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수도(2) - 결투(Duel : 決鬪)
드래곤 소드(Dragon Sword : 용검龍劍)은 란델을 제국으로 끌어올린 검술이었다. 개국공신가문 중 코리안 가문의 절기이며 제국 내 최고의 검술이다.
고오오-
라일의 몸에서 금빛의 기운이 흘러넘쳤다. 시작은 배꼽 부근이었다. 금빛의 기운은 배꼽에서 명치로, 명치에서 양팔로 이동했다. 또한, 대기 중의 마나가 라일의 롱 소드의 주변을 맴돌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강력한 기운은 공기마저 잡아두었다. 공간을 장악한 것처럼 공기는 차가운 살기를 담고서야 케실리온에게 전해졌다. 연무장의 끝과 끝을 차지하고 있는 둘은 말없이 상대의 기운을 가늠했다.
“대단하군. 공기가 차갑게 식었어.”
“……늦지 않았다. 사죄하라.”
라일의 운용능력에 감탄하듯 말하는 케실리온의 말을 듣고는 라일이 말을 이었다. 너무 차가운 말투였다. 따뜻한 금빛과는 대조적인 말투였다. 그 말이 끝나자 맹렬하게 회전하던 공기는 죽은 듯이 침묵했다.
“가타부타 대답은 정해진 것이 아니었나?”
“…….”
케실리온은 한 점의 두려움도, 흔들림도 없이 받아쳤다.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란델 제국을 떠나오면서 결심했던 사항이다. 먼저 건들지만 않으면 조용히 있겠다던 결심을 깨버린 것은 상대측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상대방의 책임이었다.
“내 대답은 된 건가?”
“거절이군. 가타부타 결정할 일은 아니었지.”
분노의 살기를 뿜어대며 떨고 있던 몸은 점차 떨림을 멈췄다. 약간의 애정이 남아 있던 표정은 살심으로 바뀌었다. 이것으로 검을 움직이는 데 방해되는 요소는 없어졌다. 그는 서서히 몸의 긴장감을 완화했다. 활활 타오르는 금빛의 안광이 케실리온을 향한 것도 그 때였다.
“물론…….”
“후회할 것이다. 케실리온!”
담담한 케실리온의 눈빛을 본 라일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무릎을 굽히며 근육을 이완했다. 긴 호흡을 내쉬기도 전에 라일은 앞으로 쏘아졌다. 양쪽 귀에는 공기를 파고드는 소리가 전해졌고, 케실리온의 심장박동과 움직임에 눈에 들어왔다. 서로를 벨 듯 검을 움켜쥐었다.
사실 케실리온이 사죄했더라도 이 대결은 끝을 보아야 했을 것이다. 검사대 검사로써의 자존심 대결이었다. 아카데미의 앙금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카논 공작과 합공으로도 패한 라일이었다. 이것으로 치욕은 씻으리라!
팟!
라일의 신형은 공간을 비틀듯 케실리온의 가슴을 향해 질주했다. 정교한 줄자로 잰 듯 라일의 몸놀림은 빨랐고 정확했다. 하지만, 일순간 흔들리는 신형은 약간의 기척을 남기며 사라져버렸다.
눈을 속이는 속도에 케실리온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눈으로 쫓지 못한다면 기운으로, 감으로 쫓으면 되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한들 케실리온은 무수한 전투를 겪은 최고의 검사이며 지존이다.
수많은 무인들을 이끌고 지옥을 질타하며 앞을 가로막는 적과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승리했다. 케실리온은 흐릿하게 보이는 라일의 신형을 쫓으며 차가운 기운을 주변으로 퍼뜨렸다.
고오오-
공간을 휘어잡는 케실리온의 기운이 조금씩 퍼져나가자 라일의 기척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이대로 라일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상대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 무너뜨릴 생각이다.
통쾌한 복수극, 상대를 높은 곳에서 떨어트리는 쾌감.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2계의 존재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귀족이라며 까부는 녀석들과 긍지 높은 척, 고고한척하는 기사들에게 더 높은 하늘이 있다고 가르쳐주고 싶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녀석……!!”
라일은 이를 으스러져라 악물었다.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케실리온의 기운에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례를 범했던 것을 떠올리며 악을 썼다. 상대와의 거리는 겨우 세발자국의 거리였다.
스악!
