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층의 방은 세밀한 조각으로 된 지저스의 조각상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성스러운 기운을 띠고 있는 조각상이다. 허나 신성도시의 다량의 신셩력 덕분에 딱히 성스럽게 보이지는 않았다. 깔끔하고 조용함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아마도 이 방은 교단의 얼굴을 뜻하는 방인 것 같았다. 정숙하고 조용한 방, 교단의 성스러움이 표현된 방이랄까?
방뿐만이 아니었다. 흰색 카펫으로 펼쳐진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케실리온에게서도 정숙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나타냈다. 허나 진장한 깨달음을 얻지 못해 경지에 대한 집착으로 빚어진 명상이었다. 그런데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정숙한 방의 고요를 깬 노크 소리에 케실리온은 명상을 중지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흰색 천에 검은색 실로 수놓아져 있는 신전의 엠블럼이 인상적인 의복이 약간 구겨지며 케실리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실리온님, 성녀께서 아침식사를 초대하셨습니다.”
“…….”
감미롭지만 약간 움츠려든 목소리였다. 분명 평소의 알파라면 깨끗하고 맑은 음색으로 케실리온에게 말했겠지만, 어제의 일로 인해 신경 쓰고 있는 눈치였다. 그녀의 말에 케실리온은 묵묵부답으로 천천히 방의 손잡이를 틀었다.
그 흔한 ‘끼리릿’거리는 소리도 없이 문이 열렸다. 그만큼 교단이 엄숙한 분위기를 대변했다. 약간의 빈틈도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다. 케실리온은 조용히 열린 문의 뒤편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알파를 무심히 쳐다봤다.
“잠을 잘 잤나?”
“예? 예…….”
케실리온은 떨고 있는 알파를 쳐다보며 말했다. 알파는 화들짝 놀라며 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큰 충격인 모양이다. 평소 같았으면 잊었을 일이지만 그만큼 케실리온의 살기어린 눈빛과 질시가 큰 작용을 했다.
계속된 침묵 속에서 시온과 프린이 머물던 방도 문이 스르륵 열리며 반가운 표정으로 케실리온에게 다가서는 시온과 프린이 보였다. 오랫동안 쌓여 있는 피로를 다 푼 모양이다.
“좋은 아침!”
“여!”
시온이 발랄하게 말했고 프린은 짧게 손을 올리며 잠자리가 편했다는 것을 대변했다. 금세 다가온 둘은 성녀의 식사초대에 응하기 위해 성녀가 머물고 있는 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짧은 거리였지만 무거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알파의 침울하고도 힘없는 분위기와 케실리온 특유의 무뚝뚝하고 싸늘한 분위기가 묘하게 어우러져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보다 못한 시온이 알파를 보며 말했다.
“언니!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어제부터 말도 없이 방에 틀어박혀 잠만 자더니…….”
“…….”
시온의 말에 알파는 ‘헉!’하며 숨을 크게 쉬었다. 짧은 헛바람이었기에 누구도 눈치 챌 수 없을 테지만, 시온은 짧은 순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케실리온과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왜 풀죽어 있는 얼굴로 케실리온을 쳐다봐.”
“그, 그건. 휴…….”
집요한 시온의 물음에 알파는 몇 마디 말을 이었지만 금세 한숨을 내쉬고는 케실리온을 쳐다봤다. 그 모습에 말하지 못할 사건이 케실리온과 연관 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시온은 조용히 케실리온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여전히 오만하게 어깨를 펴며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비춰졌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모습이다. 어디서 저런 용기와 오만이 생긴 것인지 모를 정도로 당당한 케실리온이다. 하지만, 시온의 시선이 느껴졌던지 잠시 걸음을 멈추며 시온에게 눈을 돌렸다.
“…….”
은색의 눈이 무심하게 시온을 훑고 지나갔다. 서로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고 약간의 기운이 주위에 맴돌았다.
흠칫!
케실리온의 기운에 시온은 약간 몸을 떨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똑 같은 기운이었지만 케실리온의 기운이 서늘하게 스쳐지나가자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난 시온이었다. 부녀(父女)간의 대화였다. 말이 필요 없는 대화!
