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4화 (234/269)

 ‘훗, 장난 좀 쳐볼까?’

 시온은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만검으로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그녀인 만큼 쉽게 기척을 들키지 않을 것이다. 아마 케실리온 다음의 실력자는 시온일 것이다. 알파도 만만치 않을 테지만 시온이 한수 위로 쳐주어야 할 것이다.

 출렁-

 시온은 능숙하게 알파의 후방에 나타났고 좁은 욕탕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멍하니 있는 알파의 가슴을 안으며 주물럭거렸다. 그때, 알파의 비명이 터진 것은 물론 레나와 프린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아, 아가씨… 이게 무슨!?”

 알파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갑자기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시온의 행동에 당황한 것 같았다.

 “흐응?”

 “떠, 떨어져주세요.”

 알파는 붉어질 대로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알파의 말에 더욱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가슴을 만지는 시온은 살짝 떨어지며 입을 열었다.

 “케실리온이 좋아하겠어?”

 “…….”

 시온의 말에 뒤에서 숨죽여 지켜보던 레나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셨다. 그렇게 욕탕 사용을 끝마친 그녀들은 미리 사온 의복을 걸쳤다. 각자의 취향에 맞추어 샀기 때문에 모두 불만 없는 표정으로 의복을 걸쳤다. 그렇게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방으로 들어온 시온과 알파는 잠깐 방을 둘러봤고 각자의 침대에 걸터앉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알파는 약간 붉어진 표정으로 시온의 시선을 피했다. 아직도 아까의 일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뭐야… 아직도 아까의 일 때문에 삐졌어?”

 “아닙니다. 전 그런 일로 삐지지 않습니다.”

 시온은 아까의 일 때문에 알파가 삐졌다고 생각한 건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우며 말했다. 그 말에 알파는 부정했지만 확실히 삐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애꿎은 머리카락을 꼼지락 거리며 시선을 회피하는 것을 보니 확실했다.

 “뭘, 확실히 삐졌는데”

 “삐지지 않았다니까요.”

 “에이… 겨우 장난친 거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다? 뭣하면 내 가슴 만져두되. 가슴이 닳는 것도 아니고…”

 시온의 말에 알파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삐지지 않았건만 계속 삐져있다고 우기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정말 삐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인님이…”

 “케실리온의 선택이 불만이었어? 언니보고 나를 섬겨라 해서?”

 “…아닙니다. 다만, 주인님께서 절 멀리하시는 거 같아서.”

 알파의 말에 시온은 나름대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알파의 표정에는 수하가 주군을 섬기는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소녀가 좋아하는 소년을 앞에 두고 가슴 졸이는 표정과 같아보였다.

 “언니, 역시 좋아하지? 케실리온…”

 “제 감정을 모르겠습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른 여자에게 시선을 주면 찢어질듯 가슴이 아파오지?”

 시온의 말에 알파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게 좋아하고 있다는 증거야. 뭐, 나도…”

 “…….”

 “식사 시간도 남았는데 욕탕이나 훔쳐보러 갈까? 기척을 죽이는 방법은 알지?”

 침대에서 일어난 시온은 알파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갑작스런 말에 알파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잠시 후 그 의미를 파악한 알파는 얼굴을 붉혔다.

 “아마, 지금 케실리온이 욕탕에 들어갔을 걸?”

 “그건 해서는 안 될 짓입니다.”

 “기분이야 기분! 뭐 걸리면 내가 책임질게.”

 시온의 끈질긴 말에 알파는 마지못해(?) 여관을 벗어나 욕탕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최대한 몸을 숨겼고 들키지 않게 기척을 죽였다. 기운도 없앴기 때문에 쉽게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별한 동행, 부녀대면(父女對面)

 “레나와 프린은?”

 “자고 있습니다.”

 시온의 말에 알파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케실리온은 수련을 하고 있는지 방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온은 포기하지 않고 주위의 건물이며 지형을 파악했다.

 주변은 여관과 같은 상가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마땅히 몸을 숨길 엄폐물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곳곳에 있는 골목과 특이한 형태의 건물들이 엄폐물 역할을 똑똑히 할 것이다.

 “음……. 오늘 있었던 강행군이 힘들었던 모양이네. 씻고 나서 바로 자다니.”

 “예. 아무래도 수련이 부족한 ‘아이’들이니까요.”

 “훗!”

 시온은 알파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여관의 바로 옆에 있는 욕탕을 쳐다봤다. 지붕은 다른 건물과는 다르게 통풍이 잘되게 되어 있었다. 달빛이 강하다면 목욕하는 중에도 달빛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건물도 그렇게 높지 않아서 인지 누군가 마음만 먹는 다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로 시온과 알파처럼 말이다.

 “지금 목표물의 행동은?”

 “주인님을 목표물로 지정하는 것은 삼가 해 주십시오. 아가씨.”

 “벌써 잊었어? 우린 범죄(?)를 저지르는 거야.”

