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5화 (245/269)

이런, 12시가 지나 버렸군요. 연참이라고 생각했건만...

쓰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신성순례(2) - 무법자의 도시

    

 “다른 도시와 비슷한 분위기군요. 더 활발하다고 해야 하나요?”

 성녀는 노예시장으로 향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곳곳에 족쇄를 차고 있는 노예들이 보였다. 

 무법자의 도시는 란델 제국의 서부에 위치해있다. 또한, 세 개의 산으로 가로막혀 자연적 방어요새로써의 기능도 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여러 상인들이 라디안 왕국과 하멜 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지나쳐야 했기 때문에 노예 거래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곳이기도 하다.

 역으로 라디안 왕국과 하멜 왕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이 교류되는 대도시의 기능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일단, 데스 스쿼드(Deat Squad)라는 정보 집단이 관리하고 있는 곳이었기에 약탈과 살인은 잘 일어나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는 귀족들은 물론, 타국의 귀족들도 이따금씩 찾는 곳이었기에 제국과 왕국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다.

 란델 제국 역시 데스 스쿼드라는 집단의 위명이 대단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쉽사리 이곳을 관리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운 다면 이곳을 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있어도 들어오는 세금과 유지비가 매달 란델 제국의 황실로 들어가고 있었기에 암묵적으로 그들을 인정하고 있는 곳이다.

 란델 제국의 황실에서도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서대륙의 국가에서는 쉽사리 ‘무법자의 도시’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무법자의 도시는 노예시장과 수입품을 교류하는 상업도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성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넓게 형성된 시장을 살폈다. 본래 란델 제국의 영토지만 타국의 문물도 많이 받아들였기에 이름만 무법자의 도시일 뿐 문화의 도시라고 불려야 할 곳이다. 제국의 수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도시다.

 라디안 왕국과 하멜 왕국 특유의 문화가 섞여 이색적인 건물도 곳곳에 눈에 띄고 있었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물건과 음식이 거리 곳곳에 전시되고 팔리고 있었기에 많은 것이 제국의 수도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곳이 제국의 수도라 해도 믿겠군요. 세 개의 산이 가로막혀 있는 지형이 있어 규모면에서는 수도에 비해 떨어질지 모르지만 확실히 발전된 도시네요.”

 성녀의 말에 알파는 삼일 전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위해 입을 열었다. 삼 일간 모두 피로를 풀기 위해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많은 문화가 교류되고 있는 곳입니다. 성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수도에 비해 떨어지지 않지만, 규모면에서는 작습니다. 하지만, 수도에는 없는 검투장과 카지노가 있어. 많은 귀족들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그리고…… 아, 저기 있군요.”

 성녀의 말을 뒷받침 하며 설명하던 알파가 한곳을 가리키자 신성순례 일원들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이내 일행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노예시장?”

 “아닙니다. 경매를 붙이기에 못 미치는 상품을 공개적으로 파는 겁니다.”

 모두 노예시장이라고 생각하자, 알파가 부정했다. 노예시장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었지만 노예시장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 이곳은 검투사를 팔거나 노예시장에서 팔기에는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존재, 혹은 경매를 기다리지 않고 빨리 물건을 팔려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노예시장과는 다르게 매일 벌어지는 곳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곳으로 몰리고 있었다. 

 “도시가 유명한 것은 도박도 검투도 아닙니다. 매일 노예거래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등록을 해야 하는 경매와는 달리 이곳은 스스로 가격을 책정해 파는 곳이기에 가끔 열리는 곳보다 이곳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이 많습니다. 몰락한 귀족가 영애나 예쁜 여자 노예, 노예검투사 등 물품을 가리지 않고 팔리는 곳이기에 더더욱 몰려들지요.”

 “별 차이도 없군.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는 좀 과한 숫자군. 타국에도 노예시장이 있을 텐데?”

 노예제도에 대해 거리낌이 없는 케실리온이 알파에게 물었다. 그만큼 이곳으로 몰리는 노예상인이며, 귀족들이 과했기 때문이다. 3일간 많은 귀족들이 케실리온이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온 것을 봤기 때문이다.

 “아아, 그 이유는 라디안 왕국과 하멜 왕국의 시장에 비해 규모가 크며, 더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일축시킨다면 지독한 상인정신 때문이랄까요.”

 알파의 말에 성녀는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노예가 거래되고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람을 사고파는 것에 대해 불만이 여전한 성녀는 열변을 토해내며 가격을 올리기 위해 소리치는 상인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상인정신…….”

