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순례(2) - 무법자의 도시
일주일의 강행군의 성과였기 때문이었던지 신성순례의 일원들은 무사히 무법자의 도시로 들어갔다. 평범한 귀족으로 행세하고 있었기에 도시 내의 용병들과 노예상인들은 아무 의심 없이 일행을 받아들였다.
스륵
“어서 오세요.”
무법자의 도시에 있는 고급 여관 안으로 들어선 일행들은 싹싹하게 인사하는 종업원을 볼 수 있었다. 종업원은 여관으로 들어선 일행들을 보며 평범한 여행객이 아닌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평범한 눈으로는 무법자의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급 여관이라는 타이틀답게 여관 안은 서늘하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고 깨끗하게 정리된 여관내부는 손님들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모든 일행들이 여관 안으로 들어오자 종업원은 미소를 살짝 지으며 입을 열었다.
“숙박하실 건가요?”
“일단은 숙박과 식사를 할 거다. 아참! 식사 전에 목욕도 하고 싶군.”
신성순례의 주체는 교단에 있었기에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크루세이더(Crusader)인 앤더슨이 종업원에게 오 골드를 내밀었다. 일 골드가 보통 평민의 한 달 생활비였다. 그만큼 이 여관이 고급 여관이라는 점과 일행이 많다는 뜻이었고, 교단의 재정이 엄청나다는 증거였다.
앤더슨은 성녀와 케실리온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곳의 최고 지휘권자는 성녀와 추기경인 케실리온이다.
“방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여자가 다섯이니, 삼인실과 이 인실이 좋겠네요.”
앤더슨의 말에 성녀가 말했다. 삼 인실은 시온, 알파, 프린이 사용하게 될 방이다. 일단은 같은 일행이니 불편함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성녀는 하이 프리스트인 하이덴과 사용해도 문제될 것이 없기에 그렇게 정했다.
“그럼, 경께서는…….”
“그대가 좋을 대로 정하라.”
앤더슨은 성녀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케실리온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케실리온의 말에 앤더슨은 살짝 머리를 주억거리며 종업원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 인실 일곱, 삼 인실 하나면 충분하겠군.”
“예, 어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분주히 움직이는 종업원을 보며 일행들은 여관 홀에 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이들은 다섯 명의 여자들과 케실리온뿐이었다. 나머지의 신성순례자들은 자리에 일어나 성녀를 보호하듯 뒤에서 있었다.
여관 내부는 의외로 한산한 편이었다. 이곳은 귀족전용 여관이었기 때문인지 많은 테이블 중에서 단 세 곳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도 기사들을 거느리고 있는지 주위에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서로의 위용을 뽐내기 위함인지 엄숙한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무시하며 성녀는 무법자의 도시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곳에 온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정보부터 수집해야겠군요. 이곳 사정도 파악해야 하니.”
“사정이라…….”
“뭐, 일단 피로부터 풀어야 하겠지만요.”
일주일 동안 꽤나 강행군을 했기에 신성순례에 참여한 일행들은 많은 피로가 쌓여 있었다. 기운으로 억누르고 있지만 케실리온도 피로가 쌓여 있었다. 아무리 마신급의 경지와 강인한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완벽하게 피로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피로야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겠지만, 쉬고자 한다면 쌓인 피로를 빨리 푸는 것도 좋을 것이다. 거기다 목적지로 잡은 ‘무법자의 도시’에 도착한 마당에 긴장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한데 이 도시에 대해 아는 게 있나?”
“그래서 정보부터…….”
성녀는 말끝을 흐렸다. 막상생각해보니 이 도시의 정보를 어떻게 얻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저스의 신자들이 많은 서대륙이라고는 하나, 이런 세세한 정보는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때, 잠자코 있던 알파가 끼어들었다. 케실리온과 성녀를 번갈아 쳐다본 알파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알파는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자세를 바르게 정돈했다. 주위의 시선들이 많아지자 알파는 힐끗 일행과 다른 존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알파의 시선에 그들은 시선을 회피했다. 잠시 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법자의 도시, 한마디로 제국의 법을 어겨 이곳으로 도망치는 자들이나, 더 이상 용병계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자들이 만든 마을입니다. 그들은 노예상인이 되어 각지를 떠돌며 노예를 구하거나, 용병길드에서 의뢰받지 않은 더러운 일, 즉, 암살이나 납치 등을 하기도 하는 집단입니다. 이미 많은 인원이 제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
알파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정보를 듣고 있는 일행들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어렵게만 느껴지던 정보를 쉽게 전달하고 있었기에 알파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케실리온의 무덤덤한 반응에 살짝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각지에서 납치되거나 중개상인에게 팔려온 노예들을 대대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무법자의 도시입니다. 한 달에 한번, 많게는 두 번 정도의 경매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상품이 좋다면 세 번까지도 열고 있습니다.”
“경매가 열리는 날짜는 언제지요?”
“특별한 변동이 없다면 삼일 후 경매가 시작될 겁니다.”