 시온의 직설적인 말에 알파는 우울한 표정과 더불어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케실리온에 대한 불경을 저질러서는 안 되지만 아가씨의 강압(?)에 알파는 천천히 보고를 올렸다.

 “여전히 명상을 하고 계십니다. 특별한 행동은 없으며 여관내의 투숙객들의 움직임도 잠잠합니다. 시기상 가장 좋은 시간 때 이며, 주위의 구름이 스칼렛과 쥬얼을 살짝 가리므로 행동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이제 목표물이 나타나길 기다리면… 후훗!”

 시온과 알파는 숨죽였다. 시온의 의미모를 웃음이 마음에 걸렸지만 알파는 침착하게 은신했다. 알파 역시 내심 기대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몇 번 봤지만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케실리온의 방에서는…….

 케실리온은 요즘 들어 육체적인 수련을 자제하며 정신적인 수련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있다. 짬이 날 때마다 적당한 자리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들곤 했다. 물론, 심법 수련이 아닌 마음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맑게 하는 수련이었다.

 그 이유는 과거의 잔재 ‘조하은’ 즉 시온 때문이었다. 그녀의 등장은 설렘과 경악, 충격을 넘어 조급함, 열등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시온의 경지는 혈신의 경지에 접어들어 있었다. 혈신의 경지라고 한다면 3계의 정파에서 ‘현경’의 경지에 접어든 존재를 부르는 말이었다.

 ‘혈신!’

 혈신의 경지에 접어든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있었던지 초식과 초식간의 동작도 부드러웠고 초식에 얽매이는 경향도 없었다. 기(氣)의 운용 또한 뛰어났다. 모든 면에서는 케실리온 자신이 뛰어났지만 왠지 모를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 아이는 나의 딸. 성취에 대한 것은 축하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케실리온은 과거의 경지에 비해 뒤떨어지는 경지에 멈춰있다는 생각이 열등감에 휩싸이기에 충분했다. 시기(猜忌), 질투(嫉妬)따위는 아니었다. 그저 마음속의 조급함이 케실리온을 명상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만큼 혈신을 넘어 마신을 향하는 경지는 높았고 견고했다. 지금 케실리온의 경지는 마신의 경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육체적 능력과 기의 활용능력까지 어느것 하나 뒤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경지는 혈신에 머물러 있다.

 ‘모든 것은 준비되어있다. 난 그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케실리온의 속마음처럼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다. 깨달음, 상승의 길로 접어들게 만드는 깨달음이 중요했다. 과거에 지나왔던 길인만큼 쉬워보였지만 어려웠다. 마음속으로 거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고독과 슬픔을 씹으며 걸어온 지존의 길이 한순간의 행복에 즐거움에 취해 얻어지는 것을 거부하고 있을지 몰랐다. 누가 뭐라고 한들, 케실리온은 쓸쓸하고 슬펐고, 고독의 길을 걸으며 마신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혼자가 아니었다.

 ‘후- 수련 중에 이딴 잡념이라니…….’

 케실리온은 마음을 다시 비우고 명상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명상은 운기조식으로 변해갔다. 

 후우우-

 고른 숨결이 2층 여관방에서 들려왔다. 케실리온의 주위에는 은빛의 축복이 내린 듯 수많은 빛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육체의 중심을 지탱하는 하단전, 자연과 진리의 중단전, 우주와 미래, 가능성을 상징하는 상단전에서 뿜어진 은빛은 어느 때 보다 찬란했다.

 약간의 서늘함과 위압감이 생겨나는 마기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느 기운보다도 깨끗했고 정순했다. 

운기는 순조로웠다. 명상으로 비워진 마음과 주변의 방해도 없었다. 그리고 기운들은 순조롭게 온몸의 기혈을 따라 흘러갔다. 하단전을 거쳐 중단전에 이르렀고 9개의 고리를 회전시키는 가 싶더니 상단전을 향했다.

 지끈!

 상단전에 접어드는 순간 케실리온은 미간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렸다. 오랫동안 상단전의 수련을 해왔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통에 마음은 조급해졌고 답답했다. 짧은 고통이었지만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고통에 운기를 중단한 케실리온은 살며시 눈을 뜨며 얼굴을 구겼다. 케실리온의 표정에는 불쾌감과 당혹감이 동시에 떠올라 있었다.

 “왜지…?”

 케실리온은 과거의 경지를 조금씩이나마 찾아가고 있었다. 혈신과 마신의 경지에서 갈팡질팡할 뿐 그는 마신의 경지나 다름없었다. 갑작스럽게 상단전에 무리가가는 것을 느낀 케실리온은 당분간 수련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후- 당분간 수련은 그만둬야겠군.”

 심법 수련의 부작용 따위는 아니었다. 약간 불안한 마음에 몸 상태를 점검했지만 육체에는 이상이 없었다. 아무래도 무리한 수련 때문이라고 치부했다. 아무튼, 케실리온은 의미모를 불쾌감에 가까운 욕탕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든 케실리온은 여관을 나섰다. 이 영지 내에 머무는 여행자가 별로 없어서였기 때문인지 여관은 의외로 한산한 편이었다. 약간 지끈거리는 두통을 무시하며 욕탕으로 걸어갔다.