 성녀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교단의 사람들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곳에 시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일행인 시온이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향해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교단 사람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구경이나 하자. 나는 이곳에 처음 왔으니.”

 “…….”

 “아무 말도 없으니 승낙이라고 생각하겠어.”

 교단사람들이 아무 말도 없자, 시온은 천진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교단의 사람들이 반발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케실리온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 느꼈기에 누구도 앞으로 나서는 이는 없었다.

 감히 케실리온의 심기를 거스를 존재는 이곳에 없었다. 있다면 성녀 정도일 것이다. 성녀를 대하는 케실리온의 태도는 약간 무례했지만 딱히 무시하거나 거절하지 않았다.

 “좋아요. 저들을 개화시키기 위해서는 눈으로 직접 확인할 필요도 있을 테니.”

 일행들은 성녀의 말에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성녀의 말을 들으니 모든 것이 옳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공방을 이루던 거래가 끝나자 다음 거래를 위해 단상이 정리되고 있었다. 사회자는 신성순례의 일행들이 자리를 잡는 것을 모여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고위급의 귀족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약간만 노력한다면 큰 건수를 올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거래될 상품은 노예 검투사입니다. 도시의 검투대회에 출전하여 10승을 거머쥔 검투사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분위기 조성을 마친 사회자가 심호흡을 하며 노예상인에게 눈짓을 했다. 잠시 후 로브로 둘러싸인 노예하나가 족쇄를 차고 단상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노예를 이끄는 노예상인이 손목에 묶여 있는 사슬을 이끌자 노예 검투사는 단상위로 올라가게 됐다.

 차라랑!

 단상 중앙으로 노예검투사가 자리를 잡자 사회자가 목소리를 크게 냈다.

 “란델 제국의 동부 깊은 엡솔루트 가든을 뛰놀며 자란 노예검투사입니다. 테라스 제국과 내통했다는 죄로 팔려온 자로, 바스타드 소드를 능숙하게 다루는 노예입니다.”

 사회자의 분위기 조성에 사람들은 이미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노예를 쳐다보고 있었다. 로브 사이로 드러난 투박한 손과 꿈틀 거리는 근육만으로도 충분히 강한 인상을 주는 노예였다. 하물며, 엡솔루트 가든에서 자랐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엡솔루트 가든은 많은 몬스터가 살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힘과 민첩성이 뛰어난 자들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곳은 코리안 공작가가 자리한 곳이었기에 그 위명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오오!”

 잠시 후, 로브로 둘러싸여 있던 노예의 로브를 벗겼다. 양손이 결박된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노예는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검투를 한 모양인지 몸에는 말라붙어 있는 피딱지가 있었다.

 “이보시오! 설마 다 죽어가는 노예는 아니겠지?”

 “저 노예는 방금 전까지 검투를 치룬 검투사입니다. 그는 막 10승을 거머쥔 노예입니다. 어떤 상처도 없이 이겼으며, 저 피는 상대방의 피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아! 참고로 그는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익스퍼트급의 노예라는 점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오오!”

 사회자의 말에 다시 탄성을 자아냈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노예 검투사라는 점이 플러스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낡고 허름해 당장이라도 삭아 부스러질 것 같은 로브가 지금은 찬란한 옷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노예 청년의 머리는 갈색이었고, 눈은 대륙인이라면 익숙할 옅은 파란색이었다. 강인한 인상도 한몫 더해 잘생긴 느낌을 주고 있는 노예였다. 또한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에, 각각의 개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층 더 가치를 발했다.

 모두의 감탄에 사회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미소를 그렸다.

 “이 노예 검투사는 정해진 주인을 아주 잘 따를 것입니다. 이미 마법사의 도움으로 각인 마법이 준비되어 있기에 명령을 불복종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조사결과 테라스 제국과 내통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깨끗한 노예입니다. 오늘 열린 경매 중에서 최고의 가격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는 10번의 승리를 점했을 뿐만 아니라. 익스퍼트급, 즉! 기사급의 노예라는 점을 감안하겠습니다. 경매 가격은 500골드부터입니다.”

 “천 골드!”

 웅성웅성.

 사회자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천 골드는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다. 한명의 기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2천 골드 이상의 물자가 필요하기에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었다. 그리고 천 골드를 제시한 것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접근하는 것을 봉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하, 하하하! 익스퍼트 급이 천 골드라니! 대단하군.”