“대단하군요. 그런 정보까지.”
성녀가 감탄하자, 알파는 멋쩍은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케실리온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곧 눈을 빛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입니다. 아직 알려진 것은 없지만 무법자의 도시 뒤에는 ‘데스 스쿼드(Deat Squad)’가 버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뒤를 봐주고 있지요.”
“오호, 데스 스쿼드라…….”
알파의 말에 드디어 눈을 빛낸 케실리온이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알파가 머리를 살짝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케실리온의 흥미를 잡아냈다는 것이 기쁜 모양이다.
“데스 스쿼드는 정보길드가 아닌가요?”
“잘 알고 계시네요. 그들은 암살, 추적, 정보, 침투, 관찰 등 많은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암살에 있어서는 최고의 집단이지요.”
성녀의 말에 알파는 자연스럽게 그 집단에 관한 정보가 흘러나왔다. 그만큼 알파는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뱀파이어의 특성상 많은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은신능력이 탁월한 것도 이것이 이유다.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군.”
무법자의 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던 알파가 ‘데스 스쿼드’라는 집단의 능력을 설명하고 있자 케실리온은 그것을 지적했다. 잠시 후 알파가 짧게 헛기침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흠흠, 죄송합니다.”
알파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조용해진 분위기에 ‘무법자의 도시’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무법자의 도시’는 실상 데스 스쿼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즉, 이곳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데스 스쿼드를 처리해야 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곳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성녀는 납득할 수없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지만 다른 일행들은 알파의 설명에 수긍하고 있었다. ‘데스 스쿼드’가 대단한 집단이라면 금세 복구할 능력도 있을 것이다. 또한, 없어지기 전에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녀는 알파의 설명을 듣고 약간 고심하는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커다란 집단이 봐주고 있지만, 교단에 비해 세가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미치자 성녀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모든 것이 교단으로 통한다는 생각에 까지 미치자 긍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듯이 주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성녀는 교단에 대해서, 성 카르디스 지저스에 대해서 자부심이 큰 모양이다.
“비록 완전히 뿌리를 뽑을 수 없겠지만, 최소한 이곳에서 노예거래가 이루지지 않도록 막을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이곳은 지역은 본 교단과 가까운 곳이 아닌가요? 불손한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도 막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군요.”
“그렇겠지요.”
자부심에 가득 찬 성녀의 표정을 보며 신성순례의 일행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노예라는 제도가 잘됐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법자의 도시’가 좋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엄연히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질서와 법칙이 존재한다. 그것을 무시하고 해결하려는 성녀의 모습을 보니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의 치기로 받아들여도 되겠지만, 많은 자들이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해야 한다는 점이 걸리는 것인지 모두 자숙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케실리온은 성녀에게 한마디 할 심산인지 입을 열었다.
“노예제도가 잘못됐다는 건가? 약하면 지배받는 것이 당연하다. 아마 스스로 몸을 팔고 있는 자들도 있겠지.”
“경! 말이 지나치군요. 그대의 말도 맞겠지만, 스스로 몸을 팔다니. 있을 수없는 일이에요.”
“어리군. 스스로 원해서 몸을 파는 자들은 세상에 널려 있다. 용병도 그것에 속하지. 약자에게는 약자의 방식이 있는 법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성녀 그대는 세상의 단면만 봐온 화초에 불과하다.”
케실리온의 연설과도 같은 이야기에 성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묘하게 묻어나는 케실리온의 사상과 이야기에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성녀는 찬란한 세상의 단면만 봐온 화초였다. 세상의 역경과 고난, 더러움과 추악함을 보지 못한 화초에 불과하다. 무자비한 자연 속에서 피어난 잡초와는 다르다.
“용납할 수없는 일이에요. 경이 무슨 말을 하든, 개화시키겠어요. 그것이 철퇴가 되던 따뜻한 빵이 되던 경은 따라 주면 되는 겁니다.”
케실리온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성녀의 치기어린 행동과 세상 물정모르고 자라온 화초의 나약함을 굳이 말로 꺼내 성녀와의 마찰을 만들 정도로 케실리온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저 성녀가 스스로 깨닫기를 원할 뿐이다.
담담하게 가슴에 묻어 둬야 할 사실이었기에 케실리온은 속으로 생각을 할 뿐이다.
‘세상은 힘이 법칙이요. 진리다. 알량한 지식으로 판단하지마라 성녀. 그것을 깨닫는 다면 세상을 알아가겠지…….’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케실리온은 성녀의 무지함에 비웃음을 터뜨렸다. 겉으로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하며 성녀의 말에 간간히 대꾸할 뿐이었다. 그 미소가 얼마나 차갑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온과 알파, 프린은 무겁게 동조할 뿐이었다.
잠시 후 종업원의 말이 들려왔다. 방이 준비됐던지 일행들은 쉬고 있던 테이블에서 일어나 각자 배정받은 방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무법자의 도시’에서 첫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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