껏 이 마법진이 발동된 것은 딱 한 번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엔드라의 표정에는 어떤 사심도 거짓도 없어 보였다. 녀석의 이야기에 뭔가 심상치 않는 상황이라는 것만 짐작했다.
“스스로 자신을 ‘Chunma’라 칭 한자. 그의 걸음에 산은 무너지며, 일검에 세상은 피로 물들었다. 그런 존재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는 존재한다! 비켜라!”
“비키지 않겠다면…?”
엔드라의 말에 케실리온은 흥미로웠다. 2계로 넘어와 점점 익히 알고 있는 존재를 대면하고 있다. 사실 케실리온은 이 세상이 어떻게 되던 상관없다. 균형과 질서가 있다면 계약을 맺은 용신의 약속에 위배 되지 않는다.
“나의 존재를 걸고… 널 무너뜨린다!”
“하하하! 협박하는 건가?”
“…부탁이다. 비켜다오.”
케실리온은 녀석이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을 얼리는 은빛의 눈동자가 붉게 타오르고 있는 엔드라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굳은 의지와 갈망이 섞여 있는 눈빛이었다.
“…건방진 녀석. 가라!”
케실리온은 녀석의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촤악!
엔드라는 케실리온이 쥐고 있는 마령검을 거칠게 뽑아냈다. 그 끔찍한 고통에도 눈한 번 꿈쩍 하지 않은 녀석이 케실리온은 스쳐 지나가며 눈으로 고맙다는 뜻을 보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케실리온은 녀석의 부릅뜬 눈동자가 마음에 들었다.
2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강한 의지가 깃든 눈빛이었다. 갈망하며, 악에 받힌 눈동자가 케실리온의 마음을 움직였다.
팟!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지는 녀석은 약간 휘청거리며 제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제단 쪽에서 커다란 폭발과 굉음이 들려왔다. 생각지 못한 사단이 난 모양이다.
쾅! 콰쾅!
세발의 폭발과 굉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케실리온은 안력을 높이며 뿌옇게 솟아오르는 먼지사이로 검은 그림자를 쳐다봤다. 정확히 3명이었다. 파란색, 보라색, 분홍색이 보이자 케실리온의 얼굴은 살짝 굳어졌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 세 명의 움직임은 왠지 굼떠 있었다. 약간 지쳐 있는 건지 알파를 중심으로 부축을 받으며 지상에 내려서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만은 기쁨과 희망이 떠올라 있다.
“드디어!”
“빠져나왔다!! 살았어…”
“…더 위험한 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이.”
환호성을 지르는 알파와 레나의 말을 자르며 프린의 목소리가 기뻐하는 두명에게 일격을 가했다. 주변은 먼지가 뿌옇게 넘쳐흐르고 있었고, 살기와 큰 기운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이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기에 더욱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으아앙- 힘겹게 나왔는데… 도대체 왜!”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고 보자는 심산인지 레나의 우는 소리와 함께 먼지구름에서 벗어난 알파는 주위를 경계하며 제단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큰 기운의 정체가 저것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챈 알파는 레나를 진정시켰다.
“레나!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은 위험합니다.”
“흑흑!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데…”
“누구 때문이라고요? 다 레나 당신 책임입니다!”
“히극… 너, 너무해. 히잉”
알파는 레나에게 일침을 가했다. 한편, 판단력이 뛰어난 프린은 멀리 보이는 은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존재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알파와 레나는 프린이 사라진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오랜만이네. 케실리온”
“…그런가?”
비슷한 성격 끼리 만나니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케실리온과 프린은 내심 반가운 모양이었다. 잠시후 프린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알파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익숙한 얼굴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케실리온님!!!”
알파의 모습은 레나를 다그치던 모습과는 정 반대였다. 너무 반가워하는 알파의 모습에 케실리온은 어색하게나마 웃고 있었다. 알파는 피곤하다는 것도 잊은 채 케실리온에게 뛰어가며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케실리온님. 저의 불찰로…”
“됐다.”
알파의 말에 케실리온은 귀찮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의 딱딱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알파가 있음으로 해서 어딘가 부드러워 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몸을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 제단 쪽의 상황에 금방 분위기는 싸해졌다.
고오오오오!
“아무래도. 나 이외에 유색의 비드를 노린 녀석이 있었군. 엔드라를 튕겨 내다니…”
케실리온은 자신과 비슷한 느낌의 기운을 흩날리는 녀석을 보며 중얼거렸다. 차갑지만 약간 다른 느낌의 기운을 뿌리는 녀석이었다. 로브와 괴상한 지팡이를 쥔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