 케실리온은 알지 못했다. 그가 환생한 날이며, 태어난 날인 ‘대륙력 1900년 11월 13일’로부터 정확히 ‘대륙력 1916년 11월 13일’ 마룡으로서의 능력을 되찾을 것이다. 망각이 없는 기억, 절대자의 빛 브레스를 말이다. 거듭되는 두통의 원인은 이것이었다.

 “우욱-”

 케실리온은 계속되는 두통에 머리를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에 입에 손을 가져가며 헛구역질을 했다. 몸에 이상은 없었지만 왠지 머리가 아파오고 속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곧 욕탕에 도착했다는 것을 보고는 옷을 벗고 탕이 있는 곳에 들어갔다.

 모락모락-

 자욱한 수증기 속을 헤집던 케실리온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자조적으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혼자뿐인가?”

 지존은 언제나 고독한 법이다. 케실리온은 씁쓸하고도 찹찹한 심정으로 달빛이 내려쬐는 욕탕으로 들어갔다. 통나무를 파서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한두 사람이 들어가 앉을 정도의 원통이었다.

 모락모락 치솟는 수증기를 따라 천장의 일정부분이 뻥 뚫려 있는 부분으로 쏟아지는 별빛과 달빛에 케실리온은 간만에 향수에 젖어들었다.

 “비록 고통스럽고 피와 살이 튀는 곳이었지만…”

 풍운지와 수련하며 지옥의 밤이 되면 어둡게 변하는 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날이 떠올랐다. 손에 잡힐 듯 멀어질듯 하는 과거의 향수에 케실리온은 약간 우울하지만 기분 좋게 목욕을 즐겼다.

  “역시 주인님입니다.”

 욕탕의 구석진 곳의 창문을 통해 케실리온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알파는 감동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빛에 취해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이 알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자의 눈은 언제나 우수에 젖어 있다.

 “역시 좋아하는 구나. 언니는 케실리온을…”

 “아, 아가씨. 전 단지……. 휴.”

 알파는 자신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시온의 행동에 마지못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주변의 환경과 상황을 보며 대처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은 가장은신하기 좋은 환경을 고수하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 평소보다 얕은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훔쳐볼 수 있는 곳이 이곳뿐이라는 것과 두 명이 한꺼번에 보기에는 힘들다는 점.”

 시온의 말에 알파는 살짝 머리를 끄덕였다. 성인 여성이 함께 보기에는 약간 좁은 공간이었다. 몸을 비틀고 엉키고서야 간신히 두 명이 함께 볼 수 있었다.

 쏴아아!

 케실리온은 한번 물을 몸에 끼얹고는 우수에 젖은 눈빛을 하며 달빛을 쳐다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케실리온의 모습은 신비로웠다. 폴리모프 마법의 영향인지 머리카락은 평소보다 길게 자라있었다. 어깨선에 닿을 정도로 길었고 수면위에 드리운 말랑말랑하고 뽀얀 피부는 인상적이었다.

 검과 피로 얼룩졌던 던전에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말의 감정도 없이 적을 베어버리는 팔과 손, 손가락은 가늘고 약해보였다. 언제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은 맑고 투명한 느낌마저 들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기는 시온과 알파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미 알파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고 호흡도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꿀꺽-

 “아얏!?”

 케실리온의 모습에 멍하니 얼빠져 있던 알파는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상큼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그렇게 큰 비명은 아니었기 때문에 케실리온이 눈치 채지 못했지만 순간 간담이 서늘해진 알파의 시선은 약간 날카로워져 있었다.

 “언니. 어때?”

 “어, 어떻다니요.”

 “기분은 좀 풀려?”

 날카로워져 있던 기분은 시온의 말에 풀어졌다. 아니, 당황스러워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전 삐지지 않았습니다.”

 “에이, 가슴 만졌다고 삐졌잖아. 아까부터.”

 “삐지지 않았다니까요. 그리고 전, 주인님을 팔아 기분을 풀 정도로 소심하지… 읏!”

 알파는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시온의 쳐내야했다. 기분 나쁜 표정으로 왼손이 빠르게 알파의 가슴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몰래 구경한 걸로 감정 풀자. 헤헤헷.”

 시온은 살짝 웃으며 알파에게 말했다. 두 여자의 시선은 케실리온에게 닿아 있었다. 너무 쉽게 훔쳐봤기 때문일까? 둘의 긴장이 풀리는 순간 사고가 터졌다.

 끼리릿- 타탕!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아래로 열려 버린 것이다. 비가 오는 것을 대비해 설치되어 있는 지붕용 도어(Door)가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어, 어쩌죠?”

 “어쩌긴. 튀어!”

 꼬리가 길면 걸리는 법, 시온과 알파가 선택한 방법은 도주였다. 어둠속으로 몸을 날리는 알파의 심장은 거세게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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