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5화 (255/269)

 케실리온은 마음속으로 황제의 눈빛을 보며 끄덕였고, 황제는 케실리온의 오만한 눈빛에 추기경다운 눈빛이라고 생각했다. 

제국의 수도(1) - 과거의 인연

    

 귀족들과 평민들은 여전히 예의를 취하고 있었다. 귀족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고, 평민은 머리를 조아렸다. 이것이 귀족과 평민이 차리는 예의였다. 황제는 숨을 깊게 들이키며 성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후웁!”

 황제가 깊은 숨소리에 좌중은 침묵을 지킨 듯, 아니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였다. 그렇게 수초가 흘렀고 모든 이들이 초조하게 애간장을 태울 때 성녀가 타고 있는 마차의 문에서 은은한 신성력이 뿜어졌다.

 우우웅!

 짧게 공명음을 토해내듯 신성력이 일정한 범위로 퍼져나가자 문이 조금씩 열렸다. 마차의 조그마한 틈 사이로 은발이 보였고, 하얀 천조각과 뽀얀 피부가 보였다. 그렇게 다시 수초가 흐른 후 가벼운 걸음으로 마차에서 내리는 성녀의 모습이 보였다.

 하늘에서 쏘아지는 빛이 이러했을 까? 은빛의 섬광이 성녀의 등 뒤에서 뿜어짐과 동시에 은하수 같은 은발이 고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쏟아져 내렸고, 투명한 호수와 같은 성녀의 목소리가 좌중을 향해 퍼져나갔다.

 마치 미스릴로 만들어진 쟁반에 옥으로 만들어진 구슬이 내는 소리와 같은 목소리였다. 

 “서쪽의 지배자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신의 딸이자, 빛의 수호자인 성녀 크리엘이라고 합니다.”

 고작 11살의 소녀라고는 믿기지 않는 위엄이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몸짓에 소녀의 풋풋한 청아함까지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위의 귀족들과 평민들은 감히 성녀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심 깊은 얼굴을 하며 눈을 살짝 감았다. 

 아까, 황제와 추기경이 벌였던 신경전은 없었다는 것처럼 황제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성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황제는 팔을 좌우로 벌리며 환영을 표했다.

 “환영하오! 지저스교의 성녀와 추기경을 진심으로 환영하오!”

 “지저스교의 성녀님과 추기경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황제는 성녀와 추기경을 향해 이모저모 쳐다본 후 환대를 표했다. 방금 전 케실리온과 있었던 눈싸움은 씻은 듯이 잊은 듯 했다. 황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귀족들이 외쳤고, 평민들은 따라하듯 말했다.

 황제는 다시 좌중을 쓸어보듯 쳐다본 후 귀족들과 평민들을 향해 외쳤다.

 “짐의 넓은 아량으로 그대들에게 자비를 베푸노라! 모두 고개를 들어 지저스교의 사절단이자 대륙의 수호자이며, 검인 성녀와 추기경에게 예의를 갖추어라!”

 고오오!

 황제의 몸에서 위엄과 의미모를 기운이 커다란 압력이 되어 고고하게 퍼져나갔다. 대륙을 호령하는 황제다운 기운이었다. 그렇게 좌중을 압도한 황제의 뜻에 따라 귀족들은 하나 둘씩 성녀와 케실리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해와 같은 폐하의 자비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황제에 대한 찬양을 하고는 성녀와 추기경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일종의 절차였다. 첫 번째가 황제요. 두 번째가 교단이다.

  척!

  소름 돋는 웅장함속에서 절제된 행동에 평민들은 멍하니 쳐다보며 입을 벌렸다. 귀족들은 오른쪽 무릎을 꿇으며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대륙의 빛이자 수호자인 성녀와 추기경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부디 제국의 앞날에 빛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수십, 수백의 귀족들이 예의를 취하며 외친 한마디에 성녀는 약간 당황스러워 했지만 금방 표정을 고치며 축복의 빛을 주위로 퍼트렸다. 그 웅장함에 평민들은 다시 입을 벌려야 했고, 귀족들은 무릎을 펴며 성녀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모든 행동과 언행은 관례에 해당했다. 오랜만에 란델 제국의 수도에 방문한 지저스교의 본단인 디바인 내추럴의 성녀와 교황은 대륙의 정신적, 육체적 지주였다. 그렇기에 이정도로 과한 예의는 약과에 불과했다. 

