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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화 (259/269)

제국의 수도(2) - 결투(Duel : 決鬪)

     

 휘이잉-

 황궁 뒤편의 연무장에는 수많은 귀족들이 빈자리 없이 서 있었다. 평평한 연무장 위에는 은발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년이 서 있었고, 별궁 쪽에서 붉은 석양을 맞으며 걸어오는 자는 코리안 공작가의 사람들이었다.

 시원한 바람에서 습한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케실리온은 등으로 살짝 내려오는 은발을 틀어 올렸다. 잠시 바람의 흥취(興趣 : 흥과 취미)를 느끼듯 바람에 몸을 맡겼다. 흔들리는 육신의 자유로움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코리안 공작가다!”

 연무장에 있던 귀족들이 소리쳤다. 석양의 붉은 기운을 머금은 빛이 별궁 쪽을 비추자 코리안 공작가의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긴장감이 흐르는 연무장에서는 흥분과 존경, 경외가 어려 있는 눈빛으로 제국 공신 가문을 쳐다봤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 카논 공작각하와 라일 경이다!”

 “대마법사 페이린님도 같이 계신다!”

 카논 공작은 라일과 페이린의 중간에 서 있었다. 결의에 찬 표정으로 연무장을 쳐다보는 공작의 눈빛에는 신념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신념에는 라일의 승리와 무사 기원이 담겨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케실리온에게 향한 반가움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불필요한 대치가 벌어지고 있지만 적의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한편, 케실리온의 뒤쪽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온과 알파는 흥분하는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확신이 서 있는 얼굴로 케실리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우지 않아도 승리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온만 하더라도 그랜드 마스터라고 칭해지는 자들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시온마저도 상당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케실리온의 일행은 최강의 집단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저벅, 저벅-

 무겁게 걸음을 옮기는 라일의 모습에 제국의 귀족들은 말문을 닫았다. 더 이상 오고가는 대답이 사라지자 오직 자연적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사람들의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코리안 공작가가 자리를 잡자 라일은 연무장의 중앙으로 올라섰다.

 “감회가 새롭군. 노예로 팔려올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라일은 케실리온을 도발했다. 이미 뽑아진 롱 소드가 석양에 의해 붉게 보였다. 그의 도발에 케실리온은 무심(無心)을 유지했다. 일말의 표정도 감정도 없었다. 마치 여흥을 즐기겠다는 듯이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두 명이서 덤비는 것이 어떤가? 물론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라일의 도발에 케실리온은 딱딱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케실리온의 목소리에 수많은 귀족들이 웅성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떤 도발보다도 치욕적인 말이었다.

 “어찌 저런 말을!”

 “교단의 물도 흐려졌는가?!”

 귀족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성녀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제국의 귀족들이 모여 있는 만큼 조금의 말실수도 이런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회담(會談 : 모여서 토의함)에서 불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조용히 하라! 결투 중에는 당사자들을 제외한 누구의 말도 허용치 않겠다.”

 휘이잉-

 보다 못한 황제가 나서며 귀족들의 반발을 무마시켰다. 다시금 조용해진 주위를 둘러보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인 황제는 성녀에게 살짝 머리를 끄덕였다. 성녀는 감사의 뜻을 지닌 눈빛으로 황제는 보는 것으로 결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잘한 도발은 그만두기로 하지.”

 “…….”

 라일의 말에 케실리온은 침묵을 지키며 좌측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 누구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중얼거린 케실리온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의 단면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를 향해 뭔가를 움켜쥐듯 꺼내들었다.

 섀도우 웨폰(Shadow Weapon)이었다. 섀도우들이 사용하던 무구를 모아놓는 장소였다. 그리고 흡수 마스터(Absorption Master)의 검집, 즉 케실리온의 마령검을 보관하는 장소다.

 우우웅!

 기묘한 공명음을 터뜨리며 뽑혀 올라오는 마령검의 모습에 모두들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저런 능력은 처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4명의 추기경은 눈을 부릅떴다. 멸족한 섀도우들의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12성좌 중 11좌를 차지하고 있던 흑예의 섀도우(Shadow)가 곧잘 사용하던 기술이다. 마계에서 살아가는 섀도우를 제외한 중간계의 그림자들은 모두 멸족당했다는 것을 모두 잘 알 고 있었다. 때문에 눈을 부릅뜨고 놀라워했던 것이다.

 “……그게 검집인가?”

 라일은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검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검사들에게 있어서 부러울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발검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모양이지만 케실리온에게는 더없이 좋은 능력이었다. 그림자에서 솟아오르는 것 자체가 발검이었다. 

 “쓸 대 없는 문답은 필요 없다.”

 “그런… 가?”

 케실리온이 검을 쥔 순간 눈빛이 달라졌다. 잘 갈무리 되어 있던 기운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연무장을 휘감았다. 무심을 유지하던 마음은 흥분되기 시작했고 눈빛은 맹수의 눈처럼 이글거리며 눈앞의 라일을 직시했다.

 그 변화에 라일은 말수를 줄이며 그랜드 마스터 특유의 기운을 뿌리며 케실리온의 기운에 대항했다. 이것이 검의 일가를 이룬 자들의 대결이다. 기운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으로 자신의 위용을 과시할 심산이었다.

 기세만으로도 상대의 능력을 간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며 시계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걸음은 무거웠다.

 저벅! 저벅!

 연이어 들려오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에 귀족들은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알 수 없는 미증유의 기운이 몰아치며 투명한 실드를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렁!

 “결계를 강화하라!”

 마법사들은 세차게 요동치는 결계를 보며 마나를 더욱 끌어올렸다. 마스터간의 대결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항시 마법사와 치료사, 신관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 움직인다!”

 잠시 탐색전에 빠져 있던 둘은 어느 한 시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채 10초가 흐르기도 전에 신형을 날리며 서로를 향해 칼을 들이댔다. 귀족들이 그 모습을 확인한 것은 30초나 더 지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찰나의 순간 들려오는 굉음과 칼부림 속에서 몇몇 귀족들은 귀를 틀어막으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엄청난 결투였다.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신의 대결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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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전투하는 장면을 쓰는 것 같군요.

왠지 싸우는 장면이 쉬운 느낌?!

제국의 수도(2) - 결투(Duel : 決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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