솨아아!
피아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신성력이 뿜어지는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벌레의 작은 눈이 너무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후후후…… 그런대로 수확은 있었습니다. 러그님.”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마기를 보충할 벌레들이 다 죽었지 않나!”
벌레의 눈을 통해 피아트를 쳐다보고 있는 자들은 제국의 실세 카이룬과 그 부하, 벌민이었다. 벌민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벌레를 쓰다듬고 있었다. 놀랍게도 피아트에 있던 마물과 똑 같이 생긴 녀석이었다.
“저 벌레는 실험용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실전용으로 쓰기에는 별로군요. 역시 마력을 보충하는 곳에나 쓰는 벌레.”
“아까운 마력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죽고 싶은가?”
“…….”
벌민은 러그의 강경한 태도에 침묵을 지켰다. 잠시 몸을 추스른 벌민은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러그님, 얼마 전 마계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는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키메라의 기운이었지 아마. 쓸데없는 말이라면 용서치 않을 게야!”
“그 키메라가 사용한 능력이 자폭이었습니다. 만약, 제 벌레도 그 능력을 사용한다면…….”
“호오. 지금 그 헛소리가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가? 서쪽 마왕의 수하만이 펼칠 수 있는 능력이야.”
자신의 주군인 만월(滿月)의 러그(Rough)를 보며 벌민은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능력이 똑 같을 필요는 없지요. 하찮은 인간의 마나를 밀집시켜 마기로 바꾸는 것을 역이용해, 반대로 마나를 증폭시켜 폭발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특히 마나의 양이 많은 12 추기경이라면 반드시 걸려들 것입니다.”
“그가 걸려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
“걸려들지 않는 다면 걸려들게 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보아하니, 저 흑발의 여인과 청발의 여인을 애지중지 하는 것 같은데. 미스텔에 도착하면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러그라고 불리는 카이룬은 약간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2분가량을 끌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북쪽의 마왕조차 패했다. 비록, 마계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마왕은 강하다.”
“그렇기에 두 여자를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성공해도 좋고, 실패해도 손해는 없을 겁니다. 성공하면 12 추기경을 얻을 것이고, 실패한다손 치더라도 제 벌레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밑져야 본전입니다.”
“밑져야 본전이라…… 좋다. 실패한다면 한동안 조용히 지내야 할 것이다. 12 추기경은 의외로 민감해. 그 눈빛을 쳐다보고도 태연히 웃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거야. 되도록 12 추기경을 회유하되 실패한다면 그 방법을 쓰도록.”
“알겠습니다. 하하하!”
제 2 추기경과 제 6 추기경의 밀담은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다.
제국의 수도(1) - 과거의 인연
잘 정리된 도로에서 일정한 소리가 들려왔다. 금빛의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마차는 곧장 제국의 수도 미스텔(Mistel)을 향해 여유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차 주위에는 가로수들의 잎 사이로 투명한 물방울들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이었다.
상쾌한 새벽 공기와 이슬이 감도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금빛의 태양이 축복을 하듯 길을 밝히고 있었다. 그때, 마차의 속력은 더욱 작아졌고 기어코 마차는 섰다. 잠시 후, 마차의 문이 열리며 은발의 소년이 시끄럽다는 듯이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시온! 분명 내가 한동안은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은발의 소년은 케실리온이었다. 그 뒤를 따라 뛰어내린 여인은 은발과 대조적인 흑발의 시온이었다. 때마침 가로수에서 쉬고 있던 여행객들은 시온의 외모에 입을 벌리며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 치만 만검(萬劍)에 2장이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치사해!”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주위에 보는 눈이 많다.”
케실리온은 그간 피아트에 머물며 시온에게 만검을 다시 가르치고 있었다. 1장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시온을 보며 지옥 말년에 얻은 심득인 만검 2장을 가르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병자를 치유하는 것이 지겨웠기에 무공을 가르치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려던 케실리온의 생각은 귀찮게 물고 늘어지는 시온으로 인해 이골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언젠가 시온에게 모두 전수하려던 것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한숨을 내쉬며 다음으로 기약했던 것이 한 달 전이다.
“누가 검로만 보고 이해하겠어. 그냥 가르쳐줘.”
“다음에!”
케실리온은 시온의 집요함에 얼굴을 찌푸리고는 마차위로 도약했다. 잠시 케실리온을 노려보던 시온은 한숨을 내쉬고는 앤더슨에게 괜찮다는 듯이 끄덕이고는 케실리온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마차는 천천히 출발했고, 가로수에서 쉬고 있던 여행객들은 짧은 퍼포먼스를 했던 흑발의 여인을 보며 멍한 표정을 풀었다. 급히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보아 신성순례의 일행들이 귀족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또각, 또각!
