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1화 (261/269)

 폭주…….

 인간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일컬어 지칭하는 말이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평소와 다르게 마나(Mana)의 양과 컨트롤이 완숙해지는 등 한 순간에 모든 기운을 폭사시키는 것을 일컬어 폭주라 말한다.

 하지만, 크나큰 단점이 있으니 폭주를 펼치고 난 뒤 육체에 다가오는 피드백(Feedback)작용에 의해 육체의 균형이 일시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때문에 많은 기사들이 이 기술을 펼치기를 꺼려한다. 물론, 고급기술에 해당하는 폭주이기에 알고 있는 이도 드물다.

 명망 높은 공작가의 기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폭주라는 기술을 하나쯤은 보유하고 있는 귀족가도 더러 있기 때문에 폭주는 기사의 필수 스킬(Skill)이다.

 “또 그 기술인가?!”

 케실리온은 짐짓 놀란 척 라일을 향해 외쳤다. 온몸을 휘감는 금빛의 오러(Aura)가 라일을 휘감자 대단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기사로써 엄청난 존재감이었다. 부풀어 오르는 근육과 검에서 뿜어지는 예기가 더욱 상승해 있었다.

 마나의 밀집력까지 상승했기에 케실리온의 놀람은 아주 거짓이 아니었다. 라일은 금빛의 머리카락이 더욱 찬란해졌으며, 눈동자의 색도 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질적인 변화에 수많은 귀족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그랜드 마스터의 폭주를 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 정도의 위용과 존재감이라면 전설상의 드래곤이 온다고 할지라도 이길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교차한 귀족들이었다.

 휘이잉!

 연무장의 중앙은 라일의 폭주에 의해 거센 돌풍이 몰아쳤다. 서로의 검이 교차하며 부서졌던 연무장의 대리석이 하늘로 떠오르며 돌풍에 가세했다. 그 정도로 라일의 폭주는 대단했다. 

 “설마 아까의 공격이 다는 아니겠지?”

 라일은 짐짓 건방진 표정으로 케실리온을 쳐다봤다. 이정도의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케실리온에게 패한 뒤 쉴 새도 없이 자신을 몰아쳤고 다독였다. 라일은 자신의 실력을 믿었다. 반드시 승리하리라!

 챙!

 폭주를 위해 바닥에 꽂아 두었던 검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뽑혔다. 라일이 검을 쥔 순간 연무장 일대의 공기가 바뀌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풋풋하고 시원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축축하고 따가운 느낌이었다.

 “글쎄…….”

 케실리온은 라일의 물음에 슬쩍 받아넘겼다.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이 그려져 있었지만 그 누구도 표정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기묘한 문양이 그려진 검신을 쓰다듬은 케실리온은 라일의 기수식(起手式)을 보며 왼손을 살짝 비틀었다.

 휙!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음률이 터져 나왔고 왼손에 쥐어진 검병쪽 검신을 쓸어 넘겼다. 음각처리 된 수많은 문양 중 눈에 띄는 글귀가 있었다. 지옥에서 새겨 넣은 마령검(魔靈劍)이라는 글귀가 손에 닿자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 느낌을 살려 케실리온은 양발은 좌우로 살짝 벌리며 무릎을 구부렸다. 만검(萬劍)을 익히며 가장 이상적인 자세를 찾다 고안해낸 기법이었다. 검이 어느 손에 있던 자세를 유지할 때는 이 자세가 가장 이상적이었다.

 후우-

 짧은 숨결이 터져 나왔고 왼손에 쥐어진 검은 마치 부드러운 비단이라도 만지듯이 가볍게 쥐었다. 다른 검사들과는 다르게 케실리온은 검을 가볍게 쥐는 것으로 시작한다. 서로의 기수식을 감상하던 라일과 케실리온은 일말의 침묵 속에서 신형을 날렸다.

 가장 먼서 손을 쓴 것은 라일이었다. 금빛의 오러가 주변을 뒤덮으며 케실리온을 향해 쇄도했다.

 팟!

 화려한 몸놀림은 없었다.  오직 한 번의 발 구름으로 서로를 향해 다가선 둘은 칼을 겨누며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역시 베기였다. 라일은 오른쪽 사선에서 왼쪽으로 베었고 케실리온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라일의 검을 받아쳤다.

 창!

 청명한 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음색이 무색할 정도로 라일의 손놀림은 빨랐다. 음이 끝맺음을 하지 못한 채 뒤이어 터져 나온 음색으로 혼선을 빚었다. 하단 베기, 상단 베기, 찌르기 화려함 속에 묻어나는 기초 검술이 주를 이루었다.

 어느 순간 라일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케실리온의 다시 사이에 자신의 다리를 집어넣으며 급격히 거리를 좁혔다. 그 후 검병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좌측을 향해 찔러 넣기 시작했다. 워낙 빠른 수법이었기에 케실리온은 미처 몰랐다는 듯이 연회복에 기다란 줄이 그어졌다.

 찌이익!

 한 번의 실책이었지만 연회복에 그려져 있는 상흔은 엄청났다. 정확하게 명치와 단전의 사이를 노린 수법에 연회복은 옆구리가 완전히 잘려져 있었다.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연회복을 거칠게 찢어버린 케실리온은 라일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쉽게 봤던 녀석이 의외의 한수를 펼치자 자존심이 상한 케실리온은 차분하게 검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마치 결투를 포기한 모습에 귀족들은 웅성거리며 수군거리기 바빴다. 수세에 몰렸다고 생각했던 기사 라일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웅성웅성

 “고작 그 실력으로 오만하게 굴었던 거냐?”

 귀족들의 웅성거림에 라일은 미소를 지으며 케실리온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그의 말투에 케실리온은 얼굴을 찌푸리며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일종의 떡밥이다. 녀석은 케실리온의 연기에 완벽하게 걸려들고 있는 것이다.

 방금 전의 일격은 가볍게 피해낼 수 있는 수법이었다. 삼재보만 하더라도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회전하는 수법이 있다. 그런데 라일의 허술한 수법에 당한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더욱이 케실리온은 상승의 보법과 신법을 보유하고 있다. 만오문의 보법과 신법, 직접 창안한 풍류마신보(風流魔神步)만 하더라도 최고의 수법을 자랑했다. 그런데 쉽게 당한 것은 라일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다.

 방심!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1계에서 얼마나 많은 방심을 했던 케실리온이던가! 방심은 독이 되며 정신을 흩트리는 떡밥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연기를 찰나에 계획한 케실리온은 지금도 라일을 향해 달콤한 먹이를 주었다.

 “슬슬 끝내야 하지 않겠나.”

 “…….”

 라일의 말에 케실리온은 말을 아꼈다. 조금씩 기운을 끌어올리는 라일에 맞추어 한 단계 낮게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것으로 모든 계획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상대를 방심하게 하며 최고로 끌어올린 뒤 상대를 무너뜨린다.

 이 얼마나 통쾌한 결과인가! 수많은 귀족들의 앞에서 망신을 당한 녀석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무례했던 게 누구인가? 코리안 공작가다. 배신한 것이 누구던가? 페이린이다. 결투를 신청해야할 존재는 케실리온이다. 그런데 라일이 나섰다.

 이것만으로도 상대를 농락할 자격은 충분하다. 케실리온은 라일의 모습을 보며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아마 녀석은 골드 브레스(Gold Breath)를 사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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