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1화 (251/269)

요즘 들어 컴퓨터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신성순례(3) - 피아트의 마물

   

 썩은 피의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얀색의 천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고, 곳곳에는 진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따금 썩어가는 육신에 활력을 돋우고 있는 신관들의 모습이 비춰지는 곳이었다.

 “성스러운 힘이여, 나의 손에 깃들어 병들고 힘들어하는 자의 고통을 없애주오! 큐어 디지즈(Cure Disease)”

 곳곳에서 터지는 신성마법에 병자들은 신음을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기 때문인지 그 병자는 금방 신음을 토해내며 몸부림 치고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붙기였다. 신관의 신성력은 마르지 않는 물이 아니었다. 큰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을 뿐, 더 이상 신성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많은 신관들이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아 있었다.

 “크흑, 주신이시여 어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한 노신관의 처절한 모습에 치료를 행하고 있던 신관들도 신음을 흘렸다. 근 한 달 동안 어떤 병자도 치유하지 못했다. 도저히 신성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피부가 곪아가는 곳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노신관은 앙상하게 말라있는 손바닥과 손목을 쳐다보며 허탈하게 땅을 내려쳤다.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지 평소와 다르게 자신에 대한회의를 느끼며 자신에 대한 벌을 내리고 있었다.

 퍽!

 힘껏 내려친 손에는 커다란 충격과 고통이 찾아왔지만 노신관은 눈에서 흐르는 눈물로 고통을 대신했다.

 “어째서 한명도 치유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노신관의 한탄에 손바닥에는 피가 흘러내렸고 고통이 엄습해왔다. 온몸을 휘감는 오한에 신관은 입을 감싸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입을 감쌌지만 신음과 기침은 끝도 없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쿨럭!”

 수십 차례를 쿨럭이고 나서야 노신관은 기침을 멈출 수 있었다. 피로 물들었던 손바닥은 더욱 짙은 피를 뿜어냈다. 각혈이었다. 오랫동안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했고, 돌림병에 걸린 병자를 치유하면서 신관까지 병을 얻은 것이다.

 신성력이라는 기운이 있어 병이 걸린 것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이정도의 각혈을 토해낸 것은 중증에 해당했다.

 “쿨럭, 으으…… 이 몹쓸 몸이 또.”

 노신관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는 풀려 있었고 기력은 너무 쇠했기에 더 이상 거동하기도 어려웠다. 주위에는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다른 신관들이 있었지만, 감히 노신관에게 다가갈 수는 없었다.

 노신관은 자신보다는 병자를 돌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음을 흘린 노신관은 몇 번을 주저앉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휘청!

 막 일어서려던 노신관은 몸과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게 차가운 대지에 몸이 쓰러지던 노신관의 머릿속에는 온간 생각이 교차했다.

 ‘허허… 이것으로 피아트는 끝이란 말인가.’

 자조적인 표정에서 체념으로 바뀐 노신관의 눈가에는 투명한 액체가 자잘한 주름사이로 흘러내렸다.

 스윽!

 “괜찮나요? 기력이 많이 쇠했습니다. 쉬면서 해도 될 것을…….”

 노신관의 몸이 기울기 직전 등을 바치며 지탱시켜주는 존재가 있었다. 병마와 싸우는 이곳에서 듣기 힘든 목소리였기에 정신이 가물가물하던 신관은 한줄기 빛에 정신을 부여잡았다. 낮은 미성은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천족의 목소리와 같았다.

 “허허…… 주신의 품에 돌아갈 때가 된 것인가.”

 “아니요. 당신은 할 일이 많답니다.”

 노신관이 ‘허허’거리며 말을 하자, 곧장 대받아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아까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몸의 활력이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신관은 무거운 몸을 지탱하며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은발과 은안의 소녀였다. 등에 날개만 없다 뿐이지 천족과 다름없는 순수하며, 청량한 기운을 내뿜는 소녀였다. 잠시 그렇게 쳐다보고 있던 노신관은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대륙에 홀로 존귀한 성녀였기 때문이다. 

