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순례(3) - 피아트의 마물
“주화입마(走火入魔)의 일종으로 보이는 군.”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말이었다. 성녀와 지저스를 믿는 자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케실리온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침묵을 지킨 성녀는 다급하게 정신을 차리고 케실리온을 향해 말했다.
“그게 뭐죠?”
“흔히 마나수련을 하며 마음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거나 육체적인 타격을 받는 경우를 주화입마라 부른다. 그런 경우 대부분 미치거나 죽지.”
케실리온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물론, 케실리온 스스로도 무공수련을 통해 주화입마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부분 스스로의 힘으로 완치했지만 주화입마는 무공을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무서운 병과 같았다.
“추기경, 이들이 마나수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성녀는 케실리온의 말에 기대했던 표정을 굳혔다.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증상이 비슷하다고 했을 뿐이다.”
케실리온은 성녀에게 마치, ‘닥치고 듣기나 해!’라는 식의 발언을 하며 조용히 은빛의 눈을 병자에게 옮겼다. 주위로 퍼져나가는 스산한 기운에 주위는 약간 동요하기 시작했다.
스스스-
차갑지만 뜨겁고, 고요하지만 정적을 깨는 기운이었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드는 기운이 병자에게 옮겨가자 조잡하게 만들어진 단상위에 있는 병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성녀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무슨 짓인가요. 추기경!”
성녀가 급히 케실리온에게 다가섰다. 그때, 시온이 애검 빙화(氷花)를 뽑았다.
스르릉-
“더 이상 다가서지 마시죠. 경고입니다.”
시온의 모습에 성녀와 일행들은 움찔 거리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케실리온 만큼이나 차갑고 날카로운 살기였다. 기운 자체도 완벽하게 복사된 것처럼 같은 기운이었다. 그 누구도 시온의 살기를 피할 수 없었다.
“지금 케실리온은 병자의 내부를 보고 있는 겁니다.”
시온의 지적에 성녀는 경계의 눈빛을 지웠다. 일단 추기경이 병자의 몸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에 한숨을 돌린 것이다. 그렇게 고요한 침묵 속에 케실리온은 병자의 내부를 관찰했다.
케실리온의 기운은 병자의 내장(內臟 : Viscera)을 향해 기운을 퍼트렸다. 주화입마의 원인이 되는 단전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단전은 총 세 곳으로 분류된다.
「육체의 힘과 중심을 지탱하는 하단전
만물인 자연과 진리의 중단전
우주와 미래, 가능성의 상단전」
세 가지로 구분되는 단전 중 하단전은 육체의 모든 중심을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정신력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주화입마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이 하단전이다. 일단 하단전이 무너진다면 몸의 중심이 엉망이 되며 병이 발생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내장이 약해져 있다.’
케실리온은 기운을 인도하며 병자의 몸에 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장이 약해지고 있었다. 위, 장, 간, 콩팥 등등 모든 장기가 조금씩 썩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와 장의 경우 기혈과 기혈사이가 순탄치 않고 끊어져 있었다.
‘마치 구멍이 뚫린 것 같군.’
케실리온은 기혈을 통해 흘러가는 기운을 느끼며 장기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의도적으로 만든 길 같았다. 대부분 하단전을 감싸고 있는 장에서 모두 나타났다. 또한, 장과 연결되어 있는 위 같은 경우 구멍이 뻥 뚫려 있다고 생각할 만큼 상처가 컸다.
그렇게 기운이 응집되어 있는 곳으로 치닫던 케실리온의 기운은 중단전이 있는 심장 쪽으로 기운을 돌렸다.
“큭!?”
기운을 중단전으로 돌리던 케실리온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뭔가에 이끌리듯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한 기운에 놀란 것이다. 다행히 케실리온의 의지가 강했기에 주도권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흡혈마공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기운을 막연히 당기는 기운에 당황한 것이 바로 그것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흡혈지존이라는 별호처럼 누구도 케실리온의 기운을 흡수할 수는 없었다.
잠시 그렇게 밀고 당기던 기운은 케실리온의 힘에 의해 흘러갔다. 병자의 몸에 응집되어 있는 기운을 뚫고 들어간 케실리온의 기운은 하단전과 중단전을 이어주는 곳에 있는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
꿈틀꿈틀
마치 뭔가 꿈틀거리듯 움직이며 병자의 기운을 조금씩 갉아 먹는 녀석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케실리온의 기운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금 더 기운을 집중시키자 그 생명체는 뜨거운 불에 덴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크허헉!”
그때, 죽은 듯이 잠자고 있던 병자의 입에서 신음과 같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입에서는 각혈과 내장조각이 뿜어졌다. 얼굴의 혈색은 약간 붉어진 것이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 원래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게 케실리온은 기운을 거두어드렸다. 몸속에 자리한 기생충 같은 것이 날뛰자 식은땀이 절로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마치, 자석과 같이 가까이 가면 도망가고 멀어지면 다시 자리로 돌아가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저 존재가 있는 한, 병자들은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케실리온의 짧은 결론이었다.
결론은 내린 케실리온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떴다. 장시간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인지 주위는 이미 어둠이 몰아쳐 있었고, 시온과 알파는 옆에서 호법을 서듯 포진해 있었다. 더욱이 시온은 검까지 뽑아 들고 있는 모습이었기에 피식 웃음이 나오려했다.
하지만, 성녀와 대치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무지하면 드래곤도 두렵지 않다고 했던가? 그 모습이 딱 성녀와 부합되고 있었다.
“지금 무슨 짓이지?”
케시리온은 짐짓 화났다는 표정으로 성녀를 쏘아봤다. 요즘 들어 너무 짜증나는 성녀였다.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며, 태어 난지 하루밖에 되지 않는 오크 새끼마냥, 드래곤 앞에서 날뛰는 모습이 가히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슷!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성녀는 느낄 수 있었다. 모종의 기운이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나 케실리온의 일정한 범위 내에는 기운이 포진해 있다. 언제나 검을 뽑고 상대를 압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고도의 인내와 정신력이 필요하기에 그 누구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수법이었다. 그런데 케실리온은 아무렇지 않게 성녀에게만 집중적으로 기운을 퍼트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으윽…… 무슨 짓이죠?”
성녀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설마, 케실리온이 자신을 앞에 두고 살기를 내뿜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고통과 마음속에서부터 엄습하는 두려움에 은빛의 눈에는 투명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행하는 일에 의심하지마라. 의문도 하지마라. 명령도 하지마라. 나의 존재가 뭔지, 정체가 뭔지 알고도 그런 눈을 하고 있을 텐가?”
케실리온의 말에 성녀는 망각하고 있던 추기경의 정체를 알아냈다. 케실리온은 ‘마룡’이다. 누구의 간섭도 명령도 받을 수 없는 종족,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종족이 바로 드래곤이다. 겨우 부탁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종족이 바로 드래곤이다.
그런 존재에게 지금껏 명령을 하고 원하던 바를 이루었으니 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성녀는 깨닫고야 말았다. 눈앞의 존재는 무위가 건재한 마룡이었다.
“…….”
“방금 전의 일로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만 잊지 않는 다면 너의 뜻대로, 아니, 성녀의 뜻대로 해도 좋다.”
케실리온은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마치, 거짓 웃음 뒤에 가려진 지독한 살기와 같았다. 그 웃음에 성녀는 글썽이던 눈물을 훔치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흐르고 케실리온을 향해 물었다. 아까보다는 정중해진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