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0화 (260/269)

   

 챙- 채챙!

 긴 여운이 남는 검격이 오고갔다. 귀의 고막을 울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신형을 날리는 발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또한, 짧은 순간 사방으로 퍼지는 기운이 결계를 건드리며 출렁이고 있었다.

 캉! 가가각!

 순간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한 점에서 만난 검은 일말의 긴장감을 토해내며 서로 대치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검을 긁는 이질적인 쇳소리가 들려왔다. 소음에 귀족들은 귀를 틀어막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소음을 만들어낸 당사자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서 있었다.

 “후우- 칼날이 상했군.”

 라일은 짧은 대치상대가 벌어지자 자신의 검을 쳐다봤다. 라일의 칼날에는 드문드문 강력한 힘에 의해 푹 들어간 것인지 칼날이 상해 있었다. 그만큼 케실리온이 소유한 마령검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어떤 손상도 없는 마령검의 모습에 라일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케실리온의 검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생각에 질투심이 생겨난 것이다. 기사는 더욱더 뛰어난 검을 가지길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라일은 자신의 검에 오러를 씌우며 케실리온의 검을 살짝 밀어냈다.

 스르릉!

 “합!”

 검을 밀어낸 라일은 상체를 살짝 숙이며 앞서나가 있는 오른발을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끌어당긴 즉시 왼쪽 발을 옆으로 내밀며 신형을 왼쪽으로 돌리며 케실리온의 옆으로 다가섰다. 정확하게 좌측을 노린 라일은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상대를 향해 찔러 넣기 시작했다.

 푹!

 ‘들어갔다?!’

 라일은 자신의 검 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눈을 크게 떴다. 결코 당할 것 같지 않던 상대가 자신의 검에 걸렸기 때문이다. 라일의 입가에는 한줄기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승리를 확신하게 됐다.

 라일은 그간 고된 수련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해왔다. 마법사들이나 한다던 명상도 했으며 매일 같이 반복되는 육체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심지어 먹는 음식까지 신경 쓰며 고된 단련을 한 성과가 눈앞에 드러나자 기쁨에 겨워했다.

 “설마 이겼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승리를 확신하던 라일의 귀에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으며 검 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사실 검을 횡으로 휘두르려고 했건만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오우거가 검신을 움켜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연히 라일의 눈은 자신의 검에 닿아 있었다. 목석처럼 검지와 중지사이에 검을 끼고 있는 케실리온의 모습이 눈에 비춰지자 라일은 크게 동요하며 검을 쥐고 있는 반대편 손을 이용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거칠게 날아드는 주먹을 보며 케실리온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케실리온의 모습은 어떤 상처도 없었으며 건재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까 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숨결은 고르며, 자잘한 상처도 없었다.

 주르륵!

 다만 케실리온의 검 끝에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몇 방울의 피였지만 그 의미는 상당했다. 새하얀 연무장 위에 떨어진 피가 귀족들의 정적을 깼다. 

「최고의 검사가 피를 흘렸다.

 교단의 추기경은 그랜드 마스터보다 강하다.」

 그 두 가지 의미가 전달되는 순간 귀족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오만한 추기경에게 쓴맛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사 라일이 수세에 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건방지게 추기경 앞에 나서며 소리쳤던 몇몇의 귀족들은 죽을상으로 변해 있었다.

 속된말로 ‘딱 걸렸다.’ 즉, 딱 걸린 것이다. 강한 무력과 튼튼한 배경을 지닌 추기경에게 반발했던 자들은 금방 풀죽은 기색으로 연무장을 쳐다봤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고 있었다. 한마디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며 멋대로 우울해 하는 것이다.

 “어, 어떻게? 분명 들어갔는데.”

 “눈먼 검에 찔리는 자도 있던가?”

 케실리온은 라일의 실력을 비웃으며 검신을 타고 흐르는 피를 거칠게 바닥에 뿌렸다. 검신은 마치 코팅이라도 된 듯 모든 피를 털어내며 고고한 자태를 드러냈다. 잠시 서로를 응시하던 둘은 한줄기 바람이 불어옴과 동시에 다시 움직였다.

 휘이잉! 파팟!

 둘의 신형이 사라졌다. 오직 케실리온이 털어낸 붉은 피가 바닥에 번지는 것으로 그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빠른지 짐작케 했다. 동으로 움직이던 그들의 신형은 어느새 서쪽으로 바뀌어 있었고 서쪽에 있는가 싶으면 북쪽을 향해 움직여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움직임이 절정에 달해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라일은 케실리온의 모습과는 대비되게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의 육체를 지닌 자 답지 않게 긴장감이 감도는 표정과 얼굴에 자리 잡은 한줄기의 땀줄기가 그것을 증명했다.

 카, 캉!

 빠르게 움직이며 그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간간히 들려오는 라일의 신음과 기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케실리온의 입에서는 어떤 신음도 기합도 없었다. 오직 짧게 비웃으며 짧게 대꾸할 뿐이었다.

 “큭! 어떻게 그런 검술을…….”

 “변명인가? 하찮은 변명보다 실력을 보여라.”

 케실리온은 라일을 비웃었다. 건방지게 시비를 걸어온 것에 대한 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고 있는 케실리온은 어떤 기술도 펼치지 않았다. 만오의 1장조차 펼치지 않고 상대하고 있는 케실리온의 모습은 경악스러울 만큼 뛰어난 수법으로 모든 검을 가로막으며 상대를 농락했다.

 평범한 휘두름이 저러할 진데 만검의 검술까지 펼친다면 라일은 상대도 되지 않을 지모를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인지 묘한 여유로움을 보였다. 그 모습에 케실리온은 살짝 비웃으며 좌측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채채챙!

 더욱 거세진 케실리온의 손속에 라일은 끌려 다니다 시피 막기에 급급했다. 허나, 그의 표정에 떠오른 한줄기 미소가 마음에 걸렸다. 

 “설마 이정도 공격이 다는 아니겠지?”

 케실리온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는 라일의 표정에서 케실리온의 혈압이 상승하는 것을 느꼈지만 자잘한 도발이라 생각하며 더욱 손을 놀렸다. 의외로 평온을 유지하는 케실리온의 모습에 라일은 살짝 놀라며 감탄했다.

 “호오! 놀라운 인내력이군. 하지만 틀렸어!!”

 챙!

 막기에 급급하던 케실리온의 검을 여유롭게 튕겨내며 라일은 큰 기합을 터뜨렸다.

 “크합!”

 라일의 몸 주위에는 금빛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폭주였다. 2계의 인간들이나 다크 나이트가 큰 기술을 사용하기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다. 몸의 기운은 주변으로 퍼뜨리며 상대를 압도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기술이다.

 마나를 운용하는 익스퍼트급의 기사들이나 펼칠 수 있는 기술인만큼 폭주는 대단한 기술이다. 케실리온도 이 기술만큼은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는 기술이었다. 물론, 케실리온도 이 기술을 펼칠 수 있지만 딱히 펼칠 이유가 없었다.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강력한 스피드와 근력, 마나 집중력이 상승하지만 기운의 소모가 큰 만큼 상태유지와 폭주를 펼치고 난 후의 육체적 부담감이 크다는 맹점이 있는 기술이었기에 케실리온은 빠르게 강해지는 수법을 버리며 장기적으로 적을 몰아칠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오직 눈앞의 강함만을 고집하는 2계의 존재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케실리온은 상대의 실책을 속으로 비웃으며 그의 행동에 맞게 움직였다. 라일은 한마디로 낚이고 있는 것이다.

제국의 수도(2) - 결투(Duel : 決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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