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순례(3) - 피아트의 마물
“경께서 보신 게 뭐죠?”
정중하게 물어오는 성녀의 목소리에 케실리온은 병자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그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은 이자의 몸속에 있는 것이 중간계의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중간계의 마나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 같군. 의도된 것처럼…….”
케실리온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보고 느낀 것이 그 전부였기 때문이다.
“주위의 마나를 갉아 먹고 있다면 설명이 된 건가? 내장과 몸속의 기혈을 그대로 갉아먹고 있다. 흔히 마법사가 마나를 모으는 곳인 심장과 기사가 오러를 내뿜는 장소의 중간지점, 명치에 그 생명체가 존재한다.”
설명을 덧붙이는 케실리온은 잠시 성녀의 눈동자를 살폈다. 눈물을 흘렸기 때문인지 눈 주위가 약간 부어있었다. 간신히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지만 케실리온을 속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모습에 약간 코웃음 치듯 미소를 짓고는 병자의 몸에 다시 기운을 밀어 넣었다.
스슷!
아까 몸속을 확인하기 위해 밀어 넣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기운이었다. 강제로 그 생명체를 끌어내듯 케실리온의 기운은 집요하게 명치 부근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단전에서 시작하던 기운이 등 뒤의 명문혈을 통해 유입되기 시작했다.
기운이 중단전과 하단전을 통과하자 괴 생명체는 날뛰기 시작했다. 차가운 기운이 몰려들자 움츠려 든 것이다. 그때 케실리온의 눈빛이 달라졌다.
“시온, 알파…… 준비해라. 그 생명체가 튀어나올 것이다.”
케실리온은 괴 생명체를 배꼽 부근으로 끌어내렸다. 단순히 기운을 이용해 몰아넣은 것이다.
병자는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 모습에 약간 얼굴을 찌푸리던 케실리온은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병자를 허공으로 띠워 올렸다. 정확하게 등이 보이도록 만든 케실리온은 약간의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운이 과하면 이 병자가 죽는 것은 물론, 생명체 역시 죽을 것이다. 케실리온이 주장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생명체를 살림과 동시에 밖으로 빼내야 했기 때문이다.
“후우우.”
케실리온의 숨결이 작고 고르게 퍼지자 주위는 고요해졌다. 그렇게 거리와 기운의 양을 가늠하던 케실리온은 돌연 쌍장을 앞으로 뻗었다.
파파팟!
왼손은 명문혈에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고, 오른손은 정확하게 명문혈을 가져다 댄 왼손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첫 타는 손등을 쳤으며, 두 번째 타격은 중단전과 하단전을 가격했다. 마지막 타격은 정확하게 명문혈을 가격하는 것으로 끝났다.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 수법을 쳐다볼 수 없었다. 심지어 혈신의 경지에 달해 있는 시온마저 볼 수 없었다. 간신히 잔영만 봤을 뿐이었다. 그렇게 짧은 타격이 끝나자 병자의 입에서 한 움큼의 각혈이 다시 토해졌다.
“울컥!”
뚝- 후두둑!
병자의 입에서 뿜어진 각혈은 검은색이었다. 순수한 선홍색 피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각혈을 몇 번 토해내던 병자는 기어코 괴이한 생명체를 토해내고야 말았다. 정확하게 내상과 비슷한 상태를 만듦으로써 하단전과 중단전의 사이에 자리한 생명체를 끌어낸 것이다.
명문혈은 대단히 민감한 혈도였다. 그곳을 타격하거나 기운을 집중한다면 자칫 반신불수가 되기도 하는 혈도였기 때문에 섬세하고 내공이 중후한 자가 아니라면 상대를 병신으로 만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모든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에 무리없이 펼쳐 낼 수 있었다.
꿈틀!
“키에에!”
세상 밖으로 뿜어진 생명체는 단발마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밝은 빛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몇 분이 흐른 뒤 그 생명체는 다른 숙주를 찾기 위해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가장 기운이 쇠약한 노신관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헉!”
노신관은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괴 생명체를 보며 헛바람을 흘려야했다. 그때, 시온의 빙화가 빠르게 괴 생명체를 향해 날아갔다.
탕!
정확하게 검면으로 퉁겨낸 시온은 불쾌하다는 듯 그 생명체를 내려다봤다. 인간의 몸에 장시간 있었기 때문인지 더러운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검면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상당한 마기였다.
“마물! 저런 마기라니.”