 “교, 교단의 성녀를…….”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기에 교단은 큰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돌연 제가 노신관에게 예의를 취해야 할 듯 하군요.”

 “서, 성녀님!”

 노신관의 목소리에 주위에 있던 신관들도 시선을 돌렸다. 순간 주위는 밝은 빛이 뿜어지듯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성녀가 이곳에 온 것이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조금은 쉬어도 됩니다.”

 “아아…….”

 성녀의 말에 그간 고생하며 치료를 해왔던 신관들은 눈물을 머금었다. 피아트의 모든 신관이 치료를 하며 병든 자를 구원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움직였던 시간이 한 달이다. 무려 한 달! 그들의 피로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성녀의 말에 많은 신관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간단한 치유를 행하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며 미소 짓던 성녀는 하이덴과 함께 병자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하이덴은 저와 함께 병의 원인을 찾아보죠.”

 성녀는 하이 프리스트 하이덴에게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 중 가장 병이 깊어 보이는 자에게 다가섰다.

 그 병자의 안색은 창백했다. 마치 시체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 싸늘한 얼굴이었다. 또한, 입술은 푸른색이 감도는 입술이었고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어 고통에 수면도 재대로 취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 병자는……?”

 “성녀님,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 뒤로 물러서시지요.”

 병자에게 손을 대려하던 성녀는 하이덴의 말에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잠시 망설이던 성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하이덴이 하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봤다.

 하이덴은 병자의 팔을 살짝 잡으며 신성력은 불어넣기 시작했다. 일종의 디텍트와 비슷한 수법이었다.

 화아악!

 오른손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신성력은 병자의 팔을 따라 몸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3분가량을 관찰하던 하이덴의 표정은 약간 당혹스럽다는 듯이 일그러져있었다.

 “하이덴?”

 “…….”

 성녀는 하이덴의 모습이 이상했던지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부르기를 몇 차례 들려오는 대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처음 몸을 부축해줬던 노신관에게서 들려왔다.

 “성녀님, 저 신관이 저러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연하다니요.”

 노신관은 처음과는 다르게 생기가 감도는 얼굴을 하며 성녀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치유를 위해 신관이 행하는 관찰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입니다. 사람이 품고 있는 이질적인 기운. 즉 마나의 밀도입니다. 그리고 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지요. 그것을 통해 신관은 병자의 취약한 부분을 치유합니다.”

 “알고 있는 사실이군요. 그런데 왜?”

 노신관의 말에 성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신관, 프리스트와 같은 자들이 교육받는 것에 포함되어 있는 말이었다. 신관은 신성력을 통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상대가 품고 있는 마나와 몸이 약한 부위를 찾아내 치유하는 것이다. 일종의 디텍트 마법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 기운을 직접 흘려보내 내상과 외상을 치유하는 것이다. 

 “저 병자의 몸에는 마나의 밀도가 한 곳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몸 전체로 병이 들어 있지요. 저 자는 죽어있는 겁니다. 호흡은 하고 있되, 몸은 썩어가는 시체입니다.”

 “그런!”

 노신관의 말에 성녀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몸을 지탱하는 마나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것만으로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었다. 몸의 밀도가 높아도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한 곳에 마나의 밀도가 집중되어 있는 자들이 있긴 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집중되어 있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 마나가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노신관의 말처럼 일정한 곳을 제외하면 마나가 없었다. 노신관의 설명이 끝나자 성녀는 급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팔을 잡으며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병자를 거듭해 나갈수록 성녀의 표정은 급격하게 굳어갔다. 

 “이럴 수가! 마나가 집중되어가고 있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것이 전염병입니다. 도저히 신성력으로 치유할 수 없는……. 저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육신이 썩어가는 것을 늦추는 것뿐이었습니다.”

 성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뒤져도, 교단의 고서를 뒤져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하이덴은 경악하는 성녀를 부축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멀리서 지켜보던 신성순례자들 가운데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든 당당하며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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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더 쓸까 생각중. 피곤해서 약간 더 쉬고 나서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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