 또한, 란델 제국은 동대륙의 테라스 제국과 전쟁을 위해 두 개의 왕국을 견제하며, 중재를 설 지저스의 성녀를 대함에 있어 모자람이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귀족이 예의를 표하자, 황제는 큰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짐은 기쁘도다! 교단의 성녀께서 직접 오셨는데 어찌 기쁘지 아니할 수가 있으랴! 이 날을 위해 축제를 열고자 하노라!”

 “폐하의 뜻대로 하소서!”

 황제는 가볍게 운을 띄웠다. 그에 응답하는 귀족들을 보며 황제는 머리를 끄덕이며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여봐라! 짐의 명을 받들라!”

 “하명하소서!”

 황제는 위엄 있게 귀족들을 향해 명을 하달하며 평민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모든 것이 준비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줌의 군 더기와 어색함이 없었다.

 “짐은 오늘을 기점으로 일주일간 성대한 축제를 열 것을 선포하노라!”

 “…….”

 “또한 고기와 술을 풀어 즐거움을 돋우게 하겠노라! 어서 짐의 명을 받들라!”

 황제의 말이 끝나자 평민들은 다시 머리를 조아렸고, 귀족들은 무릎을 굽혔다. 제국의 마법사들로 인해 하늘은 각양각색의 빛으로 황제의 위엄을 더해갔다. 마치, 황제의 뜻에 따라 하늘도 바뀔 수 있다고 보이는 것 같았다.

 잠시 흥을 돋운 황제의 뜻에 귀족들은 입을 모야 외쳤다.

 “지엄한 황제폐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황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귀족들은 그 뜻을 이행했다. 이미 준비된 절차에 따라 황실에서 고기와 술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황실의 재화를 뿌림으로써 제국의 수도는 일주일간 누구나 즐겁고, 누구나 부여한 축제가 될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절차에 따라 예의와 황명이 하달되는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미 1시간이 넘어서고 있었다. 그간, 성녀와 황제는 예의상 말을 이어가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못마땅하게 눈을 부라리며 누군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케실리온을 향해 부담스러운 눈빛, 즉 짜릿하고 피부를 콕콕 찌르는 눈빛으로 케실리온을 쳐다보고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들은 총 네 명으로 케실리온도 잘 알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추기경들이군. 특히, 레딕과 카이룬.’

 스아아아!

 케실리온은 레딕과 카이룬의 눈동자를 직접 노려보며 기운을 뿌렸다. 그 순간 네 쌍의 시선은 급히 사라졌다. 은밀하게 쏟아지는 기운을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렇게 케실리온은 네 명의 추기경을 향해 상큼한 미소를 날린 후, 막바지에 이른 황제의 축사를 들었다.

 “……크게 치하한다. 짐의 말이 길었지만 제국은 다시 한 번 지저스교를 국교로 삼으며 주신인 지저스님을 믿고 있노라! 또한, 긴 여행을 끝마친 신성순례자들에게 황족이 사용하는 별궁을 머물게 하며, 따뜻한 음식을 내어 피로를 풀게 하겠노라!”

 황제의 긴 축사가 끝나자 평민들의 축제가 시작됐다. 이제 남은 것은 귀족들의 축제였기에 귀족과 황제는 마차에 올랐다. 또한, 성녀도 마차에 올랐기에 케실리온도 뒤를 따랐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귀족들은 성녀의 마차를 에스코트하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 선 마차는 황제의 마차였고, 옆을 차지한 마차는 성녀의 마차였다. 그것은 황제가 성녀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뜻이었으며, 교단과 황실을 동급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 뒤로 3대 공작이 뒤를 잊는 것으로 움직였다. 이 모든 것이 계급 순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렇게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평민들은 준비된 꽃잎을 건물 위에서 뿌리며 황제와 교단의 앞길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황제폐하 만세!”

 “지저스교 만세!”

 “만세!!”

 휘이잉!

 평민들의 목소리에 황제와 귀족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수도에 위치한 지저스교의 신관들도 거리로 나와 성녀를 향해 꽃잎을 뿌렸다. 그렇게 뿌려진 꽃잎은 갑작스럽게 불어온 바람에 따라 성녀가 타고 있는 마차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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