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순례(3) - 피아트의 마물
까악! 까악!
어두운 먹구름 사이로 까마귀들이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간간히 보이는 까마귀의 부리 사이에는 인간의 손가락으로 보이는 살점이 덜렁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추악한 까마귀들은 인간의 육신을 쪼아 먹고 있었다.
아직 자신의 먹이를 찾지 못한 까마귀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찾아다니며 살점을 뜯고 있다. 가끔 목이 마른 까마귀들은 마물에 의해 죽어간 인간의 피를 이용해 목을 축이고는 다시 살점을 뜯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까악?
열심히 살점을 뜯고 있던 까마귀는 멀리서 들려오는 기척에 고개를 갸웃 거리는가 싶더니 다시 살점과 피를 취하고 있었다. 그 순간, 거친 파도와 같은 살기가 몰려오자 까마귀들은 하늘로 비상하기 시작했다.
푸드득!
“이놈! 미물이 인간의 육신을…….”
살기와 호통을 치던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까마귀들은 듣기 거북한 소리를 지르며 먹구름 사이로 지나가 버렸다. 잠시 후, 소리를 지른 사내는 조심스럽게 마차의 문을 열며 입을 열었다.
“성녀님, 도착했습니다.”
입을 연 자는 앤더슨이었다. 크루세이더답게 주변을 빠르게 정리하며 성녀가 쉽게 내릴 수 있도록 에스코트까지 했다. 그렇게 짧은 침묵이 흐른 뒤에야 성녀가 내렸다.
그 뒤로 케실리온이며, 시온, 알파, 프린이 내렸고 마지막으로 다섯 명의 소년들에게 구타를 당하던 금발의 소년도 내렸다. 그렇게 모든 인원이 내렸을 무렵, 성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주변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전염병과 마물이 다시 창궐했다고 하지만…….”
성녀의 말에 모든 자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금발의 소년은 표정을 굳히고는 낮게 흐느꼈다.
마차를 타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자 성녀는 다시 한 번 얼굴을 구기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주변의 시체와 더러운 대지를 정화와 퇴마 의식을 거행했다. 많은 시체들이 전염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의식을 진행하는 것이다.
“거룩한 차원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미천한 피조물이 간절히 원합니다. 죽은 자의 안식과 홀로 남은 자들의 평온을 주소서. 엑소시즘(Exocism)”
솨아아!
성녀 크리엘과 하이덴의 기도에 주변의 대지와 시체는 정화되기 시작했다. 은빛의 기운이 몰아치는 순간, 시체에 깃들어 있던 마기는 뿌연 연기를 토해냄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피로 얼룩져 있던 대지는 한줌의 피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이건 듣던 것 보다 더 심하군요. 제국 측에서 보낸 구원병이 설마 시체로 변해 있을 줄은…….”
성녀는 피아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량의 시체가 발견된 것을 확인하고 온 길이었다. 이미 제국에서 보내온 식량은 마물들에 의해 오염되어 있었기에 정화를 시킨다 할지라도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나마, 무법자의 도시의 관리인 로켈이 지급해준 식량이 있기에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3대의 마차 중 2대는 식량과 구호물자였다.
“후… 일단 전염병부터 바로잡아야겠습니다. 괜찮겠죠?”
성녀의 눈은 금발의 소년에게 돌아갔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소년은 영주의 아들이었다. 그것 때문에 집단으로 구타를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주가 이곳의 평민들을 핍박하거나 괴롭히지도 않았지만,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만약 피아트로 구원 온, 제국 측의 병사들이 무사히 도착했다면 대우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전 측에서 괴멸시켰다고 생각했던 마물이 나타나 병사들을 몰살 시키고 구호 물자도 오염시켜버렸기에 민심은 더욱 악화되었고 생존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거기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피아트의 전역에 전염병이 돌고 있었기에 민심은 더욱 뒤숭숭했으며, 피아트를 다스리고 있던 영주는 일찌감치 마물에 의해 죽고 없었다. 또한, 많은 상인들이 쉬쉬하며 피아트를 피해가고 있었기에 그 피해는 더욱 막대했다. 때문에 소년이 이렇게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정이 다른 도시와 영지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 피해는 컸고, 소영주인 소년도 이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란델 제국의 수도에서는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지만, 수수방관만 할 뿐 특별한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았다.
“흑… 흐흑.”
금발의 소년은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들썩이는 어깨와 때 국물이 흘러내리는 볼에는 투명한 물기가 흘러내렸다.
소년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숙연한 분위기가 됐다. 더러운 금발 사이로 비치는 투명한 눈물에 서서히 그쳐갈 무렵 케실리온과 성녀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고는 소년을 재촉했다.
“질질 짜지 말고 안내해라.”
소년의 눈물에 케실리온은 참지 못하고 한 소리했다. 이미 사정은 들었으니 해결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명색이 신성순례를 하는 교단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 성녀가 직접 전염병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보아하니 네 여동생도 전염병에 걸린 듯한데, 서둘러 움직여라.”
“네, 네!”
다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오자 소년은 다급하게 말하고는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케실리온의 말처럼 소년의 여생동도 전염병에 걸렸다. 피아트의 신전에서 그나마 보급하던 빵도 이미 바닥을 기는 상황이었기에 전염병에 걸린 자들에게 돌아갈 빵은 없었다. 그렇기에 아까 소년이 기를 쓰고 빵을 사수하려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피아트의 선전에서는 뭘 하고 있던 건가요? 이렇게 전염병이 돌고 있는데.”
“성녀님, 그건 다 사정이 있습니다.”
케실리온에 의해 주눅이 들었던 소년은 길을 안내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많이 굶었기 때문인지 걸음걸이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처음에는 신전에서도 신관이 치료를 위해 나섰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병에 걸린 자의 몸이 신성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소년은 말끝을 흐렸다. 지금도 전염병이 돌고 있는 곳에서 열심히 치료를 행하고 있는 신관들에게 누가 되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이 변명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고통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피아트의 사람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나누어주며 자는 것을 줄이며 치료를 행하는 신관들이 아직도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성녀님 제발, 제발 동생을… 피아트를 구해주십시오.”
소년은 금발의 머리를 숙이며 성녀에게 끈임 없이 부탁했다. 비록, 성녀에게 줄 것은 없었지만 동생과 피아트를 구한다면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한 소년이었다. 그의 눈빛을 보며 성녀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머리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감사…….”
“고마워 할 필요는 없어요. 신성순례를 위한 첫걸음인 만큼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까요.”
성녀의 말에 금발의 소년은 더욱 감동받았다는 표정으로 성녀를 쳐다봤다. 마지못해 하는 듯 한 표정이었지만, 내심은 이곳을 원래대로 복구하고자 하는 성녀의 마음이 들리는 듯 했다. 소년의 눈에는 성녀가 신이라도 되는 듯 했다.
그렇게 신성순례의 일행들은 열심히 치료 행을 벌이고 있는 신관들이 보이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지옥을 방불케 하는 추악함이 깃든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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