케실리온의 눈빛은 마치 ‘알 필요 없다.’라는 눈빛으로 시온의 얼굴을 훑고 지나가버렸다. 처음과 같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일행들은 더욱 무거운 몸으로 성녀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언제 까지고 침묵을 유지할 것 같았던 케실리온은 성녀의 방이 눈앞에 보이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며 모두가 들릴 정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제 밤 피를 본 것은 나의 잘못이다. 그러니 더 이상 입에 담지도 생각지도 마라.”
케실리온의 의미모를 말에 시온은 알파에게 해명하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케실리온의 모습에 당황스러움보다도 의문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알파의 떨림도 빨라졌기에 시온도 궁금해 했다.
“뭐야 진짜! 궁금하잖아.”
“흐음…….”
시온과 프린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케실리온과 알파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들의 집요함도 성녀의 방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해 사라졌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성녀께서 준비가 덜됐습니다.”
하이 프리스트 하이덴이 조용히 말하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정갈한 모습의 성녀가 웃으며 나왔다. 상당히 기다리게 했다는 듯이 케실리온과 일행들에게 사과했지만 누구도 신경 쓰는 자는 없었다. 케실리온과 알파의 무거운 분위기 때문이다.
“흠흠, 분위기가 상당히 무겁군요. 혹시 잠자리가 불편하셨습니까? 추기경.”
“호호호! 무겁다니요. 평소도 이렇답니다.”
성녀의 물음에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케실리온을 제치고 시온이 앞으로 나서며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살짝 가린 입에서 나온 목소리에는 어색함이 잔뜩 묻어났지만 성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 그런가요? 호호…”
“그럼요. 언니도 그렇지?”
성녀도 어색한 분위기에 살짝 웃고는 옆에 있는 하이덴에게 눈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시온은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있는 알파에게 말을 걸었다. 시온의 물음에 마지못해 머리를 든 알파는 시온과 성녀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네…….”
힘없고 의욕 없는 목소리였다. 그만큼 케실리온에게 얻은 상처가 깊다는 증거였다. 알파는 솔직히 두려웠다. 케실리온에게 버려질 까봐, 멀어질 까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두려웠다. 만약 케실리온이 알파를 버린 다면 알파는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저벅, 저벅-
침묵 속에서 성녀와 케실리온의 일행들은 거탑 아케인에 있는 연회장으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 치고는 과한 인원이었다. 1층에 있는 연회장에는 제 1, 2, 3, 4의 성기사단과 몇몇의 크루세이더들이 있었고 프리스트들이 대다수 참석해 있었다.
아케인의 탑 1층에는 커다란 공간이 있었기에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에 충분했다. 연회장의 문 앞에 서자 성녀를 보좌하던 하이덴이 문을 열며 성력을 내뿜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성 카르디스의 메신저 크리엘 성녀와 12 추기경이십니다. 또한 추기경의 동료 분들입니다.”
성력을 이용한 목소리는 연회장 내부에 있던 자들에게 전달됐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성녀와 추기경을 맞이했다. 연회장의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교황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연회장에 들어서자 알파는 머리를 들며 당당하게 행동했다.
성녀는 하이덴의 안내를 받으며 교황이 자리 잡고 있는 상성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혀 어색함이 없는 동작이었다. 평소부터 이런 대접을 받고 있는 성녀였기에 거리낌이 없으리라.
“허허, 어서 오시게. 오랜만에 보는 군. 아, 저번에 봤던가?”
교황의 환대에 케실리온은 살짝 끄덕이며 성녀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가장 상석에 일행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다른 자들도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교황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성력을 끌어올렸다.
“공식적으로 몇 가지 발표와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겠소.”
교황의 말에 모든 자들은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만, 옆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알파를 보며 케실리온이 살짝 기운으로 보호를 했다. 케실리온의 행동에 알파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어제의 공포를 서서히 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 달의 기다림 끝에 신성순례를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 모였소. 바로 12 추기경, 처단의 퍼니쉬경이오. 그는 최근 본교의 추기경회에 가입했으며 활동하고 있소이다.”
교황이 하는 말은 모두 알며, 느끼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이었기에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또한 마왕을 퇴치한 영웅이기에 이번 신성순례에 성녀의 호위 겸 사절단에 포함 시킬 것이오. 신성순례를 통해 신탁을 이행할 것이며 대륙에 퍼져 있을 유색의 비드, 즉 육 신기를 모두 모아 악을 물리칠 것은 선포하는 바이오!”