 옆에서 사회자의 말을 듣고 있던 신성 기사들은 자신의 능력들을 상기 시키고 말을 더듬었다. 교단으로부터 한 달에 지급되는 돈이 10골드 안팎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거래되고 있는 노예가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기사들의 월급이 10골드 일 뿐이지, 품위유지비와 말과 병기를 관리하는 돈은 따로 더 나오고 있는 실정이기에 약 50골드 정도가 한 달 월급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거래되고 있는 노예가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 노예가 오러를 증명하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미리 준비된 것이었던지 노예상인지 허리에 매달고 있던 채찍을 꺼내들었다. 보는 것으로도 아플 것 같은 채찍을 허공에 휘두르자 공간이 찢어질 듯 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촤아악!

 노예상인은 허공에 한 번 더 휘두르고는 노예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채찍을 강하게 내려치기 시작했다. 가슴을 향해 날아드는 채찍을 보며 노예 검투사의 눈동자에는 기광이 어리기 시작했다. 옅은 푸른색 눈동자가 찐해지는 가 싶더니 채찍을 막아버렸다.

 텅!

 약간의 울림이 들리는가 싶더니 채찍은 힘없이 튕겨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케실리온의 눈이 살짝 빛났다. 또한, 시온의 눈도 노예에게 향해 있었다. 잠시 후, 서로의 눈을 교환한 케실리온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미약하지만,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군. 수련만 잘한다면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겠어.”

 케실리온의 말에 신성순례의 일행들은 온몸이 뇌전에 강타당한 듯 굳어버렸다. 소드 마스터!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한 방면에 최고가 된 이에게 주어진 말이다. 아무리 마스터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였지만 희귀한 것이 마스터다.

 그런데 마스터에 들어선다는 말에 크루세이더 앤더슨의 눈이 보기 좋게 동요를 일으키고 있었다. 케실리온의 무력을 잘 아는 앤더슨이었기 때문이다.

 “저, 정말입니까? 마스터라니…….”

 “그게 오늘이 될지 한 달이 될지는 그의 능력에 달려 있는 일.”

 앤더슨의 물음에 케실리온의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선문답을 나누듯 중얼거린 케실리온은 경매가 시작된 곳을 향해 시선을 줄 뿐이다.

 “저, 정말이군.”

 경매에 참여한 자들은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튕겨나가는 채찍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사이, 경매가 시작됐다. 노예의 능력을 직접 확인했기에 경매는 불붙은 듯 열정적으로 진행되어갔다.

 “그럼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천오십 골드!”

 “천팔십 골드!”

 사회자의 외침에 경매가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많은 귀족들은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눈이 붉게 출혈되어 있었고 경매가를 부르는 목에는 핏줄이 길게 늘어졌다. 모두 노예 검투사의 가능성에 탐욕이 생겼기 때문이다.

 “천이백 골드!

 “천삼백 골드!”

 사람들의 외침이 커 갈수록 골드는 점점 불어났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이천골드는 쉽게 넘어가 버렸다. 그때, 성녀는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하이 프리스트 하이덴이 걱정어린 표정으로 성녀에게 말했다.

 “성녀님 돌아갈까요?”

 “…….”

 성녀는 충격에 받은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정신을 추스른 성녀가 일행들에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모습이 정녕 인간의 모습이란 말인가. 탐욕에 눈이 멀어 충혈 된 눈동자라니. 이것을 보고도 추기경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탐욕에 찌든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던 신성순례의 일원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때, 케실리온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틀렸다고 생각하나? 세상은 볼 것, 못 볼 것. 모두 인간의 삶이다. 그것이 설사 인간으로서 너무한 광경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것이 너와 나의 차이다. 지독한 고통도 지독한 평화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

 성녀는 꾹 입을 다물었다. 케실리온에게서 의미모를 슬픔을 봤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말 속에서 케실리온의 말은 작아졌다.

 케실리온은 점점 사라져가는 인간이라는 감정이 그리웠다. 슬픔도 고통도, 즐거움도 행복도 사라지고 있었다. 마음에 남은 감정이라고는 분노와 갈망뿐이었다. 그 두 가지 감정이 그를 최고로 만든 것이다. 

 분노는 무심함으로 갈망은 높은 결지에 대한 의지, 나머지 감정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수련에 임했던 케실리온은 슬픔도 고통도, 즐거움도 행복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감정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것이 경지가 상승함에 따라 고독해지는 강자의 괴로움이다.

 “넌 뭘 원하지?”

 케실리온의 말에 성녀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한줄기의 빛, 개화(改化).”

 성녀의 말에 케실리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신성순례에 참여한 자들이 모두 일어났다. 그 순간 휘몰아치는 기운과 신성력이 ‘무법자의 도시’에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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