마차를 끄는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자 가로수에서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던 여행객들은 허리를 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2명으로 보이는 여행객들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봤어?”
“흑발의 미녀?”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쉬고 있던 청년의 말에 검을 손질하고 있던 사내가 대꾸했다. 그들의 옷차림으로 보건데 용병들일 것이다.
“아니, 은발 말이야. 은발!”
“그 소년? 왜.”
“이 멍청아! 은빛의 추기경. 소문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죽어가던 피아트를 구해냈다던 그 사람 말이야.”
두 사람의 말이 길어질수록 얼굴은 상기되었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는 듯이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 그럼! 우리가 처음으로 신성순례자들을…… 아니, 추기경을 본 것이란 말인가?”
“하하하! 성녀와 추기경을 보기 위해 수도 미스텔로 온 보람이 있군. 빨리 우리도 미스텔로 들어가자!”
두 사내는 기쁘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며 수도 미스텔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비단, 이들 뿐만 아니라 성녀와 추기경을 보기 위해 란델 제국의 수도인 미스텔로 향하는 자들은 수없이 많았다.
대부분 피아트에서의 위명과 멀리서나마 둘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대륙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절단으로써 수도에 방문했으니 대대적인 환영식과 축제가 벌어질 것이다. 역사적인 순간인 만큼 서대륙의 여행자들에게는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마차는 금방 미스텔의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영지와는 다르게 성문은 귀족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만큼 성녀 일행이 수도에 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배치한 것이다. 서쪽 성문에 도착한 일행들은 마차의 속력을 천천히 낮추었다.
마차를 몰고 있던 크루세이더 앤더슨이 성문을 지키는 기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미 활짝 열려 있는 성문이었지만, 검문을 하고 있었기에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서대륙의 빛이자 교단에서 파견된 신성순례자. 그리고 제국의 사절단으로 파견된 성녀 크리엘님과 12 추기경인 처단의 퍼니쉬인 케실리온이 타고 계신 마차다! 길을 열어라!”
앤더슨의 큰 목소리에 성문을 지키던 기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자신들의 상관을 향해 바삐 움직였다. 잠시 후, 한 기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앤더슨에게 말을 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상부에 보고를 올리고 오겠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소이다.”
앤더슨의 묵직한 말이 끝나자 주위는 소란스러워졌다. 드디어 지저스교에서 파견된 사절단이 제국의 수도 미스텔에 도착한 것이다. 10분이 흐르자 멀리 보이는 제국의 황성에서 8두 마차와 그 뒤를 잊는 수많은 귀족들이 보였다.
제국의 상징이 그려진 마차였다. 그 뒤로 각급의 고위급 귀족들이 빠르게 수도의 서문으로 모여들었다. 그만큼 사절단의 의미는 컸다. 그렇게 모여든 귀족들을 보자 앤더슨은 더욱 가슴이 펴지며 미소를 지었다.
아까, 이야기를 하던 기사는 금빛 마차를 보고는 주위의 평민들을 일정한 거리로 물리고는 소리쳤다.
“제국의 실질적 지배자, 서대륙의 모든 영토를 지배하시며, 모든 귀족들을 아우르는 자, 귀족중의 귀족. 만물을 포용하며 자비를 베푸는 절대자인 ‘에반 드 란델’ 황제 폐하께서 행차다! 머리를 조아리고 경배하라!”
기사는 말이 끝나자마자, 기사로써의 예의를 취했다. 그 뒤로 수많은 백성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그렇게 조아리던 자들 사이로 호화스러운 마차가 멈춰서며 붉은 빛 융단이 펼쳐졌다.
황제는 오만한 눈으로 마차에 내려 예의를 취하는 귀족들과 백성들을 보고는 교단의 마차로 보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 은발의 소년이 추기경?’
황제 에반은 도도하게 눈을 번쩍 뜨며 머리를 굽히지 않는 소년을 쳐다봤다. 그 옆의 여인 역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황제 에반을 직시하고 있었다. 은안과 흑안이 자신에게 쏘아지자 황제는 약간의 심음을 삼켰다.
지독한 압력이 전해졌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관장하는 신과 같은 눈빛이다. 그 오만한 눈빛에 황제는 눈에 힘을 주며 맞받아 쳤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황제와 케실리온의 눈빛은 천천히 풀어졌다.
‘역시 한 무리의 수장다운 눈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