“와아아아아!”
교황의 선언에 모든 종교인들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정숙해야할 아케인에서 천박하게 함성을 지르는 것은 불경이었지만 누구도 제지하는 자는 없었다. 그만큼 이것은 역사적인 일이었으며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교단에서 확보하고 있는 유색의 비드는 1개, 대륙 어딘가에 있을 5개의 비드를 찾기 위해 교단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성순례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교황의 선언이 끝나자 모두 정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성 카르디스에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식사를 위한 예배였다. 5분가량 기도를 올린 자들은 조용히 식기를 들며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흠흠, 추기경.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미안할 따름이네. 중요한 이야기는 회의실에서 하지.”
끄덕-
케실리온은 교황의 말에 조용히 끄덕이며 따뜻한 빵을 베어 물었다. 신성력에 노출된 알파를 향해 조금씩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케실리온은 알파가 진정할 때까지 기운을 불어 넣고 있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미안했던 모양이다.
신성순례(1) - 준비
연회장에서의 식사가 끝나자 신성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28층까지 올라갔다. 외부인 격인 시온들은 각자의 방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우우웅!
원탁 회의실에 들어가자 신성력을 내뿜으며 고고한 기둥이 케실리온을 반겼다. 각자의 자리에 앉자 케실리온은 교황과 성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둠의 공간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기둥이 교황과 성녀를 비추자 회의를 시작했다.
“추기경들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교황이 먼저 말했다.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근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추기경들이라…….”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죠?”
케실리온이 선뜻 답을 하지 못하자 성녀가 다시 물었다. 집요한 구석이 있는 교황과 성녀였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모르겠군. 짜증난 존재라는 정도?”
케실리온은 그들의 뜻을 잘 알면서도 모른 척 대답을 회피했다. 그들이 묻고 있는 것은 추기경들의 동태와 움직임, 교단을 위한 행동을 하는 가였다.
“란델 제국 미스텔에서의 일, 서부에서의 일에 추기경들이 연관 있다고 생각하는 데요.”
“글쎄…….”
성녀의 물음에 케실리온은 말끝을 살짝 흐리며 회피했지만 교황과 성녀의 눈빛을 보고 케실리온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둘의 모습에 케실리온은 원탁에 손을 가져다 대며 엠블럼을 놓는 자리를 문질렀다.
스르륵-
“일단은 교단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색의 비드…… 그들도 엡솔루트 가든에 그걸 가져다 놓기를 원하고 있지.”
케실리온은 추기경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제 1 추기경인 레딕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을 부활시키면 마계의 결계인 ‘다크 문’이 열린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신에 의해 봉인되어 있는 드래곤을 부활시키는 길은 마계를 끌어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대로 이야기 한다면 교단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에 대답을 회피한 것이다.
“신탁의 뜻을 잘 알고 있군요. 요즘 들어 느낀 것이지만 유색의 비드를 노리는 것은 저희 말고도 한 단체가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초록색의 비드를 운송하던 도중 이단의 행동도 포착됐습니다.”
“그런가? 확실히 흑마법사가 나를 노린 적이 많았지. 초록색의 비드와 에리스의 던전에서 흑마법사를 만났다. 모두 처리 됐지만…….”
성녀의 말에 케실리온은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 성녀가 말한 단체가 흑마법사와 관련 있다면 신빙성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걸?”
흠칫!
“추기경들은 유색의 비드를 엡솔루트 가든에 가져다 놓기를 원한다. 처음에 말했을 텐데?”
케실리온의 말에 성녀와 교황은 흠칫 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휴- 경을 속이는 것은 어렵군요. 맞아요. 저흰 추기경들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유색의 비드가 있다고 추측되는 장소에는 언제나 흑마법사가 나타났습니다. 운송과 영지, 던전에서 모두 포착됐습니다.”
“호오?”
케실리온은 성녀의 정보습득 능력에 감탄을 터트렸다. 확실히 제니어스의 영지에서도 흑마법사가 등장했다. 정확하게는 유색의 비드를 운송할 때의 그 녀석이었지만 성녀의 능력에 작게나마 탄성을 지른 케실리온은 교황과 성녀에게 다시 쳐다봤다.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우리가 추기경을 부른 것은 신성순례에 관해서네.”
