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6화 (256/269)

 “피곤하실 텐데 무리하게 진행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소. 수도로 향하며 신성순례를 행하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소. 아무래도 황실연회는 내일로 미루는 것이 좋겠소. 짐은 이만 실례하겠소.”

 “황제폐하의 아량에 소녀 감읍하옵니다.”

 황제의 말이 끝나자 성녀는 낮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만족했다는 듯이 황제는 별궁을 관장하는 귀족에게 명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바레인백작 명을 받으라.”

 “신 바레인, 지엄하신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교단의 손님을 보필함에 있어 모자람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 점을 명심하여 성심껏 대하라!”

 황제는 바레인이라는 귀족에게 명을 하달하고는 본궁으로 유유히 사라져갔다. 그렇게 남은 바레인백작은 성녀와 케실리온을 향해 머리를 살짝 숙이고는 별궁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때, 시온의 옆에 있던 프린이 바레인 백작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오랜만이군요. 아버지.”

 “…….”

 프린의 말에 바레인 백작은 성녀와 케실리온을 돌아보며 어색하게 머리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중요한 손님 앞에서 경거망동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흠, 오랜만이구나. 이야기는 나중에……. 이 분들을 안내하는 것이 나의 일이니.”

 바레인백작의 모습에 성녀는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 앞에서 한줌의 동요도 없이 황제의 명을 이행하는 것이 감탄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본다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훗. 백작님, 전 그렇게 무정하진 않답니다. 오랜만에 만난 부녀끼리 회포를 푸는 것도 좋겠지요. 이미 어느 방을 써야 할지는 알고 있으니 부녀끼리 담소를 나누시지요.”

 성녀의 곧은 언행에 바레인 백작은 감탄스럽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성녀를 정해진 방까지 안내한 후에야 프린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백작이었다. 

 물론, 케실리온은 시온의 집요한 무공타령에 별궁에 있는 연무장에서 무공을 사사하고 있었다. 알파는 케실리온과 시온의 그림자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같이 행동했으며, 신성순례에 참여한 신성기사나, 크루세이더, 하이 프리스트는 성녀를 보좌했다.

 모두 각자의 형태로 휴식을 취할 무렵, 프린은 바레인백작과 조용히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모조모 다친대가 없는지 살펴보는 백작의 얼굴에는 여지없이 은은한 미소가 피어났다.

 “고생 많았구나. 그간, 카논 공작각하의 임무를 충실히 완수해주었어.”

 “아닙니다. 전 그저 따라다녔을 뿐.”

 “하, 하하!”

 프린 특유의 무뚝뚝함에 바레인 백작은 약간 당혹스럽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자 아이답지 않은 조숙함에 당황한 것이다.

 “흠흠, 그간 연락도 하지 않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죄송합니다.”

 “후- 고생도 했으니 별말은 하지 않으마. 일단, 교단의 손님으로 이곳에 온 것이니 별궁에서 머물겠느냐?”

 “……아닙니다. 전 공작가로 돌아가겠습니다. 보고할 것도 있으니.”

 “알겠다. 추기경께는 내가 잘 말하마.”

 바레인 백작은 사무적인 딸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끄덕였다. 잠시 딸을 쳐다보던 바레인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프린을 향해 말했다.

 “뜻이 그러하다니 그만 가 보거라.”

 바레인 백작의 풀 네임은 바레인 포칼이다. 포칼 가문은 코리안 공작가의 가신 가문으로써 언제나 충성을 다해오고 있는 가문이다. 때문에 프린이 힘겨운 명령을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바레인 백작은 찹찹한 심정으로 프린을 보냈다.

 언제고 묵묵하게 맞은 바 일을 해내고 있는 어린 딸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일찍 가문의 일을 이어받아 해나가고 있는 딸의 모습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염려됐다. 그렇게 사라지는 프린을 보고나서야 바레인 백작은 자신의 일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녀와 추기경을 위해 시녀를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음식을 만드는 재료와 주변 청결상태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바쁜 포칼 백작가다. 딸은 위험천만한 대륙 여행을 다녀왔으며, 바레인 백작은 황실 별궁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스럽고 찬란한 미스텔에 도착한 신성순례의 일원들은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바빠지기에 휴식은 필수다.

제국의 수도(1) - 과거의 인연

    

 제국 측의 호의로 편하게 쉴 수 있었던 성녀와 케실리온은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귀족들과 연회를 즐기기 위해 별체에서 나섰다. 비록 하루 동안의 휴식이었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돌연 시녀들의 행동에 당황스러웠을 뿐 피곤함은 없었다.

