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8화 (248/269)

신성순례(3) - 피아트의 마물

   

 데스 스쿼드의 본점은 서부 피아트(Fiat)라는 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을 관리하는 것은 서열 1위의 루멘이라는 늙은이였는데, 그의 후계자로 지목된 자가 바로, 로켈이다. 그는 차기 후계자로써 기량을 기르기 위해 ‘무법자의 도시’에 머물며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로켈은 서열 2위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도시로 흘러들어오는 정보를 관리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은 짓궂은 날씨와 도시로 몰리는 인파가 없다는 점이다. 평소 같았으면, 타국의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이 도시로 들어와 도박이며 검투를 구경하고 있겠지만, 오늘은 약간 달랐다.

 붉게 타오르는 스칼렛의 달이 보름으로 변해 있었고, 성신의 달인 쥬얼이 초승달로 유난히 작게 보였다. 약간의 푸념을 내쉬고 있던 로켈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감촉에 정신을 차리며 품을 뒤적거렸다.

 “마스터(Master)?”

 우우웅!

 가슴에 있던 구슬하나를 꺼내든 로켈은 짧게 마나를 흘리며 수정구를 쳐다봤다. 통신용 수정구였지만 마법사가 이용하는 수정구와는 달랐다. 마법사가 이용하는 수정구는 일정한 주문이 필요하지만, 로켈이 가지고 있는 수정구는 마나를 흘리면 자동으로 구슬에 저장되어 있는 상대방과 대화가 가능하다.

 단점이라면 정해진 상대 외에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점과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다. 하지만, 데스 스쿼드라는 집단이 대단했기에 그 정도 가격을 지불할 능력은 충분했다. 암살, 추적 등등 많은 일을 하고 있었기에 노예 거래보다는 아니지만, 많은 수입을 낳고 있었다.

 %3C로켈인가?%3E

 “예, 마스터. 오랜만에 뵙습니다.”

 %3C그간 잘 있었나?%3E

 “평소와 다름없지요.”

 수정구에서 들려오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로켈은 살짝 긴장하며 절도 있게 대답했다. 본점의 마스터이자, 데스 스쿼드의 총 마스터가 바로, 수정구 속에 비치는 늙은이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명이면 수많은 암살자가 움직이기에 자연히 배어나오는 위엄에 움츠려든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명령하실 거라도.”

 %3C하긴, 잡담을 나누고자 이렇게 자네를 잡고 있지 않겠지. 본론부터 말하겠네.%3E

 “경청하겠습니다.”

 로켈은 수정구에 비치는 마스터의 모습에 입술이 바짝 타는 것을 느꼈다. 때문에 촉촉한 혀를 이용해 입술을 훔치고는 귀를 활짝 열었다. 자칫 한마디라도 놓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3C서부에 마물들이 들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네.%3E

 “예, 때문에 신전 측에서도 움직이고 있다지요?”

 %3C이미 파견되어 마물들을 없애고 있지만, 석연찮은 부분이 있네.%3E

 “……석연찮은 부분이라고 하심은?”

 수정구에서 들려오는 루멘의 목소리가 약간 들썩였다. 뭔가 본점에서 일어난 모양이다. 때문에 덩달아 로켈도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본점과 무법자의 도시는 상당히 가깝다. 본점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면 다음 차례는 이 도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3C아아, 그곳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네. 문제는 마물이 발생한 지역이 피아트라는 점이네.%3E

 “예? 발생지역이 피아트라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설마!”

 %3C허허, 지금 날 의심하는 건가?%3E

 “죄송합니다. 하지만…….”

 로켈의 모습에 마스터인 루멘은 ‘허허’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잠시 후,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입을 여는 루멘을 향해 살짝 머리를 숙이며 사죄를 했다.

 %3C뭐, 나도 흑마법사니 그 의심은 이해하겠네. 하지만, 더러운 마물을 끌어 들일 정도로 난 타락하지 않았네. 그 점을 명심하게.%3E

 “예, 마스터. 시정하겠습니다.”

 %3C사설이 길었지만, 잘 듣게나. 아무래도 서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니 귀족들이라고 밖에 볼 수 없네. 요즘 들어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귀족들이 몇몇 보이고 있어.%3E

 루멘은 급히 로브에 달려 있는 후드를 썼다. 수정구에서 많은 잡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커다란 굉음이 터져나왔다.

 %3C다크 웨이브(Dark Wave)!!%3E

 치이이- 콰콰쾅!!!

 영상이 끊기는가 싶더니 연이어 터지는 굉음에 로켈은 얼굴을 찌푸렸다. 갑작스럽게 수정구가 먹통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영상이 중심을 잡으며 마스터를 비추자 표정을 급히 고쳤다.

 “마스터! 무슨 일이십니까.”

 %3C마물들이 이곳까지 침입했군.%3E

 “허- 설마 본점의 결계를 깬 것입니까?”

 로켈의 물음에 루멘은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1분가량 침묵을 지키던 루멘이 돌연 입을 열었다. 그만큼 주위에 많은 마물들이 포진해 있다는 증거였다.

 %3C지금 길드원들이 대치하고 있으니 짧게 말하겠네만. 이번 사건의 정보는 특급일 걸세. 요즘 서부의 귀족들과 남부의 귀족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네.%3E

 “…….”