“…….”
“신성순계는 서대륙의 모든 국가를 돌며 신의 손길을 전하는 것. 배고픔에 시달리는 존재에게는 빵을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는 치유의 손길을…….”
교황의 차분한 말에 케실리온은 굳게 입을 닫았다. 아까 들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단에게는 자비의 손길을 뻗어 악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정신을 바로잡는 것. 즉, 이단 퇴치가 포함되네.”
“알고 있는 내용이군. 정확하게 유색의 비드를 찾는 일이 아닌가.”
“허허허, 잘 알고 있으니 다행이구만. 정확한 목표는 신탁을 이행하기 위해 육 신기를 목표로 하고 있네. 유색의 비드는 정확하게 대륙에 퍼져 있는 드래곤의 힘이자 생명의 원천.”
“힘과 생명의 원천이라…… 기운을 밀집시킨 내단으로 보이더군. 각 속성에 맞는 구슬이 정확하겠지.”
교황의 말에 케실리온은 그의 말을 정정하며 다시 대답했다. 그에 교황과 성녀는 잦은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맞네, 추기경의 말처럼 꼭 육 신기를 찾을 필요성은 없지. 각 속성에 맞는 힘만 있다면 신탁을 이행할 최소한의 조건은 달성된다고 보면 될 것이네.”
교황의 말은 맞았다. 드래곤은 6대 속성을 기준으로 나누어진 존재다. 그 힘을 표출할 수 있는 존재라면 유색의 비드를 꼭 찾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대륙에 알려진 유색의 비드는 단 2개.
교단의 초록색 비드와 란델 제국 미스텔을 수호하는 금색의 비드는 정확한 정보다. 수도에서 생활을 조금했던 케실리온도 은연중 느낀 것이다. 금빛의 엡술루트 실드가 펼쳐졌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스텔에서 펼쳐진 금빛의 실드가 비드를 통해 펼쳐진 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군.”
“당연하네. 교단의 정보는 신자들에게서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것. 설사 거짓된 정보라 할지라도 그 것을 타고 올라간다면 거짓된 정보도 진실이 되는 법이네.”
성녀와 케실리온은 머리를 끄덕였다. 확실히 거짓된 정보라 할지라도 정확한 정보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잠시 탁자에 놓인 유리컵에 손을 가져다댄 교황은 목을 축이며 빛을 내뿜고 있는 기둥을 쳐다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늙으니 목이 타는구먼. 이미 알고 있다니 다행이야. 그럼, 유색의 비드를 찾으며 하프 드래곤도 끌어들여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겠군. 비록 반쪽이지만 그 속성을 지닌 존재를 확보하는 것으로 신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네.”
“가령, 란델 제국의 대마법사 페이린 후작.”
“맞네.”
케실리온은 교황의 말에 페이린의 모습을 떠올렸다. 타오르듯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이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7서클의 대마법사 답게 당당한 모습이 떠올랐으나, 약간 장난기 섞인 얼굴로 평범하던 자신을 괴롭히던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여자였다.
“흠흠, 동쪽 대륙의 하프 드래곤도 잊으면 안 되겠지요. 소문과 란델 제국 수도에서 나온 정보에 의하면 테라스 제국의 하프 드래곤은 블랙이라고 하더군요.”
성녀는 말을 하지 못해 답답한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케실리온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하프 드래곤은 셋, 정확하게는 마룡의 육신을 차지한 케실리온과 2명의 하프 드래곤이 정확할 것이다. 몸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케실리온은 실버 드래곤의 기운을 타고났다.
“일단 5개의 비드는 확보 된 셈이군. 초록색의 비드, 금색의 비드, 은색은 나, 붉은색은 제국의 페이린, 검은색은 테라스의 하프 드래곤.”
“정확하군요. 일단 두 개의 비드를 찾기 위해 신성순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서대륙에 없다면 란델 제국을 도와 테라스를 쳐야할 것입니다.”