라일은 세발자국 남은 거리를 두고 검을 휘둘렀다. 순간 뻗어나가는 움직임과 어우러진 검이 빠르게 케실리온에게 쏟아졌다. 검에는 금빛의 기운이 머물며 모든 것을 베어버릴 듯 한 예기를 내뿜었다.
“…….”
등 뒤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케실리온의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 살기였다. 케실리온은 아까 취했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왼손에 쥐어진 검을 역수로 쥐며 가볍게 튕겼다.
캉!
기운으로 검을 움직여 상대의 검을 쳐낸 케실리온은 몸을 회전시키며 자세를 낮췄다. 라일의 검이 튕겨나가는 것과 동시에 횡으로 베어왔기 때문이다. 주변으로 퍼진 기운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마치 물속에서 생겨나는 작은 파장이 전해지듯 라일의 검이 가는 곳으로 마나의 파장이 생겨났다. 일정한 범위로 퍼뜨린 케실리온의 기운이 모든 것을 가르쳐줬다.
챙!
다시 쇄도하는 라일의 검을 막아낸 케실리온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보아하니 큰 기술을 사용할 모양이지? 일부러 이렇게 접근하는 것을 보니!”
검을 맞댄 라일은 낮게 웃음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후훗. 맞다. 케실리온. 지금까지 잘 막아 온 것을 보니 그랜드 마스터구나. 허나 여기서 물러설 생각은 없다. 더욱이 사죄할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마라. 곧 골드 소드가 완성된다.”
케실리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을 아래로 볼 때마다 속으로 비웃을 뿐이었다. 골드 소드로 위상을 세워주고 상대를 끌어내릴 것이다. 과거 막아본 경험이 있으니 위력은 충분히 예상됐다. 모든 힘을 끌어올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케실리온은 말없이 신형을 날리며 주위를 끌 뿐이었다. 그렇다할 공격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상대의 시선을 끌며 골드 브레스라는 것이 완성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팟!
갑자기 기척을 죽이며 주변을 맴도는 케실리온을 보며 라일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급할 것 없다. 승기는 나에게 기우러졌다. 이미 골드 브레스를 펼치기에 충분한 기운이 모였다. 케실리온의 첫 번째 공격만 와해되면 더 이상 공격할 수는 없을 터. 또한 골드 브레스를 막을 여력은 없을 것이다.’
라일은 차분하게 케실리온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큰 움직임을 기다렸다. 케실리온이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큰 움직임은 큰 실수로 변할 것이다. 그 즉시 골드 브레스를 펼친다!’
모든 생각이 정리되자 라일은 차분하게 롱 소드를 움켜쥐며 케실리온의 공격을 유도했다. 가볍게 횡으로 베는 동작을 연이어 펼치며 공격을 유도하는 것이다. 거기다 약간의 페이크(Fake)를 준다면 케실리온은 반드시 걸려들 것이다. 그것이 공격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는 큰 동작을 펼칠 것이다.
한편, 케실리온의 생각은 달랐다. 차분하게 공격을 유도하는 라일의 수법을 간파한 것이다.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며 기회를 노리는 것이 눈에 뻔히 보였다. 아까보다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졌고 공격에는 날카로움이 없었다.
근육의 안배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일 정도로 살기가 묻어나지 않았다. 다른 자들은 속여도 케실리온은 속일 수 없었다. 사소한 표정과 움직임도 케실리온의 눈길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녀석은 큰 동작은 원하고 있다.’
라일의 동작을 보며 모든 것을 유추한 케실리온은 큰 동작을 펼치기 위해 오른쪽 발을 과하게 뻗으며 검을 찔러 넣었다. 이 모든 것이 페이크라는 것을 라일이 알면 놀랄 것이다.
푹!
케실리온은 과장된 몸짓으로 검을 찔러 넣는 동작을 펼쳤다. 반응은 즉시 튀어나왔다. 라일은 옆으로 몸을 회전하며 오른손에 쥐어진 롱 소드를 향해 모든 기운을 집약시키며 케실리온에게 뻗었다.
“골드 브레스(Gold Breath)!!”
라일의 일갈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롱 소드는 금빛으로 물들었다. 라일의 정면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금빛의 기류가 케실리온을 향해 뿜어졌다. 라일의 찌르기 공격이 섬전같이 터져 나온 것이다. 아무래도 라일의 골드 브레스는 오러 블레이드를 형체화 시켜 공격하는 수법 같았다.
제국의 수도(2) - 결투(Duel : 決鬪)