 %3C일단 서부의 귀족 중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자로는 ‘크롬 폰 카르멘 공작’과 ‘버그 프리드킨 후작’이네%3E

 마스터의 음성이 약간 잦아들었다. 다시 한 번 몰아치는 잡음과 폭음에 로켈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잠시 후 다시 찾아온 정적 속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치이이-

 %3C통신이 먹통이군, 아무래도 마물들의 영향으로 보이네, 흑마법으로는 상대하기가 까다로워, 아무튼 두 귀족을 주시하게. 특히 버그 프리드킨 후작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네. 그가 갑자기 카르멘 공작가를 적대하기 시작했어.%3E

 “허…… 프리드킨 후작이라면 공작의 가신이 아니었습니까.”

 %3C아무튼 사정이 좀 바뀌었어. 프리드킨이 남부의 세력과 손을 잡은 모양이야. 그것이 ‘카이룬 폰 류드릭 공작’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네.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마물을 불러낸 것이 프리드킨 후작으로 보이네.%3E

 로킨은 긴 설명을 하는 루멘의 말을 토씨하나도 잊지 않기 위해 귀를 열었다. 간간히 잡음에 가려져 안 들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약간의 유추를 통해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3C아무래도 본점이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피아트의 옆에 있는 스와츠시로 지점을 옮겨야겠네. 분점이 있기에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만 약간 타격이 있을 것이네.%3E

 “스와츠시라면 카르멘 공작령의 직속 수도가 아닙니까? 아마 공작이 거주하는 주택이 있을 텐데 드래곤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3C걱정할 필요는 없네.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없으니……. 촛불아래가 더욱 어둡게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자네가 주시해야 할 자는 ‘버그 프리드킨’이라는 자네. 그가 도시를 눈여겨보고 있네. 그곳을 거점으로 서부를 장악할 모양이네.%3E

 마스터의 음성이 작아지는가 싶더니 완전히 통신이 끊겨 버렸다. 무언가 사단이 벌어진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때, 다시 잡음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영상이 돌아왔다.

 치이이이-

 %3C이계의……에게 데스 스쿼드……. 약속된 맹약.%3E

 치이익!

 %3C암살행 대신 프리드킨…… 견제, 약속은 반드시 지킨……%3E

 “마스터!!”

 그것으로 통신은 끝나버렸다. 잠시 허탈하게 수정구를 보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날이 새도록 수정구를 쳐다봤지만 답신은 없었다. 그렇게 로켈의 이야기는 끝났다. 

 “이런, 차가 다 식었군요.”

 로켈의 능청스러움에 케실리온의 얼굴에는 짜증과 노기가 어려 있었다. 신성순례의 일행들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알파는 짐작하고 있다는 듯이 묵묵히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이미 지난이야기겠지만 이것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버그 프리드킨 후작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요. 뭐, 요즘은 란델 제국이 전시체재며, 신성순례의 사절단을 위해 움직임이 없지만, 언제 이곳을 향해 이를 드러낼지는 모르지요.”

 로켈은 데스 스쿼드의 사활이 걸려 있는 중요한 정보와 마스터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숨기고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많은 정보가 바뀌어 있었기에 약간 빈약하게 보였지만 모든 것이 전해졌다.

 “흠, 그러니까. 제국의 두 귀족이 의심스럽다. 조사를 해 달라 이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모든 귀족이 수도 미스텔에 있기에 조사를 하는 것도 쉽고, 마물과 마족 즉, 이단에 관해서는 신전측이 더 잘 아시기에 이렇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추기경께서도 있으니 더 쉽게 느껴지겠지요.”

 성녀의 고민을 풀어주는 로켈의 모습을 보며 케실리온은 낮게 이를 갈았다. 데스 나이트에 당한 상처와 호접몽(胡蝶夢)에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준 마스터라는 작자와의 약속도 있었기에 케실리온으로써는 거부할 수 없었다.

 케실리온은 한 번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1계에서의 약속, 지옥에서의 약속을 모두 지키고 있다.

 용신과의 약속인 ‘드래곤의 부활’과 ‘중간계의 균형’을 바로 잡는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풍운지에게 호언장담을 하며 외쳤던 말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젠장! 최고가 되어 주지!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게! 네 녀석의 말처럼 약자를 도우며 악한 자를 벌하겠다. 이제 됐냐!’

 피식-

 케실리온은 미소를 지었다. 용신과의 약속은 그렇게 지키면서 풍운지와의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었다. 누구보다 강하지만, 약자를 도우며 악한 자를 벌하지 않았다.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용신에게 한 약속과 풍운지에게 한 맹세는 어떤 것으로도 저울질 할 수 없는 최고의 약속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케실리온은 머리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겠다.”

 케실리온의 수긍에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케실리온이 이제야 입을 열었다는 것과 받아들이겠다는 말에 놀란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쓴 웃음을 짓던 케실리온은 로켈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3C약속대로 나의 정보는 일체 팔지 마라. 어길시 데스 스쿼드는 중간계에서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건 나의 맹세!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3E

 케실리온의 전음에 약간 당황해 하던 로켈은 의외로 침착하게 머리를 숙이며 일행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성녀께 제안했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성 카르디스의 축복이 깃들기를…….”

 로켈의 말에 모두들 성호를 읊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성순례 일행들은 ‘무법자의 도시’에 며칠 더 머물며 로켈이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을 한 후 다음 도시로 떠났다. 그곳은 마물의 피해가 가장 크며, 아직도 복구 중인 피아트(Fiat)라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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