성녀는 케실리온의 말을 받아쳤다. 그녀의 말처럼 란델 제국은 테라스와의 전쟁을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지저스교도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영원한 이단이 바로 테라스 제국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할 텐데? 란델 제국은 지금이라도 전쟁을 치를 기세다.”
“그것 때문에 사절단으로 가는 것입니다. 금색의 비드와 전쟁을 늦추기 위해 란델로 갈 것입니다.”
“하하하! 과한 욕심이 아닐까? 란델 제국은 유색의 비드를 이용해 라디안 왕국과 하멜 왕국을 견제할 심산으로 교단을 움직일 속셈일 텐데.”
케실리온의 지적은 정확했다. 란델 제국은 당장이라도 움직일 기세였다. 다만, 서대륙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두 왕국이 거슬릴 뿐이다.
“아뇨,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5년, 5년만 시간을 끈다면 어떻게 될 것입니다. 빠르면 3년 안에도 끝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신성순례를 돌며 각 왕국에 알릴 것입니다. 이건 대륙간의 전쟁, 아니! 신의 신탁을 이행하며, 이단을 처단하는 일!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聖戰), 신성한 전쟁이라는 어이없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다. 신전은 언제나 성전이라는 이름아래 대륙을 조율해왔다. 성전은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움직여야 할 전쟁이다.
“성전입니다. 두 왕국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5년간 각 왕국에게 성전이라는 이름아래 물자와 군사를 동원 받을 것입니다. 란델 제국의 거대한 그늘아래 두 왕국은 성전이라는 명목으로 물자와 군사를 동원 받는 다면 동대륙을 정벌하는 것도 쉬울 것이며, 제국이 생각하는 견제도 이루어질 것이니 일석이조가 아니겠습니까?”
“…….”
“…….”
성녀의 주장에 케실리온과 교황은 입을 다물었다. 설마 성녀가 성전을 입에 올릴 줄은 교황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까지 성전이 벌어진 일은 딱 두 차례 뿐이었다. 마계로부터 마족이 올라와 중간계를 어지럽힐 때 잠깐 움직였던 것과 테라스와의 작은 마찰로 성전이 벌어졌던 일이다.
하지만, 또다시 테라스에 의해, 란델 제국에 의해, 교단에 의해 성전이 벌어진다니 역사적인 사건이 11살이 되었을 법한 성녀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허허… 성녀, 그건 과한 처사가 아니겠소?”
“아니에요. 비록, 전쟁은 저희 교단과 맞지 않겠지만 서대륙은 모두 인정할 것입니다. 서대륙의 영원한 숙적 동대륙을 치는 것은 모두 당연시 할 것입니다. 신자들의 피가 대지에 뿌려진다 할지라도 신성한 전쟁을 받아들이며 기꺼이 죽음을 향해 달려 갈 것입니다.”
“으음…….”
성녀의 말에 교황은 침음 성을 터뜨리며 케실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 성녀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기껏 유지해온 균형이 깨질 것을 걱정하는 교황이었다.
“교황성하, 언젠가 깨질 균형이었습니다. 먼저 맞는 매는 덜 아플 것입니다. 차라리 먼저 맞고 치유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성녀는 조리 있게 말하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결정은 교황에게 맞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좋소! 성전을 허락하겠소. 하지만, 최대한 신자들의 피를 아껴야 할 것이오. 그리고 신성순례를 통해 유색의 비드를 확보해야 할 것이오. 일단, 초록색과 금색은 확보한 것이나 다름없소. 추기경을 포함한 2명의 하프 드래곤이 동의한다면 5개의 비드가…… 5년의 시간동안 최소 3개의 비드는 찾아야 할 것이오. 하프 드래곤은 안전장치일 뿐.”
교황의 말에 성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성전을 선뜻 허락한 교황에게 감사의 뜻이 담긴 눈빛으로 쳐다보며 다시 케실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
“경, 신성순례는 지금으로부터 3일후. 교단에서 지급하는 신성갑옷을 입기 바랍니다. 추기경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갑옷이니까요. 움직임도 불편하지 않을 겁니다.”
성녀의 말을 끝으로 긴 회의는 마쳤다. 이것으로 신성순례를 준비하는 것은 끝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란델 제국으로 향하는 것과 서대륙에 성전을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유색의 비드를 찾아 엡솔루트 가든으로 옮기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