 모두 생기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별궁을 나섰다. 황궁답게 주변 경관이 화려했고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곳곳에 잔디가 심어져 있었기에 도보로 걷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잠시 옷을 추스르던 일행들은 연회장으로 향했다.

 시온과 알파는 황제가 선물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다소 불편하다는 얼굴이었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물론, 드레스를 입도록 도운 것은 시녀들의 몫이었다. 알파는 끝까지 입지 않겠다고 했지만 케실리온의 칭찬에 드레스를 착용했다.

 “연회장소가 아게이트라고 했나요?”

 “예, 성녀님. 모든 귀족들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성녀의 질문에 앤더슨이 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언제나 성녀의 의문을 풀어주는 앤더슨이었다.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일행들은 멀리 보이는 커다란 궁전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황성에서 특별한 일이 없다면 사용되지 않는 별궁이 아게이트(Agate)였다. 하지만, 황궁에 머물고 있는 자가 성녀였기에 이 별궁을 사용한 것이다. 황성의 별궁은 총 다섯 개가 있다. 네 개의 별궁은 별장의 개념으로 황제와 황족이 사용하는 별궁이었다.

 그것중 하나를 성녀에게 내 준 것을 생각하면 황제의 배포가 컸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제국의 귀족들은 황성 내에 귀족들이 머무는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성녀 일행이 얼마나 호강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장소는 황궁내의 별궁인 아케이트였다. 연회를 위해 지어진 만큼 크고 웅장한 건물이었다. 또한, 성녀 일행이 머물고 있는 별궁과도 가까웠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는 불상사도 없을 것이다.

 연회장에 가까워질수록 귀족들의 대화소리와 음악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

 “여기가 연회장이군요.”

 성녀는 별궁으로 향하는 잔디를 밟으며 연회장으로 쓰이는 건물을 쳐다봤다. 웅장한 돔형의 건물이었다. 둥근 지붕과 곳곳에 있는 가로수, 별궁의 입구에는 마법적으로 발동하는 분수대가 멋들어지게 배치되어있었다.

 연회장의 외각에 있는 발코니에서 대화를 나누는 귀족들이 곳곳에 보였다. 아마 바깥공기를 쐬거나 지방 귀족들이 대부분 일 것이다. 웅장한 광경을 쳐다보던 성녀는 케실리온의 걸음에 맞추어 연회장으로 향했다.

 저벅, 저벅-

 하얀색 계단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맑고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잔잔하게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대리석과 신발의 마찰음이 화음을 맞추고 있었다. 이윽고 일행들은 연회가 벌어지는 문 앞에 다다랐다.

 문 앞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시종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 문을 지나가는 자들을 소개하기 위해 배치된 것 같았다. 그의 손에는 양피지가 쥐어져 있었다. 수많은 귀족들의 소개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

 “문을 열어라.”

 앤더슨이 아까와는 다르게 위엄어린 목소리로 시종에게 말했다. 앤더슨의 행동은 이 분들은 높은 분이니 까불지 말고 문이나 열어 라는 뜻이었다. 가끔 건방지게 구는 시종도 있기 때문에 사전에 그런 것을 차단한 것이다.

 “소, 소개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시종은 앤더슨의 행동에 다소 당황했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에 흡족한 웃음을 짓던 앤더슨은 성녀와 케실리온을 소개했다. 

 “이 분들은 서대륙의 빛, 지저스교의 성녀와 추기경이시다.”

 “헉! 문을 열겠습니다.”

 앤더슨은 시종의 행동에 혀를 살짝 찼다. 저래서 어떻게 귀족들을 소개했을 지 의문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시종의 태도와는 다르게 능숙한 솜씨로 문을 열며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악단에게 손짓을 하고는 노래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귀족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큰 소리로 성녀와 추기경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갑작스럽게 연회장의 문이 열리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직 황제와 성녀가 오지 않았기에 둘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륙의 광명과 역사를 함께한 지저스교의 빛이며 신의 메시아이신 성녀 크리엘님과 규율의 검이자 어둠의 처단자이시며 빛을 수호하시는 추기경이신 케실리온님이십니다.”

 화려한 설명을 첨가하여 소개하는 시종은 식은땀을 흘리며 성녀와 케실리온을 향해 입장할 것을 요청했다. 성녀와 케실리온을 비롯해 뒤를 따르는 시온과 알파의 모습에 귀족들은 침을 살짝 삼켰다.

 의미모를 기운이 주변을 압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이었다. 때문에 귀족들을 발걸음을 차단했다. 쉽게 누군가 다가서기 어려운 압력의 방어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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