신성순례자들의 입에서 마물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그 생명체가 내뿜은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또한, 그 마물이 있던 자리에는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잠시 주춤 거리던 괴 생명체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키아아아!”
어린아이 주먹만 한 마물치고는 대단한 마기였다. 그렇게 비명을 질러대던 마물은 다시 한 번 도약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성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팟!
“서, 성녀님! 피하십시오!”
“헛!”
마물의 행태에 주위는 삽시간에 긴장했고, 검을 뽑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마물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성스러운 신의 불꽃이여, 저주받은 이단에게 심판의 불꽃을… 세인트 파이어(Saint Fire)!”
성녀의 입에서 여운이 남는 기도문이 읊어졌고 주위는 신성력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마치, 불꽃을 연상케 하는 불꽃은 눈앞으로 날아드는 마물을 향해 작렬했다.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끔찍한 마물은 한줌의 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키에에엑!”
화르륵!
신성마법 중 공격계 신성마법이었다. 신성한 불꽃이라는 이름답게 더럽고 추악하던 마물은 아름다운 불꽃의 재로 변하며 사라져버렸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신성력의 불꽃은 삽시간에 짧은 축복을 내리며 흩어졌다.
“오오! 사악한 기운을 품은 자에게는 불꽃의 심판을, 선량한 자에게는 축복의 불꽃을…….”
성녀의 능력에 병자를 치유하던 신관들은 감탄을 연발했다. 케실리온과 시온, 알파는 묵묵히 성녀가 행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긴장의 순간이 지났고, 성녀 크리엘의 눈은 케실리온에게 향해 있었다.
“저 마물이 전염병의 원인이었단 말인가요?”
“보고도 모르는 가? 이곳에서 벌어지는 원인은 저 마물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녀의 물음에 케실리온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고, 마물이 빠져나간 병자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잠시 후 성녀는 직접 마물이 빠져나간 병자를 향해 치유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장부터 회복시켜야겠군요. 하이덴, 내성마법을 준비하세요.”
성녀는 짧게 하이덴에게 말하고는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시작되는 기도에 주위는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병자의 몸에는 이미 마물에 의해 많은 부위가 사라져 있었다.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신체부위를 재생하는 마법을 펼치려는 것이다.
신을 제외하면 창조마법을 허락되지 않는다. 때문에 성녀는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신에게 허락을 구하는 행동이다.
“세상을 창조하시고……(중략)…… 허락을 구합니다. 불쌍한 피조물의 상처를 가엽게 여기시어 고통을 덜어주소서. 리바이블(Revival)!”
성녀의 기도가 5분이 되었을 무렵, 성녀의 주위에 신성력이 다시 한 번 충만해졌다. 그렇게 병자의 몸에 쏟아지는 신성력은 내장을 소생시키고 있었다. 아니, 재생시키고 있었다. 구멍이 뻥 뚫려 있던 위와 장은 살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오염되어 있던, 간이며, 콩팥은 정상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하이덴의 내성마법도 준비됐다.
“프로텍트 프롬 이블(Protect from Evil)!”
하이덴의 외침에 병자의 몸에는 마기에 대한 내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장시간 마기에 노출되어 있었기에 이런 고급 신성마법이 연거푸 터진 것이다. 또한, 첫 번째로 치유 받고 있는 자였기 때문에 반드시 살려야 했다.
그것이 이곳에 모인 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10분가량 회복계열의 치유마법을 받은 자의 모습은 약간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생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자가 깨어난 다면 스프를 먹이세요. 아직 완벽하게 치유된 것은 아니니.”
성녀의 말에 노신관은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이곳의 모든 자들이 쳐다본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불가능이라고 생각되던 돌림병이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따라, 성녀와 추기경, 교단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제 치유방법도 알았으니, 가장 위독한 자부터 나오시오!”
성녀의 지시를 받은 앤더슨은 병자들과 가족들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마물에 의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자들은 손수 찾아가 치유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치유인 마물을 몰아내는 일은 케실리온과 시온이 전담했다.
이것으로 신성순례의 위대한 걸음이 시작됐다. 첫 번째로 토벌된 피아트의 마물은 케실리온의 능력아래 치유되어갔다. 서대륙의 만민의 백성들은 교단과 성녀, 케실리온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녀와 케실리온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단의 추기경들이었다. 특히, 카이룬의 휘하게 있는 추기경들은 그 정도가 심했다. 피아트에서 일을 벌인 주인공이 바로, 카이룬의 밑에 있는 제 6 추기경, 고독(蠱毒)의 벌민(Vermin)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